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21 월요일
한국에 들어와서 여기 지스트에서 3년을 보내면서 학회관련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오는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도 있고, 학회에서 연구내용도 서로 얘기하면서 공동연구가 이루어 지는 경우도 있고,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이중에서 분자세포생물학회 교육위원은 면역학회 학술위원과 함께 3년을 계속하고 있는 학회일이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고, 또한 보람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분자세포생물학회 교육위원이고, 오늘도 21회 경암바이오유스캠프가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끝이 났다.
경암재단에서 1억 가까이를 매년 후원하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생명과학 강연과 선배들과의 만남등의 세션이 진행된다. 내가 영국 옥스포드 대신에 한국으로 오면서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젊은 세대에서 보다 과학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 되길, 그리고 항상 디스커션하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넓혀 나가고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 생명현상이나 질병의 발병 원인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그것이 결국은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로 이루어 지는... 이러한 생명과학이 보다 많은 젊은 세대에서 도전과 즐거운 일들로 받아들여지고, 더 많은 친구들이 그 길로 갈 수 있고, 보다 좋은 과학자로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길이 또한 내가 걸어가는 그 길이 앞으로 사이언스에 집중해서 살아갈 수 있는, 커뮤니티로 발전될 수 있기를 바라며 힘을 보태고 싶다.
오늘 참가했던 100여명의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유지하며 가까운 미래에 좋은 생명 과학자로 함께 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19회, 20회, 21회 책자들 속에 미래의 과학자가 쏙쏙 튀어나오길 바래본다. 그리고 그 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함께 즐거운 사이언스를 할 수 있는 동료가 되길 기대해 본다. 끝났다! 오예~~~~
2025. 07. 11 금요일
한국에 들어온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한 일어나고 있으며 그래서 여전히 우왕좌왕 하는 것들이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는 즐거운 시간들도 있지만, 처음 겪어보는 어려움과 상처들도 많이 생겨 나는것 같다. 언제까지 지금의 에너지를 가지고 지탱해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조금씩 내려 놓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의 여유도 그 모든것을 포용하지 못할만큼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사이언스는 즐거운 것이고, 기초를 강해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른 곳을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은 없다. 워낙 실험에 들어가는 그런데, 그것을 함께 하고,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것 같다. 강의나 실험실의 운영이 가끔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들이 3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많아 지는 것 같다. 비단 이것이 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어느 시점부터는 세계적이면서 우리나라에도 커지고 있는 문제인 듯 싶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있는 지방에서는 더욱 크게 체감이 되는 것 같다. 내가 한국을 떠나있었던 6년의 시간동안 한국에서의 연구라는 것 그리고 실험실의 생태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래서 더 풀어야할 숙제가 고민이 깊어진다.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까, 아님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니면 그냥 포기하는게 빠른 정답일까... 나아지지 않는 연구자들에 대한 처우도 문제고, 학력인구 감소와 학력 저하도 문제이고, 점차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더 나아지기를 희망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냥 어쩌면 마냥 투덜거리고 힘들땐 실험실 친구들과 저녁때 술한잔 하고 떠들고 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이제 저 사진에 있는 실험실 친구들은 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땐 뭔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그때 였다.
2025. 05. 27 화요일
달리기. 최근에 끝난 "언젠가 슬기로운 전공의생활"이라는 드라마에 OST로 나오는걸 들었다. 원래도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최근들어 다시 들으니 어쩌면 나에게도 위로를 하는 노래로 다가왔다. 어짜피 시작한 것..달릴때 숨이 차면 힘들지만, 그 뒤에 몰려오는 즐거움과 기쁨..그건 달려본 사람들만 아는 것 아닐까...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2025. 04. 26 토요일
저번주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줄기세포와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폐의 재생 연구를 가지고 간단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이후에 같은 세션에 있었던 삼성병원에서 신생아의 폐를 연구하시는 임상의사분의 도움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을 가 볼 수 있었다. 여러라인을 몸에 잡고 있는 아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23주 미숙아부터 책에서 공부했던 BPD (Bronchopulmonary Dysplasia)로 고생하는 미숙아, 그리고 태어난지 오래되었지만 인공호흡기 없이는 자발호흡을 하기 힘든 아이도 있었다. 우리의 폐는 24주 정도 이후부터 Saculation, 즉 폐포가 생겨나고 그때부터 Surfactant가 나와서 숨을 쉴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미숙아는 살수 없었지만, 요즘은 23주 정도 태아도 우선 Surfactant를 강제로 주입해서 폐포를 생성할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임상적으로도 폐가 제대로 성숙되지 못하면 평생 자라면서 호흡이 어렵고,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요즘은 IVF가 늘어나고 고령의 산모가 늘어나면서 미숙아로 태어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직 알아야 할것들이 많다는 걸 또 새삼 알게 된다. 내가 만나는 연구에도 진심인 임상의사분들과 얘기하다보면,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을 결국 해결하는 열쇠는 그 기전을 밝히고, 거기에서부터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더욱 기초연구와 그걸 바탕으로 응용으로도 가야한다고...과학의 중요성과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도 즐거운 일이고 또한 건빵속의 별사탕처럼 인류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임을 "언젠가 슬기로울 대학원생"들도 알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5. 03. 26 수요일
카이스트 줄기세포대학원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마지막에 어떤 슬라이드를 넣으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다. 나는 발표 슬라이드를 만들 때, 실험 데이터 말고도 하고 싶은 말들, 예를 들어서 야구 이야기라든지 살아가는 이야기들..특별하지 않지만 그냥 얘기하고 싶은 것을 넣는 걸 좋아한다. 대학원생들에게 어떤 얘기를 전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폭싹 속았수다] 12화에 내가 눈문을 흘렸던 장면을 슬라이드를 만들어 넣었다.
파혼의 큰 실연을 가지고 제주도 집에 휴식차 돌아온 금명을 아빠 관식이 아침 일출을 보여주기 위해서 배를타고 나간다. 그때 금명이가 새벽에 깜깜한 밤에 나가있는 것이 무섭지 않은지 물어본다. 관식이 말한다. 무섭다고. 금명이가 그럼 등대를 보면 괜찮냐고 물어보지만, 아빠 관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와 함께 그 새벽에 나와있는 고깃배의 불빛을 보면서 힘을 낸다고. "같이 간다 생각하면 갈 만하다"라고 대답한다.
사이언스를 하는 대학원 생활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나라 정책은 왔다 갔다 하고, 전혀 존중하지 않고, 맨날 다른 직업과 비교하며 자괴감이 들때도 많고, 생각처럼 실험이 잘 안될때도 있고 힘든 대학원 생활이지만, 내 옆에 함께 사이언스를 하는 대학원 동료들을 보면서 힘을 내고 가는것이 아닌가 싶다. 비단 이것은 대학원생 뿐 아니라 PI가 된 나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지치고 힘들때면, 함께 있는 실험실 친구들과 동료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 있기에 현실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덜 느끼며 갈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로가 깎아 내리는 존재가 아닌, 함께 나아가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2025. 03. 24 월요일
[폭싹 속았수다] 요즘 주말마다 와이프랑 같이 눈물과 함께, 부모님과 가족,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드라마이다.
저번주 금요일은 아버지의 세번째 기일이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졸이었고, 막내임에도 할머니를 모시고 사셨으며, 어머니는 치매 할머니 간병에 10년이 넘게 아버지 간병을 하시며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육성회비 조차 잘 내지 못하셨지만, 공부는 잘하셔서 그 당시 부산중/고등학교를 나오셨었다. 돈이 없어 대학을 가시지 못했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셨고, 매일 10km가 넘는 곳을 버스비 아끼기 위해서 매일 걸어 다니셨다. 2년 교육청에 있으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중고등학교 서무실에서 생활을 하셨고, 많은 고생을 하셨으며, 그래서 나는 좋은 대학교 나와서 편하게 생활하시길 항상 바라셨다. 어느때인가 교육청에 잠시 계실때, 서울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외삼촌이 미국에 갔다오시며 시바스니갈이라는 양주를 함께 가지고 오셔서 이걸 돈과 함께 교육청 높으신 분께 한번 찾아뵈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것들이 비일비재하게 개인의 승진과 커리어를 결정하던 때였었다. 하지만, 그 시바스리갈 술병은 부산 집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한참 고민하던 아버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어릴적 부터 난 세상에 그 불합리함이 싫었고, 최소한 남이 나를 함부러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공부를 했었다. 나의 공부는 어떤 개인의 부귀영화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이해하기 힘들고 그럼 그냥 여러권의 문제집을 풀면서 외우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다고 어리광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방학때 단과학원에서 1개월씩 그 다음학기 선행수업을 듣는 것 이외엔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학교에서 밤 11시에 자율학습을 마치고 오면 어머니가 항상 간식을 해주셨었다. 그 따뜻했던 군만두와 카스테라는 내 휴식이었고, 잠시 휴식을 하고 12시엔 라디오를 켜고 새벽 2시까지 보통 공부를 더 했었다. 주말에는 아침 9시에 학교를 가서 6시까지 자율학습을 하였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언제나 빠지지 않고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를 보았다. 그리고 12시부턴 라디오가 함께 하였다.
그렇게 서울대 합격소식을 듣고 그렇게 기뻐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얼마나 기뻤던지 아버지는 서무실 직원과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교직원분들에게 저녁을 사셨고, 늦게까지 술을 하시고 들어오시는 날들이 많으셨다. 지금까지도 내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면서 몇 안되는 보람된 일이었고, 아버지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게 해준 일이었다.
대학원 생활하고 결혼을 하고 첫째가 태어나고 일주일만에 아버지께서는 쓰러지셨다. 한번도 본일을 위해서 돈을 쓰시지도 여행을 가시지도 않으셨고, 그래서 그 흔한 차도 가족여행도 함께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번도 해보시지 않았던 병원에서의 간병생활을 10년 가까이 하셨다. 간병인들과 싸우고, 3개월마다 병원을 옮겨다니시고, 새벽마다 욕창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많이 고생하셨다.
그런 고생으로 가까스로 조금 안정을 찾으셨고, 나는 그 덕분에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부모님의 희생속에 오른 포닥생활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었다. 그리고, 다양한 분들에게서 내가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던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국과 영국의 물리적 거리에서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고, 그게 아직까지 많은 후회로 남아있다. 그래서, 결국은 영국에 남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희생을 먹이로 나는 내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고, 그대들 만큼 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나도 내 아이의 꿈의 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 아이가 받기를 바라는 과학을 하고자 하며 그것을 내 주변에게도 그대로 하고자 한다.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고향으로 가면, 언제나 지하철 입구에 내가 좋아하던 치킨 봉지를 가지고 기다리셨던 아버지셨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었다. 차라도 사셔서 나를 역으로 데리고 나오면 안되냐고 타박했었더랬다. 이제는 왜 그랬는지 그게 그분의 행복이었다는 것을 안다.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도 못했다. 하는일들에 지쳐갈때면 여전히 그립다. 도대체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얘기하고 싶을때 말이다.
[폭싹 속았수다] 내 주변 학생들을 본다. 누구나 그들 부모님들에게는 귀하고 자랑이었을 사람들이다. 그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이 그 빛을 발할수 있으면 좋겠다.
2025. 02. 05 수요일
정말 2달만에 여기 공간에 들어와서 순간을 남겨본다. 글을 남길 여유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 아마도 눈이 펑펑내려서 그런가....막상 또 이 창을 열고 나니 어떤 말들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 정리가 잘 안된다.
실험을 하고 싶다. 연구를 하고 싶다.... 불과 2년 8개월 전까지는 나는 내가 직접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처럼 파이펫을 잡고 쥐장을 매일 왔다갔다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실험이 있으면 하고 했었다. 그런데, PI가 되고 나서는 처음 6개월 정도 나의 첫 랩학생들을 함께 하나하나 실험을 가르치던 그 시간 이후엔, 이제 정말 시간이 나지 않는다. 물론 가끔 Culture Room에서 Organoid를 배양하면서 몇가지 실험들을 하곤 하지만, 시작을 하되 결국 마무리를 할 수 없는 스케줄이다..-.-; 1년 내내 과제 작성과 학회활동, 포닥때 하던일들의 똑같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얘기하는 세미나 등으로 도무지 머리속으로 해 보고 싶은 실험을 꾸준히 긴 호흡으로 해볼 여력이 없다. 사실 이제 마우스 수술이나 실험들은 우리 방 학생들이 나보다 훨씬 잘 하는것 같다.
그 수많은 과제들 요약본을 ChatGPT에 넣어서 나의 연구 Key word를 뽑아 달라고 하면, 놀랍게도 Organoid가 나온다. 난 오가노이드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Injury Repair, Immune system, Stem cell plasticity, Tissue Regeneration..이런 것들이 내 키워드로 나와야 하는데...공동연구로 들어가야 하는 현실에서 나는 폐 오가노이드를 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약장사를 하는 꼴인듯...
사실 내가 관심있는 Macrophage, Stem Cells, Plasticity and Injury repair, Fibrosis and Niche remodeling...이런 연구들을 학생들과 마우스를 가지고 하고 있지만, 요즘은 2년정도 석사과정만을 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고, 박사과정 그리고 포닥을 가서 진정한 연구를 하고 싶은 친구들이 거의 없는것 같다. 마치 인턴,레지던트, Fellow를 거쳐서 종합병원에 남아있기 보다는, 빨리 개원해서 동네 병원 개업하려는 의대친구들이 많은 것처럼, 여기 생명과학도 그렇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박사에게 주어지는 reward가 적은 것도 문제인 것도 문제이고...
결국 4-5년의 긴 호흡을 가지고 내가 외국에서 했던 것 처럼 정말 좋은 연구, 깊이 있는 사이언스를 하는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그게 참 마음을 힘들게 한다. 연구를 하는데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빚으로 해결하고 또 과제를 따면 된다. 하지만, 함께 연구할 좋은 동료를 실험실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을 좋은 과학자로 지도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가장 PI로서 행복한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2024. 12. 01 일요일
어쩌면 당연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처음의 설레임과 기대-행복함, 그리고 삶에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에 올한해 나는 너무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된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가족들이 부재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나에게 행복을 기쁨을 주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려야지만 그제서야 그 소중함을 기억해내는 어리석음은 여전한 듯 하다.
내가 아빠가 되어, 처음 탯줄을 자를때의 기쁨의 눈물과, 처음으로 뒤집기를 할때, 처음으로 걸음을 두발로 걸을때, 처음으로 말을 할때의 그 고마움과 단순했던 기쁨의 기억들을 잊어버리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바라면서 좋은 면은 당연하고 조금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아이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는 나의 모습을 보곤한다.
나의 교수로서의 생활도 마찬가지 인듯싶다. 2년 반 전 처음 시작했던 저 텅빈 실험실에서 이제는 실험기자재와 학생들의 숨소리로 채워지는 지금의 실험실의 모습들로 변해오면서, 어쩌면 첫 두발을 내딛던 아이의 단순한 것에서 기쁨을 얻었던 내 모습들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기대하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의 희망과 기쁨보다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을 핑계로 투덜거림이 많아진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naive하고 현실적이지 않아서, 실재 마주하며 다가왔던 현실이 냉혹했던 것도 사실 인듯하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것 같다. 내가 경험해 왔던 그때와 지금은 너무 다르고, 그때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도 다르다. 많은 것들을 몸소 체험하며 배워가고 있는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조금은 여유있게 대처해 보길 바래본다.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가길 바래본다. 이제 겨우 목을 가누는 아이인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매우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step이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또 2024년 12월이 지나가고 스스로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길 바래본다.
2024. 11. 22 금요일
벌써 2024년 겨울에 바짝 다가선 늦은 가을인가보다. 학교안의 단풍나무들이 새빨갛게 물들어가고, 많은 잎들이 이제는 낙엽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참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특히 올해는 일년내내 연구 과제만 작성하고, 수업하고, 세미나 다니고, 학회활동 다니고 하면서 시간이 내 손가락 사이로 스치고 지나간듯 하다. 연구를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머리속의 상상들이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환상들인 마냥 아련한 내 어릴적 기억처럼 희미한듯 그런 마냥...
하나의 똑같은 단풍나무에, 붉게 변한 잎도 있고, 가을과 겨울이 뒤섞여 있는 잎이 있고, 또한 아직 처음의 따뜻했던 시간의 기억을 초록의 빛으로 유지하고 있는 잎도 있다. 어쩜 저리도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을까..... 저 조화로움을 난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내가 상상하고 머리속에 그리던 그런 이상들이 일부는 붉게 물들어가기도 하고, 일부는 아직 그때 그대로 있기를 바라기도 해본다.
그렇게 내 삶도 단순함 속에 조화롭게 잘 영글어 갈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그리고, 내 연구도 실험실도 조화롭게 어울려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벌써 나의 새로운 여정도 2년하고 반이 넘어간다....
2024. 10. 23 수요일
광주로 가는 KTX 안, 내 안의 복잡하고 뿌연 안개같은 또한 기쁨을.
길고 길었던 세계사이토카인/대한면역 학회를 끝내고, 광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도 학술을 하면서 Tissue immunity 세션을 만들고 담당하면서 내가 초대하고 싶던 Tien Peng, Shruti Naik을 초대해서 재미있는 Talk도 듣고 같은 세션에서 발표도 하고...그리고, Tien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러 재미있는 실험들도 얘기를 듣고, 내가 알지못했던 Lung Field Big Lab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도...이제야 이해가 되는 믿을 수 없는 Nature에 나왔던 수많은 결과들도...
Tien은 앞으로 Super Postdoc이 아닌 PI로서 어떤 방향이 좋을지에 대한 얘기도 해 주었다. 꼭 Lung에 국한되어 사이언스를 좁히지 말고, 보다 다양하게 바라보고, 나의 background가 되는 inflammation을 보다 넓은 부분에서 접근하되, 다른 분야와 함께 접목해서 새로운 필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거란 것. 한발은 lung에 걸쳐두고, 다른 한발은 좀 더 용기를 내서 확장해 보라는.....그리고, 너무 포닥처럼 실험을 하지 말고, 실험은 이젠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에게 맡겨두고 여유를 가지면서 공부도 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 보라는것도.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떤 분야에서 보다 넓게 접근해 나갈 수있을까..보다 구체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찾아가는것! 이 부분을 또 한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즐거운 일은, 학회에서 발표를 끝나고 이제 대학원을 시작한 포항공대의 한 친구가 와서 lung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물어보며, 몇가지 관심있는 실험들을 제안했는데, 그게 바로 내가 지금 하고 있고 계획하고 있는 몇가지들의 연구들이었다! 비록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이지만, 이렇게까지 깊이있게 나의 연구를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연구를 확장하려는 그런 모습들에 사실 깜짝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꼭 좋은 사이언스를 하는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지도 할수 있지는 않지만, 낭중지추라고..이런 친구들은 어디서든 자신의 능력을 가치는 빛을 보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간접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지도하고 서포트 하고 싶은 생각이다.
나도 나의 사이언스를 향해서 살포시 때로는 폴짝폴짝 뛰어가고 싶다.
2024. 10. 07 월요일
예전 박사과정 동안의 내 랩노트를 정리하면서 랩노트에 끄졌였던 나의 글을 발견하였다. 2004년 3월 17일...랩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은 글인데, 지금은 여전히 이길을 가고 있지만, 불안하고 부족하고 답답하던 그 시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아마도 내가 지금의 학생들이 느끼는 그 마음들을 대학원 시작하던 나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내가 랩을 운영하면서, 대학원생들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서 공감하고, 나도 그랬음을 잊지 않고 무언가 그때 나와는 다른 학위과정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나의 작은 바램을 위하여 그때의 글을 한번 남겨보고자 한다.
"2004. 3. 17
오늘도 어김업이 실험실 나의 테이블에 앉아서 오늘이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어느덧 지루한 "하루"라는 시간이 던져준 부차적인 기쁨이라는 생각. 이러한 생각으로 지낸 시간도 이곳 실험 테이블에 내가 자리하고서부터 많아진 것 같다. 때로는 의대로 진학하여 바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같이 학부 때 공부하던 친구들 중 이제는 과학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녀석들과 실험실로 진학하여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식들을 들을 때면, 3주간 Table에서 Paper와 잡생각, 소설책, 점심, 저녁으로만 보내는 나의 모습이 조금은 실망 되고 후회되고, 가슴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아직은 어색한 생활. 아무런 의무감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
"텅 비면 채워 넣을 것이 많은 무한한 가능성 이리라" 老子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며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만, 아직은 어린가 보다. 가끔은 엉뚱한 내 모습과 기존의 사실들에서 조금은 더 나아지거나 새롭게 바뀌기를 바라는 나의 작은 욕심들...난 학부때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라고 스스로 위안삼아 하는 말은 공허한 나의 대학원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마음일까? 아님 아직은.....이제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겠다"
2024. 10. 01 화요일
오랫동안 괴롭히던 무더위가 갑자기 늦가을이 온듯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기쁘게 가을을 맞이하듯, 오랜만에 뜻하지 않은 휴일에 실험을 하면서 보낸 하루였다. 밀린 숙제를 한듯.
PI로서 실험실을 시작한지 2년이 지나면서 여러가지 경험들을 하면서 어쩌면 나도 조금씩 배우고 못된 버릇은 고치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방향이 맞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PI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리더로서 이끌어 간다기 보다는, 도로시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위해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가면서 한가지씩 바라는 점이 있는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나아가며, 서로가 성장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인 "Over the rainbow" 처럼 "당신이 감히 꿈꾸는 것들이 정말로 이루어지는" 저 무지개 너머로 향해가는.
나의 실험실은 학생들이 해야 하는 일이 많다. 마우스도 해야 하고, 오가노이드도 해야 하고, 주제도 한두개씩은 해야하는. 그걸 묵묵히 해 나가는 친구들에게 고맙고 대견하기도 하고, 석사든 박사든 무엇이건 자신이 꿈꾸는 그 것들을 잘 이루어 갔으면 좋겠다. 가끔 혼내기도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들을 매꾸어 나가고 자신을 좀 더 믿고, 목표를 가지고 꿈을 꾼다면 언제가 그곳에 서 있는 자신들을 보게 될 것이라.
근데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감히 꿈꾸는 그 꿈"이 있다는것. 다만, 그 꿈을 향해 가는 길이 꼬불꼬불하고 가끔은 막다른 골목이라 돌아나가야하고 헤매이며 시간이 걸릴뿐. 지향하는 곳은 있으니 걱정 하지 않는다!
2024. 09. 20 목요일
삶이란 무엇인가? 그 삶속에서 행복 한가? 라는 물음을 우리는 많이 하는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 어쩌면 추상적인 그 대상을 글과 같은 것으로 정의를 하려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 그 무엇이 있지만 말이다.
언젠가 지금 우리원에 있는 총장님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고, 총장님이 생각하는 GIST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지 구체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등 나의 질문에 피상적인 답변으로 일관하시던 총장님이 대뜸 나에게 "최교수는 내적 행복을 찾는 것이 필요할것 같다"며 역정을 내셨다. 내가 그랬다. 개인적 행복은 가족과의 삶과 취미등으로 할 것이고, 연구적인 면에서 행복을 하는 것은 어떻게 우리 원이 지원을 해주고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그것이 우리 GIST가 총장님이 생각하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이라고. 개인적 행복까지 총장님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아마도 모든 개인마다 다를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 삶과 Career측면의 삶 이 두 가지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 그리고 자신의 즐거움과 일적으로 자신이 원하고 즐겁고 직업으로서의 성취감 이 두가지가 모두....아무리 개인적인 부분이 잘 돌아가더라도 내 연구가 잘 되지 않게 되면 여기에 몰두한 나머지 개인적 부분도 어긋나기 시작한다. 반대로 또 생각해 보면 한 쪽이 잘 되지 않을때는 다른 쪽에서 에너지를 가져와서 나머지 하나를 잘 해결하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 호화스럽고 휘황찬란하고 뜨거운 스포트라이트 보다 내 가족과 함께 하는 소박한 식사와 함께 있는 조그만한 공간이면 충분하고, 이것이 또 내가 연구를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임을 소박한 영국에서의 포스닥 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아무리 연구가 바쁘고 하더라도, 가족이든 연인이든 자신의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알뜰하게 소박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career를 성공적으로 잘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알아갈 수 있기를.
2024. 09. 09 월요일
오늘 영국의 The Royal Society와 한국의 NRF에서 함께하는 한영 공동연구 과제에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국에서 포스닥을 함께 했던 Biophysics를 하던 Adrien과 함께 "Mechanical determinants of stem cell fate decisions and tissue dynamics in lung regeneration and fibrosis"라는 주제로 application을 했고, 이것이 successful 된 것이다. Adrien도 기뻐서 연락이 왔고 나도 NRF로 들어가서 확인했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Royal Society에서 Offer Letter를 보내주니 기분이 좋았다. 이 과제 선정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2년전 Job application 과정에서 Oxford에서 Kennedy Trust for Rheumatology Reseach (KTRR) Fellowship을 통해서 Group Leader offer를 공식적으로 받았을 때의 기뻤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Adrien이 현재 그곳에 group leader로 있기때문에, 이 grant offer가 포기했던 그 아쉬움을 조금은 위로하고, 그곳에서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이 과제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직은 이 과제를 함께 연구할 학생이 없다. 그래도 Adrien도 이 과제와 관련된 포스닥을 뽑을 거고, 그 동안 나도 조금씩 연구를 진행해야겠지. 그리고, 2년차쯤엔 영국으로 방문해서 함께 연구를 진행할 생각이다.
3년 과제를 하면서 내가 offer를 받았던 Kennedy institute of Rheumatology, University of Oxford에 학생과 함께 몇개월 방문하면서 연구를 할 생각을 하니 이 또한 설레이고 기쁘다. 그리고, 영국에 남아있는 친구들도 보고 싶다. 모든게 감사할 따름이다.
2024. 08. 22 목요일
삼국지 소설에서 유비가 자신의 허벅지가 굵어져 감에 50이 넘어 몸은 편하지만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현실에 한탄했었다. 비육지탄이라고 했었던가. 그게 요즘 나의 모습이다. 시간이 흘러감과 나의 뱃살이 나오고, 몸이 무거워짐. 머리에도 지방이 끼나 싶을 정도로 나태한것 같고 연구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많다. 내 학부 3학년때 강촌으로 MT를 갔던 그때의 사진을 보면 언제 저랬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때가 생각이 잘 안난다. 총명하고 또록또록하던 내가 있었나...
점차 내가 할수 없는 것들이 내가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는 일들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내가 대학교 대학원 생활 그렸던 나의 실험실의 모습, 내가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그 그림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했나 싶은 생각도 많이들기도 하고.
난 투덜거림이 많다. 말도 안되는 상황과 불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에 불만이 많아서 종종 확 터트려버리기도 하고 들이박아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나는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어렵지만 그래도 소박하게 하고 싶은 연구를 할수 있고, 그길에 함께하는 앞으로 미래의 동료가 될 대학원생들이 있고 (사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원 생활도 지도교수도 싫을 수도...나도 대학원 생활동안 그랬으니), 내 개똥같은 생각을 조그만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학부생도있고, 지금 이 길을 함께 하는 동료-친구 연구자들도 있고.....
대학원때 한 선배가 그랬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고. 그 말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뭐 좀 못하면 어떤가.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즐겁게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내 고향에선 어르신들이 이렇게 칭찬해 주신다. "욕봤다" 라고. 그래. 나도 내 자신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분들에게도 말해 주고 싶다. "지금까지 욕봤고 2024년 후반기 좀 더 욕보자고".
2024. 08. 06 화요일
이번 여름에 실험실에 7명의 학부생 인턴이 있었다. 실험실에 자리가 없어서 나의 오피스 공간에 하계인턴으로 온 3명의 3학년 학생들은 한달간 함께 지냈었다. 처음엔 PI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이 친구들에게 부담스러울지 몰라서 걱정이었는데, 다행이 편안히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편하게 여러가지 얘기도 나눠보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몇개의 실험들을 같이 하면서 transformation과 기본적인 실험에 대해서 직접 가르쳐주는 기회도 가졌고, 어떻게 논문을 읽어야 하는지 실험실이라는 공간이 대학원생활이 어디 감옥같은 곳이서 마지못해 끌려와서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좀 알려주는 기회였으면 했다. 그리고, 아마 나와 직접적으로 연구를 함께 하는 기회는 없겠지만, 이 친구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전해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오랜만에 방학을 맞아서 즐거운 힐링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인턴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본다. 아마도, 2년간 내가 함께했던 인턴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친구들이었다.
특히 나의 캐릭터를 그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고맙다!! 요 그림은 종종 쓰도록 해야겠다 마음에 든다.ㅎㅎ 이 친구들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아서 잘 살기를 희망해 본다^^
2024. 07. 26 금요일
학생들과 면담들을 하다보면, 모든 것 하나하나가 걱정이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느낀다. 여러가지 얘기를 나눠보지만, 어찌보면 나도 그맘때도 그랬고 지금 역시 불안하고 고민하는 순간이 많다. 그렇기에 그 고민들이 혼자만이 겪는 것은 아니라는것!
작년에 사냥이가 남기고 알에서 태어난 9마리 중 1마리가 이렇게 탈피를 해가면서 이제는 곱디고운 날개를 가진 성채로 성장했다. 이름은 "황제펭귄" 이것은 내 둘째가 지은 이름이다. 왜 펭귄인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탈피에 실패하면 성장에 실패하고, 7번 가까이 되는 그 과정을 극복한 친구만이 성장하게 된다. 내가 함께 하는 학생들도 그렇고 내 자식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러한 계속된 탈피를 해가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걱정과 불안감 이 모든것도 성장을 하게 하는 시간속에 함께 하는 고민이고, 이 시간들을 거쳐서 자신의 길을 가고, 그 속에서 자신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것. 탈피 후에는 탈피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성장하게 되는 황제펭귄 그 모습이 아마도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2024. 07. 12 금요일
7월..방학이다 공식적인. 다들 휴가도 가고 나름대로의 여유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아직 휴가를 가지는 않았고 여전히 연구비 작성과 논문작성, 학생들과 실험, 그리고 7명의 인턴들과 팅통탱통 하면서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독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많이 하고 있다. 마치 학원 선생님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약장사가 된것 같기도 하고, 상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하하^^
생명과학을 소개하고 꿈나무들을 과학자의 길로 유혹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강의를 하다보면 전체가 다 보이는데, 절반은 대부분 졸고 있다. 나도 생각해 보면 그시절엔 그랬던 것 같다. 고딩들에게는 오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겠지.
그런데, 몇몇은 정말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내용을 듣고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고맙기도 하고 힘을 내서 끝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요즘은 이런 강의를 하면 혼신을 힘을 다 쏟아서 그런지 2시간 정도가 지나면 정말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저 강의평가에서 " 기억에 남는다","반해버렸어요,사랑해요?????"라는 그 한마디가 그래도 미래의 꿈나무 과학자들을 내가 만날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주고 오늘 하루 바쁜 순간에도 웃음을 짓게 해 주는 것 같다.
모든 일들이 힘들고 그렇지만, 그래도 과학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젊고 꿈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그들이 만들어갈 또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2024. 06. 13 목요일
지나간 서로 다른 시간에 있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싶다.
2012년 6월 13일 Facebook에 남겼던 글
드디어 박사 디펜스가 모두 끝났다 샘들 도장도 다 받았다
근데 기쁘지가 않다 후련함도 없다
흘러간 시간들과 기억들만이 계속 멤돈다 뭐지 이감정은?
박사 뭐지? 요거 받는데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었나?
시간이 아깝고 아깝다는 생각뿐 내 흘러간 20대가 아쉬울뿐 ......
2017년 6월 13일 캠브리지에서 포닥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간 Facebook 에 남겼던 글.
오늘 human lung tissue sample 을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서 오랜만에 일찍 끝내고 집으로 가려던 나의 계획을 무참히 박살을 내고 결국 나를 실험실에 가두게 되었다.저녁 6시 넘어서 시작된 실험 결국 오늘 새벽 2시에 prep을 끝내고 organoid culture를 넣음으로써 끝을 맺었다.
새벽 캠브리지의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고오는 길에 문뜻 예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예전 박사과정때 leukaemia sample을 받아서 실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Cryo Vial에 적혀있던 이름과 나이, 발병 및 치유 유무등, 실험에 앞서 감사의 기도와 함께, 혹시나 이 샘플들로 하는 내 실험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실험을 시작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늘 내가 사용한 fibrosis 환자의 adult stem cell을 이용해서 내가 찾은 이 culture 조건에서 organoid 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앞으로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있을텐데 말이다. 좋은 저널에 연구성과를 내는 것도 좋지만, 실용적인 부분에서도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이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조금 더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될 뿐만 아니라 보람이라는 과분한 행복을 느끼게 해줄 텐데 말이다.
언젠가 이 새벽 자전거를 타고 가던 캠브리지 시골길에서의 보람이 내 생애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순간이었기를 바래본다.
2024. 06. 02 일요일
행복과 행운을 뜻한다는 세잎 클로버와 네잎 클로버. 네잎 클로버를 찾고선 어떤 좋은 "행운"이 찾아올까 아주 짧은 "행복"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행복과 행운은 비슷하면서도 똑같지는 않고, 행운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행운이 없더라도 행복한 것들이 있다. 물론 좋은 행운이 따라준다면 행복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변곡점은 될 수 있다. 아주 소소한 행운들, 예를 들어 대학원 생활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던지 하는 것들, 이 있어서 삶의 큰 틀에서의 행복을 영위할 수 있으니깐.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행운이고 그걸 통해서 행복한 연구를 할 수 있기에, 어쩌면 행운과 행복은 사이언스에도 매우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 나름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올해엔 제대로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다행히 저녁을 먹거나 자기전 잠깐 유튜브를 통해서 요약된 것을 보게 되는데, 어제 밤엔 졸업이라는 드라마 요약을 잠깐 보게 되었다. 정말 가르치고 싶고 성장하는 것을 함께 보고 싶은 학생이 있고, 그 한명으로 자신의 학원선생님으로서의 기쁨이 다시 살아나고 이직이라는 매우 중요한 자기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공감이 가는 것 같다.
이번주 KSBMB 학회에서도 몇명의 학생들과 포닥분들을 만나서 얘기하면서 성포닥을 연구라는 것도 좋은 동료 그리고 이제 학교로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함께 하는 삶에서, 정말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고 함께 연구를 하면서 좋은 동료로 성장을 하면 좋을 것 같은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최고의 행운이고,행복이다. 가끔 수업을 들어가면 눈을 초롱초롱뜨고 질문도 하고 하는 친구들, 고민이 많은데 그 것들을 물어보는 학부생 친구들도 그렇고. 연구에 있어서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좋은 사이언스티스트로 자라고 싶고 자랄수 있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학교에 있는 PI로서 가장 큰 행운이고 행복일 것이다. 나의 연구에서 네잎 클로버와 세잎 클로버.............................
2024. 05. 13 월요일
영국 캠브리지에서 6년간 포스닥을 하면서 힘들었던 날들도 있었지만, 나에겐 지금의 과학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를 완성시켜 주었던 시간이었다. 아마도 그중 가장 나의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다듬게 해 주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것 같다.
Institute Director였던 Austin Smith와의 대화, 실험장을 뒤지며 실험하던 노벨수상자였던 John Gurdon 할아버지 모습, Ben Simon의 질문들, Weekly Seminar들의 모습들, 내 PI와의 항상 길었던 대화들과 실험얘기들. 그들과의 대화는 내가 왜 과학을 해야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내가 대학원생때 배우지 못했던 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것들을 내가 돌아온 한국의 커뮤니티에도 그리고 내 주변의 대학원생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고, 그래서 어쩌면 논문을 읽는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질문을 던지고 디자인하고 좀 더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고 아니면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다시 저쪽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것. 그런 자신감과 능력을 갖추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적 장벽에 부딛히는 경우가 많아지며 어쩌면 내 이런 도전들이 그냥 한낱 한번 불면 무너져 버릴 모래무더미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그래서 좀 더 지쳐가고. 물론 내가 그런 능력이 되는지도 요즘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이 방향도 맞는건지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때 우리 담임이 해주셨던 말이있다. "개가 주인이 주는 따뜻한 밥은 마다하고 종이 주는 찬밥에 꼬리를 흔든다". 어쩌면 처음보는 따뜻한 밥이 낮설고, 항상 먹는 찬밥에 길들여 버린듯한 모습들이 많이 모든 곳에서 많이 보인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좀 더 힘내서 나아가 보자..스스로 외쳐본다.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구간에든 바르다"고 했으니... 정말 끝도 없는 방황이다 이 삶은...
2024. 04. 30 화요일
작년 11월에 나의 사마귀 친구였던 사냥이가 먼 곳으로 소풍을 떠나고, 남겨 놓았던 알이 있었다. 4월이 오고 봄이 와도 아무 변화가 없길래 수정란이 없는 알집인줄 알고 그냥 햇빛 비치는 곳에 고이 두었었다.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왠 개미가 이렇게 바닦에 있을까 하고 있는 와중에 모습이 너무 사마귀 같아서 옆에 알집을 보니 사마귀 아이들이 깨어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눈물이 날만큼 신기했다. 둘째 녀석이 아빠는 과학자니깐 죽은 사냥이를 살릴 방법을 찾아내라며 투정을 부리는데, 이렇게 사냥이와 똑같은 자식들이 봄의 끝자락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명은 정말 신기한 것 같다. 이런 신비에 아직도 생명과학의 길을 가고 있고, 그 재미를 함께 하고 싶고 또 잘하는 친구들을 좋은 길로 함께 하고 싶고 그런게 아닌가 싶다.... 아직은 내 꿈은 이런데 현실은 아직 모르겠다. 그냥 포기하고 그만할까 싶기도 하고...
음...그런데 현실적 문제는 너무 사냥이의 자손들이 너무 많다는 것...얘네들을 먹거리를 위해서 초파리를 주문을 해야했고, 수많은 그 녀석들을 어느정도 분리해서 키운뒤에 자연에 방사를 해야할 것이고...아...집에 가면 할일들이 또 늘었네...하지만...신기하고 고맙고 그렇다. 생명이란 그런것 인가 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보고 싶은 하루다....
2024. 04. 18 목요일
내일은 내가 박사를 하였던 예전 실험실의 마지막 후배가 미국 펜실베니아로 포닥을 떠나간다.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는 늦은 나이에 또 사이언스에 한걸음 다가가는 순간이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근심과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잘 조화롭게 극복하며 좀 더 한층 나아진 모습이 되어 있으리라 확신을 한다. 또한 그렇게 나의 마음을 전화기 너머 응원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연구라는 길이 의대와 같은 엄청난 경제적 부를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길은 아니다. 무언가 알아간다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의약학적으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혜택을 보게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응용으로 갈 수도 있는 기초연구를 한다는 것, 그것만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다만, 사회가 보다 젊은 과학자들이 안정적으로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 졌으면 좋겠다. 주거의 안정,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 너무 짧은 시간에 실적을 요구하는 연구비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 사람의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연구비의 시스템, PI 역시 말도 안되는 탑다운 과제에 매몰되어 자신이 가장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만들지 않도톡 바틈업의 장기적 과제를 많이 만들어 주는 환경.
요즘은 나도 여러가지 마음이 복잡할 때가 많다. 학생들 지도와 멘토링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연구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생각보다 귀국하고 나서 예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젊은 친구들의 과학에 대한 동기부여가 낮다는 것도, 광주라는 지방의 한계로 인하여 좋은 인재의 확보하는 것의 힘듬도.
무모하게 건방지게 콧대높여 자신의 꿈을 향해서 걸어가는, 그리고 그 길이 혼자만이 아니라 같은 꿈을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짜피 한번 주어진 삶에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길이지 않을까.
"피어야 하는 것은, 꽃 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하라/
근심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너를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뿐" (괴테)
2024. 03. 26 월요일
오랜만에 조익훈 교수님의 초대로 서울시립대 생명과학부 정기세미나로 출장을 다녀왔다.
본인 연구실의 2/3를 부족한 학생들의 연구공간으로 사용하면서까지 연구에 매진하시는 조익훈 교수님의 모습을 보니 지쳐가던 나에게도 엄청난 긍정 에너지와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아침부터 세미나 참석은 물론 질문을 하던 친구들의 모습들, 그리고 포닥을 나가려는 두명의 갓 박사학위를 받은 커플들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더 해보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서 엄청나게 큰 힘을 얻고 광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여러가지 힘든 환경에 있는 사이언스 커뮤니티이지만, 아직도 기초연구와 호기심, 그리고 열정이 아직은 이 커뮤니티에 남아있는 것 같다. 얼마전 은퇴한 박사지도 선생님이 퇴임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가지 일들을 눈치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실험실에서 묵묵히 연구를 하고 있던 든든한 우리와 같은 학생들이 있어서였다고...고맙다는 말을 전하셨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요즘들어 조금씩 느껴가고 있는 것 같다......
2024. 02. 26 월요일
22일에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나의 박사과정 지도선생님이신 성노현 선생님의 은퇴 기념강연을 함께하고 실험실 식구들과 회포의 자리를 위해서 말이다. 광주에는 비가 왔고, 서울 관악산엔 엄청난 눈이 뒤덮여 있었다. 이제 내가 8년 반의 대학원과정과 3년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던 "분자면역학실험실"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사실 마음 한켠이 너무 먹먹했고, 학교로 향하는 마을버스에서 보여지는 모든 하나하나가 아련하게 다가왔다. 기념강연에 생각지도 않게 평일 4시에도 불구하고 20명 가까운 졸업생이 함께해서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엄청나게 긴 시간을 함께한 실험실 생활이 어찌 행복한 기억만 있었을까? 랩미팅 시간에 엄청 혼나기도 하고, 뇌가 없는 아메바라는 소리도 듣고, 선생님 집에서 2번 울기도 하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는 좋은 기억들만이 남아있다. 그 속엔 나와 함께한 좋은 동료들과 친구들 형님들 누나들 동생들..처음엔 좋은 동료로 시작했고 지금은 좋은 친구로 남아있는 그 사람들로 인하여 아마도 그 시간들을 함께나누며 견딜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으며, 사이언스를 계속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우리 성노현 선생님의 가장 큰 공덕이라 생각한다.
나도 요즘 이제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사실 은퇴하는 우리 선생님이 부럽기도 하다. 그때랑 비교해보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 어려워서 그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려보는 실험실의 모습이 있다. 가장 우선은 사이언스가 중심이 되어야겠지. 자유로운 얘기가 가능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하고 디스커션하며, 서로의 연구가 함께 성장하는...그런 과정은 결국 좋은 실험실 구성원들의 노력들로 만들어 진다고 생각된다. 내가 석사 2학년때 지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암젠에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오재학이 새벽 4시에 전화를 해서 중요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깨워서 기숙사에서 처벅처벅 걸어 새벽 실험실로 가서 재학이와 한참동안 웨스턴블랏 한장으로 아이디어를 나누었던 그런 시간들도 있었다. 서로에게 이 공간이 집은 아니지만, 자신의 젊은 20대의 열정과 꿈이 함께 뒤섞여 만들어내는 그 공간. 그속엔 함께 나누는 얘기도 있고, 고민도 있고, 슬픔과 기쁨도 있고, 그리고 나의 대학원 생활 8할은 실험 후 저녁/밤의 어울림이었던 것 같다. 그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었던 여기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의 대학원은 내가 지금 그리운 그 시간을 회상하고 거기에서 힘을 얻을 만큼 소중한 기억들일 것이다.
나도 박사과정생들이 생기면, 일년의 시작을 여는 year-start meeting 도 하고, Retreat도 가고, 우리 선생님이 했듯이 연말에는 집에서 실험실 친구들과 함께 음주가무로 마무리도 하면서 하지 못했던 말들 내년의 바램들도 해보고...나도 선생님 집에서 석사 2년차 박사 1년차에 새벽에 울기도 했고, 그럼 사모님께서 라면을 끓여서 주시곤 하셨다.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아마도 우리 샘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은퇴강연이 끝나고 선생님과 간단히 사진을 찍고 선생님은 서울대교수님들의 공식 저녁식사에 가셨다. 가시는 그 모습에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선생님 우리도 회식하게 연구비 카드 주세요! ...사실 이제 선생님은 연구비 카드가 없지만...ㅎㅎ 내가 학위과정엔 선생님께 전화해서 술은 먹고 싶은데 돈이 없을때 종종 전화를 했었다...선생님 연구비 카드로 술 먹으면 안될까요? 그럼 선생님이 모두 오케이를 해주셨다. 다만, 많이 먹지 마라..ㅋㅋ 라고 하셨었다. 이제 그런 것도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그때의 기억을 해보면, 그게 낭만이었는지 소위 요즘 정부에서 말하는 회식비 남용인지 모르겠지만, 배고프고 힘들고 했던 대학원인 나에게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호랑이 담배필 적의 낭만의 시대였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시절이었는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이 나의 삶에서 나를 지탱하는 한 축인것은 틀림이 없다. 요즘 학부생 대학원생들을 보면 넘쳐나는 정보들에 너무나도 불안해 하고, 닥치지도 않은 자신의 미래를 기존에 누군가 했던 한탄들과 푸념들, 사실이지 않는 얘기들, 그 모든것이 자신의 미래인양 지래짐작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너무나도 낮게 잡으며 불안해 하는 것 같다. 어느 길이 불안하지 않을까? 의사들도 이렇게 불만이고 힘든 세상에.
내가 분명히 말하고 싶은것은 분자면역학 실험실 56명의 사례를 보면, 자신이 어느곳에 있는지 모두 다른 곳이지만, 자신의 길을 찾고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이고 뚜벅뚜벅 가다보면 어딘가에 서 있는 자신을 분명 발견할 것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뛰어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고,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묵묵히 즐겁게 순간순간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아..근데 은퇴하고 싶었다가도 가끔은 나도 어디까지 갈 수있을까 궁금해서 그냥 가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기세로 좋은 삶의 한 부분이 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낭만이 있는 그런 곳....많이 노력해야겠다...연구비 쓰로 가자 잡담 그만하고...ㅠㅠ
2024. 02. 15 목요일
벌써 2024년 새해가 시작된지도 2달이 넘어간다는 것을 오늘 새삼 달력을 보고 놀랐다. 벌써 2년차 조교수 생활인데, 나는 무엇을 잃었는지 몰라 두손을 주머니에 넣고 돌담을 끼고 돌던 윤동주님의 글귀가 생각이 난다.
아직 나와함께 한 제자 중 학위를 받은 친구는 없지만, 박사학위 committee member로 몇번 참여를 하였고, 이렇게 하드커버의 박사학위 논문을 가져다 주는 친구들이 있다. 오늘도 이렇게 멋진 young scientist의 젊음의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었다.
난 항상 마지막 Acknowledgement 부분을 읽어본다. 내가 8년 반만에 학위를 받고 thesis를 쓰면서 새벽에 쓰던 그 기억이 아직 내 뇌리에 남아있어서 그런거 같다. 마지막 이 부분을 쓸때면 그간의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기쁘기도 하고, 그 오랜 시간 뭐를 위해서 했었나 하는 머리가 띵!한 기분도 들었던 기억이다.
이 친구의 글에 좋은 글이 있어서 한번 남겨보고 싶다.
"이전까지 해왔던 공부는 누군가가 밝힌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면, 이후부터는 밝혀지지 않은 차원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정답이 없는 연구를 하다 방향을 잃을 때면, 놀기도 좋아했던 터라 답답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이제 바깥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두 발로 서는 법을 배우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네! 양박사님의 7년 반의 대학원생을 끝내고 또 다른 새로운 멋진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을 응원합니다!!
2023. 12. 22 금요일
어느덧 올 한해도 그 끝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억지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같다. 내게 2023년은 어떤 한해였을까.
언젠가 학부생이 물었다. 교수님의 꿈은 무엇이냐고.
무얼까? 현재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은? 무얼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것일까. 물론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으며, 희망하고 있는 것이 있다. 어떤 것에 즐겁고, 행복하며 어떤것에 슬프고 화가나는지.
꿈이라는 것 보다는, 앞에 "교수님" 이라는 말에 의미가 무얼까 정의가 쉽게 내려지지 않고,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그냥 단순하게는 직업으로서의 의미이지만, 요즘 그리고 오늘 그 의미가 무얼까 많은 고민이 된다.
내가 학생이었을때, 기대했던 그 교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난 과연 얼마나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직업에 부합하게 가고 있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인생에서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오게되고, 어디로 향하느냐에 삶이 많이 바뀌게 된다. 엄청난 선택적 장애를 가지고 사는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고, 무엇인가 그 갈림길 중에 선택을 하고 나아갔었다. 오늘 지금 이 밤에도 멍하니 오피스에 앉아있다. 나의 선택이 그 방향이 과연 옳은 것이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오늘 하루다. 오랜 고민들 끝에 선택을 하게 된 것이지만, 막상 그 순간과 마주하는 이 시간이 나에겐 너무 힘든 시간이다....
2023. 12. 12 화요일
이번 가을학기 면역학 수업이 월요일 기말고사를 끝으로 종강을 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향후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 되셨던 성노현 선생님과 정가진 선생님께서 팀티칭을 하셨던 그 면역학 수업을 내가 이렇게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했고, 묘한 기분이 드는 한 학기였던 것 같다.
Kuby Immunology 교재를 구할 수 없어서 급하게 Janeway의 Immunobiology 교재를 구입하여, 나도 챕터 하나씩 읽으면서 월/수 수업을 겨우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초보의 사람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으면서도, 박성규 교수님의 이직으로 한동안 면역학 강의가 없었던 GIST에서 줄기세포학 대신에 면역학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였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면역학도 하고 줄기세포도 하고, 두 분야에 다 걸쳐있다보니 해야 할 것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기도 하다.
성적입력을 끝냈다. 아마 학교에서 성적배분에 대해서 정정 요구가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수업 시간 동안 그리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통해서 받은 학생들의 노력의 인상에 기반하여 내가 주고 싶은 성적을 준 것 같다. 그리고, 강의 평가를 보게 되었다. 별로 많지는 않지만, 절반이 넘게는 PPT 강의 파일을 수업 후 말고 수업전에 올려줘야 필기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있다. 음... 이부분을 포함한 내가 처음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느낀 부분이 있어서 여기 내 공간에 글을 남기고자 한다.
요즘 학부생들은 교과서를 구입하여 text를 읽는 경우를 보기가 힘들다. 강의 평가에서 썼듯이 대부분의 경우 교수가 올려놓는 PPT 강의자료에 의존을 한다. 얘전 나의 경우는 정말 교과서를 쭉 읽으면서 공부를 했고, 시험도 강의자료보다는 교과서를 읽는 것이 중요했었기에, 이러한 풍경들이 정말 낮설다. 아직 학부생의 경우 교과서를 전체를 읽어보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강의자료를 받고 여기에 필기를 하고 그것만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요즘의 중/고등학교 때의 공부방법에 대학 3-4학년생들에게도 여전히 익숙한 것일까.. 대학에서의 공부가 고등학교와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지, 단순히 시험보고 학점을 받는 것이 굳이 대학에 입학해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아닐텐데...사회가 이래서 그런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개인들의 성향들에 의해서 사회가 또 계속해서 변화하여 나가는 것일까..
전공책들 옆구리에 끼고 돌아다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얼마 되지 않은 모습들인데, 다시금 내가 돌아온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그 기억들은 먼 구석기 시대의 어느 유물같이 생각이 된다. 하지만, PPT 강의 파일에 빼곡히 적는 그 자료 보다는, 그 강의의 원천인 교과서를 쭉 한번 읽어보는 태도를 지금의 학부생들이 견지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자신들이 관심이 있는 전공에 더 비중을 둬서, 그게 면역학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2023. 11. 20 월요일
어떠한 인연을 통하여 길들여 지게되고, 그 인연과 이별의 순간을 맞닥드리게 될 때는, 그 시간이 언제가 되었건 마음이 아픈 것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어제 일요일엔 밤에 우리집에서 키우던 나의 셋째딸이었던 좀사마귀 "사냥이"가 내 곁을 떠나갔다. 3번의 알을 놓는 힘든 시기를 거쳐서 말이다. 나도 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 둘째가 그런다. 사냥이의 알에서 내년 봄에 또 사냥이가 우리 곁으로 올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인연을 맺는다는 것, 마음을 나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서로에게 길들여 진다는 것. 아마 그것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그 수많은 인연들과의-그것이 좋은 인연이든 아니면 악연이든-연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희노애락이 있고, 그 헤어짐엔 회자정리의 슬픔이 있고, 또 만난다는 거자필반의 희망과 기다림이 있고.
나에게도 수많은 인연들이 있었고, 여전히 긴 끈으로 이어진 연결도 있으며, 이제는 그 끝을 누가 쥐고 있는지 모를 한꾸러미의 실도 있다. 그 실의 끝을 조금씩 당겨보며, 이전의 시간들로 나로 다가가 본다. 난 그 길들여 짐으로 여기에 있고, 그 인연의 시간들로 나의 삶은 이어져 왔으리라.
그 수많은 인연의 실꾸러미가 얽히고 섥히고, 엉망진창이 되어도 좋으리. 다만, 그 것이 끊어져 버리는 영원히 끊어져 버리는 그 슬픈 순간은 몇번을 겪어 보았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인건 어쩔 수 없다. 할머니와 헤어지던 반수생 시절의 기억과 아빠와 이별을 했던 그 시간들도.
냉장고에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는 밀웜들은 어찌할꼬..이녀석 먹이를 주려고 밤에 잠자리채 들고 나가서 나방도 잡고, 파리도 잡고, 귀뚜라미도 잡던 그 시간이 즐거웠던 것 같다. 사냥아 보고 싶네.
2023. 11.09 수요일.
요즘 한국의 R&D 예산과 정책들의 방향을 보면 정말 아쉽고 그렇다. 35% 삭감과 또한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중심대학의 경우에도 30년만에 처음으로 정부에서 오는 과학 R&D 예산이 "0"가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할때면, 예전 학부시절 친구들 따라서 의대편입을 했어야 하나, 옥스포드에서 받았던 오퍼를 왜 거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특히, 우리대학의 학부생들과 우리실험실의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사이언스를 함께하고 좋은 과학자로 함께하자고 말을 해야할까 부끄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어보면 이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본인의 사이언스를 하고 독립적인 연구자로 활동하는 것은 10년이 지나서 일것이다. 지금은 의대 열풍과 과학예산 삭감등으로 기초과학을 하려는 사람이 적지만, 결국에는 기초과학자들이 필요하고 10년뒤엔 이것을 할 적합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지지 않을까 생각이든다. 또한, 굳이 한국이라는 조그만한 갈라파고스 군도와 같은 곳에 자신의 꿈을 한정하지 않는다면 10년뒤에 지금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자리를 찾아서 본인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우리 둘째는 정말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적없는 아주 즐거운 친구이다. 아빠가 학교가기 싫고 연구도 하기 싫다고 그러면 항상 "안하면 되지 학교 가지말고 자기랑 놀자. 하기 싫은 것은 하지마. 하고 싶은은 거 해" 그런다. 모든 하루하루가 즐거운 친구이다. 공부하는 것만 빼면.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인데 구구단을 모른다...하하. 공부하자 그러면 도망가 버리지만, 언제나 즐겁다. 무엇이 그리 즐거울꼬....
그래, 언제고 다시 생각해 봐도 난 이 길이 즐거운 길 인 것 같다. 물론 즐겁다는 것이 항상 행복하다는 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즐거운 이 길에서 행복을 느끼는 날들이 더 많으리라. 이 길을 가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즐거운 연구를 하고 있으며, 어찌보면 이 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으리라.
내가 아는 학생들 누군가는 이길이 행복하고 하고 싶고 그런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연구와 과학에 즐거움을 얻는 이들에게 좀 더 희망을 주고, 즐거운 그 길을 계속해서 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함께 걸어가주고, 그 길이 바른 방향임을 버팀목이 되어주며 함께 가고 싶다.
2023. 10. 30 월요일.
어느덧 여기 학교에서도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수업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지만, 나름대로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을 얘기해 주고, encourage도 해 주고, 또한 나의 생각들을 전달해 주곤 한다. 오늘 면역학 수업도 그랬고..
나도 예전의 PI들의 삶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열악하고 힘들고 그렇다. 세상이 점차 힘들어지고, 사이언스는 더 경쟁이 심해지며,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지 나조차도 그 방향성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과 지금의 대학생들이 느끼는 그 힘듦과 상실감과 방황이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사회나 자신의 주변 환경은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내적 힘을 가지고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어떤 누구도 자신의 길을 이끌어 줄수 없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을 한다.
20년전 학부 2학년때 수강했던 전영애 선생님과의 만남이 아직까지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 주는 원동력을 주었듯, 내가 전하는 지식 말고 사소한 말들이 또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음 좋겠다. 나에게도 그렇지만, 어쩌면 오늘 면역학 수업때 했던 괴테의 시 구절에 나오는 글이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큰 노력에 끈기를 더하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울며 밤을 지새워보지 않은 이, 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바르게 행하려는 자, 늘 기꺼이 뜻에, 가슴에 진정한 사랑을 품어라!"
2023. 10. 11 수요일.
PI가 되고 요즘 고민이 많아졌다. 연구비와 연구의 방향은 물론, 학생들과 어떠한 방향으로 실험실을 함께 운영하여 나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것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Motivation이 확실하고 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한 경우는 아주 드문 듯 하고, 그래도 무언가 같이 실험 디자인을 해 보고, 그 결과를 주어진 시간에 얻은 후 이 결과에 대해서 같이 discussion해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얘기할 정도로 조금씩 progress가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이 경우에는 발전의 모습이 보이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대견하기도 하고 나도 좀 더 열의를 가지고 Support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의욕도 잘 보이지 않고, 전혀 실험의 진전도 없고 그래서 결과를 함께 Discussion을 할 것도 없는 경우도 있다. 처음 PI가 되고 모든 친구들을 함께 좋은 사이언스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고, 그래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런 경우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최근 Lab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대학원생이 어떠한 자리인지 한참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모두를 함께 이끌고 가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경우엔 연구를 하는 대학원의 자리가 결국엔 버겁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리라..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때는 그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그리고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그래야, 계속해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Training 과정을 거치는 것이니깐. 좋은 사이언스를 하려면 그에 맞는 motivation,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과학이건 연예인이건 운동선수이건 모두에게 Career를 쌓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과정을 선택하건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좀 더 힘을 보태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PI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단, 책임감과 노력을 하고 꿈을 꾸는 자에게 말이다.
2023. 09. 19 월요일.
최근 공기오염으로 인한 폐암 증가의 원인으로 내가 밝혀내었던 IL-1b에 의한 alveolar stem cell의 regeneration program이 많은 관련이 있다는 Nature 연구 결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정말 과학을 하면서 내가 한 연구가 이 필드에서 중요하게 인정을 받는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다.
좀더 좋은 연구를 이제 독립 연구자로 학생들과 공동 연구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이 또한 줄어들고 있어서, 어떻게 더 이 연구를 함께 이끌어가야할지 걱정이 크지만, 그래도 기초 연구이면서 질병의 이해와 치료에 또한 조금이나마 내 남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그리고, 여기 함께 하고 있는 이 친구들이 좋은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으면...그래서, 정말 기초가 튼튼하고 힘이 있는 뿌리를 가진 사이언스 문화를 만들수 있으면....너무 좋을 것 같다. 내 아이들이 나갈 그 세상이 사이비로 가득하고, 거짓이 선인양 권력을 누리고, 기초가 없이 그냥 무너지는 그런 세상은 아니기를...
2023. 09. 07 목요일.
내 오피스에 어지럽게 적혀있던 화이트 보드를 다 지워버렸다.
그냥 내 복잡한 생각을 한번 다 지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워놓고 싶다.
수업 준비에 치이고, 매주 2-3개씩 잡혀있는 세미나 일정에 치이고, 선정되지도 않는 연구비 쓴다고 시간을 보내고..
조금씩 하던 오가노이드 배양 같은 간단한 실험도 이제 할 시간이 없는게, 이전까지는 생각도 못해보았었다.
아...논문 몇개 뽑고 노트와 펜 하나 들고 어디 조용한데 가서, 2-3일만 시간을 보내고 왔으면 좋겠다.
학생들도 힘들겠지만, PI도 너무 힘들다. 그래도, 사이언스는 재미있다. 그런가??? 진짜??? 몰라!!
2023. 08.30 수요일.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욕심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다.제갈공명이 아들에게 남긴 글이기도 하면서, 안중근 의사가 순국전 남긴 말로도 유명하다.
이 말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듯 하다.
아래는 제갈공명이 아들에게 남긴 글이다.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아 본다!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무릇 군자는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고,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는다.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위태롭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니, 마침내 낙엽처럼 떨어져 세상에서 버려지니,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해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2023. 08.29 화요일
방학때 둘째와 KTX를 타고 부산 어머니 댁에 잠시 다녀왔다. 이번 여름의 컨셉은 채집인듯 다이소에서 2천원에 산 잠자리 채와 1천원에 산 채집통을 여름 내내 가지고 다녔다. 여기 GIST에 와서도 나비며 잠자리 여러가지들 잡으러 다녔다. 난 힘들어 주겠는데 정말 즐거워서 땀 뻘뻘 흘리면서 잡고 산과 계곡을 다니며 잡고 다닌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엔 다 놓아주었다. 안녕 하면서.
실험이나 연구도 마찬가지인듯 싶다. 어쩌면 힘들고 땀이 뻘뻘나는 일임에도 그냥 즐거워서 이 과정이 재미있어서 하게 된다. 뭔가 열심히 해서 내것인가 싶다가도 논문으로 나오고 그러면 이것은 내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는. 모두 힘들게 잡았던 곤충들을 보내주는 그런 느낌.
좋은 사이언스는 그런거 거 같다. 여름 방학 잠자리채 하나와 채집통 하나 그리고 든든한 옆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더워도 땀이 나도 마냥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싶네. 살짝 미친것 처럼!
2023. 07.24 월요일
정말 이렇게 연구비 수주가 힘든 줄은 몰랐다. 물론 연구비가 많다고 그 productivity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기본적인 실험들을 하려고 하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재미가 없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저런 문구를 보면 이제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내가 뭐하러 이 연구를 계속 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 있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해서 좋은 그리고 흥미로운 그리고 새로운 쓰임새가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돈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인재가 중요한 법. 지금 있는 실험실 친구들이 있는 한 조금 더 힘을 내서 가 봐야 할 것 같다. 조금의 휴식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천천히 아이디어를 정말 생각해 보고 싶다. 포닥을 할때는 Cam river를 종종 걷곤 했다. 아니면 , 캠브리지 시내는 돌아다니며, 아니면 hot numbers 커피 한잔을 가지고 조용히 아무 거리에 앉아서 머리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곤 했었다. 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인가 아니면 한국에서 grant를 수주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것인가...
그래도 난 아직 믿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뚜벅뚜벅 가끔은 깡총깡총 또 가끔은 후다닥 가다 보면 언젠가 거기가 내가 생각하던 그 길을 가고 있을거라고. 좋은 사이언스를 하고 싶다!
2023. 07.19 수요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다 무언가 답답할 때면 ,가끔씩은 실험실이나 컬쳐룸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자라고 있는 오가노이드를 보거나 텅빈 실험실에 앉아 있으면 왠지 기분이 편해지곤 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도 2004년도 실험실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삶이 많이 변했던 것 같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20년 가까이 혼자서 하던 그 환경에서 내가 함께 이끌어 가야 하는 학생들이 생겼고, 그 변화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잘 못하는 점을 볼 때, 가끔은 혼내기도 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망하기도 한다. 이 친구들을 시간이 지나서 어떠한 길을 가고 있을까? 어떠한 인연으로 나의 실험실에서 함께 하고 있을까?
좋은 과학자가 되었음 좋겠고, 좋은 동료가 되었음 좋겠고, 즐거운 삶의 일부가 되었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근데, 왜 에어콘은 안끄고 갔을까? ^^ 에어콘을 끄고 간다. 하하.
2023. 06.30 목요일
정말 생각했던 것 보다 한국에 돌아와서 조교수를 하는 삶이 너무 바쁘고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이것이 물론 다른 분들보다 여려면에서 모자란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연구만 생각하고 시작했던 것이 생각지도 못한 여러가지 일들이 너무 많고 그러면서 연구도 많이 놓치게 되는 시간들이 많아서 너무 안타깝고 실험실 친구들에게도 미안하고 그렇다. Professor라는 이 직함이 아직은 너무 낯설지만, 이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잘할수 있을까...좋은 사이언스를 타이밍 늦지 않게 잘 할수 있을가..좋은 멘토가 될 수있을까...내리는 비 만큼 나의 머리속은 너무 복잡하다...
내일까지 연구비를 신청해야 하는게 2개나 있는데..아직 시작도 못했다..한심하기도 하고..부끄럽기도 하고...그렇네. 그래도 힘내고 초심을 잃지 말고..끝까지 힘내봐야 겠다!!!
2023. 06. 2 금요일
영국에서 postdoc을 했을 때, Wellcome Trust에서 지원을 받았던 연구소였기에 정기적으로, Wellcome에 기부를 하였던 분들이 오시면 내가 당신들의 돈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설명을 하곤 하였다. 보통은 할머니 할아버지 였던 분들에게 Lung Organoid를 보여주면서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었다. 그리고, 과학 주간의 기간 동안은 Cambridge는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의 Science Festival이 열리곤 하였다.
내가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초등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말재주도 없는 내가 그래도 전하고자 했던 두 가지 메세지는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누가 뭐라 그러든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하다보면 그 길이 결국 가장 좋은 길이며, 생물학의 기본이며 근간인 다르다 틀리다 맞다가 아닌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으며, 과학을 좋아하는 즐기며 희망이 있는 그런 미래의 과학자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는 것.
2023. 05. 17 수요일
여기 광주과학기술원은 사이언스 파크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바로 옆에 광주과학관이 자리하고 있고, 매년 한달에 한번씩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스쿨 강연을 GIST의 연구원들이 대중강연을 한다. 나야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지원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부족한 관계로 막내 교수라는 이유로 차출되었다. 어떤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오가노이드:미니장기 이야기"라는 주제로 간단한 이야기들을 하였다. 이런 주제 말고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들도 함께 마지막에 하였다. "생명의 다양성과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이슈로 마지막 5분정도 인종적으로 직업적으로 신체적으로 모든 것들이 같다,다르다,틀리다가 아니라 "다양하다"라는 단어들로 포용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고, 그것이 생명현상의 가장 근본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지금 앉아 있는 이 아이들 중에 우리 인류의 좋은 과학자가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끝나게 해 주었던 카리코 박사의 이야기와 내 학부시절 침팬지 할머니인 제인구달님이 내게 적어주었던 단어 "Follow your dream"이라는 말로 마무리 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 어린이들이 과학자의 꿈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도록, 나도 좋은 사이언스를 하고 싶고, 나의 랩의 친구들과 내 주변이 즐겁고 좋은 그리고 진실되고 치열한 그런 과학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3. 05. 15 월요일
작년 5월 1일 히드로에서 인천으로 내렸으니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온지 1년이 지났다. 그렇게 새벽에 광주로 내려왔다. 2022년 9월에 지민,가을,혜영 3명의 학생과 실험실을 시작했고, 올해 3월 강희,현진이 함께 2023년을 시작하였다. 정신없이 랩의 필요한 장비와 실험 기자재를 주문하고, 컬쳐룸과 필요한 마우스를 받기 시작했으며, 몇몇 수술들과 환자 샘플을 이용한 오가노이드 셋업을 하였다. 주구장창 쓰고 있는 연구비는 끝도 없이 낙방의 고배를 맞을 때면, 그냥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던 영국에 남아 있을걸 왜 이러고 있나 후회도 했다가, 나를 믿고 실험실에 함께 해준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해서 실험실 생활이 채 1년도 되지 않는 병아리 같은 실험실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을 차려서 정말 제대로된 멋있는 사이언스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된 Fundamental한 기본이 튼튼한 그런 사이언스를 하는 친구들로 함께 성장하고 싶다. 사이비 같은 혹세무민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근본이 튼튼한 연구를 기반으로, 좀 더 앞으로의 세대에선 내가 영국에서 보아왔던 뿌리가 튼튼한 그런 기초과학을 하는 한국의 사이언스 문화를 만들고 싶다. 정치와 기만과 거짓으로 그게 진실인 마냥 호도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갈 수 있고, 정말 과학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음 좋겠다. 나의 학생들이 거짓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과학의 "뿌리"를 가지고, 주변의 시선과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하는 곳으로 훨훨 날 수 있는 커다랗고 튼튼한 "날개"를 가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스승같지도 않는 나에게 이렇게 감사함을 전해주었던 오늘. 내가 바라던 fundamental question과 science를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 지는 오늘이다. 그래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실험실 가족들에게.....
2023. 04. 10 월요일
학기가 시작되고 정말 정신이 없이 시간이 지나감을 느낀다.
저번주엔 100여명의 대학원생들과 학술 교류회를 다녀왔고, 대학원 생들과 얘기들을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오늘은 Team Teaching을 하는 학부 강의인 Cell biology 의 내가 맡은 마지막 부분을 강의가 끝을 났다. 이런 행사들과 수업들이 끝나고 나면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또 기쁘기도 하고, 무언가 Mixed Feeling인 듯 하다. 학교에 Faculty로서 연구도 해야 하지만, 또 앞으로 새로운 과학을 하게 될 new generation들과 교류하고 그들을 좋은 사이언스를 하는 문화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고 공유하고 하는 과정을 하는 것의 필요성도 느끼고, 또 이 과정들이 즐겁기도 하다. 무언가 내가 생각했던 대학원 문화, 사이언스를 하는 문화들을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이 과정을 좀 더 에너지를 가지고 즐기고 싶다. 아직 내가 할 수 있을 힘이 있고, 내가 그리는 그 이상을 지켜나갈 수 있는 꿈이 아직 나에게 머무르고 있을 때 지금.....
2023. 03. 27 일요일
오랜만에 실험실에 들르지 않고, 집에서 연구비 작업하고 영화도 한편보고 했던 하루였다. 내가 좋아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검색을 했더니, 한국영화 중에 동명의 작년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가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영화 내내 흘러나오던 음악들이 참 좋았다. 그 중 이문세의 "알수없는 인생"이라는 음악이 참 와 닫는다. "알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
눈부신 그 시절 나의 지난날이 그리워요/ 오늘도 그저 그런 날이네요
하루가 왜 이리도 빠르죠/ 나 가끔은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무척 어색하죠
정말 몰라보게 변했네요/ 한때는 달콤한 꿈을꿨죠/ 가슴도 설레였죠
괜시리 하얀 밤을 지새곤 했죠/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았죠
난 다시 누군가를 사랑 할테죠/ 알수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죠
언젠가 내 사랑을 찾겠죠/ 언젠가 내 인생도 웃겠죠/ 그렇게 기대하며 살겠죠
그런대로 괜찮아요/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았죠/ 난 다시 누군가를 사랑 할테죠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죠
Human Lung Organoids
(credited by Ga-Eul Bang)
2023. 03. 15 수요일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간다.
첫 실험실을 open하고 작년 9월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볼때면 대견하기도 하고, 제대로된 실험환경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는 내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주아주 느리지만 그래도 마우스들이 들어오고 있고, 내가 낑낑대던 intratracheal injection도 이젠 아주 재빠르게 surgery를 한다. 나보다도 이제 더 마우스를 잘 다루고, 조금씩 논문들도 읽어가고 질문들을 하는 모습들을 볼때면 제대로된 question과 idea를 같이 얘기해 봐야 겠다는 책임감도 조급함도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human lung organoid도 하나씩 set up이 되어간다. 이렇게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는 미래의 과학자이자 동료를 만나게 되어서 감회가 새롭다.
2023. 03. 14 화요일
어제 어색하게도 아버지의 첫 기일 제사를 지냈다. 작년 이날 아버지가 먼 여행을 떠나셨다. 급히 영국에서 돌아왔지만 결국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를 떠나 보냈던 기억이 난다. 실험을 하다가 급히 전화를 받고, 당일 오후 비행기를 끊어서 히드로 공항으로 향하던 그 멍하던 순간과 긴 비행 시간 동안 아무생각이 나지 않아 매 시간 공책에 써 내려갔던 무의식적 글들, 그리고 꾸역꾸역 기내식을 먹었었다. 그냥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어서.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을 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시며 화장장 예약이 되지 않아서 피치 못하게 5일장을 했던 기억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마주했던 하얗던 아버지의 모습과 화장을 끝내고 내 품에 건내 졌던 그 따스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국 University of Oxford 에서 PI offer를 받았던 기쁨도 잠시, 아프신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서 한국으로 급히 오기로 했었는데, 그렇게 아버지는 허망하게 떠나셨었다. 남겨진 어머니와 가족들을 곁에서 그래도 자주 보기로 결심하고 광주로 그렇게 내 둥지를 텄다. 처음에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기 싫어서 엄마에게 가족들에게 투정부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렇게도 내 고국에 오기 싫게 했었던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국의 대학원 문화와 교수들의 문화들, 사이언스 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싫었던 것 같다. 영국에 처음 가서는 한국에 돌아 오고 싶었지만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며 난 그리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영국에 이방인으로 살더라도 그냥 조용히 가족과 연구만 생각하고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에 대학원 가서 힘들다고 투덜투덜 할때 항상 아버지가 그러셨다.
"내가 대학원 가라고 했냐? 니가 간다고 안했냐? 왜 이제와서 나보고 그러냐?"
"그래도 힘들땐 부산 집에 와서 쉬었다 가라. 여기는 언제나 니가 힘들때 올 수 있는 베이스 캠프니깐"
요즘 하늘을 볼때면 가끔 물어본다.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편안한지? 그리고, 아들인 나는 잘하고 있는건지? 보고 싶네요. 아빠. 좀 투덜투덜 대고 싶다. 하염없이..
아빠 사랑합니다. 보고 싶네요 요즘따라 유독.....
이선민 박사네 집에서 한국 포닥들 모여서 밤새 놀았던 하루...
2023. 03. 03 금요일
벌써 2023년 3월 새로운 학기가 개강을 했다. 오늘 새해 첫 학부 세포생물학 강의가 끝나고 너무 날씨가 따뜻해 잠깐 벤치에 앉아 보았다. 벌써 한국에 들어온지도 9개월이 넘어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히도 시간은 남 신경쓰지 않고 자기 갈길을 가는 듯.
2021학번 대학 3학년들과의 어색한 (?) 만남을 하고 돌아보니, 나도 어느덧 꽤나 나이가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늦게까지 실험실,오피스에 머무르면 체력적으로도 힘들걸 보니 맞는 것 같네. 괜히 늦은 나이게 PI를 한다고 한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얼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던 그 꿈을 쫒아서 가고 있는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학생들 지도는 잘 할 수 있을지, 좋은 사이언스는 할 수 있을지, 연구비는 딸수 있을지 모든게 고민이다. 오늘 강의를 하다 DNA 발견 70주년 얘기가 나왔다. 내가 익숙히 알던 Cambridge Stem cell insitute가 있었던 Tennis Court road에 있던 옛 Cavendish lab과 Eagle pup 사진을 설명하니, 얼마전까지 있었던 Cambridge가 많이 그리워 졌다. 아마도 내가 6년 반을 보냈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기억들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과의 그 시간들이 그리워 지는 하루다.
2023. 03. 01 수요일
나도 대학원때 저러고 놀았었는데. 다들 그립다. 그 시절 나도 그립고.
뒤에 흰 티셔츠 입고 활짝 웃고 계신 우리 박사 지도 교수님이 보이네.
어느덧 나도 그런 자리에 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시절인데,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좋았던 기억 좋지 않았던 기억들 가득할텐데.....
우리 대학원 학생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생활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