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mseyer 교수의 논문에 대한 하버드대학교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생들의 공개 성명서


최근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의 J. Mark Ramseyer 교수가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IRLE)라는 학술 저널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계약의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한 논문을 투고하였다.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우리 대학원생들은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동시에, 램지어 교수 논문에 담긴 방법론적 결함과 문제적 함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논문이 공개된 이래로 여러 학자들이 해당 논문에 심각한 실증적 결함과 많은 오류들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그 결과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상당 부분 논박되었다. 본 성명은 이와 같은 학자들의 엄밀한 비판을 반복하기보다는, 예비 교육자로서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시각에서 갖게 된 문제의식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자 한다. 우리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으로 인해 촉발된 이 사태가, 1) 바람직한 학술활동이란 어떠한 것인가, 2)학제간 분류를 초월하여 모든 연구자가 공유해야 할 직업윤리 (professional standard)란 어떠한 것인가, 마지막으로 3)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의 목적에 대해 상기해볼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는 해당 논문의 방법론적 결함들에 어떤 문제적 속성과 함의가 있는지 지적하고자 한다. 기존의 주장을 수정하는 것은 학문 활동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수정주의는 탄탄한 실증적 증거를 필요로 한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램지어의 논문에는 그러한 실증적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논문은 역사부정주의(denialism)일 뿐, 수정주의(revisionism)일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의 논문은 “위안소”에 만연했던 강압과 폭력, 식민지적 위계는 물론, 그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여성들의 경험을 부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가 차용한 “계약 관계(contractual dynamics)” 프레임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주체성을 부여하여 마치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 경제 주체였던 것으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 램지어 교수의 구체적인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평은 차치하고서라도, 논문에서 보이는 그의 언어, 해석틀, 그리고 서술 전략이 정치성이 더욱 농후하게 드러나는 다른 학술 연구들이 채택하는 방식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한 연구들은 “위안부” 여성들이 겪었던 참혹한 역사적 경험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역사 속의 수많은 잔혹 행위들에 대해서도 그 심각성을 축소시키는 데에 적극적으로 복무한다. 결과적으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역사 속의 복잡 다단한 순간들을 왜곡과 자의적 추론을 통해 환원적으로 규정하는데에 일조하고 있으며, 이는 결론적으로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전유될 위험이 크다.


“위안부” 문제는 젠더적, 가부장적, 식민지적인 요소들로 점철된 제국주의 일본 하 다양한 젠더적, 가부장적, 식민지적 층위의 강압적 지배와 위력 및 폭력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동안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다양한 증거자료들에 기반한 엄밀한 실증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얽힌 이러한 복합적인 측면들을 강조해왔다. 그러한 노력들로 이루어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학문적 성과를 도외시하고 사료를 왜곡하는 행태는 곧 피해 생존자들의 명예를 실추시킴과 동시에 증언의 신빙성마저 무시하는 처사로, 결국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형성된 구조적 폭력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담론적 재가해가 해당 여성들의 법적 권리 및 배상권을 부정함으로써 또다시 실재적인 피해를 입히는 데 근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논문이 공개된 이래 일부에서는 이 사태를 학문의 자유에 관한 논쟁으로 프레임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옹호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학문 윤리를 지키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구와 그 연구 결과가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경험적 증거들(1차 자료와 증언들)과 서로 공명하고 부합해야 한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램지어 교수 논문의 공과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로 학문의 자유를 호명하는 행위는 되려 그 개념의 가치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것이며, 엄밀한 지적 대화의 기본 전제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학술적 논쟁은 모든 참여자들이 연구의 수준 차원에서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하다. 만약 학문의 자유라는 개념이 실증적 근거를 결여한 무책임한 주장을 옹호하는 기제로 오용된다면, 이것은 단지 또다른 형태의 구조적 폭력과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성명서를 통해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엄밀한 학문 연구를 하는 대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환기하고자 한다. 엄밀한 방법론과 치열한 실증을 바탕으로 수행된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다양한 인간 사회 현상들의 복잡성, 모순, 불평등을 드러내고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고양시킨다.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앞으로 고등 교육 현장에서 일할 교육자로서, 우리는 학문 활동이 종국적으로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상을 믿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그러한 미래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서 예증된 것과 같은 담론 권력의 오용이 설 자리는 없다.


서명자


Sign the letter here: https://forms.gle/Jj9oCwYfPF3Mi8xbA


*We encourage graduate students (MA, PhD) in departments across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at Harvard to sign the letter to show solidarity with comfort women and support this statement as future educators and schol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