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Korean contexts, L2 literacy skills (i.e., reading and writing abilities in English) are important skills that Korean learners have to learn during the period of formal English education at schools. Despite the fact that these skills are critical for them to survive in a multi-literate environment, it has been rarely examined systematically and scientifically in terms of what the skills are, how learners acquire the skills and what would be an appropriate way to teach and assess the skills. Furthermore, we don't clearly understand what understanding (or comprehension) means when we read a text either in L1 or L2. Although discourse comprehension is one of the most fundamental human behaviors, understanding on how people comprehend written texts seems to be still a challenging question that needs to be explored more systematically. With this overarching goal in mind, the lab is more interested in understanding L2 literacy skill acquisition, development, pedagogy and assessment.
리터러시와 언어를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말과 글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즉, 말과 글은 다르다. 다른 이유는 너무도 많다. 일단 말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크게 신체적 장애가 없으면 누구나 배운다. 촘스키의 생득적 언어 이론을 빌리면, 인간이면 누구나 말을 한다. 말은 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누구나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90% 정도가 문맹이었다. 아직도 글을 모르는 인구가 전세계에 상당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 즉, 언어는 본능적인 것이고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배운다. 그러나 글은 의식적으로 배워야 한다. 한쪽이 'primary knowledge'라고 한다면, 다른 한 쪽은 'secondary knowledge'이다. 한쪽이 인류의 진화과정을 통해서 특화된 능력 (뇌에 언어와 관련한 특화된 기능이 있다)을 갖고 태어난다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인류가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겨우 5천년 정도라면, 아직 뇌에서 특화된 능력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인류는 진화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른 능력을 빌려서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고 문자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구분하지 않게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말은 하지만, 제대로 글을 읽지 못하거나 글을 소리내어 읽는다고 해도 제대로 글을 통한 소통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들이 그런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내버려두게 된다. 사회적 손실이 크다.
영어가 거의 우리의 제2언어가 되고, 누구나 영어를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많은 이들을 소위 영어 전문가로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영어교육 이론이 존재하고, 일상 생활 공간에서도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지 않은 많은 영어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과학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생산한 다양한 소위 포크 이론(folk theory)들은 현실에서 많은 힘을 발휘하면서 영어교육을 주도하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소위 파닉스(Phonics)다. 초등영어교육이 도입되면서 모 영어기업은 파닉스를 통해서 영어교육 시장을 주도하기도 했다. 아직도 파닉스는 마치 모든 초등학교 단계의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육과정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나 과연 파닉스가 무엇이고, 파닉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검토하고 질문을 던진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서 잠깐 파닉스에 대해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한 마디로 파닉스는 우리나라에 개발된 영어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파닉스는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영어라는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개발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유치원 단계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이 엉뚱하게 한국에 들어와서 주요한 초등단계의 교육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초등학교 학생과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이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직시하지 못한다.
파닉스는 문자를 보고 소리를 연결시키는 훈련 프로그램이다. 즉, 문자의 조합을 통해서 영어 소리 정보를 끌어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의 a라는 철자는 영어 발음 [a]소리가 난다거나, 영어의 철자조합인 oo는 [u]소리가 난다는 등의 규칙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 규칙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서 미국의 유치원 단계나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의 아이들은 글을 소리내어 읽을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글을 읽게 된다. 가령 [The car has many books.]라는 글을 보고 파닉스 규칙을 활용해서 소리를 내서 읽을 수 있으면 [더 카 해즈 매니 북스], 그 아이는 글을 읽게 된다. 여기서 글을 읽게 된다는 의미는 단순히 글을 소래내서 읽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왜 뜻을 알게 될까? 이 아이는 정상적으로 영어를 습득한 미국 아이다. 즉, 유치원 단계나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면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지, 말은 얼마든지 유창하게 한다. 청산유수다. 한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종알대는 것이 이 시기의 아이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자신의 말을 유창하게 할 것인지 상상이 간다. 말을 듣고 그 즉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영어로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다.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거의 만 단어에 가까우며,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단어도 몇 천 단어는 된다. 글을 읽어야 하는 단계에서 문제점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글을 읽게 만드려면, 글을 보고 소리내서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이 소리를 내서 [더 카 해즈 매니 북스.]라고 소리를 내면 그 뜻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말이니 누군가 소리를 내서 그렇게 말했다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미국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러니 미국 아이들에게 파닉스를 제대로 충실히 익히면, 그건 글을 읽게 되는 소위 '마법의 지팡이(magic wand)'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영어 파닉스를 가르쳐주면 어떻게 될까? 영어 철자를 보고 발음할 수 있는 규칙을 가르쳐주는 것이 파닉스이니 그런 영어 철자의 발음 규칙을 좀 배웠거나 제대로 배운 아이라면 영어 발음을 정확하지는 않지만 소리낼 수 있는 있을 것 같다. 위의 경우처럼 [더 카 해즈 매니 북스]라고 소리를 낼 수 있을 지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어 단어의 뜻도 모르고, 그런 영어 단어가 문장으로 이뤄질 때 어떤 문법 규칙이 적용되어 위 문장의 뜻이 [그 자동차는 책을 많이 갖고 있다]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 아이는 영어 글을 보고 소리만 냈지, 무슨 뜻인지 모른다. 글을 소리내어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슨 뜻인지 글의 의미를 모르는데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리하면, 미국 아이들에게 파닉스는 글을 읽게 되는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쇠라면,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파닉스는 그저 글자를 보고 소리만 낼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단에 불과하다. 구관조가 소리를 내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면 한글을 보고 소리를 내는 것이 비교적 규칙적이기 때문에 몇 시간이면 우리글을 보고 소리내어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소리내서 읽고 글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파닉스가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거의 똑같다. 글자를 보고 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경우 보다야 낫지만, 이렇게 해서 아이가 영어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단계는 아니다.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고 즐기게 되기 까지 그 전체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그건 아래 항목에서 좀 더 다뤄보려고 한다.
캐나다에서 공부한 내 제가가 귀국해서 내게 한 말이다. 캐나다에서 두 딸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보내면 파닉스를 배우는데 대개 4-5년 정도 교육을 시키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귀국해서 혹시나 해서 영어 학원에 갔더니 파닉스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육개월이면 파닉스를 완성한다고 했단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얼마나 완성하는지 모르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캐나다나 미국의 아이들이 대개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동안 익히고 연습하고 배우는 파닉스를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도 않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떻게 육개월만에 끝냈다는 것인지.
파닉스라는 것이 비교적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영어 철자는 우리글보다 비교적 철자와 발음의 관계가 투명하지 않다. 즉, 그 관계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가령 영어의 'car'와 'cat'을 비교하면 세 개의 글자로 구성된 비교적 유사한 단어이지만, 모음 'a'를 보면, car에서는 [아] 소리로 발음하지만, cat의 경우는 [애]로 발음한다. 이렇듯 영어의 철자를 제대로 발음하려면 규칙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예외도 너무 많아서 아직 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쉽게 익히기 어렵다. 그러니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4-5년은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우리 아이들의 경우에는 배웠다고 일상에서 영어라는 글을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익히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4-5년이 아니라, 적어도 6-7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래 걸리니 아마도 학원에서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말하면, 아무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슬쩍 6개월이면 뭘 완성하고 다시 육개월이면 뭘 완성하고 그렇게 발전한다고 희망을 주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 중학교나 고등학교 학생들을 조사해보면, 아직도 영어 철자의 음운 규칙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다. 그들이 적어도 6년에서 7년 이상 영어를 학교에서 배웠지만, 철자와 발음의 대응관계에 아직도 무지하거나 민감하지 못하다.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철자와 발음의 관계에 대해서 아직도 무지하다.
하지만, 학교나 유치원 또는 학원에서 이 파닉스가 인기를 끌거나 학부모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대개는 눈속임이다. 자녀를 학원에 보냈는데 영어를 얼마나 하는지 뭘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다른 영어 능력은 그렇게 빨리 늘지도 않는다. 자신의 모국어도 아닌데 빠르게 성장할 리가 없다. 그러나 파닉스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글을 보고 조금은 소리내서 읽는 흉내를 낸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보기에 마치 글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무슨 말인지 뜻도 모르면서 소리를 내서 읽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엄마들은 아이가 영어라는 글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이런 착각에 많은 학부모들이 매몰되고, 학원들은 이런 상술을 이용한다.
영어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제2언어 학습자에게 이 과제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무엇이 영어라는 글을 읽는데 부담이 될까? 이를 인지적 모델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읽고 이해한다는 전체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가지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읽고 이해한다는 전체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특히 제2언어 학습자에게 영어라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요구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문자를 알아야 한다. a, b, c, d ....가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2. 단어를 알아야 한다. school, desert, nation, bicycle 등의 단어들을 보면 이런 단어를 보고 뜻을 알아야 한다.
3. 문장의 구조, 형식을 알아야 한다. 'The cat was bitten by the dog.' 'The dog was bitten by the cat.' 이라는 문장을 봤을 때 그 두 문장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 뜻이 뭔지 물어봤을 때 정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4. 문장과 문장의 연결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The man chased the cat. But he couldn't find her while he searched his neighborhood for more than 2 hours.' 이런 글에서 he=the man이고 her=the dog이고 his=the man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 두 개의 문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통일된 일관된 의미를 갖는다.
5. 이것들은 글을 읽는 데 기본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능숙해야 한다 (automaticity). 빨라야 한다. 아니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너무 많은 신경을 쓰면 안된다. 읽고 이해하려면 다른 그 이상의 것들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너무 신경을 쓰면 안된다는 의미는 대충하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너무 자동화되어 너무 빨리 일어나서 자신이 실제 그걸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정신 집중이 어느 한쪽에 집중되면 다른 것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너무 단어의 뜻을 파악하는 데에만 집중하거나 문장을 분석하고 주어 동사나 시제를 구분하는 것 등의 문법적 분석에 집중하게 되면 글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 초보운전자가 너무 운전을 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정면만 주시하다가 옆이나 뒤에서 차량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움직이는지, 운전자의 옆에 앉은 동승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느 한쪽에 정신을 집중하면 할 수록 다른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능숙해지는 것이다. 개개의 개별 정보를 빨리 능숙하게 거의 의식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으면, 전체적으로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단어의 뜻을 파악하거나 이 단어가 어떤 뜻을 가진 단어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즉, 주어가 뭐고 목적어가 뭐고 이것이 선행사인지 관계대명사인지 이런 것들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자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면), 우리는 읽으면서 글의 내용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파악할 수 있다. 능숙한 경험 많은 운전자는 전방을 주시하고, 주변의 차량의 흐름도 파악하고, 주변 도로의 자전거나 행인이나 오토바이나 이런 모든 것들의 움직임도 파악할 뿐만 아니라, 차에 같이 동승하고 있는 이들의 행동이나 움직임 또는 대화의 내용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것은 이 운전자가 운전을 하는 과정이 매우 자동화되어 있어서 거의 모든 정보를 자동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운전자가 정보를 처리하지 않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동화되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자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모국어를 할 때 단어를 찾고, 문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남은 여유를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 능숙하지 못하면,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데 능숙하지 못하면 나머지 과정들이 어려워진다. 다음 동영상은 이런 정보 처리 과정에서 자동화된 사람의 뇌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뇌 활동의 차이를 보여 준다. 자동적으로 빠르게 능숙하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정보를 처리하는 능숙한 사람의 뇌는 오히려 조용하고 평화롭다. 여유가 흘러 넘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런 정보를 처리하고 능숙하지 못한 사람의 뇌는 개별 각각의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 뇌가 너무 바쁘다. 도대체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 개별 과제를 처리하기 위해 뇌가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 능숙한 사람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읽기도 마찬가지다.
5.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또 필요한 것이 있다. 배경 지식이다. 배경 지식은 뭔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내용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글의 내용과 관련한 일반적 지식(the world knowledge, the cultural knowledge) 또는 글의 주제(topic domain knowledge)와 관련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영어로 된 글을 쓰는 저자는 특히 우리가 읽어야 하는 영어로 된 글을 쓴 저자는 우리를(여기서 우리는 영어로 된 글을 읽어야 하는 한국인이나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다른 외국인을 지칭한다) 대상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쓰는 언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 불필요한 내용을 글에 모두 담을 이유가 없다. 한국인 저자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면서 임진왜란이나 3.1운동, 8.15 해방이나 6.25 한국전쟁 등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 사건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세하게 언급하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글을 읽는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그런 글을 읽는 독자를 귀찮게 할 수 있다. 그런 필요없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독자를 괴롭히는 일이다. "아니 내가 이런 내용을 모르나. 왜 자꾸 쓸데없는 내용을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이렇게 반복하는 거야. 이 저자 참 이상한 사람이네."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나 몽골 또는 러시아나 미국 더 나아가 다른 외국의 독자에게 이런 내용의 글을 쓴다면 이런 사건들을 단순히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개개의 사건들을 상세히 설명하거나 주석을 달지 않으면 이런 독자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어라는 글을 읽어야 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중의 부담을 안아야 한다.
이렇게 영어라는 글을 읽는 데 필요한 기술, 능력, 지식을 구분해 보면, 매우 다양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읽고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그걸 제대로 원활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보여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더불어 갖추고 있어야 하는 배경 지식도 많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잘 갖춰졌을 때 영어라는 글을 읽는 전체적인 행위는 쉽고 자연스럽다.
이미지 1: 컵쌓기 챔피언의 뇌와 초보자의 뇌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