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Nothing lasts forever...but》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벅찬 감동이 이내 곧바로 지나가버린다는 점에서 상실감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불가역에 대한 수용, 그리고 그에 대한 작은 저항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마련하기, 남기기, 독백을 멈추기’의 형태를 갖춘 ‘자리’에 대한 작업으로 이루어져있다.


변혜은은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 몸의 근육을 사용하며 손을 댈 때마다 면면이 쪼개지는 체감의 농도가 짙은 조각을 하고 있다.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물이 결정된다는 인식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서도 의식은 현재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한 채 과거의 장면에 아직 머물러있다. 이 괴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맞이함과 지나감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무엇이든 결정할 수 없다는 판단은 결국 ‘결정되지 않은 무엇’을 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준비하는 상태, 기다리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안심해보고자 했다.


<자리(ザリ)/An empty setting>는 작은 나무 블록을 쌓아 합해진 ‘바닥에 붙은’ 조각이다. 울창한 숲을  훑듯 굽이길을 올라오면 산 속에 자리한 스튜디오의 전경이 있다. 지금까지의 생활에서 깨달은 것은, 이 풍경이 배경이자 전부라는 것이다. 여기저기 이동해오며 모든 느낀 것들도 결국 이곳으로의 복귀로 수렴되며 불과 얼마 전까지 느낀 황홀함이나 쾌감은 이미 종료된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오로지 지금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나뭇잎의 실루엣과 태양, 달려드는 벌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무블록만이 내게 허락된 실재처럼 여겨진다. 각 블록은 삼나무의 강렬한 직선, 혹은 섬과 산의 능선, 때론 스튜디오의 구성원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물질과 매개체를 생각하며 조각하였다. 이들의 합은 곧 내가 있을 자리를 가늠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어떤 공석을 마련하는 기틀의 조각, 무언가 올라설 수 있는 반석으로서 ‘준비하는 조각’이 된다.


<열 번의 응답>은 산 중 꼭대기(yamanaka kami)에서 보낸 신호에 대한 누군가의 응답을 기록한 것이다. 보통 지금까지 작품에 대한 응답은 전시장에서의 조우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미가 있을지, 세상에 나올지 모르는 요청으로부터의 만남은 결과물을 전제한 만남이 아닌 불확실하다는 느낌을 함께 짊어진 창작 과정에의 타인의 개입으로서 응답을 받은 일이다. 또한 수신인 스스로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변혜은은 그간 작업을 구성하던 과도한 독백을 멈출 수 있었다. 20시간여 축적된 여섯 수신인과의 화상대화는 잘게 쪼개져 하소연이 되거나 격언처럼 남아 영상과 텍스트로 구성된다. 더불어 바깥에서 산으로 보내는 시선에 집중하고 현재 작가의 상황에 대한 질문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창작의 고립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을 통해 시간을 견디는 공동의 실천이라고나 할까.


<파편의 방>은 변혜은이 살고 있는 방을 공적인 영역으로 전환한 작업이다. 레지던시 룸은 평소 스튜디오 멤버들이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누군가 입주하면 사적인 장소가 된다. 작가는 이 방에서 혼자 고민을 거듭했지만 과연 그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는지 자문한다. 사실 작업과는 상관없을지도 모를 자질구레한 메모를 굳이 보러 방으로 안내하는데, 초대된 자의 환대와 더불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작가의 흔적과 휘발되지 않게끔 겨우 묶어둔 생각을 마주할 수 있다. <파편의 방>을 잠시 응시하는 것 그리고 방에 머무르는 것은 작가의 체험에 참예하는 일일 것이다.


무언가 있던 자리야 떠나면 그만,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때문에 원래 없었던 것처럼 증발하거나 스스로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빈 공간을 마련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입을 벌어지게 할 만큼 압도적이고 권위적인 조각상 앞에 섰을 때 그 대단함을 받치고 있는, 확실히 사람 손에 의해 거칠게 깎아내려진 나무의 면면을 응시하며 눈을 돌릴 수 없던 경험으로부터 주인공은 아니지만 일정 면적 이상을 점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터질 듯한 감각도 반드시 끝나 버릴 것을 인정하는 와중에도 사실 무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불확실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받아들이되 무언가가 가능한 자리를 남겨두기. 그리하여 ‘영원한 건 없다’는 세상의 진리로 여겨지는 말에, 조심스레 ‘없는 건 없다’는 말을 덧붙여 본다. but ______


글   변 혜 은

번역  채 수 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