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translating environmental health research into public dialogue.
[글: 최윤형 교수·보건환경융합과학부]
우리는 전공을 하나로 정의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오늘날 중요한 문제들은 그 경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경계를 전공하게 되었다.
전공은 분명함을 전제로 한다. 학과의 이름은 곧 정체성이고, 깊이는 전문성의 척도로 여겨진다. 그래서 전공이 또렷할수록 안도감도 크다. 무엇을 공부하는 사람인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든든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 건강, 기술, 정책의 문제들은 단일한 학문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지식이 겹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실마리가 드러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러 관점의 교차점에서 해답의 윤곽이 잡힌다.
보건환경융합과학부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이런 고민을 자주 듣는다. 특정 학과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 대신, 수많은 개론 과목들 사이를 오가는 얕고 넓은 배움 위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이 불안을 만든다고 말한다. 하나의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 곧 전문성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다. 그 틀에서 보면 융합학부의 교육과정은 어딘가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감각은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소속을 밝히면 종종 “네?”라는 반응을 듣는다. 학부 이름을 다시 말하면 “그게 무슨 전공인가요?”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때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게 된다.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전공이었다면 덜 복잡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설명을 이어가다 보면 깨닫는다.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만큼, 다루는 문제 역시 하나의 학문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말하는 그 ‘미완성’이라는 표현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그 ‘미완성’은 결핍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질문을 넓히는 시간은 방향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특정 학과에서 빠르게 깊이를 얻는 대신, 융합학부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늦출 수 있다. 얕고 넓게 경험한 뒤 스스로 길을 정할 수 있는 여유는 전략적 자산이다. 진로의 폭이 넓다는 것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여러 길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강점이다.
내가 연구하는 환경과 건강의 영역도 그렇다. 이 분야에는 모든 것을 아는 단일한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과학, 역학, 화학, 정책을 함께 이해해야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나는 한 우물을 깊게 판 전통적인 경로는 아니었다. 여러 경계를 넘으며 전공을 확장해 왔다. 때로는 애매했고, 어디에 속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경계 경험은 결국 내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다.
융합학문의 전문성은 한 분야의 깊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고, 경계에서 질문을 발견하는 능력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융합을 배운 사람은 나중에 어떤 길을 가더라도 자신의 전공을 설명할 수 있다. 전공을 살린다는 말은 학과의 이름이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온다.
전문가가 없다는 말은 아직 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 분야를 먼저 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완성된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자리라는 의미다. 융합학문은 정답을 익히는 영역이 아니라, 정답이 없을 때 질문을 만들어가는 영역이다. 어쩌면 대학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완성된 전문성보다, 그 질문을 버티는 근력인지도 모른다.
경계에 서 있다는 이유로 위축될 필요는 없다. 경계는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전공이 시작되는 자리다. 충분히 넓게 보고, 충분히 고민한 뒤 깊이를 선택하는 과정은 우회가 아닌 다른 방식의 준비이다. 이것이 바로, 경계가 전공이 되는 순간의 힘이다. 미래의 학문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경계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출처 : 고대신문(https://www.kunews.ac.kr)
[글: 최윤형 교수·보건환경융합과학부]
과학은 늘 늦게 도착한다. 어떤 현상이 먼저 나타나고, 사회가 이미 반응한 뒤에야 과학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답을 늦게 말하는 직업을 가졌다. 환경과 건강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이 사실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에 가깝다.
과학에서 한두 번의 관찰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하나의 연구 결과는 언제나 시작점에 불과하다.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던져지고, 다른 집단과 다른 방법을 통해 다시 검증될 때에야 설명은 조금씩 힘을 얻는다. 결과가 우연이 아닌지, 특정한 조건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축적된 증거들이 서로를 지지할 때, 설명은 비로소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정설’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의 언어는 종종 모호하게 들린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인과관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니라고 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와 같은 표현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언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서로를 설득하고 검증하기 위해 다듬어 온 과학 내부의 엄격한 대화 방식이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확신을 크게 말하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지점을 어디까지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에 있다.
문제는 이 언어가 사회로 옮겨지는 순간에 생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정확한 표현이, 사회에서는 우유부단함이나 책임 회피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충분한 근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단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왜곡에 가깝다. 그럼에도 과학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채 머물 수는 없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도, 사회에 어떤 방향성은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을 둘러싼 논의는 이 긴장을 잘 보여준다. 미세플라스틱이 공기와 물, 음식 속에 존재하고, 인체에서도 검출된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 존재가 곧바로 건강영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환경보건학에서 노출의 확인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에 가깝다. 어떤 경로로 체내에 들어오는지, 어떤 집단이 더 취약한지, 어떤 조건에서 건강영향으로 이어지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학은 이 지점에서 말을 아낀다.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어떻게 얼마나 위험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노출이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논의를 이어갈 뿐이다.
BPA 사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시간차를 드러낸다. BPA가 환경호르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는 ‘BPA-free’라는 언어로 빠르게 반응했다. 그러나 과학의 언어에서 BPA-free는 BPA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안전을 보장하는 표현은 아니다. 규제 이후, BPS, BPF 등이 그 자리를 채웠고, 이들에 대한 위해성 연구는 이미 상당 부분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아직’ 사회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않았다. 과학의 축적 속도와 사회의 인식 속도는 언제나 같지 않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과학자는 불편한 자리에 서게 된다. 일부 답을 알고 있지만, 그 답은 수정 가능하다. 그럼에도 사회는 명확한 판단을 요구한다. 과학자는 확신 없이 말해야 하는 상황과, 말하지 않으면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 불편함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과학이 사회와 만나는 방식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과학이 사회에 도착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의 간극 속에서 과학자는 늘 미완의 지식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그래서 나는 답을 늦게 말하는 직업을 가졌다. 말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식을 사회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출처 : 고대신문(https://www.kunew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