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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5
끝나고,
내가 아파트 조경에 대해 무지했구나 깨닫고 퇴근하고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를 갔습니다. 삼십분정도 보고 와야지 했는데 단지를 다 둘러보니 한시간이 넘어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살았던 아파트는 대전 은어송 코오롱 하늘채였는데요. 16동이나 있어 아파트 한바퀴를 돌면 삼십분 좀 넘었던 것 같습니다. 아파트 한바퀴 돌다보면 친구들 가족도 마주치고 부모님과 곤충도 잡고 자전거도 타고, 단지 내 문화센터가 있는 선큰의 큰 계단에서 행사도 하고 불꽃놀이도 했었습니다. 초등학생때의 기억이라 가물가물했는데, 오늘 아파트를 걷다보니 잊고 있던 그때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는 겁니다.
아이와 산책하는 부부, 자전거타고 단지내를 돌아다니는 초등학생들, 공부 끝나고 하교하는 중고등학생들.. 제가 최근에 아이들 볼일이 참 없었거든요. 집약적으로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한꺼번에 마주해서 그런지, 사람사는 풍경에 참 가슴이 저릿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살던 하늘채도 나름 잘만든 단지라고 상도 받았던 것 같은데, 확실히 개포동 디에이치아이파크는 신규단지기도 하고 더 고급이라 비교도 안되게 좋았습니다. 나무들도 엄청 크고 두꺼웠고, 각 동마다 하나 이상의 휴게공간을 할당했나 싶을정도로 다양한 모양의 휴게공간을 걷다보면 엄청 자주 마주쳤습니다. 선형으로 긴~ 테이블이 있고 거기에 이동가능한 의자를 놓아서 잔디광장이나 놀이터를 다같이 바라볼 수 있게 한 휴게공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있고 학부모들이 학원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산책길에 둘러싸인 수경공간에 둘러싸인 파빌리온 안의 노부부도 기억에 납니다. 파빌리온은 서양적인데 분위기는 동양적이어서 좀 유심히 봤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아파트 필로티에 아웃도어 퍼니처를 놓더라구요?그곳에서 떠들고있던 여고생들도 기억에 납니다.
사실 또 며칠 전에 광명 트리우스에 간적이 있습니다. 늦은 밤 승환이랑 싸우게 되어 사람없는 쾌적한 곳으로 피하다가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늦은 밤인데도 티하우스에 저희 말고도 다른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피해 나와서 조용히 대화하며 싸우고 있는거같아, 승환이랑 키득댔는데요. 그때 아파트 조경은 집안에서도 숨돌리기 힘들 때 나와서 잠시 숨돌리는 공간이구나 느꼈습니다. 도시일수록 제 3의 공간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급 아파트일수록 벽 안이 아니라 조경이 더 큰 차별화 지점이구나. 생각이 들며 아파트 조경설계도 조금은 경험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이가 쟤는 왜저렇게 까부는거야, 하는말에 아이 아버지가 너도 그랬거든, 하는 걸 듣고 너무 제 가족이 보고싶어지며 단지를 나왔습니다.
사실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아파트조경이라고 썩 유쾌하지 않은 시선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곳은 관행적으로 해오던 아파트 조경이 맞고 감동도 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입주민의 삶을 고민하고 만든 아파트조경도 있다는 걸 오늘 느꼈습니다. 물론 그만큼 비싸겠지만.. 조금은 감동이라 또 잊기전에 글로 남깁니다.
아파트 조경은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위한 ~ 반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되서 어렵기도 하겠다,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더 잘만들수록 더 효율성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입구에서 반대편 입구로 가는데 참 다양한 길이 있어서 재밌었고, 그 길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깊은 녹지대를 만들려고 여러 각도로 꺾은 계단들도 재밌었고, 굽이굽이 산책길 걷다가 갑자기 넓고 시원한 내리막길도 나와서 재밌었고, 길이 끊기지 않고 계속 어딘가로 연결되서 재밌었습니다.
엄마는 산에 가면 어릴때 기억에 좋다고 하는데 그게 저에겐 아파트 조경인가봅니다.
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