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임미영 작성일: 2025. 05. 28.
1915년, 일제는 조선 병합 5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며, 전국 각지의 문화유산을 서울로 집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원주 지역의 대표적 석탑들이 해체·이전되어 지금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 등에 남아 있다. 최근 이들 석탑의 반환과 원래 자리에서의 복원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경복궁 일대에서 열린 대규모 박람회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대표적인 식민지 박람회였다. 표면적으로는 산업 진흥과 문명 개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하고 식민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며 일본에의 동화를 촉진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경복궁을 박람회장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의 많은 전각이 훼손되거나 철거되었고, 전국에서 문화재와 유물을 대거 이전해 전시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 석탑을 비롯한 지방의 주요 문화재들이 강제로 옮겨져, 일부는 현재까지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일본 상품과 식민 통치의 성과를 홍보하는 동시에, 조선의 전통과 상징을 약화시키는 식민지 선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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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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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은 고려시대 고승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11세기 후반 원주 법천사터에 세워진 승탑이다. 평면 사각형의 독특한 구조, 7단 기단, 네 귀퉁이의 사자상, 불상·보살·봉황 등 화려한 조각 장식은 고려 불교 석조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1911년 일제에 의해 해체되어 서울로, 이듬해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는 등 유랑의 역사를 겪었고, 6.25전쟁 때는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2024년, 첨단 과학기술과 전통 장인의 손길로 복원되어 113년 만에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이는 일제강점기 문화재 수탈의 상징을 극복하고, 문화유산이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1103580000&pageNo=1_1_2_0)
영전사지 보제존자사리탑(보물 제358호)은 고려 후기인 1388년에 조성된 쌍탑으로, 고승 나옹화상(보제존자)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석탑 형식이며, 동·서 두 기로 구성되어 있다. 동탑은 높이 3.92m, 서탑은 4.12m로, 상륜부 형태와 세부 조각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미가 뛰어나다. 쌍탑 구조와 정교한 상륜부, 사리장엄구 출토 등은 고려 후기 불교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전시를 위해 서울로 옮겨진 뒤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남아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searchId=search&relicId=37940)
천수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의 비례가 안정적이고 전체적으로 우아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 초기의 조형 감각이 가미되어 있다. 이 탑은 쌍탑식 가람배치의 일부로, 오층석탑과 나란히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전시를 위해 경복궁으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남아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searchId=search&relicId=4354)
천수사지 오층석탑은 삼층석탑과 함께 천수사터에 있었던 오층석탑으로, 고려 초기의 양식을 따른다. 1층 기단은 소실되고 2층 기단과 5층 탑신만 남아 있으며, 각 층의 비례와 조각이 단순하면서도 견고하다. 탑신 2층부터 급격히 낮아지는 구조와 3단 받침의 지붕돌 등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지방 불교문화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이 탑 역시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전시를 위해 서울로 옮겨졌고, 현재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남아 있다.
이들 석탑은 단순한 유물이 아닌, 원주 지역 불교문화와 한국 석조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가유산이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귀환은 일제강점기 문화재 수탈의 아픔을 극복하고, 문화유산이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영전사지 보제존자사리탑, 천수사지 석탑들도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지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원주 석탑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에 대한 관심과 반환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