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OBA 후기]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성도가 얼마나 있을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괴리를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성도가 얼마나 있을까? 완벽한 가이드북이자 해답지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찬찬히 뜯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얼마나 있을까? 애초에 성경이 삶의 해답지이자 가이드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성도가 얼마나 될까? 나는 5살부터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녔지만 이런 생각들은 BEE 세미나를 들으면서 하게 되었다.
머리에 있던 뇌종양이 척수신경 말단으로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동안 가지 않던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찾았다. 지식적으로 하나님, 복음, 예수, 구원을 알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직면한 현실에 아무런 힘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내 삶에서 하나님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지금껏 내가 믿어왔던 하나님은 너무 막연한 관념 속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너무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안 믿어졌다. 하나님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없다’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열심히 야무지게, 나름 괜찮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지난 내 삶은 너무나 죄로 가득 차서 도저히 하나님께 도와달라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채로 지옥에 온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 ‘사람은 왜 태어나는 걸까? 왜 사는 걸까? 왜 하나님은 굳이 자유의지를 주셨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때로는 철학책도 읽어봤고 인문학도 흥미롭게 봤었다. 그럴싸했지만 ‘내 삶의 목적이 뭔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쌓아 가는 것과 재미있는 취미생활들로 그 갈증을 채웠던 것 같다. 이제는 나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결국 진리이신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 섭리를 배웠던 로마서를 지나서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리스도인의 삶’ 세미나를 통해서 배웠다. 경건, 거룩, 믿음, 의(義)…. 분명히 아는 단어이고 한글인데 구체적으로 이게 무엇인지 몰라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내가 머리에 방사선을 맞아서 난독증이 생긴 건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단어로는 알겠는데 내가 한 번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무언가를 글로만 봐서 도무지 그 실체는 뭔지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삶’ 세미나는 성경책 안에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실체를 내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연약한 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어설프게 끼워 맞추고 세뇌를 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대한 권리증서가 믿음이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수단(?)이 믿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고 나서 성경을 보니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는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렇게 직설적이고 간단명료하게 적어두었는데 왜 이걸 몰랐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율법적으로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분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와 목적을 앎으로 세계관이 바뀌고, 그로 인해 가치체계가 바뀌고, 그러자 삶에 대한 인식과 목적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나의 선한 행위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내면으로부터 변화되어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고 열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그래서 치료법이 없는 나의 육체의 질병도, 잘못된 부동산 투자로 탈탈 털린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런 일들은 예수님 손잡고 하나님을 향해가는 길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일 뿐이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은 그런 하찮은(?) 것들이 아니다. 현실적인 일들에 100%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나는 더 중요하고 더 큰 것에 마음이 빼앗겼다. 하나님이 나를 모태에서부터 택정하여 계획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기이한 열망의 불꽃이 생겼다. 그 불꽃은 내 삶에 기쁨과 활력을 준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을 용납할 수 있도록, 인내를 모르던 내가 인내하도록 이끈다. 내 마음에 터를 닦으신 하나님, 그 터에 장작을 쌓으신 예수님, 그리고 불씨를 던지신 성령님 완전한 삼위일체 방화범이시다. 불을 지르셨으니 신나게 그 불을 키워보고 싶다. 일등 공범이 되고 싶다. 아주 그냥 활활 타서 여기저기 그 불이 옮겨붙으면 참 좋겠다. 인도자님이 나중에 천국 가면 바울이랑 할 이야기를 준비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다윗에게 춤을 배워서 같이 신나게 추고 싶다.
[글쓴이 정솔 성도]
간호사로 일하다가 뇌종양이 재발하면서 최악의 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이다.
[정리 김옥숙 편집 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