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에서도 생명을 파종하시는 하나님
불길 속에서도 생명을 파종하시는 하나님
[25 BEE 찾사찾-제암교회]
제암교회를 방문하다.
무슨 이유였을까, 제암교회의 마당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를 반기는 빨간 하트 조형물이 눈에 거슬렸던 것은 ‘시체 타는 냄새가 밤새 바람에 실려 왔다’라는 제암리에서의 일제 만행에 대해 「독립운동사 3.1 운동사」에서 전에 읽었던 글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잿더미가 되어버린 교회와 성도들, 암울한 그 시대의 산천초목 현장을 기리는 것과는 안 어울리는 조형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본당에 들어섰다.
강신범 원로 목사님이 제암교회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셨다.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에 위치한 제암교회, 1919년 4월 3·1 운동 당시 일본군의 학살사건이 일어난 순교의 현장이다. 지금은 교회와 함께 제암리 3·1 운동 순국기념관이 세워져 있으며, 한국 교회와 국민이 함께 순국선열의 신앙과 희생을 기리고 있다.
1919년 3·1운동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외치던 민족운동이다. 전국으로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고, 경기도 화성지역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독립을 외쳤다. 그리고 이 평화로운 외침은 일본 군경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제암교회에서 잔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순사들이 마을 주민들을 교회 안으로 모이게 한 뒤, 문을 잠그고 불을 질렀다. 탈출하려는 이들을 향해 총을 쏘며 학살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피바다와 불바다의 현장이 되었다. 예수 믿다 망한 교회, 예수 믿다 망한 마을. 그러나 지금은 이런 교회와 마을을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온다.
본당에서 내려오면서 29명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을 보았다. 이름은 있지만 무명인 사람들의 이름도 보았다. 불타는 교회 안에서, 불길 속에서 기도 소리는 더욱 커지고 주님의 마음에 새겨지는 그들의 눈물이 보이는 듯하다. 그들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덕용, 안무순, 홍원식 부인 김 씨, 안경순 …….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 종환아! 유순아! 부르실 때마다 주님의 사랑의 크기만큼 커지는 예수님의 심장이 보인다. 주님의 심장과 포개지는 29명의 심장이 보인다. 불길 속에서 피와 재 사이로 예수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못 박힌 손으로 그들을 품으시며 “너희의 고통과 눈물을 내가 사랑으로 기억하리라”라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멈춰진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하트 모양 조형물의 상징은 그런 것이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날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29명의 심장을 뛰게 하는,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심장도 주님의 심장과 포개지며 새 생명으로 뛰게 하는 그런 사랑이다. 그런 생명이다. 세상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불 가운데서도, 물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故 전동례 할머니는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 남몰래 남편이 묻힌 장소를 수시로 드나들며 기도했던 분이시다. 할머니의 증언으로 29명의 매장지를 찾게 된다. 그 후 합동 묘역을 만든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체휼하시고 간섭하셔서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서 서서 그들의 멈춰진 시간 안으로 들어가 본다. 언젠가 우리는 만나리라 하나님 나라에서, 나는 제암교회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을 쨍한 가을 하늘 그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다보며 내려왔다.
이번 찿사찿는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여정이었다.
푸르고 높은 하늘과 바람 그리고 맛있는 점심과 들큰들큰한 빵과 음료들이 좋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가 함께한 순례길이라서 좋다. 융릉과 건릉의 트레킹은 마지막 여정에 누린 가을날의 호사라서 좋다. 서두르지 않으시고 끝까지 설핏설핏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시는 김천봉 집사님의 설명도 좋다. 간식을 준비하고 모든 일정에 손길을 모은 한숙영 권사님, 이승혜 권사님이 있어서 좋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모이는 자들이라서 좋다. 기도로 모이고 예배로 모이고 찾사찾으로 모이는 BEE 식구들이 있어서 좋다.
불길 속에서도 생명을 파종하시는 하나님
맹렬한 불길 속에서도
목이 타오르는 연기 속에서도
주님은 생명을 파종하신다
“주여, 살려주소서.”
그들의 울음에 마음이 찢어지시는 주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영혼들
쉬지 않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영혼들
그들과 함께 주님도 재가 되어 흩날리셨으리라
죄인인 사람들은 불로 사람들을 태우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재 위에 생명의 씨앗을 심으신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주님 품에서 다시 새 생명으로 빛난다고
29명의 순교자들의 외침이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다
[글쓴이 김진하 권사]
BEE 카타르 기도 테이블에서 선교와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글로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며,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문인이자 <한경종합개발> 대표이기도 하다.
[정리 김옥숙 / 편집 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