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것
오늘을 사는 것
[문화기행② 도서]
제럴드 싯처, <하나님의 뜻> 성서유니온(2020)
우리는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또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 질문은 신앙의 자세이자 동시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혹시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아닐까? 내 선택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면 어쩌지 하는 같은 근심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의 저자,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는 위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사뭇 다른 접근을 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마치 찾아야 할 정답이나 숨겨진 비밀로 생각하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 준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이나 결정의 문제'라기 보다, 그는 '삶의 방식(a way of life)'으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어디로 가야 할까?” 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신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로 인식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보통은 세 가지로 구분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영역이다. 둘째는 도덕적인 뜻이다. 서로 사랑하라, 공의를 행하라 같이 이미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뜻이다. 셋째는 개별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싯처는 사람들이 세 번째인 개별적인 뜻에 너무 집착하다가, 성경을 통해서 이미 주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소홀히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싯처는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로 나누는 대신, 감추어진 뜻과 계시 된 뜻, 두 가지로 단순화했다. 감추어진 뜻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며, 계시 된 뜻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계시의 말씀이다. 이 같은 단순화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는 숫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 준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 길이 맞을까?” “이 선택이 하나님의 뜻일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머뭇거리느라고, 현재의 신실한 삶을 놓치는 것을 경계한다. 하나님의 뜻은 정해진 답을 찾거나, 우리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숨겨진 비밀을 찾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결혼이나 직장 같은 선택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과거에 나도 이 같은 경험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뜻을 찾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 안전한 길, 더 성공을 보장받고 싶은 욕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선택의 정답을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선택하며 살게 하셨다. A냐 B냐의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동기에서, ‘어떤 자세로 그 길을 가느냐’이다. 선택이나 결정보다 중요한 것은 동기와 진리를 향한 열정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러나 한가지 길만 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불안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신실한 존재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은 따로 존재하는 비밀도 아니며, 완벽한 선택을 위해 현재를 등한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손쉬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저자 싯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생각을 교정하고 바른 시각을 갖도록 안내한다. 어디에 서 있든지, 진리 가운데 오늘을 신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찾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저자의 통찰에 주목하게 된다.
신의 빛
마르틴 부버, <신의 일식> 복 있는 사람 (2025)
<신의 일식(日蝕)>은 <나와 너>의 저자로 잘 알려진 유대계 종교 사상가 마르틴 부버가 신 존재를 서술한 책이다. 20세기는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절박한 시대였다. 특히 홀로코스트를 민족의 고난으로 경험한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절박한 영적 의문이었다.
일찍이 마르틴 부버는 그의 대표작 <나와 너>에서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나-너’와 ‘나-그것’의 관계로 서술했다. ‘나-너’는 인격을 인격으로 대하는 참된 관계다. 반면에 ‘나-그것’은 상대를 인격이 아닌, 비인격적인 사물로 전락시킨 상태다. <신의 일식>에서 부버는 수많은 철학자, 사상의 거장들과 씨름하면서 자신만의 언어로 “너”로 만날 신의 현존을 증언한다.
근대 사회는 신을 인격이 아닌, 개념이나 교리 체계 속에 가두면서 ‘나-너’가 아닌, ‘나-그것’으로 환원했는데, 이때 발생한 것이 바로 신의 일식(Eclipse of God) 현상이다. 이것은 태양의 일식 현상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일식은 태양은 사라지지 않지만, 어떤 순간에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태양을 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부버는 현대인이 말하는 신의 부재가 일식 현상 같다고 보았다.
인간은 본래 세계와 하나님을 “너”로 만나야 하는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관계가 점점 ‘나-그것’으로 환원했다고 진단한다. 신(하나님)조차 사유의 대상, 개념, 혹은 이론으로 환원해 버렸다. 단순하지만 이 같은 통찰은 신앙 있는 독자를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부로 돌이키게 만들며, 신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너”의 관계로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나-그것”으로 이해하는가? 말씀과 기도가 하나님과 관계에 근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식이나 의무가 되고 있는가?
이 책은 철학과 신학 사상을 담고 있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참혹한 현실을 겪으면서 던진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는 유대인의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절규에 가깝다. 부버는 그 절규 앞에서 다른 철학자처럼 하나님의 부재를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신과 우리 사이를 가리고 서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는 이 시대를 신의 죽음이 아닌, 신의 일식으로 인식한다. 그는 신이 사라졌다고 보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을 “너”라는 관계로 부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마르틴 부버는 철학자들이 신을 관념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사고 틀에 맞추려고 하는데, 신은 철학자들이 만든 틀에 갇히는 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절대자를 사랑할 때, 거기서 관념은 폐지된다. 신은 철학의 연구 대상이 아님을 깨닫고 철학자들은 자신의 틀로 신을 규정하기를 포기하고, 철학 전체가 신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이 가려진 시대를 방황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는 신의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그 빛을 마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신의 일식>은 신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어떻게 다시 신을 만날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한다.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파스칼은 병상에서 기도했다. 그는 철학자나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부르며 회심했다. 부버는 파스칼의 회심의 실체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만난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부르는 순간, 철학자의 하나님과 결별하고, 하나님의 인격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파스칼은 불의 체험을 했다.
부버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서술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관계는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하나님이 인격이 되신 것도, 인간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사랑받으시려는 이유다. 우리는 관념을 사랑할 수 없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 책은 신이 가려진 시대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을 볼 수 있도록 비춰 준다.
[정리 / 편집 최선 ]
[글쓴이 이광 목사]
2009년 온누리 교회에 출석하면서 BEE를 시작한 후, 2015년 사역자 임명을 받았고 2026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현재 카타르 기도테이블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다. 가족은 박소현 권사와 출가한 큰딸과 막내딸이 있다. 한국경제신문에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