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750년 8월 18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작은 마을 레그나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지역 부자 상인이었고 라틴어를 배우는 학교를 다녔으며 형인 프란체스코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등을 배웠다. 프란체스코는 바이올린을 매우 잘 켜서 레그나고의 성당 축제에서 자주 연주했다. 한번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않고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러 이웃마을로 갔다가 늦게 돌아와서 매를 맞고 일주일간 방에 물과 빵만 먹는 벌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말라고 했으나 슈가를 너무 좋아하는 이 어린 안토니오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일 또한 멈출 수가 없었고 형으로부터 몰래 챔발로와 바이얼린을 배웠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세는 기울어서 이탈리아 여러 곳을 옮겨살았어도 음악 일에는 열중했는데 16세 때 우연히 비엔나 궁정악장 가스만을 만나게 되고 비엔나 궁정으로 가게된다. 24세에 궁정작곡가 호칭을 받고 38세에는 최고자리인 궁정악장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음악계에서 최고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든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은 물론이고 제자 양성에도 힘쓴 음악 교육자였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후멜, 마이어베어등의 저명한 음악가들과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 제자들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후배 무명 음악가들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알던 살리에리는 무료로 교습을 해줬다고 한다. 물론 유복한 음악가가 내는 돈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고 한다.
살리에리는 죽기 1년 전까지 궁정악장 자리를 지켰다. 이런 성공이 바탕이 되어 위에서 언급되었듯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냈으며, 생활이 힘든 음악인들을 지원하는 등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실직한 음악가나 사망한 음악가의 유족을 위해 상조회를 조직하였고, 자선 콘서트를 매년 개최하는 일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오페라와 종교음악이 대다수였고 기악곡은 상대적으로 적은편이었으나 당시 비엔나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보다 살리에리의 오페라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피터 쉐퍼는 1830년에 푸쉬킨이 쓴 짧은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그리고 살리에리가 말년에 치매증상이 와서 정신병원에 입원당시에 떠돌던 항간의 소문인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는 것에 모티브를 얻어 <아마데우스>1981 를 만들어 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로마제국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당시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 감독이었다.
3살 때 누나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피아노 연주법을 터득한 말 그대로 천재이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어린 아들의 재주를 보았고,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뚜렷이 빛을 발하게 되면서 작곡을 그만두었고 볼프강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능력은 빠르게 발달하여, 다섯살 때 이미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믿지 못하여 일부러 그의 집에 찾아와서 연주실력을 시험해 보았다. 사람들은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아들의 곡을 써주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사람들에게 뛰어난 작곡 실력과 재능을 보였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모차르트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후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전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가진다.
여행을 다니면서 모차르트는 많은 음악가들과 만났는데, 그중에서 1764년에서 1765년 사이에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바흐로부터 처음으로 교향곡을 작곡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러한 토대로 모차르트는 사후까지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남기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또한 모차르트는 비엔나에서 생활하던 1784년에 베토벤과도 만났다. 그는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온 베토벤을 반갑게 맞이하였는데, 이때 베토벤의 나이는 불과 14세였다.
모차르트의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서는 추측이 무성하다. 기록에는’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현대 의학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인에 대한 학설 중에는 선모충병, 알콜중독, 류머티스열, 식중독등이 있고 소문에는 매독, 프리메이슨 독살설 등이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 오전 0시 55분경에 죽었다. 아내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작품 <레퀴엠>을 그의 제자인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에게 의뢰하여 난고 끝에 완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