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강세진 작성일: 2025. 05. 28.
(이 이미지는 ChatGPT를 활용하여 생성되었습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정원에 들어서면, 세월의 안개 속에서 건너온 듯한 세 점의 석조 유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들은 모두 원주라는 한 지역에서 태어나, 고려 불교문화의 정수를 품고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돌탑들이 단순한 유물이 아닌, 한 시대와 인물, 그리고 신앙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 아라한을 향한 염원의 탑,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
(이 이미지는 ChatGPT를 활용하여 생성되었습니다.)
9세기 말, 혼란과 변화의 물결이 한반도를 휩쓸던 시기. 원주 영전사라는 작은 사찰에 한 무리의 승려들이 모여, 아라한-깨달음을 얻은 성자-의 사리를 모실 탑을 짓기로 한다. 이 탑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다. 불교 수행의 이상을 좇던 이들은, 아라한의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그 깨달음과 덕망이 사찰과 지역에 머물길 바랐다. 기단부에 새겨진 연꽃잎과 안상(눈모양)은 당시 장인의 숨결을 떠올리게 하며, 이는 신라 말 원광법사의 조형미가 남아 있는 흔적이기도 했다. 이 탑은 남한강 유역의 부도(승탑) 양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원주가 불교 신앙의 중심지였음을 조용히 증언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일제강점기, 이 탑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옮겨진다. 지금은 박물관 한켠에서, 그 옛날 승려들의 염원과 신앙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2. 왕사와 제자들의 마지막 약속,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
천년 전, 원주 섬강가 흥법사에는 ‘진공대사’라는 이름의 고승이 있었다. 그는 고려 현종의 왕사로, 천태종의 교리를 펼치며 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그가 세상을 뜨자, 제자들과 왕실은 그의 가르침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승탑과 석관을 세웠다. 탑의 3단 기단과 3층 탑신, 옥개석에는 목조건축을 닮은 섬세한 조각이 새겨졌고, 석관 뚜껑에 정성스럽게 새겨진 연꽃과 구름, 태양은 천년 전 왕실의 염원을 속삭이는 듯하다.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맹세, 그리고 불법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이 유물은 서울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진공대사와 제자들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있다.
3. 개혁의 꿈을 품은 대사,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
11세기 초, 현계산 자락 거돈사에는 ‘지종’이라는 이름의 승려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불법을 좇아 중국 오월국까지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는 고려에 법안종과 천태종을 전파하며 불교 개혁의 선봉에 섰다. 1018년, 그가 거돈사에서 입적하자, 현종 임금은 그를 ‘원공국사’라 칭하며, ‘승묘’라는 탑호가 붙은 승탑을 세우도록 했다. 이 탑은 팔각원당 형식으로, 각 면마다 화려한 연꽃과 사천왕상이 새겨졌다. 탑신에는 마치 사찰의 대웅전을 옮겨놓은 듯한 문비와 창호, 그리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단순한 승탑을 넘어 불탑의 위엄까지 담아냈다.
이 탑은 오랜 세월 원주를 지키다가, 20세기 초 서울로 옮겨졌다. 지금도 박물관에서, 고려 불교문화의 절정과 원공국사의 개혁정신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