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 명의 박사 후보생 디펜스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각 후보생의 연구 결과의 우수성에 상관 없이, 출판된 논문 편수에 상관 없이, 그 후보자의 커리어 계획과 상관 없이, 과제 목표 달성의 성패와 상관 없이, 그 무엇보다도 역시 thesi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자신만의 스토리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thesis에서 보여야 할 후보자의 기술적인 디테일은 사실상 디폴트다. 그것이 이상하면 애초에 디펜스를 신청하면 안 된다. 디펜스를 신청한 것 자체로 이미 기술적 디테일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봐야 하고, 관건은 그 후보자의 academic contribution을 얼마나 본인이 본인의 언어로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박사 후보생들은 디펜스 과정에서 본인들이 썼거나 쓰려고 예상한 논문들을 ppt에 가져다 붙이면서 분량만 맞추는 식으로 겨우겨우 디펜스를 준비하곤 한다. 교수 앞에서 보고하는 월말 세미나도 아니고, 학회 가서 발표하는 발표도 아닌, 그 발표만은 본인이 가장 전문성을 가진 분야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의 스토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평범하다 못 해, 본인도 본인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의미 부여를 못 하는 디펜스라면 아직 그 후보생은 박사 학위를 받을 준비가 안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많은 박사 학위들이 큰 고민 없이 요식행위처럼 디펜스를 통과한다. 디펜스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미국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디펜스에서 무진장 깨지고 최종 사인을 받을 때까지 학위를 확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는 이유로, 혹은 논문을 몇 편 썼다는 이유만으로 학위를 거저 받기에는 학위의 값어치가 너무 저렴해진다. 그만큼의 고민과 그만큼의 스토리가 농밀하게 thesis에 녹아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많은 학생들이 이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못 받는 것 같다.
애초에 내 지도 학생이 아니었으니 이런 꼰대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막상 나도 몇 년 후에 내 연구실에서 수학한 박사 후보생들이 다른 교수님들, 박사님들 앞에서 학위 발표를 하게 되면 얼마나 긴장되고 내가 다 얼굴이 빨개질까 생각하면 아득하다. 어떤 주제로 나와 연구하게 되든, 일단 그 학생이 정말 박사학위를 하겠다면 충분히 자신의 연구를 곱씹고 또 곱씹은 상태까지는 만들어서 디펜스에 들어가게 하고 싶다. 장자의 투계처럼, 함부로 덤벼들지도 안 되, 그저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것도 아닌, 차분하되 눈빛이 살아 있는 그런 후보생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 이렇게 사람 하나 제대로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오늘도 새삼 절감한다.
출처 :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권석준 교수님 페이스북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