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기존 Ver. 1.0의 연구 및 교육철학을 유지하면서 생성형 AI 이후 변화한 연구환경을 반영하여 개정한 글입니다.
들어가며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거나, 이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려는 학생들, 혹은 막 연구를 시작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기존 Ver. 1.0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대학원 진학의 의미, 연구분야의 선택, 대학원생의 핵심 미션, 새로운 연구문제를 만드는 방법, 대학원 생활에서 가져야 할 좋은 습관, 그리고 연구자에게 필요한 자질 등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글을 작성한 이후 연구환경에는 꽤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문헌을 찾고 정리하는 일, 아이디어를 구조화하는 일, 코드를 작성하는 일, 글을 다듬는 일과 같이 연구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 수행하던 작업의 상당 부분을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구와 대학원 교육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AI가 많은 일을 도와줄 수 있게 되면서,
연구자가 무엇을 직접 배우고 이해해야 하는지,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지
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Ver. 2.0에서는 Ver. 1.0의 기본적인 생각과 방향을 유지하면서, AI 이후 변화한 연구환경에서 학생들이 어떤 자세로 공부하고 연구하면 좋을지에 대한 제 생각을 추가하고 보완하고자 하였습니다.
1.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일까요?
대학원 진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크게 학문적인 측면과 실용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a) 학문적 측면
학문적인 측면에서 대학원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더욱 깊게 공부하고, 실제 연구문제를 스스로 다루어보는 과정입니다.
학부과정에서는 이미 정리된 지식과 문제를 배우고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대학원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를 만나게 되고,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찾고, 가능한 원인을 생각하고, 방법을 선택하고, 결과를 해석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하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사고방식
을 배우게 됩니다.
(b) 실용적 측면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대학원 경험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업, 연구소, 대학 등 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진출할 수 있으며, 연구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동료와 교수, 다양한 연구자들과의 관계 역시 이후의 연구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가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거나 특정 기술을 배웠다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는 이전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AI가 많은 지적 작업을 빠르게 보조할 수 있게 된 시대에도 대학원의 중요한 의미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 그렇다면 "어떤 연구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은 보통 어떤 분야가 유망한지, 어떤 분야가 취업에 유리한지, 앞으로 어떤 분야가 많이 연구될지를 고민합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특정 연구분야의 이름 자체보다,
그 분야에서 다루는 문제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를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대학원에서는 특정 software나 해석기법 하나를 배우는 것보다, 하나의 연구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이해하고 → 필요한 지식을 찾고 → 가설을 세우고 → 방법을 선택하고 → 결과를 분석하고 → 검증하고 → 자신의 논리로 설명하는" 전체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특정 기술과 연구방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사고방식은 이후 다른 연구분야나 새로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계속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흥미도 매우 중요합니다.
석사과정만 하더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 하나의 주제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외적으로 좋아 보이는 분야보다는 내가 일정 기간 계속 궁금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을 현재의 세부 연구주제 안에만 한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연구분야는 깊이 공부하되, 인접한 연구분야에서는 어떤 문제를 다루는지, 다른 공학분야에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새로운 계산 및 실험기술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AI와 같은 새로운 도구가 연구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산업과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를 필요로 하는지에도 관심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Learn deeply, explore broadly
깊이 공부하되, 넓게 보십시오
한편 연구분야를 선택할 때에는 학문적인 흥미만큼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재정적인 지원환경은 충분한지, 연구 이후의 진로와 취업 가능성은 어떠한지 등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한 뒤, 자신이 일정 기간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했으면 합니다.
3. 대학원생의 핵심 미션은 무엇인가요?
대학원 과정의 핵심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문제해결 과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목표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a) 석사과정: 하나의 연구문제를 해결하는 전체 과정을 배운다
석사과정에서는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문제를 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전체 연구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헌을 조사하고, 필요한 이론과 방법을 공부하고, 해석이나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연구를 논리적인 글과 발표로 정리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최종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연구가 끝날 즈음에는 최소한 다음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 문제를 연구했는가?
왜 이 방법을 사용했는가?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가?
이 결과를 왜 믿을 수 있는가?"
즉, 하나의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사고로 따라갈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b) 박사과정: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박사과정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서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현상을 발견할 수도 있고, 현재 방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볼 수도 있으며, 서로 다른 분야의 개념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즉 기존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넘어,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그것을 연구 가능한 문제로 발전시키는 능력
이 중요합니다.
생성형 AI는 이제 많은 연구주제와 가설,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아이디어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자가 문제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질문을 만들고 문제를 구조화해본 경험이 있어야, AI가 제안한 아이디어 역시 자신의 연구에 적합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4. 새로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을까요?
처음 연구를 시작하면 “새로운 연구문제를 만들어보라”는 말이 매우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연구라고 해서 반드시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과정은 기존의 지식과 연구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작은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교적 실용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기존 연구결과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해보기
기존 연구가 특정 조건이나 문제에 대해서만 수행되었다면,
다른 조건에서는 어떻게 될까?
이 방법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지금까지 고려하지 않은 변수를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와 같이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b) 다른 분야의 개념이나 방법을 가져와보기
A라는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나 방법이 B라는 분야에서는 아직 충분히 사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연구분야 밖의 논문과 기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저 분야에서는 저 문제를 저렇게 해결하는데, 우리 문제에도 적용할 수 없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이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c) 구체적인 결과에서 보다 일반적인 문제를 찾아보기
하나의 simulation이나 실험에서 특정 현상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개별 결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다른 조건에서도 동일한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보다 일반적인 mechanism이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구체적인 관찰을 보다 일반적인 연구문제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d)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제시해보기
가장 어려운 방향은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거나 기존 연구의 연장선만으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 자체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문제는 단순히 엉뚱한 아이디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 연구와 경험이 머릿속에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 서로 다른 현상과 개념 사이의 연결을 발견하거나, 기존에는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현상에서 새로운 연구가치를 발견하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에 많이 읽고, 많이 보고, 질문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틀을 의도적으로 비틀어보기🌟
앞의 네 가지 방법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고법이 있습니다.
Know the default → Deliberately twist it → Re-ground it
먼저 무엇이 기존의 방법이고, 어떤 가정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왜 그렇게 해왔는지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다음 질문해봅니다.
왜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할까?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현상을 오히려 이용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기존의 틀을 비트는 것만으로 연구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시 이론, 문헌, 계산 또는 실험과 같은 근거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있는 상상에 머물 수는 있지만 연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연구에서의 창의성은 반드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기존의 틀인지 알 수 있고, 그중 무엇을 의미 있게 바꿔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능력
에 더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5. 대학원 과정을 잘 이끌고 나아가기 위한 좋은 습관 같은게 있을까요?
제가 대학원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은 꾸준한 문헌조사와 아이디어 메모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방법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기존 연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인접한 분야에서는 어떤 문제와 방법을 다루고 있는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문헌조사는 단순히 논문을 많이 읽는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논문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상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내 연구에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를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결국 문헌조사의 목적은 읽은 논문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정제된 지식과 연결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a)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바로 기록하세요
연구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떠오르곤 합니다.
논문을 읽다가 생길 수도 있고, 계산결과를 보다가 생길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의 발표나 교수·동료와의 대화에서 갑자기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아이디어를 완전히 정리한 뒤 기록하려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문장이어도 괜찮고, 질문 하나여도 괜찮으며, 몇 개의 키워드나 간단한 그림이어도 괜찮습니다.
Capture first, organize later
중요한 것은 생각이 떠오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록하지 않으면 상당수는 사라집니다. 반대로 정리되지 않은 메모라도 남아 있으면 나중에 다시 보고, 문헌을 찾아보고, 다른 아이디어와 연결하면서 연구문제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는 이러한 raw thought를 나중에 분류하고 구조화하며 서로 연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처음부터 잘 정리해서 쓰는 능력보다, 좋은 관찰과 질문을 놓치지 않고 계속 남기는 습관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 결과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결과를 깊이 바라보세요
연구를 처음 시작하면 많은 simulation, experiment 또는 analysis 결과를 만드는 것이 연구의 진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결과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결과를 나열하는 것보다 설령 하나의 결과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왜 그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그 근거와 메커니즘은 무엇인지를 깊게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얻었다면 한 번 더 질문해보십시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은 무엇인가?
Numerical 또는 experimental artifact일 가능성은 없는가?
어떤 변수나 mechanism이 이 현상을 지배하는가?
다른 조건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까?
기존 문헌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표현으로 바꾸면,
Do not just collect results. Interrogate them.
결과를 모으는 데서 끝내지 말고, 결과에게 질문하십시오.
좋은 연구는 때때로 예상했던 결과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의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면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c) 많이 생각하되, 생각을 축적하세요
연구를 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의 결과에 대해 첫 번째로 떠오른 설명에 바로 정착하지 말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생각이 많다”는 것이 방향 없이 생각을 계속 바꾼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좋은 연구에서는
Question → Hypothesis → Test / Evidence → Update → Better Question
의 과정이 반복됩니다.
새로운 계산, 실험, 문헌 또는 이론적 근거를 얻었다면 자신의 생각도 함께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어떤 가설은 버리고, 어떤 가설은 더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도 점점 명확해져야 합니다.
Explore broadly, but update coherently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되, 그 결과를 다음 생각의 출발점으로 계속 축적해나가십시오.
6. AI 시대에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생성형 AI는 연구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문헌을 찾고 정리하는 일, 여러 아이디어를 비교하는 일, 산발적인 생각을 구조화하는 일, 코드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일, 글과 발표자료를 정제하는 일 등에서 AI는 이미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AI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연구훈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다만 그 활용에는 하나의 중요한 절대원칙이 필요합니다.
Think with AI, not through AI
AI와 함께 생각하되, 자신의 사고 전체를 AI로 대체하지 마십시오
(a) AI에는 속도와 폭을 맡기세요
AI는 많은 가능성을 빠르게 생성하고, 복잡한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구조화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연구결과를 보며 여러 원인과 가설이 동시에 떠올랐다면 이를 분류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고, 하나의 연구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거나 다양한 검증방법을 비교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문헌조사, coding, writing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사람이 많은 시간을 들여 수행해야 했던
Filtering → Structuring → Refinement
과정을 AI가 빠르게 도와줄 수 있다면, 그 효율성을 굳이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b) AI가 만든 구조를 다시 자신의 사고로 따라가 보세요
AI가 보기 좋은 표를 만들거나 논리적인 연구계획을 제안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신의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다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으면 합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나누었는가?
이 가설들은 서로 독립적인가?
어떤 assumption이 숨어 있는가?
빠진 가능성은 없는가?
제안된 test가 정말 이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가?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다시 reconstruct해보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AI는 단순히 대신 일을 해주는 도구를 넘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분류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thinking amplifier이자 cognitive scaffold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활용해 연구방향을 정리했다면,
“AI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서 끝나기보다,
“AI와 여러 가능성을 검토했고, 그중 저는 이 방향을 이러한 이유로 받아들였으며, 다른 방향은 이런 이유로 제외했습니다.”
라고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c) 이해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연구결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AI는 잘못된 내용도 매우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Well-structured output ≠ Scientifically valid reasoning
입니다.
AI가 제안한 문헌, 수식, 코드, 물리적 mechanism이나 해석이 연구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면, 가능하면 원문과 이론을 직접 확인하고 간단한 계산, numerical test, 다른 방법 또는 실험결과와의 비교 등을 통해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답을 주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그 답을 믿어도 되는지를 연구자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를 가장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You may delegate the work, but not the understanding
일은 맡길 수 있어도, 이해까지 맡기지는 마십시오
(d) AI를 사용한 뒤에는 두 가지를 함께 확인하세요
AI를 사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 자신의 이해는 충분하지 않은데 AI를 통해 만들어진 코드, 글, 발표자료와 연구계획은 매우 훌륭해 보이는 상황도 가능해졌습니다.
따라서 AI를 사용한 뒤에는 스스로 두 가지를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AI 덕분에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 should be YES
그리고 반드시,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가? → should be YES
도 함께 확인해보십시오.
만약, 첫 번째만 좋아졌다면 생산성은 증가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 역시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7. 결국 좋은 연구자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Ver. 1.0에서는 대학원에서 성공하기 위해 Competence와 Capacity가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 Capacity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Competence는 주어진 문제를 현재 얼마나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코딩을 잘하고, 해석 software를 잘 사용하고, 수학적인 계산을 능숙하게 수행하며, 논문을 정리하고 글을 잘 쓰는 능력은 모두 중요한 Competence입니다.
그런데 AI는 이제 이러한 competence의 상당 부분을 빠르게 보완하거나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coding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AI의 도움으로 상당히 좋은 코드를 만들 수 있고, 영문 writing이 부족해도 정교한 글을 작성할 수 있으며, 방대한 자료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만으로 연구자의 실제 성장 정도를 판단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Capacity입니다.
Capacity는 단순히 현재 무엇을 잘하는지를 넘어,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어떻게 공부하는가,
실패하거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다시 접근하는가,
기존의 틀과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와 관련됩니다.
즉, Capacity는 연구자의 현재 결과물보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AI 시대에는 여기에 한 가지 능력을 더 포함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자신의 판단 아래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입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어떤 문제를 추구할 것인지, 어떤 설명을 믿을 것인지, 어떤 결과를 자신의 연구로 주장할 것인지는 연구자가 판단해야 합니다.
따라서 iMSD에서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Research Productivity의 증가만은 아닙니다.
AI를 통해 더 빠르게 연구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학생 자신도 더 좋은 질문을 만들고, 더 깊게 이해하며,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연구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Research Productivity ↑ + Researcher Development ↑
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현재 얼마나 능숙한 학생인가만을 보는 것보다,
얼마나 많이 배우려 하는가,
얼마나 꾸준히 질문하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가
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Ver. 1.0에서 이야기했던 Competence보다 Capacity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생각의 AI 시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AI 시대의 연구교육에 대한 제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AI should increase a researcher's capability, not decrease the researcher's understanding !!
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7. 대학원 진학을 위한 결단
대학원 과정은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프로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학부과정을 몇 년 더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만들고,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준비가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뛰어난 연구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대학원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학원을 선택했다면,
내가 선택한 연구와 학문에 일정 기간 진지하게 몰입해보겠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필요합니다.
연구는 언제나 재미있지만은 않습니다.
잘되지 않는 계산이나 실험을 오랫동안 붙잡아야 할 수도 있고,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논문과 이론을 다시 공부해야 할 수도 있으며,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이 이미 잘하는 것만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잘하지 못하는 것도 배우고 새로운 문제 앞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실에서 동료와 교수와 함께 보내는 시간 역시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과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비판을 받고, 다시 공부하고 수정하는 경험 하나하나가 결국 자신의 전문성과 판단력을 만들어갑니다.
8. 맺으며
대학원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선택은 아닙니다.
취업을 선택하는 것도, 대학원을 선택하는 것도 각자의 상황과 목표에 따라 충분히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을 선택했다면 그 시간이 단순히 학위를 얻기 위해 지나가는 기간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연구자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네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Learn deeply, explore broadly
Question continuously, think coherently
Think with AI, not through AI
Understand, verify, then trust
AI는 앞으로도 연구하는 방식을 계속 바꿀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AI를 통해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이해와 판단 역시 함께 깊어졌으면 합니다.
대학원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그 시간이 단순히 몇 편의 논문과 학위를 남기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전문성과 사고방식을 만들어가는 시간
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큰 힘과 영감을 준 실화 기반의 영화인 "October Sky"...
나는 이 영화를 정말 많이 보았다. 삶이 힘들 때마다, 나의 꿈 (나의 꿈이 그저 교수가 되는것은 아니다.)이 그저 허상에 불과한건 아닐까 의심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말이다. (사실 예전에 썼던 글을 부끄럽지만 연구실 홈페이지에 정리해본다...)
1. 손재주 하나로 시작된 꿈
1957년 냉전시대... 소련의 스푸트니크가 인류 최초로 우주 궤도에 진입하던 밤.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탄광 마을 콜우드의 한 소년, 호머 히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다짐한다.
"I'll learn everything there is to know about rockets."
그 장면은 단지 어린 소년이 우주에 대한 꿈을 품는 순간만은 아니었다. 그 다짐은, 그가 평생 쌓아올릴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첫 문장이었다.
처음에 호머는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꿈을 이루고 싶었다. 로켓을 만들기 위한 손재주, 창의력, 친구들과의 협업 — 그 모든 것이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첫 로켓은 처참하게 폭발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노즐이 제대로 용접되지 않았기 때문. 그는 용접공 아저씨인 바이코브스키 씨에게 도움을 청하고, 하나하나 직접 배워가며 다시 로켓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머는 "내가 잘하는 것으로만" 이 꿈을 밀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2. 진짜 시련은,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
그러던 어느 날, 로켓 실험 중 인근 숲에 큰 화재가 발생한다 (발사한 로켓을 찾지 못했음). 경찰은 호머와 친구들이 만든 로켓이 불을 낸 것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체포한다. 호머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마을은 점점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호머는 무너져가는 신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 탄광의 일을 성실히 해가던 어느날 밤, 그는 밤새 책상에 앉아, 이론서를 펼치고 계산을 시작한다. 낯설고 두려운 수학 공식, 물리 법칙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증명해낸다. 그 화재는 자신들의 로켓이 아니라, 근처 공항에서 발사된 조명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 장면에서 호머는 로켓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단지 손재주나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신이 두려워하던 혹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수학"과 "이론"조차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았을것이라 생각한다.
"수학"과 "이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면 뭣이 중헌디요?!
3. 진짜 성장은, "잘하는 것"에서 시작해 "못하는 것"을 넘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로켓을 날려서가 아니다. 호머가 처음엔 꿈을 위해 자신이 잘하는 것에만 기대려 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꿈을 지켜내고 이루기 위해, 자신이 잘하지 못했던 것/두려워하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끝까지 이겨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의 "스푸트니크의 밤"이 있다. 처음엔 익숙하고 잘하는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은, 때때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을 지나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한 여러 일들이 막막하고, 때때로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과정 하나하나가 미래의 꿈을 지키고 더 나아가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는 방법이 될 것임을 영화 October Sky는 말해준다.
4. “나는 더 이상 광산에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나는 우주에 가고 싶어요.”
호머는 영화 막바지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I'm never going down there again. I wanna go into space."
그는 결국 로켓을 하늘 높이 쏘아올리고, 전국 과학 경진대회에서 우승하며, 미국 NASA의 로켓 과학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꿈은 단지 타고난 재능 위에 쌓이지 않는다. 꿈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까지 품었을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