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빚어낸 울림, 영화 '신의 악단'
진심이 빚어낸 울림, 영화 '신의 악단'
[문화기행①] 영화 '신의 악단'
2025년 한 해의 마지막날 개봉한 영화 <신의악단>
2025년 한 해의 마지막 날 개봉한 영화 “신의 악단”.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상업 영화였지만, 올해 3월 말 현재 누적 관객 수 144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을 이끈 주체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독교 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영화를 연출한 김형엽 감독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기독교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폭력성이 넘쳐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사람을 살리는 메시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계획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 <신의 악단>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영화로만 기획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영화에 출연한 배우 대다수가 비기독교인이며, 그중에는 불교 신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힌 북한이 국제사회의 2억 달러 지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교회를 세우고 부흥회를 계획하며 시작된다. 이를 위해 기독교 신자를 찾아내고 탄압하는 역할을 맡았던 보위부가 가짜 찬양단을 만드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영화는 변방에서 체제 선전을 위해 공사 현장에 동원되던 ‘승리악단’을 차출하여 부흥회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당의 명령이었기에 이 영화의 주연이기도 한 보위부 소좌 박교순은 혁명적 과업 달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악단의 일원이 되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오직 “진짜 같은 가짜”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부흥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했기에 실제 기독교인처럼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는 가운데 “가짜가 진짜”로 변화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가짜로 계획했던 찬양단은 결국 부흥회 무대에는 서지 못하게 된다. 부흥회를 마치면 찬양단은 기존의 악단들이 불법 집회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모두 처형당할 운명이었지만, 찬양단의 싱어 역할을 맡았던 보위부 박교순 소좌와 김태성 대위의 결단과 희생으로 부흥회 당일 찬양단을 태운 트럭은 부흥회 장소인 교회가 아니라 국경과 맞닿은 압록강으로 향하게 된다. 트럭에 타고 있던 찬양단은 부흥회를 마치면 모두 처형된다는 소식에 두려움 가운데 떨게 되지만 트럭이 멈춰 선 곳은 교회가 아니었다. ‘신의 악단’이 결국 죽음의 땅을 벗어나 자유의 땅을 향하여 눈 덮인 산을 함께 오르는 모습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아마도 엔딩 크레딧일 것이다. 순교자들과 신의 악단 멤버들과 성도들이 함께 예배당에서 "Way Maker" 찬양을 하는 장면이다. “주 여기 운행하시네,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주 여기 역사하시네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새 길을 만드시는 분 큰 기적을 행하시는 분 그는 우리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분 어둠 속을 밝히시는 빛 그는 우리 하나님.” 이 장면에서 많은 성도들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가짜로 시작한 찬양 연습을 통하여 변화되어 가는 인간의 내면 모습을 코믹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눈여겨볼 장면은 성경에서 기독교인을 탄압했던 사울이 주님을 만나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던 것처럼, 주체사상이 뿌리박힌 보위부 소좌 박교순과 대위 김태성의 심경에 변화가 시작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장면들이다. 비록 그들은 당의 과업이었기에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였고 진짜 기독교인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찬양 또한 전투적으로 불러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당을 위한 전투적인 선전가가 될 수 없었고, 결국 그들의 감정 깊은 곳을 흔들어 놓는 찬양이 되어갔다. 박교순 소좌가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찬양을 부르는 장면 속에서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음정, 호흡에는 내적으로 요동치는 감정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장면은 이후 전개될 상황을 암시하는 중요한 복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감독은 이 장면을 영화의 가장 큰 명장면으로 꼽았다. 대위 김태성 역시 ‘광야를 지나며’ 찬양을 부를 때 박교순과 같은 심경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게 된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찬양(‘은혜’, ‘광야를 지나며’, ‘주 예수 나의 산소망’,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Way Maker’)들은 <신의 악단>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메시지와 장면 전환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그들이 함께 부르는 찬양은 예배의 시작인 동시에 예배 그 자체였다. 승리악단의 단원 다수가 지하 교회의 기독교인이었고 탈북을 계획하고 있었던 이들이었기에, 북한 땅에서 공개적으로 찬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 “은혜” 찬양이 여러 버전으로 울려 퍼진다.
<신의 악단>은 찬양을 통해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찬양 가운데 우리의 존재 의식과 삶의 방향성, 목적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각자 처한 상황과 환경은 다르지만, 찬양받으시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이시기에 예배당에서나 꽁꽁 얼어붙은 눈 덮인 광야에서나 올려드리는 모든 찬양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된다. <신의 악단>은 결코 외화벌이를 위한 가짜 악단이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은 소리 내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통성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현실의 벽 앞에 서 있다. 마음껏 존귀한 그 이름을 찬양할 수 없는 억압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소망을 붙들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악단이 되어 찬양으로 영광 올려 드리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신의 악단>이 상업 영화든 기독교 영화든 어떻게 분류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는 있지만, 기독교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넘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은 많다.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감동, 그리고 시대적인 상황과 분단의 아픔, 종교 탄압과 비극적인 상황, 그리고 자유의 갈망 등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시대와 체제가 달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존재하며,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는 진리와 함께 해석될 때 비로소 발견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비록 북한과 같은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사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보다는 왜곡된 신념의 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상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보다 앞설 때 그분이 예비하신 길을 보지 못하고 방향성을 잃어버려 결국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로 가게 된다.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 찬양 가사처럼 “어둠 속을 밝히시는 분”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그 길 앞에 순종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분을 영원히 찬양하는 “신의 악단”의 단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뮤지컬에 비유한다면 <신의 악단>은 1막을 내리고 2막을 준비하고 있다. 2막의 주 무대는 추운 겨울 눈 덮인 광야가 아니라, 아마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역할과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인지, 또한 어떤 마음과 결단으로 자신의 고백을 올려드리게 될 것인지 이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태어난 지 6주 만에 실명을 한 영혼의 찬양 전도자인 찬송가 작사자 패니 크로스비(1820~1915)의 이야기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녀는 한 부흥 집회에 참석하여 찬송가 141장(웬 말인가 날 위하여)을 듣고 회심하게 된다. 그날의 감동을 1850년 11월 21일 그녀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이 이 몸 바칩니다.” 바로 그것이었어요! 그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일어나 외쳤어요. “주님, 제 자신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내 영혼이 하늘의 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어요. 주님이 계시는 어느 곳에서든지 제가 해야 할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넘쳤고요. 그동안 제가 세상과 주님을 동시에 섬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저는 주님만을 위해 살 거예요. 모든 것이 새로워졌어요. 사랑하는 엄마, 저의 놀라운 소식을 듣기 원하시죠? 저는 이제 새 삶을 찾았어요. 엄마의 기도와 할머니의 기도가 응답되었어요. 당신의 사랑하는 딸, 패니 』
[글쓴이 이창선 집사]
[정리 이경주 / 편집 안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