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9-2026 잡생각
"정점에 이른 언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더디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좀더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변화해갑니다. 어떤 의미에서 쇠퇴이고 타락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오늘날의 유럽어는 그 오랜 과정을 거쳐 덜 엄격하게, 덜 정교하게, 덜 복잡하게 변화한 결과물입니다. 플라톤을 읽으면서, 수천 년 전 정점에 이르렀던 고어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을 겁니다." - 희랍어 시간, 한강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더 잘하고 싶으면 힘을 빼라고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마냥 와닿지만은 않는다. 힘이 있어야 힘을 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처음에는 오히려 힘을 기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힘을 뺀다’는 건 단순히 힘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 신경과 근육을 원하는 만큼 쓰고 거둘 수 있도록 통제하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일은? 근육을 만들듯 무언가에 정교함을 더하고 또 더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그 순간은 언제일까. 충분히 정교해진 뒤에야 비로소 덜어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정교함을 추구할 힘이 없어졌을 때 그것을 ‘덜어냄’이라 부르며 합리화하는 것인지? 어쩌면 덜어내는 것이 진전일 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쇠퇴일 수도 있다. 다만 덜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덜어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충분히 쌓아본 사람이 무엇이 불필요한지 알테니... 조금 미련하더라도, 덜어낼 때가 오기 전까지는 정교함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그 과정에서는 정교함 자체가 가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