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온통 바다고 결국에 사람이 밟는 땅은 섬이라잖아
地球は一面海であり、結局、人が踏む土地は島だというじゃないか
지구는 온통 바다고 결국에 사람이 밟는 땅은 섬이라잖아
地球は一面海であり、結局、人が踏む土地は島だというじゃないか
M이 어느 날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제주 바다 위를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 떼가 있었다. 예사로운 규모는 아니어서 단체로 어딘가로 이주 하는 것 같았다. 기러기 같긴 한데, 열심히 파닥이는 점 같은 형상만으로는 분명히 파악할 순 없어 무슨 새냐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네. 멀리서부터 부지런히 날아 오르길래.」
「어디로 건너가려나.. 안 그래도 영토를 건너는 새에 대해 생각 중.」
그러자 뒤이어 따라온 말이었다.
「지구는 온통 바다고 결국에 사람이 밟는 땅은 섬이라잖아」
지난 8개월간 머릿속에 그리고 백지 위에 떠다니던 키워드들을 이리저리 꿰어보려다 포기한 내 앞에 너무도 간단히 핵심을 짚어 정리해버린 M이었다.
「저 새 눈에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야」
그러게.. 실제로 작아 보일 것이고 날개를 가진 존재의 시선에서는 날개를 가지지 못한 우리가 결핍되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원래 가지지 못한 날개여서 인간들은 딱히 아무 생각 없다는 게 또한 나의 생각인 게 실제로 하늘 보다 땅에 발붙인 존재들끼리 만으로 너무 힘드니까, 스스로가 작은 존재라고 생각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었다. 그러다 올려다 본 하늘은 또 너무 넓고 넉넉하고 동시에 질서 정연하면서 바다까지 더하면 너무 아름다운 거지. 0.5 배율 광각 사진으로 담아보려 해도, 밝기를 낮춰 분위기를 내봐도 절대 같을 수 없는, 내 눈 속에 날아와 꽂힌 물이며 땅이며 구름이며 빛이며. 새들은 그 장면을 선명하게 가로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 끝으로는 나를 받아주었던 섬과 사람과 바다와 숨 막히는 온도의 여름과 꿈 뭐 이런 것들을 써내고 돌이켜보려 애쓰면서도 삶의 대부분 시간은 바짝 붙어있지만 실은 각자 세계에 빠져있는 도시의 섬들과 부대끼며, 조금이라도 닿으면 눈을 흘기는 일상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거지같은 부대낌 끝에는 출근 카드를 찍고 또 원하지 않는 접촉을 견뎌야 한다는 게 끔찍하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며. 그래서 나는 결국 도망가려고 계속 꿈을 꾸나 검열하는 동시에 그것은 아닐거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며.
이미 나는 『비탈길의 하얀 십자가』를 통해 쏟아냈다가, 주워 담았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편집했다가 수정했다가 그래서 아주 처음의 느낌과 달라진 정제된 장면들을 또 복기하며 냉정하게 마주한 뒤라 정작 하얀 십자가가 달린 건물에 놓을 것들에 대해 어떤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일단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듯 아직 놓지 않은 물질을 펼쳐보고 난 후에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M과의 짤막한 대화 속 나를 관통한 문장으로 그리고 그에 답하듯 줄줄이 달리는 혼잣말을 써내려가는 것으로 포문을 여는 수밖에 없다. 늘 전시라는 핑계를 들어 허공에 대고 하는 혼잣말에 때로 누군가 답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왔듯이. 실제로 그녀는 섬과 바다 새와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서 실제로 ‘사는’ 사람이다. 시간을 빨리 떠내려 보내고 싶은 내가 과거의 장면을 길어 올리는 역설을 반복하는 것에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땅을 가진 섬과 같은 사람이 섬에 대해 그리고 섬과 섬 사이를 건너는 일에 대해 궁금해 하고 벅찬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결국 그것에 대해 각자 다른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거나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실은 모두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안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뭘 펼쳐내고 싶은지 애써 설명해보고자 했던 책자를 미리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책머리 내용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하고, 이제 그만 시작을 열어야겠다.
단지 나는 분명히 내가 본 것과 막연한 환상 속의 이미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고독이자 공동체, 현실에 딛고 있는 땅과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을 건너는 것, 깨어있는 것도 자는 것도 아닌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의 중간을 되짚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것뿐이다. [...] 나도 모르는 새 웅얼거리는 잠꼬대처럼 이쪽인지, 저쪽인지 모를 얘기들을 엮은 섬의 언어라고 생각해주길 작게나마 바란다.
글 변 혜 은
Mがある日インスタグラムのストーリーに投稿したのは、済州の海の上を飛んでいく名も知らぬ鳥の群れだった。
尋常ではない規模で、一団となってどこかへ移動しているように見えた。雁のようにも思えたが、せわしなく羽ばたく小さな点のような姿だけでは、
はっきりとはわからなかったので、何の鳥なのか尋ねた。
「私もわからない。遠くから一生懸命飛んで来たから。」
「どこへ渡っていくんだろう…。ちょうど領土を越える鳥のことを考えていたところだった。」
すると、Mは続いてこう言った、
「地球は一面海であり、結局、人が踏む土地は島だというじゃないか」
この8か月間、頭の中に、そして白紙の上を漂っていたキーワードたちを、あれこれと繋ぎ合わせようとしては諦めていた私の前で、
Mはあまりにも簡単に核心を突いて整理してしまった。
「あの鳥の目には、私たちはどれほど小さな存在だろう」
そうだね…。実際、小さく見えるだろうし、翼を持つ者の視点からは、翼を持たない私たちが欠乏しているように映るかもしれない。だが、もともと持てなかった翼なのだから、人間は特に何も思わないのだろう。それよりも、地上に足をつけた存在同士で生きることのほうがよほど大変なことだから、自分が小さい存在だとは思わずに生きているはずだ。そして、ふと見上げた空はあまりにも広く、豊かで、同時に秩序正しく、それに海まで加わると、ただただ美しいのだ。0.5倍率の広角カメラで捉えようとしても、明るさを下げて雰囲気を出そうとしても、決して同じにはならない。私の目に飛び込んでくる水、大地、雲、光。鳥たちは、その光景を鮮やかに横切っていくのだった。
しかし、指先では私を受け入れてくれた島、人々、海、息が詰まるような夏の気温、夢、このようなものを書き出して振り返ろうとしながらも人生のほとんどの時間はそばにあるが、実はそれぞれの世界に溺れている都市の島々とぶつかり合い、ほんの少しでも触れれば涙が溢れるような日常を送っていた。そして、この忌々しいぶつかり合いの果てには、出勤カードを押し、また望まぬ接触に耐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恐ろしいと絶えず繰り返す。だから私は、結局逃げようと夢を見続けるのかと検閲すると同時に、それは違うのだと自らを弁護する。
私はすでに『坂道の白い十字架』を通して、言葉をこぼしては拾い集め、ゴミ箱に捨て、編集し、修正し、そうして最初の感覚とは異なる洗練されたシーンを再び思い返しながら、冷静に向き合っていた。だからこそ、白い十字架のある建物に何を置き、どのような親切な説明を添えればよいのか悩んでいた。そしてやはり実際に行ってみなければならないと決心したように、まだ手放していないものを広げてみて初めて可能になる部分だと判断した。だから、Mとの短い会話の中で私を貫いた言葉と、それに応じるように続いた独り言を書き綴ることで、新たな幕を開けるしかない。これまでも、「展示」という言い訳を使い、虚空に向かって独り言を呟き、時には誰かが応えてくれることで、ここまでやってきたように。
実際、彼女は、島と海、鳥との出会いと別れの間で「生きている」人なのだ。時間を早く流し去りたいと願う私は、過去の光景を掬い上げるという矛盾を繰り返しながら、それぞれが許容できる範囲の土地を持った「島」のような人が、島について、そして島と島の間を渡ることについて考え、胸がいっぱいになるのは当然の理屈だと感じた。結局、それについて、それぞれが異なる時間をかけて考えたり、考えなかったりするだけで、実は皆、同じように考えているのだと、そう言われているようで少し安心した。
それでもなお、だからこそ、私は何を見せたいのかを、なんとか説明してみようとしていた冊子をあらかじめ見ることのできない人たちのために、本の冒頭の一部を引用することで、この文章を締めくくり、今こそ始まりを開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ただ私は、自分がこの目ではっきり見たものと、漠然としたファンタジーの中のイメージ、
話しができることと話す資格のないこと、孤独でもある共同体、現実に踏みしめている地とたどり着けない空を渡る、
起きてもいない、だからといって寝ているわけでもない、あらゆる中間に触れながら、今一度確認したかっただけだ。
[…] 少なくとも島として、何も考えずにつぶやいた寝言のように、
どっちつかずの話を綴った島の言葉として受け止めてくれれば、少しでも幸いである。
文・ピョンヘウ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