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 복음, 사회
로잔, 복음, 사회
[신앙에세이⑤]
제4차 로잔대회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한국교계 일각에서 로잔대회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분들이 일부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계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내재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이 공존하는 데 이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내부적인 원인을 보면 로잔 운동의 성격 자체가 복음주의와 사회참여를 함께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와 존 스토트 목사가 로잔 운동을 시작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미국은 전도(복음주의) 위주의 신앙이고 유럽, 특히 영국은 사회참여 위주의 신앙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후의 로잔 사역에도 항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 번째 대회인 1974년의 스위스 로잔에서의 대회는 복음주의적인 색채가 더 강했던 반면, 두 번째 대회(1989, 필리핀 마닐라)와 세 번째 대회(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를 거치면서 사회 참여적인 부분을 조금씩 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WCC가 사회복음을 강조하다 보니 성경의 권위를 점점 무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면서 교회가 교회답지 않아지고 점점 교세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로잔에서는 사회복음도 총체적 복음의 한 기둥이기 때문에 완전히 고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사회복음을 포용하기로 하고 마닐라 선언과 케이프타운 서약을 거치면서 그러한 부분에 대한 강조가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일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로잔 운동이 사회복음 지향적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였고, 반대로 사회참여주의자들에게는 여전히 너무 복음주의에 치우친 것으로 평가되어 양극단에서 비난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로잔대회의 외부적인 원인을 보면 한국교회 고유의 배타적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 미성숙한 분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도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분열의 정도와 양상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이것은 무신론적이고 미신적이었던 이 사회에 기독교를 정착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산통이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경쟁의식과 배타의식도 함께 작용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도 결국은 위에서 언급한 복음주의와 사회참여에 대한 논의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교계의 성숙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성경은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어서, 기본교리는 같다 하더라도 각자가 선호하는 세부 교리와 영성의 색깔에 따라 서로 완전히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타주의적으로 나만 옳고 너희는 틀리다고 하는 자세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많은 분은 주변의 권유로 적절한 상담을 받음으로써 치유받고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오히려 이러한 분들의 치유와 성숙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교계가 로잔대회를 치름으로써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성숙하고, 서로 포용하는 기류가 형성된다면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류가 어느 정도 이미 형성된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쓴이 정대서 장로]
온누리 교회에서 예배하며 사역 장로, 선교분과위원장, 선교본부 대표 장로로 섬겼으며, 횃불 트리니티 MTS 졸업 후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연약한 종으로 살고자 한다.
현재 BEE Korea 이사 겸 인도자이며, 한국 로잔 이사 겸 CFO, MIT MBA, 주) 한국지엠디 대표이사로 있다.
[정리 정주영 편집 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