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8 예수가 육체로 오셨음을 인정하라(요일4:1-6)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육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가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기에 사람들은 귀로만 들었습니다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 가운데 나타나심으로 예수를 눈으로 확인했고 예수를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육체로 왔다는 것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예수가 육체로 왔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육체로 오심을 인정치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고 믿는 자는 하늘에 속한 영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무관심하고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의 원수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었다'라는 뜻으로 육체로 오신 이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영으로 나타나셨다면 예수께 기름을 부을 수 없고 예수가 육체로 오셨기에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요 예수가 육체로 오시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주창조는 예수가 육체로 오셔서 활동하신 곳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이나 우주는 예수가 육체로 오시기 전에 준비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목적이요 준비한 일입니다 인간과 우주는 예수가 육체로 오시면 예수를 통해서 양육 받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말씀이신 예수가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땅에서 우연이나 실수로 죽은 것이 아니고 예수가 육체로 오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를 보지 못했습니다 만일 땅에서 예수의 피가 뿌려지지 않으면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피를 뿌려 주심으로 인류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이미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12:31)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오시기 전에 마귀는 자기나라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육체로 오시는 순간부터 마귀나라가 위협당하고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귀는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실수나 우연으로 예수를 죽게 하려고 접근했습니다 돌로 떡 만들어 먹어라 하며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 같이 하면서 죽이려 했습니다 사람이 돌을 먹으면 죽습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예수의 발을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떨어지면 예수는 우리와 똑같이 죽고 맙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마귀는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지 않으시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을 압니다 마귀는 인류가 예수의 대가로 구원받은 죽음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실수나 우연으로 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려 하심입니다 예수는 육신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죽으시기 위해 마귀유혹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가 육체로 임하는 순간 마귀나라는 망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예수가 육체로 온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고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이 사람들과 상관이 없는 것같이 하려고 애를 쓰는 자가 마귀입니다 예수가 육체로 온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가 가진 비밀입니다 세상비밀은 남이 모르게 하지만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믿는 비밀은 남에게 알려 주려해도 남들이 모르는 비밀입니다 세상은 예수를 사생아로 보든지 예수하신 일을 사람들이 조작해 낸 일로 봅니다 우린 예수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신앙합니다 우린 예수가 육체로 오셔서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 했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는 예수의 육체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입니다 사람의 육체에서 나오는 소리는 육체의 소리지만 예수의 육체에서 나오는 소리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착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수양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린 성령과 피의 말씀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성령과 피와 말씀으로 임하신 분이 우리의 구주 예수이심을 영원히 증거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1101 신앙의 뜻을 정한 믿음을 가지라(단1장:8-16)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을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뜻 없이 자신을 나타내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뵙는 길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인간 안에 하나님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뜻이 있어 하나님 뜻대로 행동하는 피조물이 인간이요 뜻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피조물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우리의 뜻을 정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무엇을 하며 왜 그렇게 하시는가를 알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은 만물을 창조하신 뜻과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뜻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들을 돕기로 작정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 등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 주의 뜻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불신앙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뜻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접촉점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인간을 만나 주시고 인간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시인함으로 우리가 뜻을 정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뜻을 가진 자들과 접촉하시고 말씀하시고 기도를 들어 주시고 하나님을 향한 뜻을 가진 자들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지 않고 뜻 없이 행동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자체가 뜻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뜻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발전이 없고 세상에 유혹이 올 때 타락하기 쉽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없이 오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룩한 뜻이 없이 사는 자입니다 본문에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의 왕이 먹는 진미를 먹도록 대우를 받았지만 우상의 음식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바벨론은 강대국으로 역사상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을 소유한 나라는 언제나 당시에 강대국이었는데 시리아 애굽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모두 당대 강국이었습니다 현재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소유함으로 강대국으로 군림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다니엘과 친구들을 최고 대우로 양육하려고 이스라엘의 똑똑한 소년들을 최고의 갈대아 학문으로 양육하고 바벨론 문화에 길들임으로서 소년들에게 바벨론의 신앙을 집어넣으려 했습니다 왕의 진미는 음식이 맛이 있고 영양가가 있고 훌륭하지만 이미 우상하게 받쳐진 음식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음식으로 육신을 즐거움을 얻고 유익을 얻을지는 몰라도 영혼이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육신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한이 있어도 먼저 영혼을 거룩하게 하도록 뜻을 정했는데 뜻을 정했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뜻입니다 왕이 먹도록 지정한 명령을 거절한데서 오는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영혼을 거룩하게 보전하고자 진미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독하는 자를 감동시켜서 다니엘의 요청대로 채소만 주었는데 채소만 먹어도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아름답고 윤택해지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뜻을 정할 때 영혼을 축복하시고 육체까지도 복을 주십니다 신앙은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하신 분이 아니라 누구나 우리 영혼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워서 내 영혼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내가 열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내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평생 영혼을 거룩하게 하리라'라는 뜻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요 지식이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셨기에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거룩한 뜻을 정한 신앙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상 최고의 문화로 육신을 만족해하는 것보다 먼저 자기 영혼의 거룩함을 위하여 하늘의 일을 사모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1025 예수님은 영원한 진리이시다(레14:1-9)
하나님의 뜻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불변합니다 하나님이 한번 정하신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대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진리요 진리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믿음은 진리입니다 믿음의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진리를 봄으로써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철로와 기차는 공존하듯이 진리와 신앙은 공존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철로와 같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이 운행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되 진리로 나타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신앙으로서 자신을 보이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리로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신앙과 진리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연결고리입니다 우리가 받는 속죄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순식간에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병도 고치십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의 속도는 8분이 걸리고 우주벽에서 우주벽까지는 200억 광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진리는 자연의 빛을 벗어납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시간을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주 빛에 속도가 아니라 단번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에 우리가 지은 죄를 기억할 수 있고 고의로 망각하실 수도 있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심판은 죄를 기억하는 시간을 말하는데 성경은 하나님 앞에 펼쳐진 생명록에 사람 행위가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은 생명록에 기록된 대로 심판하십니다(계20:12) 하나님이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 것이 진리입니다 우리에게는 의가 없지만 예수의 의를 하나님 앞에 내놓음으로서 하나님은 예수의 의를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누구든 의가 없는 사람은 자기의 죄밖에 드러나지 않기에 망합니다 우리 믿음은 내 의는 없는 대신에 우리 죄를 예수 앞에 내놓고 내 의를 포기하고 오직 예수의 의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의를 발견하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지만 우리에게 죄를 발견하면 우린 영원히 멸망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고 예수보혈로 우리 죄를 망각하시고 예수보혈로 우리 속에 예수의 의를 나타나게 하십니다 예수보혈은 진리입니다 예수보혈만이 하나님의 의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예수보혈만이 우리 죄를 망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 피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어진 것입니다 본문에 문둥병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두 마리의 비둘기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두 마리 비둘기 중에 한 마리는 흐르는 물가에 그릇을 올려놓고 그릇 안에서 잡으면 그릇에는 피만 남는데 피가 담긴 그릇에 살아있는 나머지 비둘기 한 마리를 발에 일곱 번 피를 찍고서 '정하다' 라고 말합니다 이때 살아있는 새를 들판에 놓아 주어 푸른 하늘에 날아가게 합니다 하늘로 날아간 새는 사람들이 또 볼 수 없게 멀리 사라지면 이제 환자가 완전히 깨끗해졌다고 인정합니다 병 낫는 것과 죄 사함 받는 것은 같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아 우리 병을 담당하셨고 예수가 육신의 피를 흘려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가 병 고친 것은 우리 육신의 죽음을 담당하는 것이고 예수가 죄를 사하신 것은 우리 영혼의 죽음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병 고침을 무시하는 것은 내 육신이 죽어도 좋다는 자학행위입니다 속죄에 대한 무관심도 사람이 영원한 죽음에 대해 무관심과 같습니다 우리에겐 영원한 죽음과 육신의 죽음 둘 다 중요합니다 예수는 우리 육신이 병으로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채찍에 맞아 주셨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죽어서 죄를 대신하여 담당해 주셨는데 예수는 한 몸으로 두 가지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보혈은 강같이 믿는 사람 속에 샘물같이 흐르고 있고 예수보혈은 우리의 속죄가 되시고 은혜가 되시고 구원이 됩니다 남은 한 마리 비둘기 발에 피를 찍어서 날려 보내듯 오늘날 사람의 있는 죄 의식을 날려 보낸 것에 예표입니다 산새를 날려 보내듯 우리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날려 보내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1018 주 예수 보혈만이 영원한 생명이다(요6:52-59)
하나님은 아들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는 육신으로 오셔서 피 흘리심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피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가 흘리신 피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증표입니다 예수보혈로 하나님의 피를 본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피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피의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시는 이유는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피 흘리게 하신 것도 예수의 피를 본 자들이 생명을 얻게 하심입니다 예수가 육체로 오심은 피를 흘리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든 예수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한 자들은 적그리스도 영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신 예수의 피를 부정하고 예수의 피의 능력을 슬퍼하거나 예수의 고난을 동정하는 자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의 죽으신 일은 우리가 동정하거나 슬퍼할 문제가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사역 중에 예수만이 하실 수 있는 최고절정의 사건입니다 예수가 피 흘리기 전에도 율법이 세상에 충만했고 선지자들이 많은 수고를 했지만 이들의 노력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의인도 많고 훌륭한 자들이 많지만 하나님은 다듬어진 인격이나 외모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예수가 피 흘리기 전에는 인간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노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고 만나려하지만 하나님은 피 없이는 인간을 만나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피 외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어떤 자격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순간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졌습니다 예수의 피는 인간이 하나님과 조화하는 길을 열었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신분이 예수의 피로 순간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피는 이적 중에 최고의 이적이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역사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건너마을로 옮겨놓았지만 모세는 백성들을 천국으로는 옮겨놓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에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지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절정도 보혈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정도 예수보혈입니다 예수의 피는 인간과 하나님의 접촉점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소망이 예수의 피입니다 하나님은 피의 창문으로 세상을 건너다 보셨고 인간도 예수의 피에 창문너머로 하늘나라를 발견했습니다 예수의 피의 창문을 무시하고는 결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교회는 예수가 흘리신 피로 사신 곳입니다 신자들은 예수의 피가 묻은 자들입니다 성도는 성전의 제물을 담은 그릇이 아니고 보배로운 예수의 피를 담은 영광스러운 그릇입니다 예수가 흘린 피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요 신자들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만든 길을 밟고 천국으로 갑니다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지만 천국 문을 열지 못했고 신자들이 원하는 천국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짐승의 피도 하늘 문을 열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의 흘린 피만이 천국을 활짝 열게 하는 하늘 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오직 예수의 피만을 찾으십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훌륭하고 유명해도 예수의 피를 보지 못한 자들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는 오직 예수의 피 묻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피로 충만한 자들을 대환영하시고 영접하십니다 살인하고 못된 행실을 가진 자라도 예수의 피를 보았다면 하나님은 괄시하지 않습니다 피 없는 믿음은 신념이요 무신론자들의 신념은 예수 믿지 않아도 신념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방종교 신앙도 신앙을 가졌다고 하나 이방종교의 신앙은 보혈 없는 무능력한 신념입니다 보혈 없는 순종은 선행이요 선행은 착한 일일뿐 선행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피 없는 영혼은 지옥 자식이요 피 없는 교리는 종교요 피 없는 설교는 예수의 소리가 아니며 피 없는 교회는 단체일뿐입니다 신앙은 예수의 피의 복종하는 생활입니다 주 예수의 보혈만을 의지하는 자 되시길 축원합니다.
20261011 회개로 예수를 체험하는 자 되라(마3:1-10)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에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를 얻게 되었고 천국을 향한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에 인간의 노력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히 구세주를 세상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요 하나님이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노력을 경험한 자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늘의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나님과 아무런 조화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모해야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게 하셨습니다 은혜 받은 자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이 생각이나 주관적 지식이 아닌 실제로 하나님자신을 경험함으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체험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은혜와 체험은 분리하는 것은 자신이 영적 무지와 성경의 무지와 신앙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1600년 동안 기록되었는데 사람이 소설을 쓰듯 상상으로 엮어낸 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체험한 자들의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간증 곧 체험의 기록으로 하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의 체험이 수만 가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증인이라 하셨는데 '증거'와 '증인'은 법적 용어입니다 우리가 예수 증인이라면 예수를 만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난 체험과 사실이 없는 자의 증거는 거짓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순교의 자리에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며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도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체험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큰 체험을 하려고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체험들이 자기를 믿는 모든 자에게도 있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는 세상에서 율법이나 선지자가 해내지 못한 일들을 이루셨는데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 악행을 포기케 하고 사람들을 거룩하게 구별케 해서 신앙을 돈독하게 하며 율법 앞에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율법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체험케 하지는 못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체험케 할 능력이 없고 만일 율법과 선지자가 하나님을 체험케 할 능력이 있었다면 예수가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게해서 나쁜 행실을 고치게 했지만 하나님을 체험케 하지는 못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회개하라'( 메타노헤테)했는데 여기 회개하라는 뜻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악을 고백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수정하라는 뜻입니다 율법아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여호와라 해서 두려움으로 생각해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분으로만 알았던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오셨는데 그분이 예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죄인이 만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율법아래서는 하나님을 감히 뵐 수 없는 분으로 알았는데 죄인을 만나주시려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마음 문을 열고 영접하면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십니다 회개는 은혜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누구든 회개 없는 은혜의 체험은 없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고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고치되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와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운 분이라는 생각을 수정하고 사랑의 주로 발견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가까이 접근하고 싶은 사모함과 주를 향한 사랑이 솟아나도록 태도를 고쳐야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알고 선지자를 알아도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회개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고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한 사실이 없다면 거짓 신자요 체험이 없는 설교는 거짓 설교요 체험이 없는 증거는 거짓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오해를 수정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1004 회개가 없는 신앙은 성공할 수 없다(눅13장:1-5)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시고 하나님은 신이시고 인간은 물질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나타내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주신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능력과 복과 여러 모양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심을 본 사람을 은혜 받은 사람이라고 하고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은혜'요 인간 편에서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과 은혜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게 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은혜가 없고 은혜가 없는 곳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 음성을 듣고 따르며 사랑할 수 있도록 나타내 주셨고 인간에게 큰 장애물이 생겼는데 바로 죄악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은 죄 때문에 큰 갈등이 생겼는데 인간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는 오직 형벌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손해 보고 저주받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갈등이 계속되면 두려움과 저주 같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내놓기까지 노력하셨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통해서 인간의 막힌 땀을 허무셨고 하나님도 다른 방법 없이 아들을 내놓은 것이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희생하고 양보하셨지만 우리에게는 희생대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조화를 위해서 희생으로 아들을 주셨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희생을 대신에 회개를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대신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것과 같은 수준으로 주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는 회개 없이는 하나님과의 갈등을 해소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기쁜 소식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인데 이보다 먼저 전해진 소식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와 마음과 지식들을 수정해 나가야합니다 회개는 '길을 바꾼다'라는 뜻인데 우리가 그대로 가면 망하기에 길을 바꾸어야합니다 본문에 예수께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가 크냐 작으냐 무거우냐 가벼우냐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치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기독교 진리가운데 최고의 진리는 회개입니다 기독교와 종교의 차이점은 회개의 유무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기독교가 아니고 기독교에 회개가 없다면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부담스럽고 상당히 압박을 주지만 회개 없이는 하나님을 뵐 수 없습니다 회개 없는 신앙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참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전부 회개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회개치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허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질 못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인간은 멸망합니다 우리는'나는 죄인입니다'하고 죄만 포기하면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죄도 회개해야 하지만 자기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죄부터 무너뜨려야 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기에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사단 같은 죄를 원수로 여깁니다 하나님은 죄를 원수로 여기고 죄를 형벌하기로 작정했지만 회개하는 자에게 마지막 수단으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가는 마지막 수단이요 멸망에서 구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회개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될 때 제일 먼저 경험해야 하는 것이 회개인데 지금은 우리가 죄 때문에 망하지 않고 이제는 회개하지 않기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오직 회개함으로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260927 주 예수를 영원한 돌기둥으로 삼으라(창28:10-22)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교훈이나 교리의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시다’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이 새롭게 해주심을 실제로 경험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것으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복의 근원이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성경은 수천 년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의지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결코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고 우리 신앙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설교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복 주시는 분에게 가까이 가게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가지 약속을 말하지만 성경은 누구의 행위를 교훈으로 삼으라는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어느 시대의 사람이든지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자기 백성이라 하셨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은 어떤 도움이든지 아끼시지 않고 약속을 의지한 사람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계시며 적은 수고까지라도 상을 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사람들이 응답받는 풍성한 경험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열심히 구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닥다리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복을 옮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아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도 너를 도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로 인해서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깬 후에 꿈을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고 자기가 베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나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으며 내게 주신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했습니다 돌기둥은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증거로 세운 것입니다 사람은 첨단의 건축기술과 능력을 총동원할지라도 하늘위에 하늘보다 크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나 희생으로 하늘가는 문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가는 문을 만들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야곱에게 약속한 약속이 하나님의 전이요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하신 약속이 하늘가는 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전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반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은 약속한 그 약속 가운데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에 자리 잡고 앉아계시고 하나님은 절대로 약속을 떠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늘의 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돌기둥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 성전에 돌기둥이라 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 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돌기둥이 되어있는 사람은 믿음이 변치 않고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전입니다 우리는 과연 약속의 돌기둥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앙의 보증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기 신앙이 변치 않은 돌기둥이 된 사람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전이 됩니다 돌기둥은 우리 신앙의 견고한 성입니다 우리 신앙도 하나님의 약속으로 돌기둥이 되어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영원히 변치 않는 돌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돌기둥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원한 돌기둥으로 삼아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받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920 성령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 되라(욥42:1-6)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 창조주가 없고 시작한 날도 없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에 ‘태초’는 만물을 시작한 때를 말하고 요한복음 1장에 ‘태초’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태초입니다 모든 만물은 지음 받은 날이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믿는 믿음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부끄럽지 않는 이유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가운데 제일의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보다 못한 것들을 신이라 하여 굴복하고 섬긴다면 이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산자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산자의 아버지란 믿음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을 믿고 죽었으나 이들의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소유한 신앙을 자손들에게 축복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이들 신앙이 자손들에게 살아 있기에 신앙으로 약속 받은 것들이 지난 후에도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는 산 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육체가 죽을지라도 신앙생활을 잘했던 사람들은 신앙이 살아있어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체 때문에 부활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이 살아 있기에 신앙과 함께 살아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심판받기 위한 부활은 있어도 생명의 부활은 없습니다 예배할 때 육체는 교회에 와있어도 신앙이 없다면 산 자가 아니고 죽은 자입니다 우리 신앙이 살아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는 신앙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을 위해 언제나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부활도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약속한 믿음을 이행하시고 병이 낫는 것도 이적이 나타난 것도 산 자들에게 나타나는 약속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산 자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자들의 절대적인 구속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귀로 듣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욥은 처음 고통이 올 때 감사했고 두 번째도 감사하면서 극복했으나 다음은 억지로 참아가며 때를 기다렸습니다(욥10:4-7) 욥은 하나님께 ‘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며 저주의 원인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욥은 ‘내가 스스로 거둬들이고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0:2-6)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생각적으로만 알았던 하나님을 깨닫고 회개한 후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욥이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욥이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과거에 잃었던 건강 물질 친구 자녀들까지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욥은 간음이나 악행을 행함으로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저주와 환난을 받은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다시 발견한 순간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되었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확실하게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영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변화되는 실질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는 불신자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기 전과 후가 변화의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육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육체는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장소요 회개한 심령을 가진 육체는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가 되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주로 오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려 주려고 성령님으로 오셔서 우리로 체험케 하십니다 체험의 생활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예수명령은 보편성이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명령합니다 예수의 증인은 성령을 체험한 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학이나 학문에 의해서 예수가 변호되기를 원치 않고 성령님이 예수를 변호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알지 않으면 신앙은 철학이 되고 철학은 우상이 되고 맙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꿈과 생각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체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 창조주가 없고 시작한 날도 없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에 ‘태초’는 만물을 시작한 때를 말하고 요한복음 1장에 ‘태초’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태초입니다 모든 만물은 지음 받은 날이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믿는 믿음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부끄럽지 않는 이유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가운데 제일의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보다 못한 것들을 신이라 하여 굴복하고 섬긴다면 이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산자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산자의 아버지란 믿음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을 믿고 죽었으나 이들의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소유한 신앙을 자손들에게 축복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이들 신앙이 자손들에게 살아 있기에 신앙으로 약속 받은 것들이 지난 후에도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는 산 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육체가 죽을지라도 신앙생활을 잘했던 사람들은 신앙이 살아있어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체 때문에 부활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이 살아 있기에 신앙과 함께 살아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심판받기 위한 부활은 있어도 생명의 부활은 없습니다 예배할 때 육체는 교회에 와있어도 신앙이 없다면 산 자가 아니고 죽은 자입니다 우리 신앙이 살아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는 신앙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을 위해 언제나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부활도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약속한 믿음을 이행하시고 병이 낫는 것도 이적이 나타난 것도 산 자들에게 나타나는 약속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산 자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자들의 절대적인 구속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귀로 듣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욥은 처음 고통이 올 때 감사했고 두 번째도 감사하면서 극복했으나 다음은 억지로 참아가며 때를 기다렸습니다(욥10:4-7) 욥은 하나님께 ‘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며 저주의 원인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욥은 ‘내가 스스로 거둬들이고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0:2-6)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생각적으로만 알았던 하나님을 깨닫고 회개한 후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욥이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욥이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과거에 잃었던 건강 물질 친구 자녀들까지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욥은 간음이나 악행을 행함으로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저주와 환난을 받은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다시 발견한 순간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되었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확실하게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영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변화되는 실질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는 불신자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기 전과 후가 변화의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육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육체는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장소요 회개한 심령을 가진 육체는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가 되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주로 오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려 주려고 성령님으로 오셔서 우리로 체험케 하십니다 체험의 생활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예수명령은 보편성이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명령합니다 예수의 증인은 성령을 체험한 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학이나 학문에 의해서 예수가 변호되기를 원치 않고 성령님이 예수를 변호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알지 않으면 신앙은 철학이 되고 철학은 우상이 되고 맙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꿈과 생각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체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913 주 예수만을 사랑하는 자 되라(요21:15-23)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하나님은 눈으로 확인되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봄으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베푸신 사랑을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이 하찮은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알리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부러운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대단히 부럽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은 깊고 넓지만 하나님이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독점해 주셨으면 하는 갈망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심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방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스스로 거절한 자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아서 범사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만일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고통과 부담감은 매우 큰 것입니다 세상에는 남녀의 사랑과 부모와 자식의 사랑과 임금과 백성의 사랑과 벗과의 사랑 등이 있으나 사람들은 사랑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고 목적도 다르지만 사랑에 쏟는 마음은 동일합니다 세상에서 거짓 없이 진실한 사랑이라면 사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동서고금에 부모와 나라와 임금을 위해서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하려했던 자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독생자 예수의 목숨을 주고서 이루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아들을 죽는 데까지 내 주셨는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노력입니다 목사는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내가 가진 모든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모두 다 동원하려고 힘씁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이 되게 한 것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심인데 이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시인한 자들에게 역사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은 영혼의 저주 외에는 어떤 이익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 으뜸인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율법과 복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로 인하여 모세에게 전해준 율법도 사랑의 가르침이요 예수가 친히 주신 복음도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준비하는 법이라면 복음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나 받을 수 없고 준비된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 법인데 율법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회개에 이르는 자만이 예수 안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때 예수께서 부르시더라도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돼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기합을 넣어 ‘믿습니다’ 하고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너는 신앙이 있느냐’라는 말은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말이고 ‘나는 신앙이 있다’는 말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였듯이 우리도 목숨을 다하도록 예수를 사랑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906 예수여!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마8:5-13)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주 안팎의 하나님 말씀에 복종치 않고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빛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빛으로 오신 하나님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있는 빛은 사람의 영을 볼 수 있고 사람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단순한 교훈이나 윤리적인 도리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언제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의 현재화로서 말씀을 통해서 이 순간에도 실제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 때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병이 낫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과 생명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만이 어려울 때 하나님의 도움을 입을 수 있고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하는 방법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교리나 신학이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성경의 인쇄된 글자는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 안에 사람은 잡을 수도 없고 깊이도 없는 그림자와 같이 성경의 인쇄된 글자는 하나님의 본체와 본성과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글자 속에 담겨 있는 인쇄된 글자들을 우리 속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직접 체험으로 확인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말씀을 자신이 직접 체험할 때만이 온전한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영생의 복을 명하셨고 말씀을 보내어 우리를 고치시고 위경해서 건져 내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고 모든 만물은 말씀의 복종케 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만물을 복종케 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만물은 말씀을 듣고 순종할 귀가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교리나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현재적인 역사입니다 말씀을 과거기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교리에 맹종하는 사람이요 비성경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지금 나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요 현재적인 능력이라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접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접해서 사는 사람들은 말씀이 자신을 주장하고 자기를 감독하며 말씀이 자기에게 응답으로 나타나고 자기 속에서 말씀은 현재에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백부장은 자기 하인을 고치기 위해 예수께 나왔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믿음을 예수께 보였는데 백부장의 믿음은 말씀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하에게 이리로 가라하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 있고 우리를 지배하는 힘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면 귀로만 듣는 것으로 생각하나 하나님 말씀은 자기에게 운동력이 되고 자기를 지배할 힘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백부장은 주인이 말씀하는 것을 듣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것이요 행동에 옮기는 자는 반드시 이적이 따른다는 신앙입니다 주인이 말씀한 것을 듣고 말씀으로 순종하여 행동하는 자에게만 반드시 이적이 따릅니다 예수의 말씀은 우리와 상관하여 영향을 주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이적을 경험하게 하고 말씀은 과거의 기록이 아닌 예나 지금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말씀 없이는 거듭남이 없고 영생도 없습니다 우리 과거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고 불순종하였고 원수마귀에게 속아 종노릇한 자였으나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 명령대로 움직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는 당연히 이적이 있고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납니다 ‘주여 나에게 말씀만 하옵소서’ 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830 예수를 의지할 것과 힘쓸 것을 알라(마9:1-8)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이유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육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은혜로 살게 하려고 하십니다 만일 예수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전 인류가 다 저주받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습니다 예수의 육체와 사람의 육체는 본질상 다릅니다 사람의 육체는 흙으로 나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예수님 육체는 말씀이 육신 되어 이 땅에 오신 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육체가 되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된 것은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모든 사람의 죄악을 담당하실 수 있습니까 성경은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나니’(고전15:45)했는데 여기 ‘산영’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영혼이 죄로 인해서 멸망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죄로 오셔서 매 맞고 죽으심으로 모든 저주와 영원한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의 육체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사람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지옥형벌을 대신한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가 비록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안했어도 인류의 대표자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사람의 행위가 깨끗하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할 육체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없고 사람의 육체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의롭지 못하여 이에 따른 형벌도 두 가지인데 육체에 따르는 저주와 영혼에 따르는 지옥형벌입니다 저주는 사람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받은 형벌입니다 지옥형벌은 내세에 받는 형벌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계속 불순종한다면 육체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떠난 후 내세에도 지옥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영혼이 내세의 받을 지옥형벌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사람이 육체로 이 땅에 사는 동안 받을 저주를 대신 담당키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모든 사람의 질병과 고통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때문에 누구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지옥형벌과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사람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 문명을 발전시켰고 식물을 얻기 위해서 토지를 개간하며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다음에도 아담의 육체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땀을 흘려 식물을 얻도록 하셨는데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호흡하며 살 수 있는데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밥맛도 떨어지고 병이 들면 먹지도 못하다가 결국 죽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힘써 식물 얻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육체를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에 누리고 있는 평안을 육체까지 누리지 못하여 영혼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체험한 것만큼의 은혜를 육체는 체험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사람이 영혼의 체험한 만큼 육체까지 예수의 은혜의 능력이 역사하도록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린 육체를 위해서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를 땀 흘려 보존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식물을 위해서도 땀을 흘리도록 하셨고 거룩한 영적능력을 위해서도 힘쓰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영혼이 죄를 씻기 위해서는 애쓰고 땀을 흘릴 필요가 없고 예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면 되지만 육체를 위해서는 힘써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육체는 원수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죄 받는 것은 예수의 피 흘려 이루신 것으로 주를 의지하면 되지만 육체에 나타나는 이적은 간구하는 자에게만 따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 영혼이 평안함을 얻었다 해도 육체를 위해서 구하지 않으면 육체는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린 금세의 저주와 내세의 지옥형벌에서 벗어났지만 병의 시험이 오지 못하게 육체를 위해 간구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823 주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라(히2:1-4)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되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니 우주가 생겨났고 미생물까지도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이 지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기초로 삼습니다 하나님은 영으로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으나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시고 누구든지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공개하십니다 누구나 말씀을 통하면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력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요 말씀은 그냥 말이 아니라 모든 만물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누구나 말씀을 접하게 되면 말씀에 감동 받게 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만일 말씀에 대한 경험이 없이 막연하게 신앙생활하면 큰 불행입니다 일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 말씀을 세상 말을 듣듯이 이야기로만 듣고 흘러버리게 되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도 주관하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며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일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사랑한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성품과 희생과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 모습이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성품에 감동이 됩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도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요 우리 인격의 변화가 온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요 우리가 죄를 포기하고 소망을 갖고 성결한 생활하는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숨까지도 내놓고 주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고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말씀을 벗어나서는 구원도 받을 수 없고 신유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의사는 주사와 약으로 병자를 치료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으로 병자를 치료하십니다(시107:20) 영생도 말씀으로 얻게 되고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도록 은혜와 능력을 베푸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도 똑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지혜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요 실수하지 않기에 예수로 산다면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고 약속하신 말씀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말씀 속에 지혜를 얻지 못하면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먹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영원히 멸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인간을 위해서 말씀이 육신 되어 세상이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것은 말씀으로 자신을 세상이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최대의 수단이신 말씀으로 나타 내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밥이 필요하나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 속에 말씀의 역사나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면 이 사람은 맹종하는 사람이요 형식과 교리에 매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죄 사함이나 구원의 느낌이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천사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없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아버지의 이름을 기업으로 받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표적과 기사와 이적들을 나타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서 영생에 이르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816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마8:23-27)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너는 다른 신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기만 섬김을 받으려고 다른 신들을 질투하여 말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요 자존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고 자존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원론자들은 마귀는 애초부터 하나님과 공존했다고 하는데 이 주장은 음양지설과 비슷하여 음양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상대적인 이론입니다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지구는 자전하기 때문에 밤낮이 바뀌고 공전하기 때문에 계절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그림자가 없으시고 변치 않으십니다 사람도 변하고 땅도 변하고 마지막은 순간에 변하여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며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모든 만물이 사라지고 태양도 빛을 잃을 날이 옵니다만 하나님 결코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풍성함을 말해 주고 하나님은 만물을 직접 지으셨고 짓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만들어졌기에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귀를 갖고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 음성에 복종하는 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 믿은 후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만물이 하나님 음성에 복종치 않을 수 없는 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다른 신들이라도 만물을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면 만물은 어떤 다른 신이나 천사의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다에게 명하여 바다가 순종했고 나무를 꾸짖으니 말라 버렸듯이 어떠한 피조물도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들을 귀가 있습니다 불신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하는 것은 잠시 일뿐 생명에 대해서는 거역할 수 있으나 죽음에 대해서는 거역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바로 하나님 음성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사람이 죽은 자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습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이룰 줄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만물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움직일 의지를 나타내고 만물이 의지가 있다는 것은 인격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만물이 인격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부르실 때 인격화시켜서 부르셨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고 하나님이 만물을 인격화시켜 명령하시니까 그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병아 떠나라’ 명령하면 병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어서 순간에 떠날 의지를 나타내고 병도 인격의 정체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언제 귀신을 보고 만져 보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로 명령한즉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귀신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명령 앞에 만물은 자신의 의지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가난합니까 돈이 없어서 일이 안 되어서 병들고 가난해서 이유를 대지만 성경을 통해서 안 것은 사람은 만물을 복종하길 능력이 없습니다 만물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없기에 환난과 가난을 면치 못 합니다 예수는 ‘가난한자도 오라 억압당한 자도 오라’ 하신 것은 구호문자 타가듯이 받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에게 권리를 주고 권능을 주어 평생토록 만물을 지배하도록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평생토록 만물을 지배하도록 권리를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병이 의지를 드러내고 순간에 행동하여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믿음의 명령에 순종하여 물러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 육체로 오신 분이 예수이십니다 때문에 만물은 예수 뜻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음을 알고 주의 능력으로 만물을 복종시키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809 사망을 이기는 힘은 예수 믿는 신앙이다(롬8:1-11)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기에 원하시는 뜻을 다 이루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해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뜻이 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뜻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어떤 방해가 있어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사람이 육신으로 인해 연약하여 알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으로써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서 신앙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낍니다 세상은 세상 법을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얻었다면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에 지배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율법을 모르며 하나님의 법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율법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 백성이 아닙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받기까지는 자기 양심을 율법처럼 여겼으나 양심은 율법이 아닙니다 성경의 양심을 율법으로 삼는다는 구절은 있으나 양심의 율법은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율법은 양심의 기준으로 양심에 거리끼면 안하고 거리끼지 않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으로 사람은 율법의 요구대로 따라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 영혼이 하늘나라 사람이 되도록 하는 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하늘에서 영광을 받게 하는 법입니다 율법을 신앙의 법으로 알고 율법을 따른다면 누구나 신앙인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요 하늘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율법을 악법 같이 취급하는 것은 율법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인데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는 뜻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음을 말합니다 율법의 요구는 두 가지로써 첫째는 하나님이 율법의 순종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율법을 어긴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법으로 정죄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는 법이 아니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법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죄인 된 인류를 하나도 내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죄인이 정죄 받지 않으면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므로 구세주가 오셔도 상관하지 않기에 하나님은 율법으로 정죄 받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없다면 범죄 한 영혼은 모두 다 내버려지게 됩니다 율법의 요구는 범죄 한 영혼을 처벌받게 하는 일인데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셔서 예수로 하여금 대신 영벌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 앞으로 달려오는 영혼들은 하나도 내버리지 않고 다 살리려고 하십니다 사람이 율법이 해야 할 일과 율법의 요구를 모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정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하는 것으로 사람이 100가지 율법 중에서 99가지를 순종했어도 마지막 한 가지를 범하면 율법의 모두를 범한 자가 되는데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이가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이를 거역하면 죄인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약점을 아시고 하나님이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의 연약한 약점을 채워서 완전하게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한 것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속에 신앙의 의가 있을지라도 예수의 공로가 없고 죄를 대속하신 예수의 생애가 없다면 우리는 절망입니다 예수의 고난으로 얻은 믿음만이 산 믿음입니다 성령님은 예수가 우리 속에 살아 계셔서 우리 신앙의 의를 살려 주십니다 성령의 법은 예수께서 오셔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생애의 법칙이요 예수의 공로가 성령의 법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망을 이기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802 오직 예수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라(마17:1-8)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 영이시기에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지 않고는 사람이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사람은 육안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의 뜻과 성품과 활동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시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듯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뜻과 역사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실 때는 모세를 불러 시내산에서 율법의 말씀으로 나타내시고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하나님의 종이지 모세 자체가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든 많은 선지자들이 때에 따라 생겨났어도 선지자도 하나님의 종일뿐 말씀 자체가 아니고 모세도 선지자도 하나님 앞에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고 하나님 말씀에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담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을 외면하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고 거룩해질 수 없고 능력을 받을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 역시 말씀 속에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말씀 없이는 절대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강력한 지배가 자기 속에 있기를 바라지만 말씀이 자기를 온전히 지배하고 복종케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놓지 않으면 성령님도 역사하실 수 없기에 성령의 역사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말씀 없는 사람 속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율법을 가르치고 미래를 예언한 종으로서 하나의 수단이지만 예수는 하나님과 함께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없이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변형산에 올라가셨을 때 변형되어 모세와 엘리야와 나란히 서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에게 모세와 엘리야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준과 신분을 확인하게 되어서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주를 위하여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나이다’ 했습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하신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예수를 가리켜서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소리가 난 후에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안내자요 모세도 종이요 엘리야도 종으로서 모두 예수를 세상에 안내하는 수단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심으로써 모세나 엘리야의 임무는 끝이 났습니다 율법의 완성자요 예언의 완성이신 예수가 오심으로써 세상 율법과 선지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가 지배하시는 이가 신앙인이요 예수를 우리의 주인으로 보셔야 신앙 있는 자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계시지 않고는 절대로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께 순종해야 할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계명은 모세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욱 큰일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율법은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정죄하고 죄인으로 몰아서 예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요 율법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므로 예수 믿는 것은 율법을 지킴보다 더 큰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예언하는 선지자도 예수의 안내자이기 때문에 예수께 순종하는 것이 선지자의 목적을 이룬 것이며 예수를 믿고 아는 것은 모세나 엘리야를 아는 것보다 큰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계명이요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지배하실 때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 안에 있는 능력들이 성령의 역사로 삶에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20260726내 영혼에 예수를 심고 믿음이 자라게 하라(마13:24-30)
하나님이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 아들을 심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심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믿음을 심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생각이 있고 사람에겐 지혜와 뜻과 마음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따라 일을 합니다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뜻하는 일이 결실을 보지 못하여 실패하기도 합니다 노아 때 홍수는 사람들을 모두 멸하셨는데 사람들의 악한 생각이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 무시하고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지혜로 살던 그들에게 홍수로 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앞지르고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멸망했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지혜와 뜻과 마음과 생각에서 옵니다만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의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지혜나 생각은 마귀적이며 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절대 순종하는 자요 예수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요 선물이요 성품이요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번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합니다만 하나님은 사람의 각오와 결심을 기대하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품속에 오신 예수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오직 예수만을 하나님이 믿으시기에 하나님은 예수를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믿음과 뜻과 지혜로 사람들 마음속에 예수를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마음속에 예수를 심으시고 심는 그대로 예수를 거두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예수를 알게 하시고 예수님의 뜻을 자라나게 하면서 마지막에 믿음을 얻으려고 하십니다 ‘좋은 땅’이란 태어날 때부터 좋은 성품을 가진 자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에 종들이 주인에게 ‘주여 당신은 좋은 씨를 심지 않았습니까 왜 가라지가 생겼습니까’ 하자 주인이 ‘원수가 그리하였구나’했습니다 주인은 좋은 씨를 심었지만 가라지가 생긴 것은 바로 원수마귀가 그리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도록 거듭 약속하셨고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의심을 겸하여 심지 않으시고 거듭 확인된 믿음으로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왜 우리의 믿음이 변합니까 왜 예수가 자라지 않고 가라지가 생깁니까 하나님은 오직 믿음만을 심으셨는데 왜 의심이 생겨났습니까 바로 원수마귀 때문입니다 우리 주를 예수께서 담당하셨는데 죄가 자꾸 싹 틉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병을 다 담당하셨는데 자꾸 아픔과 우환이 성도 가정에 생깁니다 우한과 아픔이 생겨나는 이유는 원수마귀 때문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마귀를 경계하는 생활과 원수를 대적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원수를 잘 모르면 병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모든 가라지를 하나님이 심은 것으로 결론을 내면 가라지는 미혹의 영이 되어서 일생 동안 사람을 괴롭히는 요소가 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받은 영혼과 심령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키느냐 하는 것인데 이는 구원받은 심령을 시기하여 해치는 원수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도덕과 교리에 의해서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수가 없습니다 종교인들은 각자 자기 종교만을 잘 갖고 있으면 되지 남의 신앙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서로 결탁하고 타협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 원수가 있는 신앙이요 원수를 향하여 칼을 뽑고 대항하고 무찌르고 원수와 싸우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원수마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이기는 능력을 가지려면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고난의 종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안내하는 길이요 오늘날 신약 교회는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거룩한 영적 생활을 위해서 예수님을 심고 믿음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성령과 예수의 능력을 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719 천국은 예수를 사모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마11:2-19)
하나님은 예수를 사모하는 자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정하신 뜻을 땅에서 이루시려고 율법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세상에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 중에 율법으로 양육 받은 백성이 이스라엘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중시하는 자들은 율법을 배척하거나 대수롭게 여기기 쉬우나 율법은 이 땅에서 난 법이 아니요 사람을 위해서 만든 법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으로 이루어진 법입니다 천하의 법 중에서 율법보다 더 거룩하고 위대한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면 지옥자식을 면하고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선지자로 양육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천국에 속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정하셨고 일방적으로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무거운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마땅히 지켜야할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자발적으로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야 합니다 율법은 처음에는 모세에게서 나타났고 그 후 다윗에게 나타났으며 마침내 세례요한에게까지 나타났습니다 세례요한까지는 하나님나라가 일방적으로 임했고 일방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했고 일방적으로 율법으로 양육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고 율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엄격하지만 엄격한 율법은 세례요한까지였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까지는 율법이 일방적으로 임하여 사람을 다스리고 양육했지만 세례요한 이후에는 율법이 강제로 침투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누구든지 살고자 할 때 율법 안으로 뛰어 들어오도록 하셨습니다 왜 선지자가 필요합니까 선지자는 율법을 어긴 자들을 다시 한 번 강제로 율법의 복종시키고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한 것이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도 율법과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로 양육하던 천국은 세례요한까지로 끝이 났으나 세례요한 이후부터는 천국이 침노를 당합니다 이제 천국은 예수님을 사모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길 때는 즉시 보응이 오고 진노가 임했으나 세례요한 이후에는 법을 어기면 보응이 없고 어겨도 진노가 임하지 않습니다 세례요한까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늘나라 백성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세례요한 이후부터는 천국에 가기 싫은 사람은 그대로 두시고 강제로 천국 가게 하지 않고 자유를 주어서 천국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과거는 예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는데 아브라함의 집안에, 다윗의 집안에, 처녀에게 잉태될 때에도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셨으나 세례요한 이후에는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네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리라’ 하십니다 이제는 반드시 문을 열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고 이제는 예수를 안 모실 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배척한 것에 대한 심판은 결단코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법이 무겁다고 불평하지만 천국을 사모하지 않은 사람은 율법이 무거울 것이 없습니다 세례요한 이후로 천국은 침노 당한다는 말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어진 반면에 책임도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부족할 때 강제로 깨우치고 강제로 지배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세례요한 이후에는 강제로 깨우는 것도 없고 강제로 지배하는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자기가 선지자가 되고 자기가 율법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자기 속에 믿음이 율법이 되고 자기 속에 믿음이 선지자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세례요한 이후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사모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율법과 선지자가 있던 시대보다 자유가 있는 반면에 우리의 부담이 더 커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뜨겁게 지배하시고 감동이 되게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으로 천국을 사모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712 오순절 증거를 확실히 체험하라(행2:1-4)
하나님이 구주이신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과 해를 받으시고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 마음속에 오직 예수만으로 충만하고 예수만으로 복음의 주인이 되고 예수만으로 모든 메시지에 중심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성령을 기다리라’하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보혜사는 예수와 성령이 질이 다른 분이 아니라 삼위하나님으로서 사역이 각각이라는 말로 예수는 눈에 보이는 우리의 보혜사요 성령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혜사로서 성령은 우리 속에 함께 계십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수를 소개했는데 예수가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의 내용과 중심은 예수님 자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받은 자들은 오직 예수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가신 후에는 성령이 오셔서 예수를 영접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주시고 예수를 아는 것과 같은 경험을 주시고 예수는 모신 것과 같은 경험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이 사모했던 신앙의 열기는 성령이 오신 지금도 똑같은 분량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 교회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는데 근래에는 지나친 이기주의와 인간의 노력과 의지와 형식이 묶여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때와 같은 감격에 찬 마음으로 성령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는 세상을 떠나 하늘에 오르신 후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강림은 예수가 모든 가정과 모든 심령에 실질적으로 임하시고 구체적으로 임하신 표적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모든 사람 속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과 성령님의 질이나 주장이나 사역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와 성령은 사람 눈에 보이지 못하나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나 눈에 안 보이지만 예수 믿는 자들 안에 똑같이 예수님의 역사는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따르던 신앙생활이 이제는 자기 안에서 움직이는 신앙생활로 바꿔진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이 결정합니다 성령은 사람 마음을 움직여 몸으로 행동하도록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성격이 다르고 출신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목적과 방향으로 순종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불신자의 기억에는 예수의 기억이 사라졌지만 신자들의 기억 속에는 성령체험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비밀이 있는 사람에게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는 기쁨이 있게 하는데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비밀입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가신 후에 성령이 임하시니 그때부터 비로소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명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따라 방언를 말하게 된 것은 성령이 임재하신 최초의 표적으로 방언한 사람이 길들을 수 없는 혀를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놀라운 표적입니다 모든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성령으로 체험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모든 믿는 사람 속에 똑같이 어느 시대에든지 나타납니다 인류를 구속하신 예수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성령님도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임하셨으나 예수와 성령이 조금 다른 점은 예수의 죽음은 세상이 목격하는데 확인이 되었지만 성령의 역사는 믿는 사람들에게만 제한된 체험이라는 점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오직 예수의 길과 예수의 말씀대로 가도록 역사하십니다 과거에 율법을 듣고 회개했지만 성령이 오신 지금은 성령 안에서 회개합니다 우리는 오순절 증거를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705 복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감사절(창17:15-16)
하나님은 복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으로 인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인 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영원히 확증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으로 인 치신 후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하나님 주신 복은 변함없이 아브라함의 소유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에는 아버지라는 뜻인데 과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 오늘날 민족을 벗어나서 모든 세계에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복으로 인치시면 하나님 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직면하는 사건에 대해서만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니까 간사스러운 신앙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 육신의 삶은 지극히 짧고 매우 불안정합니다 우리는 언론 매체를 통해서 몸에 좋다는 물건과 음식과 약에 대한 광고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이상한 것은 썩어진 육체를 위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적극적으로 믿으면서도 전지전능하시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유익하다고 가르치신 것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불쌍하다고 구호물자를 나눠 주듯이 하나님의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일을 진행하려고 복을 명하십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발생하는 재난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지구온난화로 북극 지방에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져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하나님이 노아 때 이미 다시는 홍수로 사람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창9:15) 마지막 때 하나님은 불로 세상을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벧후 3:6-7) 사람들은 인류 종말이 인간의 실수로 인해서 기후변화가 생기고 결국 종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종말은 사람의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옵니다 천지창조 둘째 날 하나님은 물을 아랫물과 윗물로 나누시고 아랫물과 윗물 사이의 공간을 궁창이라고 칭하셨는데 이때부터 궁창은 고무풍선이 커지듯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습니다(창1:6-8) 마치 팽창하던 고무풍선이 더 이상 커질 수 없게 될 때 터져 버리듯이 때가 되면 궁창과 그 궁창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뜨거운 불에 의해 풀어지고 말 것입니다(벧후3:10) 사람들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따른 후유증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인간이 막아보기 위해 힘쓰지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속한 사람에게만 있기에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와 자기 가정을 하나님의 뜻 안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게 열매를 요구했을 때 무안하게 돌아서게 만든 무화과나무는 뿌리 채 말라져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쓰고자 할 때는 예수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자신이 육체가 먹고 사는 일에 사용하기 위해 이력서를 쓸 때 자신의 재능을 돋보이게 하려고 힘쓰면서도 교회에 와서는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봉사는 수준 낮은 사람이나 교회 봉사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봉사를 사양하지만 이는 겸손이 아니라 교만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사양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이 하나님 복을 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 땅에 좋은 집짓고 잘사는 데에만 관심을 같지만 인류 종말은 생각지 않을 때에 임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절기를 가리켜 명절(요7:37)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새 옷과 음식을 장만하고 선물을 위해서 돈을 씁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사람들은 명절에 제사상 한번 차릴 때 3,40만 원에 비용이 든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를 명절로 생각한다면 하나님 앞에 인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합니다만 우리는 내세의 영생을 얻기 위함과 이 땅에 복을 받기 위해서 핍박을 겸하여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628 거룩한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라(계21:2-8)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신 자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가 환상과 계시를 받아 장막 성전을 세웠고 장막 성전을 따라 세워진 성전이 바로 솔로몬 때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이후 솔로몬성전은 많은 수난을 당하여 재건되어 세워진 큰 작품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도 예루살렘 성전만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 성전이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위에 세우리라’(요2:19)하셨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모여드는 신앙의 중심지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예루살렘이란 말은 두 단어의 복합이라고 합니다 ‘예루’는 ‘이레’라는 말에서 나왔고 ‘살렘’은 살롬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자기 아들로 제물로 바치려 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물이 되기 직전에 하나님이 막으셔서 하나님이 지시한 곳을 바라보니 수풀에 산양이 걸려 있었고 이삭은 이 숫양을 드리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위해 양을 예배하였다 해서 제단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불렀고 여기서 ‘예루’는 곧 ‘이레’가 유래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구원도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의 죽음을 예수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여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셨고 하나님은 우리의 죽음 대신 예수를 죽을 자로 예비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시기에 예수를 이 땅에 평강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평강’이란 뜻에서 예루살렘이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초림하실 때까지 존재했는데 예수가 오심으로 예루살렘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이 올 때에 손으로 짓은 성전은 효력이 정지된다고 했습니다(히9:11-12) 예루살렘성전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해야 인간이 살 수 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의 장소요 화해의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세상문화 속에서 평화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세상문화는 사람들에게 평강을 주지 못하고 돈과 권세와 명예로는 평안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평안입니다 세상에서 권력과 돈을 얻었어도 항상 고통 속에 사는 원인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고통 속에 사는 이유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평안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평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위해 양과 비둘기를 잡아야 했는데 타국에서 온 사람은 양과 비둘기를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상인들은 서너 배로 올려 파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분이 여겨 돈 바꾸는 상을 엎으시고 채찍을 만들어 사람들과 동물들을 다 내 쫓았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위에 지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만 예루살렘성전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그림자요 안내판으로 존재했습니다 약도로 집을 찾다가 집을 찾으면 약도가 필요 없듯이 ’오리라‘ 하신 예수가 오셨기에 성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개혁된 성전으로 예수가 부활하신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은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을 알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우리 믿음은 하나님이 모실 수 있는 믿음이요 하나님이 계시한 믿음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한 믿음의 장막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가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있음으로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621 성령 하나님을 훼방하지 말라(마12:22-37)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세 분으로 오해하나 하나님은 삼위로서 성부로 한분, 성자로 한분, 성령으로 한 분이 아니라 삼위로서 한 분이십니다 인간은 몸이 있고 피가 흘러야 하고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몸, 피. 생명 셋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손실되면 나머지도 다 사라지듯이 하나님은 한분으로써 성부 위, 성자 위, 성령 위로 삼위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라 해서 성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시기에 성령님의 감동이 없으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 이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성부’라 하고 아버지란 말에는 처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끝’ 곧 오메가입니다 하나님의 처음은 시작하신 분이시요 하나님의 끝은 심판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시작을 보지 못했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끝이신 심판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의 형벌이 이루기 전에 우리를 진노의 불구덩이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서 심판 전에 먼저 우리를 구원하고자 예수님이 오셨는데 예수님을 심판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려 인간의 구세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세주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지만 구세주를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주로만 뵙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으로서 우리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반드시 영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생령’이란 말로 곧 ‘산영’이라는 말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이 아담 곧 산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자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쫓기로 작정하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산영’ 아담을 동물과 같이 육체로 돌아가게 하심으로 아담을 육체의 감각에 의존해서 살도록 하셨는데 바로 육체의 감각의 의존해서 살게 하신 것이 타락의 결과요 죄악의 열매입니다 이제 우리는 육체의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다시 ‘산영’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의 아버지를 모신 ‘산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할수록 하나님도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을 믿는다’와 ‘앙모한다’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앙모해야 합니다 믿고 앙모할 때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정신 바짝 차리고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고난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열렬히 환영받고 일하려 오셨기에 뜨겁게 영접하고 진실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순종하고 결단코 성령님을 훼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자 예수님을 핍박하고 욕하는 자는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훼방한 자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훼방하는 것은 아버지를 훼방한 것이고 성령님을 모독한 것을 아버지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아버지를 모독한 천사는 사단으로 타락해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말씀 곧 성령님의 뜻과 성령님의 약속들을 기록한 것인데 성경은 성령님을 앞지를 수 없고 오히려 성령님이 성경에 앞서 계십니다 우리는 먼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올바로 깨달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영적생활이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령님을 사모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사역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성령님이 일하는 장소임을 알고 성령 훼방하는 죄를 경고하는 사역을 감당하시길 축원합니다.
20260614성령님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행8:4-24)
성령하나님은 보혜사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아브라함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기한이 이른 때 내가 정녕 내게 돌아오리니’(창18:14)말씀은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에 약속으로 임하신 것이 아니라 뜻밖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뜻밖에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언약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약속대로 임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자기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는데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제는 내 백성을 구별하라’(출13:2)하시고 자기 백성을 선별하는 방법으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함으로 애굽의 장자는 다 죽었으나 양의 피를 문설주의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화를 면하고 살았습니다 또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내 백성을 율법으로 양육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라’(출19:5-6)말씀했는데 모세는 이 명령대로 이스라엘이 거룩한 땅에 들어섰으니 거룩해야 된다고 강력히 기도하게 되었고 모세는 어릴 때부터 율법(토라)으로 양육을 받아 거룩한 백성으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출3:5)하신 말씀은 이제부터 ‘너희는 그리스도가 나실 거룩한 가나안 땅을 밟게 되리라’하신 말씀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거룩한 땅을 밟기 시작하였고 백성들은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거룩한 땅을 밟기 위해서 경건했는데 우리는 영원한나라(천국)에 가야할 우리는 얼마나 더 철저히 준비해야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서 거룩하게 했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어떻게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거룩한 땅이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세상은 거룩한 땅이 아니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피를 흘려 주심으로 비로소 거룩한 곳이 되었고 예수께서 밟고 가신 땅이 거룩한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거룩해졌지만 이방인은 회개로서 율법을 대신하여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릴때부터 율법으로 양육 받고 법도를 지키며 거룩한 생활을 계속 반복하면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지만 이방인은 스스로 살던 생활을 순간에 회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거룩함에 이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거룩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를 무시한 사람은 거룩함에 참여할 수 없고 오직 회개하는 자만이 거룩한 자가 될 수 있고 회개한 자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핍박의 대명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저주받은 예수 편에 서서 예수를 변호하고 옹호함으로써 사람들의 비방 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영광 받으신 후에 성령님을 보혜사 성령이시다 라고 소개했습니다 보혜사는 변호사라는 뜻으로 성령님은 예수를 변호하신 분이요 예수의 누명을 벗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우편에서 항상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형벌 받고 죽임당한 이유는 우리의 죄와 형벌을 대신한 것이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변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예수를 증거하고 변호하시는 변호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성령님에 감동되어 성령께 이끌리고 성령님의 도구가 되어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변호하는데 사용되는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많은 핍박과 고통과 환란이 닥쳐와도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한 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예수의 증인이 된 사람만이 첫째부활의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모세에게 신을 벗어라 하심같이 과거 인간적인 모습을 버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고난과 환난을 각오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한 경험만이 아닌 증인된 자로서 일평생 그리스도의 증인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607 성령님은 오직 예수만 변호하신다(눅23:13-25)
보혜사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육신의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심판 받으신 것을 마지막으로 공생애를 마침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악과 약한 것들을 대신 담당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본문은 인간이 예수께 행한 잔인하고 악독한 성품이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빌라도법정은 예수가 죄가 없다고 세 번이나 거듭 말했고 헤롯 법정도 죄를 찾지 못해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어코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 죽이고자 아우성을 친 것이 인간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핍박하고 악한 말로 중상모략 하여 죽이려 할지라도 우리는 참아야 할 이유는 예수를 우리보다 먼저 핍박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도 우리보다 먼저 똑같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가 먼저 공중에 들려 올려질 것이라고 말씀했는데 우리는 예수의 약속을 믿음으로 어떤 핍박이라도 참고 견디며 싸워야합니다 예수님은 예수 이름과 예수를 증거 하다가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이 첫 번째로 부활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들과 예수의 증인들을 찾아 구름 위로 이끄신 후 만왕의 왕으로 임하실 때 왕권을 가지고 예수와 함께 천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러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천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러 올 것을 믿기에 고난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부활이 있고 첫째부활에 예수가 우리를 받아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 앞에서 죄인으로 심판 받으신 모습이 이 땅에서의 최후의 장면인데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대우였습니다
언제 예수님이 악을 행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무 죄가 없는데 인간들은 예수를 원망하고 정죄하여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되 십자가의 못 박자고 했는데 그 당시 십자가는 저주의 나무요 가장 악한 죄인을 못 박아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어 버리기 위한 형틀입니다 십자가는 지상 최대의 저주받은 나무요 십자가와 상종한 가정은 그 지역에서 끊겨서 영원히 저주받는 가정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목 박으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서 망각시켜 버리기 위한 일이지만 예수께서는 ‘내가 가면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 주리니 성령이 오시면 나를 기억시키리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빌라도 법정판결보다도 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망각시킨 예수를 성령으로 회복하고 성령으로 모든 사람의 기억을 살리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으로만 예수를 기억하고 성령으로만 예수를 변호 받게 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열심으로 예수의 무죄를 증거 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증거를 받지 않으시고 성령님의 증거를 원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오시면 나를 증거하리라’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인간의 생활과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를 변호하러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성령만이 예수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임을 인정하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 성령에 의해서 자기 이름이 전파되어지고 자기 누명이 벗겨지기를 원하시고 성령님으로 예수가 증거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는 성령님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빠른 걸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일터를 찾아가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잠깐만 멈추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변호하는 성령님의 증거를 인정한 사람들은 하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예수를 변호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531 성령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시다(요16:5-24)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영광스러워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존하시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 구원하여 하늘에 올리고 원수들을 진멸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찬양받게 될 때에 하나님 목적이 다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마지막으로 보는데 사람이 죽음에 대한 개념은 영원히 이별한 것으로 생각하여 죽음은 슬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별이라고 생각하는 제자들을 ‘내가 죽으면 너희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해서 ‘내가 죽는 것이 도리어 너희에게 유익하다’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개념을 하나님의 개념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 강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접근해 오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억지로 꾸며낸 세상적인 것으로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은 죽으면 이별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면 만난다고 하니까 ‘죽으면 만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예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각 자기 이름이 있는데 예수 이름만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실제로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고 약속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으로 오실 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계명이 예수께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야 하는 이름이요 인류를 위하여 부활해야하는 계명을 가진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신 이유는 예수 이름은 하나님이 예수에게 죽음과 부활의 계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영의 죽음을 대신하였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예수의 살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의 공로로 구원의 능력이 충만하고 완전해진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영생에 들어가는 확실한 약속과 통로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사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예수에 대한 경험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8:9)말씀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살리는 영이다‘(고전15:45) 말씀했고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 곧 살리는 영이요 생명이 있는 영입니다 살리는 그리스도 영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살리는 말씀이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살리는 영을 골고루 나눠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40일 동안 하신 말씀이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성령을 기다리게 하시는데 40일 하신 말씀이 제자를 삼고 사람들을 말씀대로 꾸준히 순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신다면 몇 사람들만 주께 가까이 할 수는 있겠으나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인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한 영이요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정을 알도록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구원받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스승이 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속에 생명이 되고 성령은 우리 안에서 인격의 인도자로서 우리를 감동시키십니다 우리는 영혼의 진정한 목자이신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온전한 능력 있는 일꾼으로 풍성한 영적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524 예수 생명을 사서 나눠 줘라(막8:27-38)
하나님은 생명이시요 영생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사람은 모태에서 가지고 나온 기존생명만으로 살 수 없는 이유는 인간 속에는 스스로 살 수 있는 생명의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는 존재는 될 수 있으나 살리는 것은 인간 속에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난 다음에 밖으로부터 생명을 주는 이가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모든 만물은 자기 속에 있는 기존생명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나무가 자기 속에 기존 생명이 있어도 스스로 살지 못하기에 태양에 의존해서 사는 것처럼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사람이 생명이 없는 것이 인간의 약점입니다 사람은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는 피조물을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목숨은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생명을 지속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과 생명을 공급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숨으실 수 있으시나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해도 발견치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숨는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필요한 존재가 되시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다니면서도 습관적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만 이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늙었다는 핑계로 하나님 섬기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노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육신이 이 땅에 있는 동안 발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전류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류에 의해서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에 의해서만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가정에 들어오는 전선은 두 줄인데 하나는 들어온 줄과 나가는 줄이 있는데 전기가 들어오는 줄이 있지만 전기가 나가는 줄이 끊기면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찬양과 감사와 고백과 헌신이 없으면 우리 신앙은 죽게 됩니다 하나님과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 통행이 있어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려는 것은 지식이나 제물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인간은 생명은 나누어 줄 수 없는 약점이 있는 존재지만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 되시고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주신 것은 생명이 없는 인간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생명을 받으려면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화해가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으면 우리가 생명을 꼭 필요로 할지라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길은 순종입니다 순종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나누어 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생명을 남에게 나눠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을 나누어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곧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나눠주는 증인이요 전도자들이요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의 긍지는 하나님의 생명을 남에게 나눠 주는 일인데 이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나눠 주신 생명은 남에게 나눠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눠줄 수 없는 내 목숨을 내놓고 남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예수님의 생명을 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나눠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517 악한 자를 이기는 힘은 예수 이름이다(마8:14-17)
하나님은 긍휼히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질병과 고통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어 질병과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의 고통과 괴로움은 부모가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담당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우리 마음의 생각에서 그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있어야 영적 생활은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것도 나의 열심을 바치고 나의 열심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시고 오직 이 땅에 보내신 예수로 인하여 계속해서 은혜를 받는 생활과 복 받는 생활이 예수 믿는 생활이요 영적 생활이요 신앙생활입니다 주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생활은 죽은 생활이고 예수님과 분리된 생활은 멸망입니다 가지는 나무의 뿌리에서 진액을 공급받아야 살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있어 은혜를 계속 유지하는 영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어 멸하신 마귀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고 귀신도 생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가운데 귀신을 생각하면 귀신이 있는 것이고 귀신을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귀신을 생각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 속에 들어와 사람을 해칩니다 성경은 귀신을 ‘악한 자’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악한 자의 손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을 배우고 알게 되었는데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또 하나의 지식을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원수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의 배후에는 어떠한 조종자들이 있는가를 확실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마귀와 귀신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에서는 인간의 고통은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 이상을 다루거나 설명하지 못합니다 선지자도 죄를 다루고 죄를 꾸짖고 죄를 학대하고 심판했지만 죄 이상은 최급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의 원인이 ‘죄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했고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관념이 아니라 죄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는 증서와 같고 하늘에 신령한 법적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이미 가르쳐 놓은 죄를 가르치지 않고 율법을 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직 드러나지 못한 부분인 죄 원인이 무엇인가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배후를 공개했는데 죄를 짓게 하는 자는 마귀요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고 알려 주셨고 사람의 모든 저주와 질병의 원인은 귀신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는 저주의 원인이 죄요 인간은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죄뿐만 아니라 죄의 원인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만 안다면 모세의 제자지만 죄의 원인까지 알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마귀도 인격이요 귀신도 인격입니다 마귀는 세상 신으로 사람을 해치는 존재인데 사람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존재이기 때문에 부인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목수로사셨으나 세례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생업을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병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사가 아닌데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제자들도 갑자기 병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의학 공부와 상관없이 어부들과 세리들을 부르시어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마귀와 귀신을 없애는 능력은 예수 이름임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능력 있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510 내 부모에게 순종하라(엡6:1-4)
하나님은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몰랐다가 예수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우리의 아버지심을 믿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우리 신앙은 예수와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천사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예수는 창조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속에 있던 분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과 의지를 포기하셨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이름으로 오시지 않고 아버지 이름 예수로 오셨습니다 예수는 오직 아버지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도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예수 자신이 순종할 권세로 죽으신 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두고 기뻐하시고 예수 이름으로 기뻐하시고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100%로 순종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예수를 본 사람만이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만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 예수로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는 오직 아버지를 성공하게 하시는 분이시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불효한 마음이 생기고 부모를 떠나려 하지만 어려서는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 없이는 못 산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하늘나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식이 아버지께 대하여 충성하고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과거 하나님의 백성이요 종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임금으로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좋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서 섬겨야 합니다 십계명의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윤리를 가르치시고 다섯째부터 열째까지는 이 땅에서 육신의 아버지를 섬기는 것을 첫째 계명으로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힘과 마음과 성품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같이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러면 누가 이웃입니까 바로 부모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같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영적으로 잘 되는 사람이요 이같이 부모를 잘 공경하면 땅에서도 잘 되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보다 높은 자가 주인이요 자기보다 더 높은 이가 임금이요 임금보다 더 높은 이가 아버지십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종이 주인을 섬기듯 했고 이스라엘은 백성이 임금을 섬기듯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조기 한 마리 안사다 드리다가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조기 사다 놓고 절하고 자기들이 먹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생전에 부모를 잘못 모셨기에 제사로 잘 모십니다’라고 핑계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실 때보다 부모가 죽은 다음에 효자인체 하는데 절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사를 폐하고 살아 계실 때 정성껏 효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신앙은 하나님아버지를 섬기고 순종하듯 부모에게도 순종하도록 교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주시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범사에 잘 되고 장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503거룩한 종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요17:1-17)
하나님은 임금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물의 주십니다 임금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피 흘리시기까지 사랑하시고 백성을 살피시고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되 당신의 독생자까지라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나의 것을 맡길 수 없고 하나님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누가 남을 위해서 자식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피 흘리기까지 열심을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세상과 전혀 다른 곳입니다 천국은 세상에 한쪽을 구분하여 만든 나라가 아니고 별나라도 아닙니다 천국은 우주 밖에 계신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하늘나라를 보내신 것입니다 천국이 이 땅에 임했는데 그 천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속하여 하나님 백성이 된 자들은 하나님이 철저하게 보호하고 지켜 주십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하나님이 지켜주시지만 하늘에 속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는 다 아버지의 것인데 아버지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가 내게 주신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라고 예수님의 결의를 하나님 앞에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주신 자들은 보호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내게 주신 내 목숨과 같은 자들을 내 이름으로 보전하여 지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자들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주시고 지키시고 아버지가 예수께 주신 예수 이름으로 보존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주지 않는 멸망의 자식들에게는 무관심 하십니다 가룟유다는 하나님께서 예수께 주지 않은 자로 하늘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하나님은 가룟유다가 멸망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께 주신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우리를 침략하도록 놓아두지 않고 단호히 하나님의 이름 예수로 침략한 영들을 저주하여 우리를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어떤 아픔이 있다면 자신이 매를 맞아서라도 우리 아픔을 제거하여 건강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영적생활을 잘하도록 하시며 우리가 하늘에 산다는 긍지와 영광을 지속하도록 마련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위대한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계시지만 결코 세상에서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단 한 번도 예수께 있는 엄청난 권위와 실력을 세상의 명예를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서 영광을 받지 않겠사오니 아버지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듯이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만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세상에 계신동안 간구하신 기도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 속하신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가지신 신분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거룩한 종 예수’(행4:30)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가지신 것은 거룩한 종 예수라는 이름뿐으로 예수님의 일생의 신분은 오직 ‘나사렛 예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소외되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 나사렛 동네에서 자란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나타날 것이 없고 예수는 세상에서는 학대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만왕의 왕이요 전능하신 분이요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오직 세상만민은 주 예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는 세계 신앙의 총재도 아니고 위대한 철학자도, 사상가도 아니고 오직 나사렛 예수이십니다 당시 종의 신분은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종이란 뜻으로 예수는 종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후사이지만 이 땅에서는 예수의 종이 된 신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426 하나님의 이름 예수를 위해 살라(말3:13-18)
하나님은 거룩한 이름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름이 있는 자와 이름이 없는 자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만물은 같은 종류에게는 동일한 이름이 주어지나 사람은 각각 자기 이름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각각 이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일평생 그 사람과 함께 존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 가운데 독특하게 명예를 바라고 명예를 존중하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명예를 위해 살고 명예를 위해 노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이 명예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큰 혼란이 왔을 것입니다 인간에겐 이름 때문에 스스로 질서를 지키게 되어 사람은 자기 이름이 야만인이 될 수도 있고 사람 이름이 영광을 얻어 인간 세상의 모든 질서의 균형을 이루게 되므로 사람 이름은 사회적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대단히 존중합니다 세상에서 돈이나 벌어서 혼자만 먹고 살기는 바라는 사람은 동물적인 사람입니다 도적은 자기 이름을 감추고 가면을 쓰고 도적질해서 잡히면 그 악명이 자기 일생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세상에 남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에 나타났을 때 직접 나타내지 않고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 주셨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으나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게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귀로 듣기 시작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자기 자신보다 크게 존중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자신보다 더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기에 주의 이름을 위해서 인간 앞에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자신을 세상에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래 자기 이름으로 약속하신 일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으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한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모세는 자기를 저주하고 욕하고 원망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모세의 신앙은 자기 이름을 생명록에서 지워져 저주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주기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영화롭게 존중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자신보다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축복방법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축복하신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각각 영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한다면 그 사람들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념 책에 기록하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자기 이름을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의로 삼아 심판하시면서도 자기 이름을 지키십니다 심판받는 자는 하나님의 명예를 모욕한 자들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훔쳐 도용했기에 하나님이 영원히 사단의 죄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아직까지 사단을 지옥에 보내지 않고 음부에 놓아두신 것은 사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단을 더욱 정죄하고 사단의 죄를 무겁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의 영적 생활에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얼마만큼 영화롭게 하느냐가 우리 신앙의 분량이요 신앙이 차지하는 몫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한 자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를 영원히 기억하시고 생명책에 기록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귀신을 쫓는 것도 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위해 존재함으로 주 예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60419 하나님께 기도를 상달시켜라(요일5:13-17)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보이시되 독생자를 세상에 보이시고 독생자를 통해서 자신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사람은 누구십니까 하나님과 예수 자신과 그의 모친과 세례요한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다음에야 사람들이 입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화려하고 영화롭게 보여졌어야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서 가장 비참한 형벌을 받는 모습은 불신자에겐 실망스러울지 모릅니다 성경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한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 멸망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지만 구원받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모습이 위로와 길이 되며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은 죄악을 묵과하지 않는 분임을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 여호와는 죄를 묵과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죄와 하나님은 영원한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 죄악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어떠한 죄인도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과 용서받을 수 있는 죄인을 잘 구원해야 합니다 죄악이란 현재의 형편이요 죄인이란 사람을 말합니다 죄악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를 골고다에서 형벌하신 것으로 증거가 되었으며 골고다 형벌의 증거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며 인간들이 용서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할 뿐입니다 사람의 죄를 우리 자신이 짊어지고서 용서 받으려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모든 죄악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맡겨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과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인류는 누구든지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시시때때로 죄를 범하는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예수의 공로를 힘입는 길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죄악과 죄인을 충분히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형벌하시지만 죄인을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죄악이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용서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하나님의 복입니다 성도의 기도 속에서 자기의 죄악을 저주해야 하고 죄인인 자신을 죄악으로부터 구출하려는 회개의 내용이 있어야 가장 건전한 기도가 됩니다 주기도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내가 지은 죄를 묵인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죄진 빚더미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고(요9:31)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악을 묵인한 상태에서는 결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예수는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까지도 형벌 받은 죄로 인정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죄로부터 용서 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신앙입니다 성도의 적극적인 자세는 용서받은 다음 구원받아 다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항상 경성해야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를 보내면서도 ‘뱀같이 지혜로워라’하셨는데 뱀은 항상 자기 앞에 적이 있음을 의식하고 경계하는 것처럼 우리 앞에 항상 시험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시험에 대항해야합니다 주기도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는 내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이 예수께서도 나를 감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경성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시험 당하는 일에 막아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권세가 기도입니다 우리는 먼저 죄악을 저주하고 용서받으므로 하나님께 기도를 상달시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412 하나님의 언약된 신앙을 소유하라(히8:4-13)
하나님은 거룩한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형상이시기에 인간에게 언약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실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헌금하고 봉사한다고 반드시 신앙이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들도 예배의식과 봉사와 헌금으로 신앙의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신들은 인간과 계약한 사실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언약 없이 예수께 정성을 드리고 지성을 드린 대가를 바란다면 이는 미신입니다 언약이 없는 신앙은 미신이 됩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6: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히브리어로 야훼인데 야훼는 ‘말씀하는 자 언약자’란 뜻으로 이는 ‘너희는 나를 언약을 지킨 자로 알라’고 하신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위대한 조물주시요 성실하신 창조주로만 안다면 우리의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신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을 인간에게 실행하시므로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이름을 높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스스로를 높이시고 존경을 받으십니다 오늘날에도 문명이 뒤떨어진 나라일수록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약속을 잘 지키고 정직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32,500여 가지를 약속하셨는데 이 모든 약속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영원무궁하신 하나님께서 낙엽과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인생들에게 직접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은 단 한 가지도 어김없이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선지자든 천사든 어떤 모양으로든지 약속하신 것은 당시 사람들이 보지 못했을지라도 후세대에게는 반드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지만 인간은 언약을 두고 만났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언약궤에 언약책을 넣어놓고 언약궤 앞에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서 언약을 통해 보게 하시고 언약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언약을 절대적인 법으로 삼고 언약 앞에 복종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다 해서 ‘소금언약’(민18:19)이라 하셨고 하나님은 한 가지 약속이라도 어김없이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에 자기 이름을 공급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의 자손을 약속의 자손으로 택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후손들에게 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귀로 듣는 백성이요 언약이 성취된 것을 눈으로 본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오늘날도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만일 모든 약속이 이루어진 다음에 성서를 기록했다면 의심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약속을 실천하시기 수백 년 전에 구약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사람에게 짓밟히시고 모욕을 당하신 한이 있더라도 약속을 기어코 성취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우상이 있지만 약속 없이 예배를 강요하는 것은 착취요 약속 받은 사실도 없는데 우상 앞에서 봉사하는 것은 맹종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가 하신 약속을 파괴할 수 없는 분임을 사람들 앞에서 분명하게 알리신 다음에 ‘다시 오리라’하는 최후의 새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은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심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연에 머물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자연으로부터 탈출시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을 자연에 두어 자연과 함께 사라져가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뽑아내어 천국에 살게하셨습니다. 본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언약궤 안에 두셨으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두어야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약을 깨지 않으므로 언약대로 하나님 앞에 속죄 받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60405 예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라(고전15:12-19)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생으로 우리를 영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이유는 오직 죽기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주 예수를 죽일 수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결박할 수 없고 못질할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으로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세상에 드려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천사보다 못하게 육체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천사들의 보호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오직 죽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 죄는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히9:22)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을 이기는 길은 생명밖에 없습니다 사망을 이길 생명은 오직 핏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에는 사망을 이기고 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생명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지 않는 자는 재앙을 면할 수 없고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애굽에 재앙을 가지고 간 천사들은 오직 피를 볼 때만 넘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영원한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교회 다니면서 당연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생활을 해야 하지만 도덕과 윤리는 신앙의 본질이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와 습관일 뿐입니다 윤리와 도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은 바로 주의 보혈을 믿는 믿음입니다 주 예수의 보혈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은 까무러쳐 기절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법에 의해서 완전히 죽으셨고 인간들이 찌르고 찔러서 죽인 다음에 무덤에 집어넣고 끝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히 죽으신 다음 비로소 삼일 만에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증거는 너희가 예수를 죽였고 너희의 법과 권세와 수단으로 죽였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변함없이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의 증거는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고 예수께서 다시 사신 것은 예수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다시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약속하신 것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절망이요 예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요 전도하고 주를 위해 봉사하고 순교하는 것도 헛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과 같이 우리도 다시 살아난다는 확신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부활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 부활의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 것도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믿음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예수가 부활한 것 같이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례는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심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도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성령을 보내 주리라’ 약속하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에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시고 보좌우편에 오르신 다음에 열흘 후에 드디어 성령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오늘 부활주일에 예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예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부활의 약속임을 성령하나님의 증거로 확실하게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329 오직 예수님만을 생각하라(요14:1-7)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는 길이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길을 택하지 못해서 방황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제 길을 찾느냐고 몸부림을 치지만 이 세상에는 길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영원한 권세나 영원한 영광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지금보다 더 버는 것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여 자기의 길을 가려고 몸부림치지만 결국은 길을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에는 자기의 길을 각각 잘 선택하려고 하지만 모두가 길을 잃었기 때문에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세상에 길이 있다면 예수께서 길이 되려고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에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 예수만이 세상에 길이십니다 사람이 늙으면 죽고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죽는 길과 죽은 후에 어떻게 멸망당할지도 모르는 채 사람의 마지막 길을 막연히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주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와 함께 전도여행을 했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죽자 디베랴 바다로 가서 다시 자기의 생업인 고기잡이를 하러갔습니다 이유는 제자들은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행1:4)말씀하신 뜻은 ‘지금 너희가 가고 있는 길은 향방이 없는 것이니 정지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하셨습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와 예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다른데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세례라면 예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는 죄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속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세례는 예수께서 죄 없이 죽으셨다는 것을 인정하여 예수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고백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요한으로 끝났지만 요한이 하나님 의로 이루기 위하여 베푼 세례는 이제 성령하나님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의 세례를 받아 ‘너희는 네 길로 가지 말고 성령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주 예수를 자기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기에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로 인한 사람만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주 예수가 길이심을 믿고 따른다면 순간의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로만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진리는 인간을 벗어나서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칙이 진리인데 예수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위로하신다는 것이 진리요 예수만이 진리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소식은 불안과 초조만을 가져다 줍니다 성경은 진리를 말하고 있는데 사람이 진리를 모르기에 운명이라는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아는 자들은 숙명론자들이 아니라 운명을 벗어 버리고 약속하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자들입니다 주 예수의 법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인데 진리를 아는 사람은 부지런히 주 예수께 도움을 구합니다 예수는 ‘나는 생명이다’하셨는데 생명은 죽어도 사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늘은 ‘산 자’만 들어가는 곳인데 누구든지 주 예수로 인하여 생명을 얻지 않고는 결단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주야가 예수만 생각합니다 예수 재림의 날이 우리의 소망이요 부활의 날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살아야 할 본향입니다 우리는 밤낮 없이 주 예수를 고대해야 하는데 재림의 소망이 없는 것은 부활에 대한 야심이 없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 주는 생각은 불안과 공포와 걱정과 근심뿐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세상생각을 포기하고 예수의 생각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322 주 예수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고전1:18-25)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은혜는 선물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주는 선물에는 뜻이 없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선물에는 참으로 깊고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가치를 시인하는 정도가 그 사람의 믿음과 기쁨의 분량이 됩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기쁨과 믿음이 되십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조금도 보태거나 개입되지 않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는 100% 하나님의 일방적인 공로요 계획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공로만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에는 두 가지 피치 못할 심판 있는데 하나는 이 땅에서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받는 심판은 천국과 지옥을 구원하는 심판으로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영생을 얻었고’(요5장:24)라 했고 ‘믿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3:18)고 했는데 여기 안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았고 라는 과거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심판은 죽은 다음에 받는 것이 아니라 천당과 지옥의 갈 것이냐 영생과 멸망을 받을 것이냐가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 이미 지옥 가기로 작정된 자와 멸망의 심판을 받은 자에게 남은 것은 형벌뿐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이 땅에 있을 때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나중에는 은혜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성도는 이후에 상벌에 대한 심판이 있는데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고 상은 우리가 순종함과 충성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일수록 목숨을 다하고 순종합니다 예수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순교를 각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를 사랑합니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계18:6) 말씀하셨듯이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상금은 게으른 사람과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상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보다 상에 대한 이야기가 세 배나 많은데 이유는 사람에게 상급을 향한 열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양합니다만 사양은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미 우리 목숨에 관한 문제를 책임 지셨는데 목숨에 관한 문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관계되는 것을 우리에게 책임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상급은 순종의 의해서 얻을 수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끔 ‘십자가를 믿으라’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나 성경은 ‘십자가를 믿으라’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믿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십자가는 정죄 받은 인류죄악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저주를 받아야 되는 저주나무가 십자가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받기 위해 심판자 앞에 나온 인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보시면 인류는 멸망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저주를 감춰 주시기 위해 예수를 대속물로 삼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저주가 달린 십자가를 보시면 우리는 멸망 할 수밖에 없으나 십자가의 저주를 덮으신 예수를 보시면 우리 죄는 하나님이 망각해 버리십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십자가를 기억하라 하는 힘보다 아들을 기억하라는 더 큰 힘이 있기 때문에 주 예수는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 인간의 죄를 망각시키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망각하심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죄를 망각하심은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죄에서 영원히 구원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20260315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시는 분이시다(요14:13-21)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하시되 자신의 일을 쉬지 않고 끝까지 주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밤이나 낮이나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피조물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사단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하나님의 천사들 중에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을 버리고 자기 위치를 떠난 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를 버린 자를 심판 때까지 흑암의 가두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에게는 각각 자기 일을 주셨습니다 아담에게는 에덴의 동산지기로 경비원이나 국경선을 지키는 군인들과 같이 밤낮없이 지키는 일을 주셨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하는 일을 돕는 배필로서의 일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일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와의 범죄입니다 아담 역시 자기의 일을 버리고 지배하는 자가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를 실망하시고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아시는 것 같이 우리도 각각 자기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려고 합니다 본래 이 땅에는 일터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고 식물을 먹더라도 땀을 흘려야 먹고 여자는 아이를 낳더라도 수고해야만 아이를 낳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영광의 왕실에 태어나 평안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에 오셔서 어려서부터 목수의 일을 했고 육신을 양육한 부친을 도와서 함께 일하셨습니다 예수는 공적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 예수의 공적 활동이 인류 생활에 표준입니다 이 땅은 일하는 곳이고 이 땅은 쉬는 곳이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막14:38) 하신 말씀은 밤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는 작업만이 있을 뿐 우리가 쉴 곳은 저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마치기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도 그날의 할 일을 그날의 완성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날 해야 할 자기 일을 하지 않기에 일이 밀리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은 좀 먹게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을 누적되면 365일 가운데 자기가 일을 하는 날은 실제로 100일도 못 되고 결국 265일을 허비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갑절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에 ‘자기 일을 하고 너희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고 하셨는데 이는 네 손에 잡은 일은 네가 스스로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순종하는 자기의 일을 버렸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불순종하여 자기 일을 버림으로 저주받고 심판받는 인간들에게 용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첫째, 회개가 있어야합니다 사람이 회개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회개해야합니다 생명은 영원하지만 회개는 영원하지 않는데 어느 날에는 회개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회개는 인간이 자기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용서를 약속하셨는데 용서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셋째, 용서의 약속을 받은 우리는 재헌신에 순종해야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해야합니다 본문에 주 예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에 시작과 끝을 시행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열심히 일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308 하나님의 것과 자신의 것을 바로 알라(시100:1-5)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천지간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만물 중에 하나라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 사람의 구원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조물주십니다 예수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부인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주인이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보지도 않고 자기가 세상에서 실패한 것을 내세워서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없다고 결론내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결코 세상에서 푸념과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니까 자기 맘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신앙이 없는 것이 원칙인 것처럼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만일 자기 뜻대로 세상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방향을 바꿨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왜 광야로 몰아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방법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만나’(신8:3)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영원히 목마르거나 주리지 않고 죽지 않는 양식으로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공급받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모든 만물이 주 예수의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절대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학2:8)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세상 것이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세상 일과 물질이 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의 미움에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스스로 공경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한 인격이라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6:19-20)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람의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소유할 권리를 주신 다음에야 나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신8:18) 우리 영혼도 주의 소유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다음에야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 영혼을 소유할 권리를 얻지 못하면 세상이 우리 영혼을 소유하고 사용하여 결국 영원한 사망에 빠지게 됩니다만 내 영혼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십니다 ‘소유’의 본래 개념이 무엇입니까 소유는 잠깐 있다가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자기의 것을 말합니다 소유가 자기 것이 되지 않고서는 영원히 자기소유가 되지 못합니다 잠깐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 소유가 아닙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은 하늘에 맡길 수 없습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제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늘에 맡길 능력과 권리가 없고 수입이 비록 적을지라도 자기 것이 된 것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은 재물이 자기 것이 아니므로 자기가 소유한 재물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에는 포기하고 죽게 됩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지만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자기소유인 것만을 하늘에 맡길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사람이 자기소유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바친 소유를 맡아서 영원히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 빼앗긴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억울한 생각으로 용기를 잃게합니다 본문에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신 양이로다’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모든 소유를 맡김으로 우리 영혼과 물질이 내 소유로 인정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301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라(마28:16-20)
하나님은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신이시다 하나님 영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되시고 하나님이 영이 되시고 하나님이 신이 되시는가의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맹종하는 신앙생활이 되기 쉽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신이시다’에서 신은 인격을 지닌 하나님이란 뜻으로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인격은 지성 감정 의지가 겸비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도 인격입니다 사람이 육체와 혼은 모두 인격이라고 합니다 육체는 원문에는 ‘쏘마’라고 하고 혼도 ‘쏘마’라고 하여 둘 다 인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와 혼을 분리시켜 놓으면 인격이 되지 않습니다 혼이 육체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인격이 됩니다 사람은 육체에 속한 인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으로서의 인격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하나님이 신에 있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사람의 몸에 있기에 하나님과 인간이 다른 점입니다 또 ‘하나님이 영이시다’할 때 영은 ‘프뉴마’라고 하여 인격이란 말이 아니라 영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다’(요6:63)라는 말은 영적이라는 뜻으로써 모든 것을 뛰어넘어 초월한다는 말로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말씀이시다’할 때 말씀이란 인간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신의 소리입니다 인간은 물체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인간은 신의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귀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에 피조물인 인간의 귀에 자신의 뜻을 들려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을 뛰어넘어 초월하여 피조물들에게 가장 가까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영원히 뵙지 못하고 신의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신을 만날 길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말씀이신 하나님이 가까이 접근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조건과 수단과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더 가까이 나타내 주십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마지막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이며 하나님이 최대한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육체와 인간의 육체는 같은 것이 아니고 말씀이신 하나님은 죄가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의롭고 훌륭하고 수양이 잘 되었다 해도 죄속에서 태어난 죄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거해야 하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거할 때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책이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이해하면 미신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신이시기에 모든 것을 뛰어넘어 말씀으로 우리 귀에 듣게 하시고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모든 것을 초월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말씀이시기에 우리를 말씀에 거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떠나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을 접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는데 우리에게 잠깐 즐거움이나 표적을 남기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은혜를 입혀 주려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기에 자신에게 변화가 없고 온전한 믿음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집을 지은 게 아니라 오직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제자를 낳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생활이 모범으로 스승이 될 수 있으나 주 예수를 아는 복음을 모르면 결코 제자를 낳을 수 없고 열심히 있는데 제자가 없다면 열매 없는 나무와 같기에 우리는 세상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주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22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라(창4:1-15)
하나님은 주 예수로 인해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는 세례 받고 올라오실 때 ‘저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습니다(마3:17) 주 예수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셨습니다(히11:6) 우리가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지식이 많고 열심히 있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이 화목하고 훌륭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는 가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믿음만을 인정하십니다 세상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장사꾼이 장사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인류대학에 합격하는 이러한 믿음을 말해서 신념이라고 합니다 신념은 인간이 사다리를 놓고서 하나님께 올라가려고 하는 것과 같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하늘에서 줄을 내려서 줄을 붙들고 따라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능력이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신념은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정하시고 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받으십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가인과 아벨 두 사람의 제사를 드린 사건이 나오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인은 정성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안 받으셨고 아벨은 정성이 있어서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의 문제는 정성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은 정성은 같았으나 믿음이 달랐습니다 당시 가인은 형으로서 장자권이 있었고 아벨보다 모든 면에서 우선권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가인의 믿음을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믿음을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믿음은 자기의 열심을 통해서 제사를 하나님께 상달시키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형 가인은 하나님이 피를 보신다는 것을 알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수천 년 후에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의 믿음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희미하게나마 이미 하늘에서 창세전에 하나님이 약속한 피의 증거를 가지고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히11:4)
만약 하나님이 곡식을 드린 믿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받으신다고 하셨다면 가인이 성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이 받을 기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다고 작정하셨습니다(벧전1:19-20)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제사라도 하나님께 예수 공로 없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수 공로를 입은 기도와 예배를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의 공로를 입은 믿음만을 인정하십니다 아벨의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중간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림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양의 피를 뿌려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셨고 성전기구들도 피 뿌림으로 거룩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한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약속한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공로 없이 내 정성 내 수단 내 열심으로 나의 일평생을 다 받쳐다할지라도 정성과 수단과 열심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일예배는 우리가 처음에 하나님께 드린 믿음을 평생 지속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모형입니다 예배의 실패는 일주일에 실패로 연결되며 일주일에 실패는 일평생을 실패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벨처럼 믿음이 상달되어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이 받으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60215 하나님의 일은 예수 믿는 일이다(요6:22-40)
하나님은 살아계신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희생했는가를 아는 것이 효자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다 주시려고 하시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을 신뢰함과 의지함이 없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매우 어리석고 비참한 일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었을 때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지만 정작 자기 자식을 살릴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사신 것 같이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능력이 있고 살리실 약속이 있고 살리실 계획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약속이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실 수 있는 가능한 것들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서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믿지 않으면 이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사람이 있고 쫓겨나 문 밖에 나가서 울며 이를 감히 있으리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마22:13) 우리가 교회당에 드나들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우리 속에서 운동해야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의 이루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하는 말씀을 가지면 실제적으로 어떤 역사가 없어도 마음속으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오해합니다.
사람 마음이 몸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여서 더 큰 것을 움직이듯이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더 큰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너희가 영생을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일을 하오리까’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교회의 지도자나 믿음이 좋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각각 하나님의 일을 하되 하나님의 일은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제자가 또 ‘그러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하자 예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받아서 너희에게 준 것같이 하늘로부터 온 산 떡을 너희가 먹으면 이것이 예수 믿는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양식으로 알고 주 예수의 말씀을 주식으로 삼으면 이것이 예수 믿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사람은 밥을 주식으로 삼고 국과 김치를 먹으나 밥은 아침저녁 1년 내내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지만 별미는 한두 끼 먹으면 싫증이 납니다 이같이 우리가 매주 설교를 듣고 매일 성경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이유는 성경 말씀이 우리 영혼의 주식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군것질을 못 하게 하는 이유는 주식의 맛을 잃어버리면 병들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양식’은 ‘주식’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주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어떻게 믿습니까? 주 예수가 양식 곧 주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주식으로 삼았지만 싫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주식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일평생 믿고 살아도 항상 싫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양식을 들어도 들어도 계속 듣는 양식의 말씀이 영생이 됩니다(요6:32)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식으로 삼아 항상 주의 말씀 먹고 마시는 것이 영생이요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의 양식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 믿는 일이요 예수 믿는 일은 예수로 주식을 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터져 나오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208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전능자이시다.(마11:1-19)
하나님은 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도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내 가정에 온 땅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려 해도 세상에 의인들로 가득하다면 은혜가 필요 없을 것이나 이 세상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는 죄인으로 가득한 절망의 처소라고 하였습니다.(롬3:10) 세상에는 하나님을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세상은 많은 수의 의인 중에 죄인도 함께 섞여 있어서 섞여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전 인류가 모두 은혜 받아야 할 자들이기에 이 땅에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은혜 받는다’는 것은 ‘용서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주 예수로부터 은혜 받은 것이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열심히 무엇입니까? 우리 열심은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패륜아 같고 쓸모없는 저주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수년 동안 몸부림쳐도 길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무관심하십니다. 죄인은 먼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 외에 은혜 받을 만한 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거부하는 것은 은혜 받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전도를 위해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에 어느 마을이나 가정에 가든지 먼저 복을 빌라고 하셨는데 은혜가 그 가정에 임하도록 먼저 복을 빌 것을 명하셨습니다(마10:12-14) 하나님이 크게 쓰셨던 사람 중에는 어려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많은데 모세는 어려서 은혜를 받더니 나이 들어서도 하나님께서 크게 쓰셨습니다 이삭 야곱 사무엘 다니엘 디모데 등 어려서 은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은 가정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지 못한 자는 절대로 쓰임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은혜 받는 자만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제 소원을 하나님께 은혜 받는 것입니다 지금 받은 은혜는 수십 년이 지나도 효력이 있고 은혜 받은 자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은혜 받은 자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세례요한의 일은 예수께 세례를 줌으로써 예수를 세상에 나타내는 사명이요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것으로 세례 요한이 한 일을 마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관심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과연 예수가 이 땅에 오실 메시아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선생의 명을 받아 예수께 나가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마11:3)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고들은 것을 요한에게 가서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가 계신 현장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오신 예수에 대해서 선지자들의 예언은 병을 짊어지고 죄와 슬픔을 담당하실 분이요 가난과 허물도 대신 지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찾아간 현장에는 소경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고 문둥병자들은 나음을 입었고 죽은 자도 살아나고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가난한 자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여기 가난한 자는 누구입니까? 돈 없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간절히 갈급한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여 몸부림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고 했습니다 은혜 주시기를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는 바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만일 교회가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면 생명 없는 우상 앞에 복종하고 우상 앞에 절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에 주님의 능력이 임하도록 은혜를 사모하기를 축원합니다.
20260201 예수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라.(벧전1:13-25)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을 모신 자들과 도구들도 다 거룩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뵐 수 없고 주예수를 모실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거룩하다 혹은 거룩하라’ 하는 말씀이 3,4백번이 나옵니다. ‘거룩하라’는 말씀은 많지만 하나님이 거룩하시다 하는 말씀은 2,3번밖에 없는데 이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본래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들을 ‘거룩하다’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데만 계시고 거룩한 곳에만 영원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로 시작하여 공중과 땅과 수풀과 해와 달과 물고기와 새와 여섯째 날 동물과 사람을 만드셨지만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계시지 않고 모든 일을 다 마치신 후에 제 7일에 복을 주어서 거룩하게 하신 안식일에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없어진 것들과 함께 계시지 않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은 거룩함과 함께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위해서 우리가 거룩하시도록 주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먼저 주 예수를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예수를 통해서만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려 제단을 거룩하게 한 다음에야 하나님이 영광 돌리는 제단으로 사용했고 피 뿌림을 받은 기구들만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했는데 이렇게 짐승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로써는 하나님은 영원히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흘려주신 보배로운 피를 모든 사람의 심령에 뿌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말씀하신 것은 우리 심령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심령이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지도하고 인도하고 감동하심으로 우리를 성도라고 부르십니다(고전3:16)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켰지만 성령께서 하나님 백성에게 오지 않았으나 성령하나님이 예수께서 고난 받으신 다음에야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심령에 거하십니다. 성령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한 성전에만 오십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날 예수의 피로 거룩해진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성령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성령은 거룩해지지 않는 자에게는 임하지 않기에 성령하나님이 거하는 자는 주예수가 그 사람 안에 있는 이유는 예수의 보혈과 성령하나님이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이 없이는 우리의 기도를 상달 시킬 수 없기에 거룩함 없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기도의 응답이 없는가를 불평하기 전에 왜 응답 받을 수 없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거룩함 없이는 하나님이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아무 허락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예수의 피로 거룩해진 자들이라도 더러운 것을 구하면 그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허락을 받을 수 없고 불의한 자들이 더러운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대로 두십니다. 거룩한 자들은 항상 거룩한 것을 구하는 거룩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것은 더러운 자들이 갖도록 두시고 거룩한 것은 거룩한 자들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거룩한 자가 부정한 것을 구할 때 형통했다면 이는 하나님이 그를 내버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들이 불의한 것을 생각할 때는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거룩하기를 원할 때 거룩하게 하십니다(살후2:11-12) 우리가 거룩해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하나님 복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에 속한 복보다 더 온전하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복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125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눅5:17-26)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만 치료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 영혼과 육체와 모든 환경까지도 다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혼과 육체와 모든 환경에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예수를 육신으로 보내어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실 일과 하시는 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병을 고치셨으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가나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고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가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로 인해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작정한 것들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정한 것들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직 주 예수를 지극히 사모해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믿고 앙모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예수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사모할 때 하나님도 더욱 가까이 하십니다.(벧전2:2) 본문에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모하여 가까이 하고자 했습니까? 주 예수 앞에 바짝 가까이 하기 위해서 모든 장애 요소를 무릅쓰고 지붕을 뚫고 내려갔습니다. 중풍병자는 그토록 사모했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더 간절히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약속된 것들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 사함 받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저는요 예수님이 용서하시면 감사하고요 안 해 주셔도 별 수 있나요”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속죄 받기를 소원하신다면 우리도 주 예수님이 소원하는 것만큼 죄 사함 받기를 소원하고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주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예수께서 죄를 진멸하기 위해서 오셨고 이제 우리는 예수로 인해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는데 이때 아무 이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 하신 말도 거짓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는 것은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사시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예수만이 사람의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 사함 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얼마나 죄 사함을 원하셨던지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원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어디 가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죄 사함 받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죄 사함 받아야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바가 내게도 축복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약속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는다면 우리 영혼도 잘되고 우리의 물질도 잘되고 우리 건강도 얻고 이 세상에서 백배로 성공할 수 있는 길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형편이 어려운 숙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 형편이 나의 한계라고 인정한다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백배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위해서 목숨을 다하는 사람은 자기의 실력과 자기자격보다 백배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백배 실력과 자격을 받되 핍박을 겸해서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다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증거는 예수의 영생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약속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백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한계를 벗어나서 죄 사함을 받고 백배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02260118 주 예수님의 축복을 받으라.(마14:13-21)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만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은 가정의 난리란 뜻입니다 가난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와도 가정이 환란이 오고 돈이 많은데 자식이 속을 썩여서 가정에 환란이 오고 여러 가지 일은 잘 되는데 부부간의 불화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나라의 전쟁과 흉년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오는 국난도 있습니다. 가난을 해결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복 밖에 없습니다. 복은 가난을 면하는 길입니다 복은 신령한 것을 받게 하고 현실적인 가난을 면하는 길입니다 ‘심령이 가난 자는 복이 있나니’(마5:3) 말씀은 가난하기 때문에 복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육체적 형편이 가난한 사람 모두가 가난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우리 영과 육의 형편도 부유해 집니다. 성경은 가난을 벗어나는 순서는 먼저 영적으로 부유해야 형편도 잘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요삼2절)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를 복음이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 자신이 복음이 되신 다음에 이 땅에도 복을 내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셨고 우리를 축복하심으로 우리의 형편이 잘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절대적으로 유익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예수께서 매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이 짊어지셨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셨습니다.(고후8:9) 곧 우리가 주예수로 인해서 성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영원한 영혼의 문제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형편을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예수로 인해서 영혼이 잘될 권리가 있고 우리 형편도 절대적으로 잘될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활발한 지역과 가톨릭 영향 하에 있는 지역과 불교가 지배하는 지역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데 불교나 가톨릭의 힘이 강한 지역은 가난하지만 기독교와 왕성한 지역은 물질적으로 풍요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주신 복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앞으로 전진 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예수께 부활과 생명을 약속 받은 자들입니다 기독교는 성령하나님이 임하시면 권능 즉 은사를 받고 땅 끝까지 가는 적극적이고 생명이 충만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먼저 영혼이 잘 되고 영혼에 주어진 능력으로 이 땅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부유를 주시는 성령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를 믿는 심령에게만 오십니다. 사람이 율법을 좇아 성령하나님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적인 부유는 성령하나님으로 인한 권능을 말합니다. 즉 은사를 말합니다. 성령하나님이 임하시면 은사가 나타나고 우리 영혼을 부유하게 하십니다. 사람은 자기 지혜와 지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성령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의지가 필요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있어야 하고 세상을 사는 신념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신앙이 있고 신용이 없는 사람은 의지가 약하고 게으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있어서 기도는 많이 하고 믿음도 좋은데 신념이 없어서 참으로 게으르게 삽니다. 또 신앙은 있는데 신용이 없는 사람이 있어 불신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웃에 대한 신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려면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부유하게 하시려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본문에 예수께서 주님의 손에서부터 이적이 나타나서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받아 가지고 가서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주시는 복을 지속적으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260111 주 예수의 빛으로 사는 성도(창1:1-5)
하나님은 전능하신 조물주이십니다. 본문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루 사이에 없던 일이 생겨나고 이루어지는 일은 오직 조물주만이 하실 수 있는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고 신기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고 확실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어김없이 이루어집니다. 신적작정이란 아무도 부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방법이 만세 전부터 있었던 우주적이고 신적인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뜻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때문에 인간들이 세워 놓은 계획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영원히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의 믿음이요 생명입니다. 벌레나 동물들은 얼마간 목숨을 유지하지만 육체가 끝나면 없어집니다. 인간이 호흡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목숨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람의 목숨 같은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재물을 많이 취한 사람이 ‘내 영혼아 평안이시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나 재물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생명이 있어서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율법이 진리로 생각했으나 주 예수가 오심으로 율법도 변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 율법이 변한다는 것은 율법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보충된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율법의 용서가 보충되어야만 진리가 확고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사모할 수 있는 마지막 시작점이 율법입니다. 율법을 완성시킨 생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보다도 더 온전한 진리가 생명입니다 진리나 영원한 것이나 하나님 뜻이나 생명은 다 같은 것입니다 사람에겐 진리가 없기에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은 하나님 뜻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함으로 요동하지 않고 영원한 기반 위에 자기를 세워야 합니다.(유20) 성경에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마7:26)란 말은 냇가에 집을 짓는다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전 시대 것들도 떠나 떠내려가고 장래세대 것들도 사라져 간다고 했습니다.(전1:2-11)
세상에 있는 모든 방법은 자꾸 개량됩니다. 세상 법도 진리가 아니기에 변하고 문화와 문명도 변합니다. 인간들의 생각도 진리가 아니므로 잠깐 후에 무너져 내리는 모래 위에 집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영원히 계량이 없습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 의존한다면 영원히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한해가 가고 새해가 되었다고 빛이 변한 것이 아니고 공기가 새 맛으로 더해진 것도 아니며 공해는 더 했으면 더 했지 좋아지지 않습니다. 소망 없는 인간에겐 새해가 쓸모가 없고 화장터와 공동묘지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소망 있는 자들에게는 주 예수의 만날 날이 더 빨리 다가고 있습니다.(롬13:11-1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는 자는 보좌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하늘의 소망 있는 자는 하늘나라로 점점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만물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만물의 자유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생존하는 것입니다 오직 의지를 가진 자에게만 죄가 있습니다. 짐승은 의지가 없기에 죄가 없습니다. 죄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천사나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습니다. 의지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아니면 자기 스스로 사느냐로 죄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유를 택하여 순종하면 영생할 수 있습니다 지옥이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유를 택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유를 택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지배합니다. 빛은 새날을 열었습니다. 새해는 하나님의 빛 되신 예수의 말씀으로 살아서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202260104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름은 예수시다.(마1:18-25)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 하셨습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는 이 땅에 없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와 율법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신앙심과 종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들이 오신 이유는 선지자나 율법이나 신앙심이나 종교가 완성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셔야 할 만큼 세상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는 자들을 주의 자녀로 삼으려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멸망의 자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서 보내셨습니다.(요6:39) 하나님은 아들을 배척하는 자들을 위해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예수를 영접하는 자들을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모든 사람 속에 생명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고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꿈이 있어도 생명이 없으면 우리의 꿈도 사라지고 맙니다. 성경의 생명은 목숨과 다른 개념입니다. 목숨은 육신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호흡을 유지시켜 주지만 생명은 영혼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 줍니다. 생명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영원한 삶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 눈으로 아들의 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 땅에서 문화에 취하고 출세하거나 정치하는데 주 예수가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죽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아들의 효력이 나타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율법에 복종하여 복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우리 사람들이 죽는 순간에 더 큰 효력이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는 순간에 속죄 받는 영혼과 속죄 받지 못한 영혼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집니다. 이때부터 아들의 효력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쉼 쉬는 동안에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기회와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빨리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라고 재촉하십니다. 세상 종교는 의식과 예전만 갖추면 하나님의 아들이 없어도 율법과 선지자에 의해서 선함과 진실함과 복종하는 것과 믿음과 순종과 의로움과 복 받은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들이 없으면 구원받는 일만큼은 율법으로도 선지자로도 종교로도 구원을 얻지 못하기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를 이 땅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소망과 꿈을 포기하고 오직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하여 하늘의 주인이신 주 예수를 마음의 모시게 함으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피 흘리게 하시기까지 하나님 원하시는 뜻입니다 예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구원을 받고 생명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사람은 예수 이름이 자기의 기업으로 삼는 자입니다 우리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예수 이름이 자기 기업으로 삼기를 축원합니다.
20251231 사시사철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라.(신11:12)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유일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같은 영원하신 신은 없습니다. 영원하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시작한 날이 있습니다. 만물이나 천사도 영들도 시작된 날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지으신 시점이 있습니다. 지어진 모든 만물에는 때와 귀한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모든 것을 감시하고 감독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 입은 자임을 아는 자들을 하나님 눈으로 감시하십니다. 하나님 어떤 위험이 있을 때도 홀로 두지 않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를 덮고 우리 위에 계셔서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위험하다’ 판단하시면 바로 건져내십니다. 하나님의 종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자가 입을 벌려 다니엘을 삼키려 할 때 하나님은 사자 입을 봉해 버렸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사람들에게 결박되어 유황불속으로 끌려갔을 때 하나님의 눈이 다니엘의 친구들을 감시하시다가 불속에서 불길이 뻗치지 못하도록 막아 주셨습니다. 하나님 눈이 항상 우리를 감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선까지는 묵인하시다가 어느 정점에서는 우리를 찾아내어 건져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 눈이 우리위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감시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감시를 피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멸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이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한 세대가 끝나는 순간 또 한 세대는 새로 시작됩니다. 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 눈이 항상 우리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요 우리의 소망이요 신앙이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365일간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가정에 능력과 권세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이 감히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던 이름이었지만 ‘예수’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주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얼마든지 사용하라고 주신 이름입니다. 만약 우리가 24시간 호흡하는 숨소리와 같이 계속해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면 주 예수 이름을 통하여 일어나는 모든 역사와 권능은 굉장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불신앙과 어리석은 지식과 문화에 밀려 예수 이름이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화보다도 그리스도를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항상 감시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르라고 주신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예수 이름은 전능자 이름이요 구원자의 이름이요 축복자의 이름이요 치료자의 이름입니다. 건축자의 이름이요 전쟁에 능하신 이름이요 피난처의 이름이요 목자 되신 이름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야 합니다. 예수 이름은 기도할 때만 사용하는 장식용이 아니라 항상 우리의 호흡이 되도록 늘 사용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라는 원문의 뜻은 그침 없이 우리는 계속해서 부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의지하는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 이름이 우리 가정의 기업과 산업이 되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의 기업을 함께 섬길 수 없기에 우리는 돈과 제물이 성공 조건이 아니라 예수 이름이 성공 조건입니다. 세상 문화는 우리가 세상 있는 동안만 도움이 되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기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 예수만을 사시사철 의지하시길 축원합니다.
20251228 예수 복음 전도를 위해 힘쓰는 송년주일(행8:1-25)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과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두려움이 있지만 아버지로 믿으면 아버지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신앙하는 것입니다. 불순종과 불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한 결과는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케 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일입니다. 예수께서 하셨던 일은 인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것이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과연 무슨 일을 하셨던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라.’ 전파하는 것은 예수하신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사랑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부활이 있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때문에 반드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신 것은 우리로 예수를 전하고 예수께서 하신 일들이 우리 안에서 계속 진행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예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예수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성도들이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도록 능력을 주시고 감동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예수의 일을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삶에 관한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죄인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죽음 당했던 예수께서 죽으신지 3일 만에 죽음의 현장인 무덤을 박차고 삶의 현장인 제자들 앞으로 걸어 나오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현장은 친히 본 제자들은 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이 되어 예수의 일을 전하고 싶었지만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에게 출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성령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전에는 움직이지 말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은 성령하나님을 받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령하나님으로 인해서 시작된 교회가 크게 부흥하자 유대교로부터 큰 핍박을 받게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박해를 피해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거침없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예수의 일을 했던 자들 중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늘 예수님과 함께 하던 예수의 제자들보다 복음 전도의 열심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주 예수를 가까이 모신 적이 없었지만 성령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성령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의 일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능력을 행하게 하셨지만.(마10:1) 오순절 이후에는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다음부터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 충만하여 나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전도자들은 핍박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전도했습니다. 성경에 성도는 예수의 증거와 목 베임을 받는 자들이 예수를 증거 하다가 목 베임을 받은 증인들이 있었습니다.(계20:4) 성도는 예수의 일 곧 복음 전도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복음 전도의 장으로 몰아가고 주의 일을 위하여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처럼 성령 충만을 받아서 예수님의 일의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225 예수 탄생의 큰 기쁜 소식을 전하라.(눅2:8-14)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징벌하셔도 할 말이 없고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마귀와 구별하여 영원히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교회의 회원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로 인해서 거듭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로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율법에서 자유를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라는 뜻으로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손에서 벗어난 것은 자유가 아니라 타락입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를 얻고 마귀를 정죄하는 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율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결박해서 심판하고 형벌하도록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율법에서의 자유는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이지만 진리로 자유 한 것은 진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진리 안에 삶으로써 이제는 우리를 구속할 수 없는 자유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영생하심 같이 우리도 영생하고 하나님의 행복하심 같이 우리도 행복하고 진리는 하나님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자유는 해방된 것이지만 진리에서 자유는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진리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자유를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진리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진리 안에서 자유를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고 자유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도우십니다. 진리 안에 자유는 율법보다 더 강력한 능력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외모로는 결박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중심을 결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심을 살피시고 감시하시며 변하게 하십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마12:31) 성령하나님의 감동을 무관심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 훼방하는 자들은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지옥에 가지 않으나 다만 성령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영원히 져야 합니다. 열 번을 훼방했으면 열 번에 대한 책임을 금세와 내세에 반드시 져야합니다. 성령훼방에 대한 책임까지 예수께서 담당한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는 이제 성령하나님의 법으로 인도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은혜를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주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이 12월25일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많으나 어쨌든 1년 중에 어느 한 날에 태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어차피 예수께서 해마다 새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사실에 대해 매년 하루를 정하여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탄을 시인한 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예수의 탄생일이 있다는 자체가 예수께서 역사 가운데 오셨다는 근거입니다. 우리 믿음은 예수가 역사 가운데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성탄을 부인하는데 이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한 것과 같고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요이1:7)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2천 년 전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이미 창세전에 하늘에서 하나님이 예정한 사실입니다.(벧전1:20) 창세전에 예정한 일이 2천 년 전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라도 똑같이 예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성탄을 시인함으로 예수께서 육체로 임하신 사실을 역사적으로 인정하고 지금 우리가 성령하나님으로 인하여 믿음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221 주 예수께 배은망덕하지 말라.(삿11:34-40)
하나님은 정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기에 정직한 자를 도우시고 정직한 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형통케 되는 일에 절대적인 길이 되시고 이치와 진리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라면 주 예수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한다면 예수께서 과연 무시를 당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손해 보는 쪽은 무시하는 인간들뿐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환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복을 끝없이 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배은망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때 그 은혜를 끝까지 잘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아 배은망덕하면 안 됩니다. 교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이 번창하다가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순간에 망하는 경우가 많이 봅니다. 은혜를 망각하는 자들이 돌이켜 노력해도 사업에 다시는 봄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속인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령하나님을 속인 결과 즉시 혼이 육체를 떠나고 육체는 썩어버린 흙덩이가 되어 버렸고 은혜를 배은망덕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위대하지도 않고 굉장한 존재도 아닙니다. 아무리 건강한 자라해도 영혼이 육체에서 쑥 빠져버리면 한 줌의 흙이 되고 맙니다. 사람의 육체도 하나님이 거두시면 육체는 한 줌의 흙이 되는데 하물며 사람 속에 있는 복이야 어떻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예수의 공로를 망각하지 않고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바로 우리를 돕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영생을 얻도록 하셨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고자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셨고 우리에게 복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요14:9)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공경하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요5:23) 사람이 ‘예수를 죽이소서.’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죽일 것을 요구한 것이요 예수를 핍박하는 자는 하나님을 핍박한 자요 사람이 예수를 무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무시한 자요 예수를 불신한 자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를 공경한 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요 사람이 예수 편에 선자는 하나님 편에 선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려 가시고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셔서 주의 일을 하도록 하셨고 제자들을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 자신을 공경하는 것으로 여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요13:20) 누구든지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자를 속이는 자는 하나님을 속이는 자입니다. 성경에 하나님 앞에 사람을 번제로 드린 기사는 두 번 나오는데 하나는 입다가 무남독녀를 드린 사건이고 또 하나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린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앞으로 주실 것에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독자를 드렸고 입다는 주신 것에 감사해서 무남독녀를 드렸습니다. 입다는 과거의 은혜를 주신 것으로 인해서 드렸고 아브라함은 앞으로 미래에 주실 일에 대하여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기에 정직한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먼저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는 정직하고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만일 하나님 은혜를 배은망덕 하는 사람이 생명을 얻고 잘 산다면 우리는 절망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배은망덕하지 말고 항상 예수님의 은혜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21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라.(행4:13-22)
하나님은 못할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구원하시고 인간을 심판하여 영원토록 형벌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형벌해서 능히 구원할 수 있는 전능자이시기에 하나님께 우리 영혼을 맡길 수 있고 구원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려고 하지 않고 왜 하나님을 피하려고 합니까?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죄인은 하나님을 자꾸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죄인들은 자기 죄가 드러날까 봐 빛을 싫어하지만 진리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자들은 형벌하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마22:37)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죄인이냐 의인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말씀이 하나님 품속에서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심판하러 오실 때까지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구세주를 믿고 의지합니다. 인류는 아무 때나 은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구세주로서 인내하시는 동안이 구원받을 만할 때요 은혜의 날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반역하고 욕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복하거나 저주하거나 형벌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만한 사람을 열심히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전능하신 심판주로 오십니다.
재림 때는 전능하심 심판주로 오셔서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한 자들을 진멸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예수를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으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안 도우시느냐 너무하신다.”라고 불만을 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못들은 체하고 나를 돌보아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불순종하는 것은 모두 내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론과 교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가까이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 때문입니다. 일분일초의 일조차 알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이 무슨 이론이 많은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론 때문에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얘기하면 무식하게 보고 비웃고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이론과 모든 생각을 피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사로잡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명령과 약속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서 거절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씀대로 행하시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성령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하셨고 하늘에 가심으로 성령하나님이 각 사람의 심령 속에 임하신다고 했으니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 유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나가 복음전하고 가르치고 병고치고 능력을 행한 것을 하지 못하게 핍박하고 협박했으나 사도들은 예수께서 내게 주어서 명령하신 것을 어찌 거절할 수 있냐 하면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끝까지 주 예수께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207 내 신앙을 위한 예배를 드리라(말1:6-14)
하나님은 존귀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만 경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믿음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임금으로 섬기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되 하나님아버지를 공경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모십니까? 우리는 하늘 위에 있는 하늘들이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성전에 두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성전에서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 때에는 여호와 이름을 성전에 주셨으나 신약 때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예수를 우리 마음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실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다.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다.”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시인해야 하고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주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등한이 하고 거짓되고 하나님께 인색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불순종하고 불신앙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가장 잘 표현됩니다. 예배는 자신의 신앙을 온전히 표현하는 최고의 모습입니다. 예배는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존경하는 표시요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시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 신앙의 태도는 거룩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으로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한다면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합니다.
성경에 과부의 두 렙돈을 오해하는데 과부는 정성으로 드린 것이 아니고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림으로 드린 것입니다. 과부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헌신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온전히 단의 드림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뭄이 심할 때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으로 아들과 마지막 남은 가루 한 묶음과 병에 기름 조금뿐으로 음식을 먹고 죽으려고 한 떡을 만들어 선지자 앞에 드린 것은 과부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것을 드렸을 때 과부 집에 그릇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왕상17:16) 예수님 앞에 수만 명이 모였을 때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오직 오병이어 뿐이었으나 가진 전부를 가져왔을 때 떡과 물고기를 축복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주셨는데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서너 번 하다가 안하고 1년이 지나와서 십일조를 다시 하는데 십일조 안한 것을 속죄 받으려면 5/1을 더해야 합니다.(레27:31) 만일 이번 달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면 다음 달에 5/1을 더 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감사하고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육체로 행할 것을 심판 날에 갚으신다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아비 죄가 삼사 대까지 내려간다고 했는데 자기 때는 무사히 넘겼다 해도 아들 때 청구하시고 아들 때에는 무사히 넘어가도 손자 때 청구하신다고 했습니다.(겔14:3) 사람이 마음에 있는 믿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결국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인데 믿음 있는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이고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이고 믿음과 순종은 신앙의 정당한 도리입니다. 일부 신학에서 “택함 받은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합니다만 믿음을 지키는 자는 망하지 않으나 믿음을 포기한 자는 망하는데 한 예가 가룟유다 입니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고 신앙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130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되라.(요3:16-2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는 능력도 구원도 생명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우리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종교 생활이나 문화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복과 능력을 받지 못하고 암과 같은 중한 병을 걸렸는데도 왜 이적과 능력이 없습니까? 왜 이런 체험이 없는데도 자신의 신앙생활에 의문을 갖지 못합니까? 이는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체험해야 합니다. 인류는 이미 형벌 받기로 작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형벌 받기로 작정된 인류를 구원하실 뜻을 세상에 내놓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라도 믿음을 가지면 구원 받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 신앙의 근본이요 기초요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도 지식과 명예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절대로 내 영혼이 위로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자기 영혼 속에 예수께서 완전히 들어와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가 그 사람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예수가 그 심령에 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모습으로 떠오르며 영화 그림에서 본 그림을 연상하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을까 떠올리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성령이 오시면 내가 너희 속에 있음을 알리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완전히 아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 영혼 속에 와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은 사람과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이 땅에서 교만하게 마음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소리쳐도 하나님께서는 귀를 막고 관심을 두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어떤 위경에 처해도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십니다.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어떻게 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성령 충만함으로만 가능합니다. 오순절에 성령하나님이 충만한 제자들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했는데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술기운이 온몸에 퍼지듯 내 영혼 속에 오신 사랑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어도 성령 하나님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충만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으로 인해 예수가 충만해질 때 하나님의 사랑이 온몸에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내려놓아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자신이 부족함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충만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 두어 바로에게 박해받게 하셨습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다고 애굽으로 돌아가려던 자들과 고기가 먹고 싶어서 애굽에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과 우상을 의지하려는 자들은 광야에서 완전히 멸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유할 권리를 주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지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주신 예수로만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몸에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123 참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욘3:1-10)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재앙을 받기보다는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관념적인 존재의 믿음을 가진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진실이 없다면 하나님께 나간다 해도 이미 하나님과 단절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과의 단절된 자는 죄인입니다. 우리 진실과 정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되 진실과 정직을 수단으로 삼아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논리를 기초로 하나님의 세계에 관해서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지식 체계가 아닙니다. 성경은 체험을 증거 한 책입니다. 성경 기자들은 자기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과 하나님을 보았던 모습과 말씀을 가감이나 수정 없이 그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 열심과 자기 처지를 기준하여 판단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시험을 하나님 도움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다가 환경이 개선되면 금세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고 좋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확실하게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숫자에 좌우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18:37)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하늘에서 순간에 불이 내려와서 번제 단을 태웠습니다. 우리 신앙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널리 증거 시키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적은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요행이지만 이적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따르는 표적입니다. 이적은 믿는 자에게 필연적으로 따라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타나시는 현장을 말합니다. 믿는 자의 기도는 항상 이적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만 활짝 열면 도무지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놓겠다고 하셨습니다.(롬8:32) 하나님께 은혜 받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큰 잘못을 회개하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회개 자체가 다친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문제는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문제는 다들 마음을 닫고 회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께 늘 회개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것은 니느웨가 요나의 소리를 듣고 죄에서 돌이켜서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행여 니느웨 같은 악한 도성이 자신의 전도를 받아 회개해서 용서 받게 될까봐 하나님이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니느웨에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비록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용서받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우리가 마음을 열고 회개하므로 우리의 가정이 재앙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정이나 교회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면 마음을 닫고 있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 가정과 교회에 재앙이 임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마음으로 활짝 연다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과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회개함으로 은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123 참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욘3:1-10)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재앙을 받기보다는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관념적인 존재의 믿음을 가진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진실이 없다면 하나님께 나간다 해도 이미 하나님과 단절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과의 단절된 자는 죄인입니다. 우리 진실과 정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되 진실과 정직을 수단으로 삼아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논리를 기초로 하나님의 세계에 관해서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지식 체계가 아닙니다. 성경은 체험을 증거 한 책입니다. 성경 기자들은 자기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과 하나님을 보았던 모습과 말씀을 가감이나 수정 없이 그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 열심과 자기 처지를 기준하여 판단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시험을 하나님 도움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다가 환경이 개선되면 금세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고 좋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확실하게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숫자에 좌우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18:37)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하늘에서 순간에 불이 내려와서 번제 단을 태웠습니다. 우리 신앙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널리 증거 시키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적은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요행이지만 이적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따르는 표적입니다. 이적은 믿는 자에게 필연적으로 따라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타나시는 현장을 말합니다. 믿는 자의 기도는 항상 이적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만 활짝 열면 도무지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놓겠다고 하셨습니다.(롬8:32) 하나님께 은혜 받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큰 잘못을 회개하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회개 자체가 다친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문제는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문제는 다들 마음을 닫고 회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께 늘 회개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것은 니느웨가 요나의 소리를 듣고 죄에서 돌이켜서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행여 니느웨 같은 악한 도성이 자신의 전도를 받아 회개해서 용서 받게 될까봐 하나님이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니느웨에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비록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용서받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우리가 마음을 열고 회개하므로 우리의 가정이 재앙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정이나 교회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면 마음을 닫고 있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 가정과 교회에 재앙이 임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마음으로 활짝 연다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과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회개함으로 은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116 주 예수께 감사하는 감사절(시136:1-26)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해와 별들과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셨습니다. 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능하신 은사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가르치시고 내 영혼 속에 하나님 말씀과 약속과 능력을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자신의 이성과 잣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실제적인 능력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하나의 책으로 취급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해야 할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믿음과 증거로 주셨고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체험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만약 하나님 말씀을 특별한 사람만 체험한다고 생각한다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대우를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으면 우리도 함께 부활할 수 있고 영광의 천국을 우리도 함께 갈 수 있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영혼이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성경 말씀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람이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성과 판단으로 하나님 말씀을 체험한다고 한다면 이는 외식하는 자입니다.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이 약속된 말씀을 결코 체험할 수 없고 말씀이 우리 속에 체험이 될 때 우리가 확실하게 거듭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은사와 능력들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기에 우리가 영원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믿는 자 누구에게나 능력을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특별한 사람이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으로 인한 믿음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인한 믿음은 조금 다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거룩함과 신령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약속 받지 못했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믿음만이 구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성령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성령을 받게 되었고 복음의 믿음에는 구원의 과정이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절대적인 과정에 (1)회개입니다. 율법에는 회개가 없고 용서가 없기에 회개의 효력이 없으나 복음에는 용서가 있기에 회개의 효력이 나타납니다. (2)회개가 있으면 거듭남이 있기에 거듭난 신분이 변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완전한 변화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낳은 자와 하나님 만든 자의 차이가 있는데 하나님을 만든 자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낳으신 자는 용서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만드셨기 때문에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벌을 내리시나 거듭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리로 낳으셨기에 용서하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3)거듭난 사람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반드시 성결하게 됩니다. (4)감사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는 소유격이요 완료형입니다 감사는 소유했다는 증거로서 내 것으로 완료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믿음은 4과정이 감사함으로 완성됩니다. 진정으로 감사함으로 비로소 감사가 내 것이 되어서 범사에 감사하는 복 받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109 주 예수께 간구하는 성도가 되라.(눅11장5-13)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을 더하여 풍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나 다른 피조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전부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를 영접해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에도 해와 비를 주시고 악인도 물질을 취할 수 있지만 물질이 부족함이 없다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스스로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마18:3) 하는 말씀은 신앙의 수준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고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앙을 주신 것은 시간이나 물질이나 사람의 모든 즐거움을 빼앗는 것으로 생각하여 부담스럽게 여기나 하나님께서 신앙을 주신 것은 주 예수를 의지하는 방법을 주신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인간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이제는 누구든지 주 예수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면 누구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을 수 있습니까? 바로 은혜를 필요한 사람이요 또한 죄인이기 때문에 용서를 받아야할 사람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죄인이었다는 전과가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의지할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뭐든지 내가 구하면 시행하리라”(요14:14)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구하고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을 구하라”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너무 잘 압니다. 우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리라”(약4:3)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께 구하는 것의 목적이 영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을 구하고 물질을 구하는 목적이 주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위하여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시23:3)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일에 쓰임 받고자할 때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구하는 기도는 뭐든지 들어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7:7) 말씀했는데 우리는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우리를 도우시는 주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주 예수를 만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험 들어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사람이 왜 교회를 떠납니까? 주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마음이 이미 슬픔과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했어도 볼 수 없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명예와 권위로 엘리사를 만나러했을 때는 고침 받지 못했으나 자신에게 붙여진 모든 계급을 다 떼어버리고 보통 사람이 되었을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가는 유일한 문이십니다. 때문에 예수를 만나려면 우리는 예수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서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본문에 여행 중에 친구가 떡을 달라고 밤중에 찾아왔으나 친구 관계로는 떡을 줄 수 없지만 시끄럽고 귀찮아서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깨워서 예수께서 일하시도록 간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102 속죄 받은 자로 끝까지 남을 용서하라.(마18:21-35)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누구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품속에 계신 독생자 예수를 통해서 표현하셨습니다. 천사나 사람이 아닌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표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난과 고난 죽음 모두를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총동원했습니다. 잔인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고 표현하신 사랑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명하신 일만 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죽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밥한 끼 얻어먹는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역사는 완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구원의 증거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고 양육하십니다. 우리가 육체의 삶이 고달프고 고난을 당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양육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양육을 받음으로 온전한 신분을 얻는 것이 구원받는 자의 증거입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영원히 사시는 것 같은 권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바로 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 벌금형에서 사형까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하신 죄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아담 안에서 이미 하나님이 잃어버린 죄로서 원죄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과의 사이를 끊어 버림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로 인해서 인류를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한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저주와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야 우리가 율법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형벌해서 구원하시는 구원이 어디서 왔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하심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하나님을 받으라고 하셨고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13)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속죄가 무엇입니까? 용서는 빛을 탕감을 주는 것이고 속죄는 빚을 갚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에 대한 책임을 면하도록 탕감하셨으나 인간의 죄 자체를 부인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빨리 죄를 예수께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대신 탕감한 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예수님이 죽어도 다시 살아나시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인류의 죄를 예수께서 담당 시키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네가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죄 지은 자를 용서하라 하는 말을 속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속죄(빚을 갚는 것)할 힘이나 능력이나 권리나 자격이 없지만 다만 사람을 용서(빚을 탕감해 주는 것)는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빚진 자를 탕감해 주신 것처럼 주 예수님의 은혜로 속죄 받았으니 남을 용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026 주 예수의 풍성한 사랑을 받으라.(눅7:36-50)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고 성령 하나님도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막연하게 고행과 종교 행위를 통해서 도 닦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주신 성령 하나님으로 완전히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율법도 하나님이 보내 주셨고 복음도 주셨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온 것이고 복음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은혜 받은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심판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는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세가 설교를 재미있게 하면 은혜 된다 말하고 목사가 윤리 도덕적인 잘못을 질책하면 은혜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오직 예수로만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인간은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양심이 율법이 되어 자기 양심을 거침없이 자신을 심판합니다. 세상에 없는 악한 자나 착한 사람이라도 양심이 율법이 되어서 자기 양심이 심판합니다. 양심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은혜가 없고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게 하십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성령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고 사람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의 행위는 흠잡을 때가 없었으나 예수께서도 바리새인의 행위는 인정했지만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완전한데 중심의 본질이 변화되지 않아서 외식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속한 바리새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예수께 속하여 은혜 받은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죄인은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율법에 속한 의인은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본문에 바리새인과 창녀 둘 중에 누가 불쌍히 여김을 받고 예수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예수 앞에 증인으로서 나온 창녀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죄인이 모두 예수께서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율법으로 거룩해지려고 하는 것만큼 회개로서 거룩해져야 합니다.
죄의 근성을 뿌리 뽑지 못합니다. 회개만이 죄의 근성을 고칠 수 있습니다. 예수께 회개하여 용서받고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심령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개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의 본성을 뽑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회개를 통해 주 예수께 죄를 완전히 옮겨 버리지 않으면 육체로는 잘살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심판 날이 오면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함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고 사업 받은 일이 많은 자는 많이 사랑하느니라. 하셨는데 우리는 회개로 주의 근본 뿌리를 뽑는 것만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머리털로 비벼 대듯이 자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은혜는 용서로서 탕감과 같은 뜻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것은 용서 받았다는 뜻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말은 내가 지금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뜻입니다. 죄와 빚은 같은 말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내 죄가 예수께 옮겨 놓은 것입니다. 예수께만 탕감의 원리가 있습니다. 저는 탕자와 같이 지독한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께 불쌍히 여김 받아 사랑받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51019 진정한 자유는 예수 안에 있다.(요8:1-11)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긍휼히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의로우십니다. 하나님 밖에 모든 것은 불의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를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법이 아니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율법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사람의 불의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람이 율법을 가까이한다면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하시다고 할 때 긍휼은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시기에 자비를 베푸시고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받아야할 자들을 사랑해 주십니다.(마9:13) 하나님은 제사를 받으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긍휼을 베푸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정죄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긍휼을 베풀려고 오신 분입니다. 반면에 모세는 은혜를 베풀기 위해 택함 받은 자가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어 인간의 불의를 들춰내어서 정죄하려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긍휼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예수를 통해서 믿게 하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서 등한히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지나치게 은혜를 강조한다면 윤리와 도덕이 제대로 지켜지기 않는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율법의 잣대로 “회개하십시오!”하면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율법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율법만은 강조하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법대로 제사 드려도 하나님의 긍휼을 무시하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 잡혔는데 현장이란 증인들이 있다는 뜻으로 율법에 증인이 있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히10:28) 간음한 여자는 현장에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고 사람이 용서 받을 만한 자비가 머리털만큼도 없는데 무엇으로 사람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자기 아들과 딸이 이런 입장에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이때 율법을 전한다면 가룟 유다처럼 자살할지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여인을 향해 “모세의 율법은 이러 여자는 돌로 치라고 했는데 돌로 칠까요?” 라고 묻는 유대인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만약 돌로 치지 말라하면 율법을 범하는 자가되고 만약 율법대로 돌로 치라하면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땅에 글을 썼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글을 쓰셨는지 알 수 없으나 글을 읽는 자들은 손에 돌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양심이 된 자들을 향해서 모세의 법을 어긴 자는 증인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당신들이 양심의 증인이 아닙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각각의 양심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더 잘 압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율법을 강조한다면 율법을 좋게 받아드린다면 이는 자신이 율법아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롬3:19) 율법아래 있는 자는 구원 받을 수 없고 형벌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께서는 비록 간음을 않았어도 음욕을 품었다면 간음을 하였고 도둑질 안했어도 탐욕을 품으면 도둑질 한 것이고 살인 안 해도 미움을 품었다면 자기 양심이 율법이 되어서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아비의 심정으로 긍휼을 베풀려고 오셨습니다. 율법아래 있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구하는 자들이고 예수의 은혜를 구하는 자는 긍휼을 입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율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의가 되시고 인간은 누구나 불의하다고 정죄하는 법입니다. 윤리나 도덕을 강조하여 형벌을 강조하는 설교로 은혜 받았다고 말하면 이는 손에 돌을 쥐고 있는 자들과 같은 심정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예수 안에 사는 것이므로 예수 안에서 은혜 받아 자유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012 성령하나님의 충만을 받자.(엡5:15-21)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하나님의 바라시는 것이 참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 하시는 것도 참입니다. 하나님이 참되시기에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타나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도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나오시는 성령하나님도 진리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상과 복을 분명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가 상달되어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나아가서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한다면 약속하신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해주신 체험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이 나에게 재산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세상에서 “우연”은 예수 믿지 않는 불신세계에서만 적용됩니다.
성경은 모든 만드신 것이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작정되었다고 말합니다. 물이 산과 들을 지나서 굽이굽이 돌아서 바다로 흘러가듯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을 때는 우리를 돕는 자가 없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했지만 예수 믿는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앞에 깨끗케 되어 하나님의 관심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귀히 쓰십니다. 우리는 우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못난 것은 못난 것을 낳고 잘난 것은 잘난 것들을 낳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세 가지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과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과 스스로 부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할 수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습니다.(롬8:3) 우리는 죄에서 해방 되고 거룩해지고 부활하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 나머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이기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보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릴 참되게 보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분명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때문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사람은 참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발견하려는 사람도 참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니 정직한 자를 찾으시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의의 길을 곧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대로 사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예수님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지체요 그리스도의 가지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지체이므로 주 예수와 같이 해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 신앙의 표준이요 우리 신앙생활의 표준이요 예수께서 하신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표준입니다. “나는 예수처럼 살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지만 예수처럼 살지 못한 분량만큼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처럼 살지 못한 만큼 죄를 짓고 하나님을 노여워하시게 하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처럼 100% 살 수 있는 사람 되어 예수 앞에서 대우를 받고 상을 받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1005 은혜 받기 위해 회개하라.(눅13:1-5)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대가없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이라도 거저주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의의 대가를 얻으려고 몸부림칩니다. 사람이 의의 대가를 얻으려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고행하는 것입니다. 고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고행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아들을 거저 주셨는데 무엇인들 안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도 주셨고 하나님의 이름도 주셨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도 하셨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가 성공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가 무엇인줄 아는 자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살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듯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경쟁사회 속에서 성적 때문에 승진 때문에 아이를 공부시키느라 바쁘게 살다가 결국에는 늙은 육체만 남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에 언젠가는 절망적인 날이 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노아는 당시에 죄를 안 지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창6:8) 노아는 당시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온 세상이 망할 때 노아의 가족은 살아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려고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30년 동안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누를 끼치고 않고 스스로 목수 일을 하면서 사셨고 일반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생활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과 똑같은 경험을 치르시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만약 천사가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왔다면 천사는 우리와 같은 정과 육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천사가 인간을 정죄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육신이라는 아주 특별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천사는 육체가 없기에 육체로 인한 고민이나 육체로 인해 당하는 입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사는 죄짓는 사람에 대하여 경멸하고 미워하고 반대하고 저주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도 가정에 부담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마10:12-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어 하나님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사람들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대가를 받지 말고 선물로 은혜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보상을 받았고 십일조 함으로 보상도 받았지만 은혜는 받지 못했고 죄에 대한 보응을 면치 못했습니다. 율법으로 양육 받은 이스라엘이라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육신의 사람은 정욕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육신의 사람은 법적으로 말하면 “죄인”입니다. 인간은 언제 내가 죄지었느냐고 말하지만 인간은 모태부터 정욕으로 타락한 채로 태어났고 이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은혜와 만날 수 있는 절대적인 경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자신의 가장 아깝고 귀한 독생자를 내놓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것이 회개입니다. 출애굽 할 때 입이 써서 부르트도록 쓴 나물을 먹었듯이 사람이 쓰디쓴 회개의 경험이 없이 죄를 감추려고 하면 멸망할 수 없고 사람이 회개의 체험이 없으면 마귀의 손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가인도 살인자였으나 살려 달라 해서 살았듯이 회개하여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0928오직 주 예수만을 사랑하라.(요14:15-24)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보여 주신 자신이 성품과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시되 아들을 통해서 나타내주시고 말씀과 능력들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을 나타 내시되 사랑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만 여깁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하라”라고 외쳤는데 이는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고쳐서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라”고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신 복음도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는 아버지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주셨습니까? 하나님 품속에 계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희생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깊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자식을 사랑하되 특히 독생자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고 비로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시켜서 세상에 보내시고 그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심에는 두려움도 포함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은 죄에서 벗어나올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귈 때 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불가능함으로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은 죄를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려워하기는 하되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여 어려워하는 것이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오직 사랑으로 완성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14:23) 참 신앙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예수를 사랑한 것이 신앙입니다.(마3:17,17:5) 세상은 능히 성령하나님을 알지 못하나 예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하나님으로 인해서 자신을 나타내 주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세속주의는 금세문제와 사회구원을 부르짖고 내세와 영생에는 관심 없습니다. 세속주의는 기독교 사상만을 강조합니다. 인본주의는 현세의 삶에서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합니다만 인본주의는 세속주의 보다는 조금 앞서기는 하나 인본주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본주의는 성령중만하면 장사가 잘되고 돈도 많이 번다고 하여 기복신앙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신본주의를 따라 하나님의 삶으로 살려면 사도 신학으로 사는 것인데 사도 신학은 금세와 내세를 연결하자는 신학입니다. 사도 신학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수께서 하신 일을 그대로 드러내자는 신학으로 금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도 신학은 예수께서 바라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생각 없이 이웃사랑만 강조하면 기독교사상이 되므로 사상과 이념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보혈로 구원 하셨습니다. 오직 주 예수만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길 축원합니다.
20250928오직 주 예수만을 사랑하라.(요14:15-24)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보여 주신 자신이 성품과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시되 아들을 통해서 나타내주시고 말씀과 능력들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을 나타 내시되 사랑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만 여깁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하라”라고 외쳤는데 이는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고쳐서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라”고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신 복음도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는 아버지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주셨습니까? 하나님 품속에 계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희생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깊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자식을 사랑하되 특히 독생자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고 비로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시켜서 세상에 보내시고 그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심에는 두려움도 포함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은 죄에서 벗어나올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귈 때 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불가능함으로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은 죄를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려워하기는 하되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여 어려워하는 것이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오직 사랑으로 완성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14:23) 참 신앙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예수를 사랑한 것이 신앙입니다.(마3:17,17:5) 세상은 능히 성령하나님을 알지 못하나 예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하나님으로 인해서 자신을 나타내 주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세속주의는 금세문제와 사회구원을 부르짖고 내세와 영생에는 관심 없습니다. 세속주의는 기독교 사상만을 강조합니다. 인본주의는 현세의 삶에서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합니다만 인본주의는 세속주의 보다는 조금 앞서기는 하나 인본주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본주의는 성령중만하면 장사가 잘되고 돈도 많이 번다고 하여 기복신앙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신본주의를 따라 하나님의 삶으로 살려면 사도 신학으로 사는 것인데 사도 신학은 금세와 내세를 연결하자는 신학입니다. 사도 신학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수께서 하신 일을 그대로 드러내자는 신학으로 금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도 신학은 예수께서 바라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생각 없이 이웃사랑만 강조하면 기독교사상이 되므로 사상과 이념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보혈로 구원 하셨습니다. 오직 주 예수만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길 축원합니다.
20250914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생명이다.(벧전1:13-25)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거룩케 하시려고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벧전1:16) “거룩”에는 깨끗하다 또는 구별되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거룩함에는 하나님과 같이 자유 한자가 되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 인류는 죄로 인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대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것은 율법에도 약속되어 있습니다.(레17:11) 죄 값은 사망인데 사망을 이기는 생명이 피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피가 사람의 죄를 사한다고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 죽게 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인해서 생명을 얻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생명을 얻는 영들은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지 않고는 거룩해 질수 없습니다.
거룩함에는 죽음이나 더러움이 없고 오직 생명만 있습니다. 성경에는 말하는 죽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우리 영이 죽음을 말합니다. 영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존재입니다. 영의 죽음이란 생명을 맛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생명은 하나님께만 있어서 생명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황을 가리켜 죽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없고 거룩함이 없는 영들은 생명이 없는 곳에서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데 이것이 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형벌입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거룩해질 능력이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주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를 제거 하셨습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고 죄를 사하십니다. 피에는 죽음을 이기는 권세가 있습니다. 본래부터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이 쓰시는 존재가 될 때에 비로소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의 결과는 자유와 해방입니다. 거룩함에는 자유가 있습니다.(요8:32) 이 세상에서 “죄를 사하신 분은 주 예수 한 분뿐이다”라는 말은 우리 죄를 사하시는 분은 예수 밖에 없기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설명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을 예수에게 인도하여 자유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억압된 자들을 자유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기능을 주셨습니다. 누구나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죄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과의 끊겨 있던 영적인 교제가 직접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직접 죄를 고하고 뵈올 수 있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거룩 하라 자유 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유하게 하셨을 때에 자유의 권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을 때에 하나님이 가지신 것 같은 능력을 함께 가지도록 만드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 하던 일도 그대로 할 수 있다. 믿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다’ 한 것처럼 인간의 영이 진정으로 자유하면 어떤 악한 영이든지 대항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악이 있고 죄가 있고 마귀가 있고 귀신이 있습니다. 이들을 이길 힘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우리 영혼이 주 예수의 보혈로 거룩하게 되고 자유하게 되고 세상을 이길 권리를 소유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0921영원한 생명을 택하고 사모하라.(신30:15-20)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사람의 목숨과 생명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사람과 짐승은 다릅니다. 짐승은 영이 없고 혼만 있습니다. 다만 목숨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영이 있기에 목숨과 영생 모두 다 필요합니다. 사람은 목숨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사람은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의 목숨을 아무리 잘 보존하려고 몸부림쳐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영생이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는 세상 사람들보다 한 가지 더 깨달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감히 알지 못하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상상조차 해볼 수 없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우리 손으로 느낄 수 없는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나옵니다. 사람은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우리 안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 속에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나는 주고 싶다.”하면서 삽니다. 이는 자기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속에 생명이 없기에 자기를 지탱할 수 없고 생명이 없기 때문에 용기가 없고 의욕도 사라지고 육신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생명이 없기에 가정에는 우환이 오고 사람이 자꾸만 무너져가고 도무지 절망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기름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가정과 교회를 옥토같이 기름지게 하고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생명이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이 빈정대고 의심하고 회피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을 환영하여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 가정의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는 우리 가정의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한 사람으로 그 집에 복음이 들어가서 생명이 넘쳐나고 놀라운 이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려고 주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으나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는 것이지 예수께서 당한 일을 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믿음은 예수께서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안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면 우리는 순식간에 살아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병든 것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위장이 썩는 것도, 피가 죽는 것도, 인격이 타락하는 것도, 가정이 불화하는 것도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만 들어온다면 살아나게 됩니다. 사람이 생명이 없기 때문에 입에서 비난과 시기와 질투와 저주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만 넘친다면 항상 남을 축복할 말만 나오고 생명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나의 것을 나누어줄 수 있고 생명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 문을 활짝 열어야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이 구원받을 것을 모른 채 교회당만 들락거리는 답답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을 사모하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택하고 생명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0907주 예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눅15:11-32)
하나님은 인애하신 아버지로서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인애하신 아버지이심을 우리가 알고 믿을 때 우리의 믿음이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면 우리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열심만 가지고 부지런히 교회생활 한다면 이는 결국 자기 고행에 불과합니다. 보화를 캐내려고 해도 확인하고 땅을 파야 보화를 얻는 기쁨과 만족이 넘치게 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노력함으로 신앙의 결실을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인데 예수 믿더라도 자기 욕심을 끌고 다니니까 신앙생활이 힘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육체의 부모라도 내 자식이 잘 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부싸움도 대부분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과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해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알려 주십니다. 신약성경에는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아버지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모릅니다. 때문에 하나님아버지를 믿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베푸실 모든 사랑과 은혜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과 양육을 받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면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아버지를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모르면 하나님아버지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믿음을 가지려면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서 죄가 가장 큰 것은 방종과 타락으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옳은 길을 벗어나 나쁜 길을 걷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큰 원수가 무엇입니까? 바로 의심입니다. 마귀의 최고의 역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이간시키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머리터럭 만큼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절대로 믿음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의심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합니다. 내가 지은 죄들은 이미 주 예수께서 담당하셨지만 의심은 주 예수께서도 담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을 방해하는 최고의 원수는 의심을 없애야 합니다. 참 회개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의 은총을 가지고 장가드신다고 했습니다.(호2:19-20) 회개는 결혼한 것과 같은 완전한 체험입니다. 자신이 회개한 것만을 확실히 안다면 하나님과의 만남이 체험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참 믿음은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만나자고 하심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너희는 회개라는 체험을 통해서 예수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주 예수께 들어가는 것은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지만 회개 없이는 결단코 예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는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심을 완전히 깨버리고 주 예수 앞에 완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성경보고 몸부림쳐도 의심 때문에 영원한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하면 교회를 떠납니다. 우리가 의심을 버릴 때 거룩해지고 확실한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회개라는 체험은 아버지와의 만날 권리와 자격을 완전히 얻어내어 의심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20250831내 영혼을 주 예수께 맡겨라.(요17:3-19)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양육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상태로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성령하나님으로 거듭남으로서 비로소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우리 힘으로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보여 주시고 알게 하신 계시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믿음이란 첫째로 인지적인 믿음으로 분별하고 판단하여 확실한 가치를 아는 믿음입니다. 둘째로 신념의 믿음인데 신념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자기 확신 자기 환상 자기 철학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셋째로 기독교 신앙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앙입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모하는 믿음입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약속을 주시고 모든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로고스인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말씀입니다. 로고스보다 더 확실한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주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을 보여주어 믿게 하고 약속을 믿게 하여 자신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이 보존하시려고 그토록 열심을 내십니다. 보통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종처럼 희생하는 노예가 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합니다. 섬긴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모신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아는 것이 영생이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게 하려고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자신을 보여주려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일과 이스라엘백성에게 하신 일과 아들에게 하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어 하나님께 불신앙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결국에는 지옥 자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부인하십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잠시 있다가 갈 육체를 잠깐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우리 영혼을 영원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보존하십니까? 첫째는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아버지 이름, 예수이름으로 보존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셔서 예수이름으로 우리 영혼을 보존하십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세상에서 보존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는 것은 저희를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서 미움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 저들을 보존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성령하나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존 하시는 것을 완전히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완전히 체험해야 보존될 수 있고 우리가 체험할 때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굳게 믿게 됩니다. 진리의 체험이 없으면 복음에 목숨을 걸 수 없습니다. 위험에도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을 체험 밖에 없기에 체험을 통해 진리와 성령하나님으로 온전히 보전되어 내 영혼을 오직 예수께만 맡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0824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행17:16-3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은 우리의 신앙은 높은 수준이 있는 고차원적입니다. 불효자식이 아니라면 누구나 조상을 두려워합니다. 자손들은 조상의 명예도 귀하게 여겨서 자기는 제대로 살지 못해도 자기 조상이 벼슬한 것을 긍지로 삼고 자랑으로 삼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인간의 조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조상의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면 얼마나 두렵고 존경 받아야할 분이겠습니까?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호흡하고 생명을 얻어 숨 쉬고 있습니다. 만물 중에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우대를 하셔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개나 돼지나 만물에게 특별한 우대를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에게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권리를 받게 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인류가 죄인인 것을 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갓난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합니다만 인간은 인류의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해서 죄 아래 태어났고 죄와 함께 살아갑니다. 인간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항상 불의하고 불법을 행함으로 이런 인간은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바로 구세주 예수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 친구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손해 본대고 생각하지만 이는 악한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이지 좋은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친구들은 술이 잔뜩 취해서 서로가 친한 것 같이 보이지만 주 예수를 믿으면 우리를 타락 시키는 친구는 없어지고 우리를 돕는 진실한 친구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질러 놓은 죄를 뺏어 가셨고 저주와 형벌을 뺏어 가셨지 우리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우리를 도우려고 우신 분으로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100%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생각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광을 뺏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신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빼앗고 인간의 목을 조르듯 짜서 자기의 약점을 보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에겐 누구든지 독생자의 일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전부가 필요합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지만 사람이 영원히 살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인간은 땅에 떨어져 먼지로 사라지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나무보다 오래 살지 못한 존재로 여겼으나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고통스러운 세계에 오래 있게 하시지 않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게 한 다음에 하루빨리 세상을 떠나 영원히 살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수백 년 산다 해도 결국 썩어져 흙으로 돌아갈 뿐 만물은 내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이 있어서 부활하여 영생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영생하는 자격이 있으나 인간 스스로 영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나무나 짐승에게는 독생자를 주시지 않고 인류에게만 우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주의 도움으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20250817주 예수를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요20:19-31)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품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요 영광의 광채이십니다. 로고스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로고스는 자신을 스스로 세상에 보이시고 증거 하시는 하나님이 로고스입니다. 예수께서는 직접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가 오시기 이전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나 예수그리스도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오셨지만 예수님은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세례요한도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지 않고는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이전 사람일지라도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직접 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의 모든 일은 예수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기까지는 자신을 숨기시고 비유로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비유만 허락 되었는데 “때가 차면 알게 될 것이다.”(마13:11)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이전의 모든 일들은 예수에 대한 비유로서 만물 곧 우주와 태양과 달과 별들을 포함하여 씨 맺는 것이나 벌레 온갖 사물과 형상들이 예수에 대한 비유입니다.(9:1,9-10) 성전도 예수에 대한 비유입니다.(요2:19) 비유는 예를 든 것으로 모형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실상입니다. 율법도 비유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닙니다. 선지자들의 예언도 모두 비유입니다. 선지자들도 예수를 전하기는 했어도 주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예수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예수를 비유로 증거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는 것도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것도 광야 생활도 가나안 복지를 향한 전진도 모두 비유로 예수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니”(요5:34) 말씀하셨고 예수께서는 사람에게는 진리의 실상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증거 하시는 성령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하나님도 실상을 말하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천사는 진리의 영이 아니라 비유를 전하는 영으로 천사는 해석이 필요한 환상을 통해서 사람들을 이끌었지만 성령님은 우리 속에 직접 오셔서 감동하십니다.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의 실상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게 하시고 진리를 확증하십니다. 사람의 환상도 비유로서 환상을 잘못 해석하면 오히려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도 비유가 아니라 실상이요 예수의 부활도 참이요 실상입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비유로서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모두 계시하십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다가 드디어 자신을 세상에 들어내어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실상을 보여주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체로 오신 것은 부활을 위해서인데 부활이 있기에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셨습니다.(요10:17-18) 예수부활은 바울도 보았고 11제자도 함께 보았고 오백 여명이 일시에 보았습니다. 예수 부활은 제자들이 살아 있을 때도 도망한 자들인데 예수께서 완전히 죽어 버렸다면 제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전도했겠습니까? 예수의 부활과 무관한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복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50810하나님의 뜻을 알라.(마26:31-46)
하나님은 뜻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독생자 예수를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을 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 생명과 하늘나라를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극기하고 수양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심령에 내 교회에 내 가정에 이루어져야 온전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능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혼자 수양하고 고행하고 착하게 사는 것은 불신자도 할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하는 말은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 간다.”는 뜻입니다. 이는 젊은 사람들에게 천당 가라는 얘기가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젊은이들이 늘그막에 예수 믿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예수 믿고 성경을 안 다음에 복음을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이 명하신 복음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천국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신앙생활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임금이신 예수께서 오실 때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어서 천국 간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숨 쉬고 흙을 밟고 다니는 이 땅에 천국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천국을 맞이하고 이 땅에서 천국에 가고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천국을 체험하도록 천국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임금이 올 때는 임금의 나라의 모든 군대와 모든 권세가 함께 동원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심은 천국이 온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수태되어 이 세상에서 태어났으나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수태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처녀에게 성령으로 수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영접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도록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늘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 문화 속에서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얼마나 용납하셨는지 이 땅에서는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 예수를 마음대로 경험할 수 있게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성질에 따라 예수를 죽이고 장사지낸 다음에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게 하시고 예수께서 아버지께 부탁하여 성령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멸시와 천대를 받고 학대 받던 예루살렘으로 성령하나님을 다시 보내서 거기서부터 하늘나라를 성령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직접 체험하도록 모든 조치를 마쳤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있는 곳 천국으로 우리를 불러들여서 체험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자신이 찾아내려 오셔서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열면 들어가서 너와 식탁을 같이 하리라.”(계3:20)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신 이유는 생명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거룩함을 체험하고 이 다음 죽어서 약속대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능력이 없으니 신학을 주장하지만 신학도 성경과 예수보다 앞설 수 없고 신학보다 교리보다 성령님을 체험하게 했으니 주 예수를 경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독생자가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아들을 주셔서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생명과 능력과 부활과 영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에게 오셔서 자기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듣고 교회생활을 오래했어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속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는 교량과 같아서 영생의 교량의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결단코 영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람이 중한 병 때문에 예수를 믿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한 병으로 치료 받음으로 자신의 뜻이 성취되었다 할지라도 병 나은 것은 작은 일입니다. 이보다 사람이 예수 믿는 믿음을 소홀히 생각해서 세상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믿음을 포기 했다면 병 고침 받는 것보다 예수 믿는 믿음을 포기한 것이 더 위험합니다. 오히려 죽을병에 걸린 작은 일을 통해서 예수님과 더욱 확고하게 연합해야 합니다. 나중에 주 예수 앞에 문 두드리며 몸부림쳐도 그때는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신앙은 감상하는 식으로 해서 “나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신문화 생활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확실한 약속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지키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굳건한 약속을 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장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모세는 과거의 인간과 하나님의 맨 처음 근본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어느 날에 하나님과 인간이 금이 간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이간자 마귀가 틈을 타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이간시켜 일평생 저주받고 저주 속에 살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지자들은 앞날을 보았고 인간은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소망이 있다고 전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구주를 보내신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한 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본문에 사도들은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너희가 예수를 죄인 취급하여 강도처럼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시고 성령하나님은 예수께서 우리 영혼 속에서 생명이 되시도록 증거 하려고 오신 분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성령하나님이 오신 것은 예수께서 하늘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으로 취급당하셨지만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그러면 주 예수의 죽음의 대한 보상대가는 어떠합니까? 인간은 어차피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죽음의 보상 대가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자만이 자신이 살았다는 증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언하고 변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위대한 인간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 구세주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만이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증거를 받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하나님의 증거를 받은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증거에 복종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증거로 인하여 우리가 살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예수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주 두려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여 두려우신 분으로 보복하시는 분으로 형벌하시는 분으로 위협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을 저주의 권세만 가지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은 “회개하라”는 헬라어로 “메타노에이테”인데 이는 “신에 대한 오해를 수정하라.”는 뜻입니다. 왜나면 하나님의 대한 외식과 불순종이 그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자꾸 자기의 죄를 숨깁니다.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며 자기의 허물을 감추려합니다. 하나님은 사람 마음속을 다 아십니다. 결국은 죄를 심판하시는 날이 닦아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서 감추려는 것은 결국 자살행위와 같이 위험합니다. 사람이 죄를 감추려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운 분이시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는 사랑과 은총을 가지고 선하게 임하신 분이십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은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뵙는 자는 다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옷자락만 보고서도 울었고 하나님의 뒷모습만을 보아도 통곡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내려올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 곧 하나님을 대행하여 나타난 천사를 보고 내려오는 사람을 보고서도 떨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숨기려고 몸부림칩니다. 결국 하나님께 대해서 오해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 결국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맙니다. 오늘날 의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어쩌다 실수로 죄를 지으면 낙심하고 좌절하여 자포자기 해 버립니다. 아담은 범죄 한 후에 죄에 대한 책임을 여자에게 전가시키었습니다. 아담은 결국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했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주지 않았다면 죄도 안 지었을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형벌하시는 분으로 오해해서 두려워하는 자들은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 하는 것은 막지 않으셨으나 다만 범죄 한 인간이 저주 받는 일을 급히 막으셨는데 생명나무 실과를 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으심으로써 생명나무실과를 먹고 죄 중에 영생하는 영원한 죄를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점 있는 존재로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오셔서 사랑을 쏟아 부으실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으로서 사람이 지어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주 예수를 영접하는 일과 주 예수께 사랑을 받는 일입니다.(요1:12,요3:16)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막 안에는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속죄소은 죄를 속하는 장소이고 속죄소은 의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와 허물을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속죄소은 또 다른 이름은 “시은좌”인데 시은좌은 은혜를 베푸는 보좌라는 뜻입니다. 시은좌은 죄인을 위로하고 속죄하고 은혜를 베푸는 곳입니다. 죄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죄를 짊어지지 말고 죄와 허물을 주 예수께 내려놓고 죄 사함을 받고 상한 심령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생존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체험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하고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경건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뜻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내 앞에 계시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합니다. 예배하는 자와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경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뵙는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듯이 쉬지 않고 계속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문을 열고 모든 것을 도와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셔도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간구는 마치 좋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간구는 쉬지 않고 자꾸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씨를 뿌리듯이 주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악하게 행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신앙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용한 신앙생활이 경건한 생활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고 경건한 생활은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가지고 하늘의 문을 두드리고 하나님을 찾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항상 아쉬움 속에서 세상을 사는 존재로서 밤낮없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밤낮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예배하고 밤낮없이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밤낮없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롬8:14)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시면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한 자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속한 자입니다.(롬8:9) 과거에 율법을 받은 자는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율법은 한 가지라도 범하면 저주를 면치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종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복음에 순종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 곧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십니다. 율법은 사람을 겉으로 잡아끄는 셈이지만 성령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는 돕는 영이 아닙니다.(히1:14) 하나님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우라고 보내심을 받은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는 우리를 돕는 영입니다. 돕는 천사가 권능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섬기거나 도와주는 영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라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하나님의 뜻대로 성령님께서 역사하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은 사람의 생각이 이성의 지배를 받고 움직이나 우리 생각을 성령께 맡겨서 성령님의 인도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홀로 계신 분으로서 시작이라고도 합니다. 영원 전부터 시작하신 하나님을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 주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마귀를 정죄했습니다. 주 예수께서 정죄한 마귀를 형벌하러 세상 끝에 다시 오십니다. 세상 끝 날에는 세상 모두가 동시에 알 수 있도록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마지막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되면 사람들을 다 멸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형벌하기 전에 먼저 의인들을 멸망하는 자들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마지막인 예수께서 이천년 전에 미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이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오신 것은 구세주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구세주로 뵙느냐 아니면 심판주로 뵙느냐 하는 것에 따라 구원 받느냐 멸망 받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과거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로 영생에 이르는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물과 피 곧 살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하나님이 임했습니다. 성령하나님이 증거 하심으로 우리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만다행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죄 없으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태어나신 후 30년 동안 나사렛 동네에서 사시다가 공생애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자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둘이라는 뜻이 되므로 유대인들 신앙에는 엄청난 도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신데 보이는 자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참람하다하여 죽이려고 했고 마침내 유대인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아서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형당할 때 모든 제자들을 다 도망갔으나 모친 마리아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곁에 있었고 끝까지 예수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결혼 전에 어떤 비밀로 예수를 사생아로 낳았다고 합시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사생아를 성령하나님으로 잉태시킨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했다면 모친 마리아는 이미 늙었고 무엇이 부끄러워서 숨기면서 아들이 자기 거짓말로 제물이 되어서 죽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세상의 부모는 자기가 망신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모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자리에서도 충격으로 허둥대지 않고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마리아의 행동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더욱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끝까지 증거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민23:20)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시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복은 문화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문화는 모든 육체 속에 부어 주시는 것으로 육체로는 의인이나 악인도 문화의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에 부어준 복 가운데 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한 곳에만 계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문화에 속한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복을 말합니다. 여기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행복을 소유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할 때는 무작정 거하지 않고 지구 안에 있는 모두에게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심령에만 거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복으로 복 받은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가운데 거하십니다.
사람이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큰 권세를 누리고 있을지라도 물질과 권세로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할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으로 부유할지를 잘 진단하면 참된 영적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써 자기를 겸손히 복종시키며 사는 삶이 하나님의 것으로 행복한 영적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요나와 욥과 모세는 땅에 있는 것으로 행복하기 보다는 하늘에 있는 행복으로 행복하기를 열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복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땅에 있는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복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지 못하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에는 세 가지로 ‘원죄’가 있고 ‘자범죄’가 있고 본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으로 죄의 뿌리로서 죄의 시초를 말합니다. 자범죄는 하나님의 행복보다 순간의 낙을 자기 스스로 경험하려고 불법으로 인한 결과를 말합니다. 본죄는 모든 사람 속에 있는 성품으로 인한 죄로 하나님의 행복을 벗어나 자기 속에서 욕망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말합니다. 본죄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죄의 소원을 품고 있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성령하나님으로 인하지 않고는 결코 정욕적인 인간을 정복하거나 정욕을 벗어날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령하나님으로 거룩해진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고 하지 않고 신앙을 떠나 땅의 것으로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땅의 것으로 행복하려는 사람은 인간의 정신과 생각과 어떤 요소도 죄를 낳을 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이란 무슨 뜻입니까?(약1:15) 이는 땅의 것으로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 하는 자만이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를 사모하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행복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참 회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는 자기 결단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행복으로만 행복하려고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끊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 기도는 하나님의 행복으로만 행복하려고 외치는 진실한 목소리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는 것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행복하려는 심령이 가난한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세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삼위가 되시는 분이시지 세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몸이 있고 피가 있고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생명이 떠나면 나머지는 다 없어집니다. 나는 하나이지만 내게는 몸이 있고 피가 있고 생명이 있듯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처음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끝은 온 세상의 불순종하는 자와 죄인과 불법 자와 불의한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마지막으로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심판주 하나님만을 뵐 수밖에 없었는데 심판하기 바로 직전에 주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구세주를 뵙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땅에서 우리가 구세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심판주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로서 도무지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영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부어서 생령이 되게 하여 인간을 영적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생령’으로서 ‘산영’이라는 말입니다. 흙으로 비벼 만들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산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 영을 불어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만 산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에덴동산 밖으로 내쫒기로 작정하고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창3:21) 여기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은 산영인 아담이 다시 동물과 같이 육체로 돌아간 것입니다. 인간이 말초신경인 감각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육체로 돌아간 것이 바로 죄악이요 타락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남 것은 육체의 사람이 다시 산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행1:8) 했습니다.
여기 기다리라는 뜻은 막연히 잠자고 편히 쉬면서 앉아서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군인이 출격명령을 기다리는 것같이 완전무장하고 “출격”하면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출격명령을 따르려면 하나님 앞에서 영적예배를 드려야 하고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감동되어야 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아주 열렬히 환영하고 성령님을 뜨겁게 영접하고 성령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이 성령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성령님을 참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핍박하고 욕해도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마12:31-32)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린 것처럼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고 운동하시고 성령님을 힘입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능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고 성경은 성령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일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성령훼방 자들이 지옥의 경고를 받는 곳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목숨보다도 귀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거룩함도 귀하고 의로움도 귀하고 모두다 중요하지만 성령님을 영원토록 순종하는 성령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만일 우리가 죽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영생이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도 살아 있는 것이고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론이 아니라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체험하여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다가 힘들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체험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고 하나님을 부인해 버립니다. 성경은 옥토에 뿌려진 씨만이 결실할 수 있다고 했는데(마13:23) 옥토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깨닫는 자”는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원래 “안다”라는 뜻은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완전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에 보다 적극적이고 열심을 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체험이 확실하다면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신앙의 체험이 있는 사람은 기쁨으로 순교하고 주 예수를 위해서 희생하는 열의가 있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성품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을 절대로 주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욕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나타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체험한 여러 사람들이 1600년에 걸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글이 연결되지 않고 토막나있어 순서를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은 연결된 것이 아니라서 각각 따로따로 떨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1600년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이 체험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기만 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대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역사하십니다.(히4:12) 율법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법으로 율법을 지키면 육체가 거룩해집니다. 그러나 율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큰 구원인 복음을 등한이 여기면 어떻게 됩니까? 복음은 주 예수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살아 계신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이적과 능력은 확실하게 역사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수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통해서 사람이 일평생 거룩하고 언어행실이 남보다 경건했다면 육체를 벗고 주 앞에 서는 날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사람이 일평생 수양했을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면 지옥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역사책이나 교훈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계신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체험하여 흔들림 없이 평생 동안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 얻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민23:20)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시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복은 문화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문화는 모든 육체 속에 부어 주시는 것으로 육체로는 의인이나 악인도 문화의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에 부어준 복 가운데 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한 곳에만 계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문화에 속한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복을 말합니다. 여기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행복을 소유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할 때는 무작정 거하지 않고 지구 안에 있는 모두에게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심령에만 거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복으로 복 받은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가운데 거하십니다.
사람이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큰 권세를 누리고 있을지라도 물질과 권세로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할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으로 부유할지를 잘 진단하면 참된 영적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써 자기를 겸손히 복종시키며 사는 삶이 하나님의 것으로 행복한 영적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요나와 욥과 모세는 땅에 있는 것으로 행복하기 보다는 하늘에 있는 행복으로 행복하기를 열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복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땅에 있는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복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지 못하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에는 세 가지로 ‘원죄’가 있고 ‘자범죄’가 있고 본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으로 죄의 뿌리로서 죄의 시초를 말합니다. 자범죄는 하나님의 행복보다 순간의 낙을 자기 스스로 경험하려고 불법으로 인한 결과를 말합니다. 본죄는 모든 사람 속에 있는 성품으로 인한 죄로 하나님의 행복을 벗어나 자기 속에서 욕망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말합니다. 본죄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죄의 소원을 품고 있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성령하나님으로 인하지 않고는 결코 정욕적인 인간을 정복하거나 정욕을 벗어날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령하나님으로 거룩해진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고 하지 않고 신앙을 떠나 땅의 것으로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땅의 것으로 행복하려는 사람은 인간의 정신과 생각과 어떤 요소도 죄를 낳을 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이란 무슨 뜻입니까?(약1:15) 이는 땅의 것으로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 하는 자만이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를 사모하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행복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참 회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는 자기 결단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행복으로만 행복하려고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끊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 기도는 하나님의 행복으로만 행복하려고 외치는 진실한 목소리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는 것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행복하려는 심령이 가난한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십니다.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영광이요 최고의 명예요 최고의 재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은혜 이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귀한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지속하지 못하여 무감각해지고 싫증을 느끼고 불만을 품다가 얼마 후에 타락해 버립니다. 만약 은혜 받은 자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 은혜에 대해서 불만스러워 하면 그 은혜 이상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은혜이상은 하나님의 보좌를 엿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가장 최고의 정상을 차지한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로 하늘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고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 있는 권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섬기기 위해서 지음 받은 천사가 받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보았을 때 사단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나타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분에 대해서 권태를 느끼도록 유도하여 아담이 자기 직분에 싫증을 느끼는 동시에 결국은 하나님의 권위를 요구했다가 에덴의 동산지기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를 요구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은혜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는 행위는 하나님께 “이제는 보좌에서 내려오시오 내가 올라 가리이다.”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하늘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은 주 예수를 영접하기 위해서 미리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 속에서 수태시키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수태시키기 위해서 아담 이후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은 계량 시키셨고 가장 온전한 한 여자의 몸을 준비하셨습니다. 영광의 예수께서 인간처럼 사람의 태속에서 열 달 동안 계시다가 태어나셨고 나사렛 동네에서 30년간 보통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마침내 공생애를 가지면서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로부터 모진 학대와 저주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임당할 때 영웅처럼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살인강도와 같은 대접을 받고 죄인처럼 죽으시고 하나님이 무덤을 경험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대우해드린 마지막 대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면 받은 은혜로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자기 영혼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설립기념주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제자를 삼고 성령으로 친구를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성령으로 전해야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피의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믿게 하고 은혜 받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겸손히 무릎 끊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자가 있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제자 삼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예람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의로우신 판단자이십니다.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의 정하신 공의대로 판단하십니다. 사람의 외모가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외모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을 구합니다. 사람은 신앙을 무시하고 자기의 의나 공로를 자주 내세우지만 이는 하나님의 판단기준과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첫 단계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기 경외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합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3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이요 둘째는 마귀의 뜻이요 셋째는 사람의 뜻입니다. 마귀의 뜻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대한 믿음을 다 망각시켜서 사람들에게 미신을 따르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사람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가진 사람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시인하고 예수께서 구세주이심도 시인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순종이 없습니다. 사람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뜻이 있기 때문에 사울 왕처럼 자기 마음대로 임의로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기왕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으면 마지막 결과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내가 일평생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았다면 비록 우리 삶의 결과가 어떻게 결정이 되더라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일처리에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떠난 때 가지고 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빌려서 쓴 것이기 때문에 다 두고 가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손에 쥐었다하더라도 오늘밤에 우리 영혼이 떠나면 다 놓고 떠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 우리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을 철저하게 믿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신앙의 단계 중 두 번째 단계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물주 하나님을 믿으며 또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행하게도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땅에서 장수하고 형통은 합니다만 유대인들은 죄에서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세 번째 단계는 심판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속하신 주 예수께서는 세상 끝 날에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다음부터는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마음에 두고 힘써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세주로 오실 때는 사랑으로 임했으나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는 공의로 임하시기에 주 예수 앞에 펼쳐진 책에 기록한대로 심판하십니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께서는 속히 오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체한 적이 없습니다. 노아 때에나 소돔고모라 때에도 지체하지 않으셨고 구세주로 오셨던 주 예수께서는 다시 오실 때는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 예수께 칭찬 받은 성도들이 되어 항상 믿음으로 살아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십니다.하나님에게는 무한한 지혜가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게 만드셨습니다. 동물은 지혜가 없고 본능적으로 살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시되 특별히 사람보다 더 하나님의 지혜와 닮은 지혜를 가지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인간이 하나님의 주신 지혜로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지혜가 누구에게 속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에게 속한 자는 악한 지혜만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한 지혜를 가지고 삽니다. 세상은 지혜를 선한데 사용하는 것을 볼 때는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선한 지혜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십니다. 도적 뒤에는 경찰이 쫓아다니지만 선한 사람의 지혜에는 항상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자는 악한자의 지혜 따위는 절대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겁하고 더럽고 치사하게 성공하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거룩하고 선한 지혜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돌 감람나무였는데 접붙임이 되어서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과거는 우상을 섬기고 미신에 절어버린 이방인이었으나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의 믿음에 접붙임이 되어서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애초에 하나님께 속한 생령으로 아담은 생령 곧 “사는 영”입니다. 아담은 사는 영으로 분명히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영적존재입니다. 생령인 사람을 살아있는 영으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대우입니다. 천사도 인간처럼 대우를 받지 못했는데 인간만은 사는 영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마귀의 지혜를 받아드리고 독사의 지혜를 얻은 다음에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히셔서 산영을 육체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가죽에 접촉하고 가죽에 심취하고 가죽에 몰두하고 육체에 몰두하게 되어서 육체의 문화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하는 계명을 지키면 계명은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에 계명만 지키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고 마귀의 지혜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전이 되지 못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거룩하지 못하고 아무리 복을 빌어도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하고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오직 마귀의 지혜만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지혜로 살게 되어 육체의 지혜대로 삶으로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부귀와 영화와 장수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우리는 세상의 지혜보다 예수님의 영으로 사는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만물에 주인이십니다. 구약성경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구세주 하나님만 믿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먼저는 만물을 지으신 조물주 하나님을 인정해야 하고 그 다음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까지 믿어야 온전한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요17:3)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임으로 주관하시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믿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만물이 자기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도 실상은 하나님에게 쓰임받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합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른 것은 지혜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지적인 활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혜뿐 아니라 사람마다 달란트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태어나서 지혜와 달란트를 받은 인간은 지혜와 달란트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말씀을 많이 듣고 말씀을 읽는다고 해서 훌륭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신앙의 척도는 말씀을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의 척도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100% 순종하는 것입니다. 간혹 자기 자녀들의 신앙생활에 무관심한 부모는 부모자신이 하나님께 무관심하다는 증거입니다. 돈을 중하게 여기는 부모는 돈을 물려주려고 하나 돈보다 신앙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신앙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자손에게 믿음을 주려고 하는 사람은 믿음을 제일 큰 보화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은 막연한 종교심이 자신을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줄을 모르고 그저 허무한 것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신은 사람을 구원할 능력도 없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없고 죽은 신은 인간의 몸부림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시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 해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없습니다. 목숨도 재물도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두시면 그만입니다. 목숨과 재물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해도 하나님께서 당장 그 사람의 호흡을 정지시키면 그 사람의 평생 번 것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거듭해서 인간에게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소유가 내 것이 아님을 알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예수께서 오라하시면 오고 가라하면 가야 합니다. 주 예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사랑이고 사랑이 기둥인 것처럼 말합니다.(고전13:13) 그러나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주려고 해도 이미 우리의 목숨은 저당 잡힌 상태입니다. 우리 목숨은 이미 죄 값으로 팔려 버렸으므로 인간은 아무도 남을 위해서 내줄 목숨이 없고 예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 사랑한 만한 능력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참 신앙은 내 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주 예수께만 순종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살아계시고 영원토록 홀로 계신 한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시작과 끝과 처음과 나중이란 뜻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분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곧 시작이요 처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아버지를 두고 한말이고 오메가 곧 나중과 끝이라는 말은 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홀로 창조하셨고 아무도 하나님을 창조한 자가 없습니다. 한분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을 지으신 후에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알게 하셨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아들로 하여금 세상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아버지의 일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의 일을 알고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7:3)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정성으로 인하여 기도나 예배 등의 신앙생활을 참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정성으로 하는 신앙행위는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온 자연적인 믿음이기에 사람이 인간의 정성으로 행하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참 신앙으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일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에는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성경에 와서야 알파와 오메가로 한분이신 예수님이 성령과 함께 역사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복음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일을 예수 홀로 이루신 사역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함께 하신 것임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아버지의 계명에 따른 생애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는 말은 내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이르신 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2:49) 예수께서는 나의 하는 일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5:19) 우리가 구원 얻게 된 것은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들을 아들이 다 이루셨습니다. 세상의 소리는 한번 들으면 사라져 버리고 머릿속에서 어느새 건망증이 생겨서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듣고 깨닫기만 하면 영원히 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을 힘입지 않으면 결코 우리 영혼 속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셨다는 것을 긍지를 갖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조상아브라함의 귀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들이 받은 말씀처럼 따라 행동했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복을 자기들이 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구약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지만 신약의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을 복의 근원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복의 근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이 재물과 명예는 자손에게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천대에 이르는 영원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예수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 예수로 인해서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복의 근원으로 삼았다면 우리 모두 예수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주 예수께서 성공하면 우리도 성공합니다. 하나님은 농부요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잘 가꾸듯이 우리 모두 예수만을 복의 근원 삼아 성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을 때 비로소 하나님아버지가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다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아버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요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고 믿음으로서 우리가 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예수그리스도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른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천사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주 예수는 창조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속에서 있던 분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도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하신 것입니다.(요12:49)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과 의지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셨고 예수는 자기의 이름으로 오시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심으로 오직 아버지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대로 죽고 아버지의 계명대로 부활하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기뻐하시고 예수를 두고 기뻐하시고 예수의 일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100%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예수를 본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결단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않고는 결단코 들어오지 못한다.”(마18:3)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합니다. 이같이 우리는 하나님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식은 당연히 아버지께 대해서 충성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 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눅10:21) 예수님의 공생애는 아버지의 뜻만을 성공케 하는 생애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하신 분인지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겸손을 배우라는 것입니다.(마11:29)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섬겼으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종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임금으로 섬기던 이스라엘백성보다 더 좋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사랑해서 섬겨야 합니다.(갈4:6)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아버지는 주인이나 임금보다 더 가장 높으신 어른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높으신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힘을 다하고 마음과 성품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시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웃입니까? 부부는 한 몸으로 자기 몸이지만 바로 부모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같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영적으로 잘 되는 사람이요 이같이 부모는 잘 공경하면 땅에서도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보다 높은 자가 주인이요 주인보다 더 높은 이가 임금이요 임금보다 더 높은 분이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듯 부모에 효도하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복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속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동등한 권리를 주시고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시기에 예수그리스도에게 주신 복이 우리의 복이 되십니다. 세상사람 중에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복을 빌 수 있습니다. 사람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데 사람이 생각을 잘못 선택하여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선택하여 성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의 생각을 능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보다 크고 완전하고 옳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오늘과 내일을 영원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좇아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수천 년이 지나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하나님의 감시를 받아야 하고 내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의 생각에 맡겨야 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생각이 내가 걸어가야 할 내 인생길이 되려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이요 복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렘6:19)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가 어린 아이를 훈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이들을 훈계하는 것은 아이들을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게 하고 어른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것입니다.(잠4:1-9)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지혜가 되고 명철이 되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이 우리가 가야할 법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대로 간다면 일생동안 결단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각이 우리의 법이 되게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하시니 백성들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재물을 얻게 하고 건강케 되었고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이스라엘자손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복을 줄 권리는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목사가 오른손을 높이 드는 것은 이 땅에서 장수하고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요 왼손을 드는 것은 부유하라는 뜻으로(잠3:16) 장수와 부귀를 위해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복을 믿는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 인 맞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 치심을 받은 복을 자손에게로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훌륭한 부모의 표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욥은 자식들이 은연중에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하여 때마다 번제를 드렸고 자기 자손들을 축복하려고 때마다 욥처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부모가 거룩해야 자녀도 거룩하다고 했습니다.(고전7:14) 한나라는 여인도 자식을 낳을 때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결국 기도를 쉬지 않았던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기도하는 부모에게 기도하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욥과 한나와 같이 축복하려면 부모가 거룩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항상 양육하여 하나님의 인도 받은 자녀들을 축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이십니다.(요일4:16)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믿음을 가지고 예배나 봉사하는 것 자체가 무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요17:3)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사랑은 조건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태양빛이 일반적으로 내리 쪼이기만 하는 것같이 하나님은 오직 베풀기만 하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씀과 빛과 생명은 동일하게 취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요1:1-4)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빛이 자기 백성에게 비친 것입니다.(마4:15-17) 세상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면 생명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우리의 열심히 무엇입니까?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살을 찢지 않고서는 결코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살을 찢어서 자기 자신을 다 깨뜨린 다음 깨진 살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가 내속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의 사랑을 기념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우리 안에 있음을 성령에 의해서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찢어진 살과 흘리신 피가 우리 속에 있을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기억시켜 예수님을 기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아는 것입니다. 성찬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의 찢어진 살과 피가 내안에서 증거가 되어서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기념하라!”하는 말은 “주 예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먹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몸을 깨뜨리기 전에는 우리에게 사랑을 알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써 주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기념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성찬식은 우리를 향한 주 예수님의 수고와 노력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주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예수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주신 주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념하여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거룩한 성찬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생하는 분이십니다. 영생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하셨습니다. 부활과 영원한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독특하고도 놀라운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3)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는 나사로보다도 나중에 부활하셨는데 왜 나사로의 부활을 무시하고 주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할까요? 나사로의 부활은 썩은 육체의 부활이요 나사로의 육체의 부활은 다시 무덤으로 들어가서 썩어지고 맙니다. 세상에 자기 무덤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다시는 무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남의 무덤을 빌려서 장사되었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썩어질 육체가 살아난 기적 같은 부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보거나 초상집을 가서도 크게 슬퍼하지 않는 이유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 곧 소망이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서 즐기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의 것들을 모두 배설물 같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부활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먼지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부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생(피)과 영 두 단어를 합친 것이 아담 곧 “생령”입니다. 생령은 “사는 영”을 뜻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아담”입니다. 인간의 영은 “사는 아담”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체와 우리의 영은 수준이 같습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다시 육체가 썩을 때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당분간 회복된 육체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말씀인 영이 육신이 된 아담의 부활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입니다. 곧 둘째아담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첫 아담의 영은 아직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령한 몸의 부활인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기독교회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교회의 생명은 봉사나 구제가 아니라 구원과 부활입니다. 기독교회가 구제를 못하여 세상에서 비난을 받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세상이 묶어둘 수 없는 부활이 있습니다. 다른 모임과 단체는 봉사기능을 상실하면 해체되어 버리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설사 봉사가 없을지라도 해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에는 반드시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이 있습니다. 봉사나 구제를 교회의 주인같이 생각하면 교회는 부활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으나 교회가 부활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의인이 망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죽음이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뿐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욱 가까이 왔습니다.(롬13:11)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신령한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임금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아무 수행자도 없이 예수께서 오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암행어사가 혼자 다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수백 명의 포졸들이 따르는 것처럼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사람들이 보이도록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를 보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예수께서 목숨을 내주기로 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를 옹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감히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영광의 왕으로 임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새끼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성의 동쪽 문으로 입성하여 서쪽 문으로 나가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는 일은 예수님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엄청난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과 예수의 하신 말씀이 복음이요 예수께서 하실 일과 예수의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에 의하면 왕이 동쪽 문으로 들어간 후에 동문이 닫친다고 되어 있습니다.(겔44:1-2) 그리고 2천 년에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예수께서 문을 열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성에는 일곱 문이 있는데 예수께서 입성하신 그 동쪽문은 지금 벽돌로 막아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3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는 하늘에 오르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바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을 때는 초라한 종의 형상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오실 때는 왕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행1:8) 우리가 권능을 받는다는 말은 천사들이 임하여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임금이신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성령님을 수행하는 천군천사가 함께 온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에게 천사가 임한 것입니다. 천사 즉 권능이 임한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능력이 많다는 말은 바로 천사가 많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천군천사가 함께 임함으로 우리를 지키는 천사가 많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능력이 많은 자가 주 예수님이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천가가 많은 자가 주 예수가 가까이 하는 자입니다. 세상에서도 임금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권세가 있고 위엄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가까이 할수록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종려주일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 나귀새끼를 타셨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나귀가 힘이 있고 경험이 많고 잘 길들여진 어미 나귀가 아니라 예수께서는 훈련이 되지 않고 다듬어 지지도 않은 보잘 것 없는 나귀새끼를 택하시고 어린 나귀에게 자격을 주어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겸손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주 예수와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새끼나귀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태운 나귀는 어디든지 길이 있습니다. 겸손한 나귀가 되어서 주님 모시고 오직 주 예수만 따라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신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분으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인간의 약점을 보충해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죄는 주인을 잃어버림으로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십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는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와 마음에 주인을 배반하게 하고 주인을 잃어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마귀는 주인이 주신 직분을 거역케 하고 주님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하고 사람 스스로 주인 노릇하도록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드림으로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죄인이란 주인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사람은 주인과 함께 있는 사람이요 세상 사람은 주인을 잃어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은 잃어버린 주인을 찾는 것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은 주인에게 발견된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우리의 마음이 주 예수께로 돌아가지 않고 주인을 찾지 못했다면 이것은 미신적인 행동이요 종교 활동에 불과합니다. 주인에게 돌아간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요 주인을 찾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주인입니까? 우리의 주인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자기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고 피 흘리기까지 찾으셨고 갈보리까지 가시고 음부까지 가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나는 잃은 양을 찾았노라.”하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피 흘리신 공로가 우리 신앙의 튼튼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신기하게도 “주님이 언제 오시려나.” 주 예수를 만날 일과 말세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반면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한 사람은 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세상문화에 관심이 많고 노는 것만을 즐거워합니다. 도무지 내세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주 예수 앞에 설 것을 의식하며 내세를 위해 책임 있게 준비합니다. 불신자들은 주의 재림을 부인하나 주 예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오늘 밤에도 오실지도 모릅니다. “이러므로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하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내 마음속에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진단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영적인 직분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영적직분을 위해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고전12:7-11) 똑똑한 사람은 매사에 빈틈없이 정확하고 수학적이며 모든 일처리가 아주 합리적이요 세상적인 방법으로 합니다. 하지만 좀 무식한 것 같아도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수학이요 하나님의 경영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과 세상 지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는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믿음의 일을 하며 세상의 지식이나 세상의 지혜로 일하는 곳이 아니라 교회는 진리로 일하고 수학으로 일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고 믿음으로 일하는 곳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상의하고 하나님과 함께 결정해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잔심부름 하는 자들이요 우리는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지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맡은바 일을 충성하여 주인과 회계하는 날 훌륭한 작품을 내놓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아버지십니다.사람들은 자연을 진리라고 말하고 심오한 학문을 진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연이나 학문이 합리적이고 분명한 조화를 가지고 있어서 쉽사리 변치 않은 것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가지 못하기에 죽음을 진리라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마저도 진리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에게는 한번 죽는 것이 정한 이치라고 증거 합니다. 실제로 죽음 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천사가 전해준 율법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세로 인해서 전해진 율법도 진리라고 말하지 않고 율법은 마침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율법이 영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율법 스스로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신령한 법이고 또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롬7:12) 율법의 강령은 사랑입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깊은 사랑을 베풉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율법은 용서할 능력이 없고 율법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정죄하여 심판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를 죽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율법은 용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신령한 사랑의 법을 가지고도 죄를 용납하지 못하고 죽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율법은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은 불완전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셨습니다. 용서가 없는 율법의 불완전함을 예수그리스도의 용서가 개입될 때 비로소 완전해 집니다. 진리는 변할 수 없는 완전한 것입니다. 해도 땅도 없어질 날이 오지만 없어지지 않는 하나는 예수께서 완성하신 영원한 사랑의 진리입니다.(롬8:38-39) 우리 믿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용서의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세로 인해서 전해진 율법이 세상에 용서를 주고 인간을 능히 구원할 수 있었다면 율법이 온 이후에는 왜 예수그리스도를 보냈겠습니까?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어떤 율법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은 핍박을 당하시고 죽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병든 몸을 참는 것은 예수의 고난을 모독하는 불신앙입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고 고난당하심은 우리의 육체안의 모든 질병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지 못하는 자가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깊은 체험이 있는 사람들은 병에서도 일어나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은 나의 죄와 질병과 가난을 대신 담당하기 위함입니다. 주 예수께서 나로 인하여 고난을 받으셨기에 나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내 구주이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믿는 사람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정죄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에게도 정죄하지 않았고 살인 강도에게도 낙원을 허락하셨습니다.(눅23:43)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죄에 대해서 심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16:9) 우리의 믿음은 육체로 오셔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었다는 체험이 내게 속죄가 되고 예수께서 매 맞은 체험이 내게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속죄와 치료에 역사는 성령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성령으로 확실하게 체험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 뜻대로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영광 받으신 후에 예수의 이름을 우리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는 죄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주소로 삼아서 예수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나 예수 안에 주소를 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은 자만이 예수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주소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소는 그 사람의 거주지를 증명해 주고 신분을 확인해 줍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도 거룩한 주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나사렛사람이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나는 아버지께 로서 왔노라.”하시면서 자기의 주소가 하늘에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이 땅에 속한 사람은 땅에만 주소를 갖고 있습니다만 거룩한 사람은 이 땅뿐만 아니라 저 하늘에도 거룩한 주소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너희는 아버지와 주소를 같이 하라 내안에 아버지가 계시니 너희도 내안에 주소를 두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예수를 자기의 주소를 삼는다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주소를 같이 하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도 이러한 사람에게 영원한 주소를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과 계명은 같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내안에” 너희 안에”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안에 있으라. 그러면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도 아버지 안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과 주소를 같이하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주소는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 예수께서는 자기 안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에 처소를 예비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늘 처소는 땅에 속한 자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룩한 자들을 위한 곳입니다. 거룩한 자를 위한 하늘의 처소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절대 변치 않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갈 소망을 갖고 있지만 하늘나라를 사모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무시하다면 사실상 하늘나라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늘나라를 사모하여 가고 싶어 해도 그리스도 안에 주소를 두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도 아니며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예수를 자기의 주소를 삼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이 세상에 속했기 때문이요 세상이 예수를 미워함 같이 자신도 예수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참 신앙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함께 주소를 동일하게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소를 같이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주소가 다르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와 같이 생활하기도 했지만 마음조차 같이 있는 것이 싫어서 아예 주소를 옮겨 버리려고 멀리 떠나 아버지와 주소를 달리했고 큰 아들은 한 솥밥을 먹고 같이 있어도 마음의 주소는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주소로 삼으면 영원한 하늘나라가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가 내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도 내안에 있으라.”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영원한 주소를 삼아 영원히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타락하게 되면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와 낳으신 자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계십니다. 처음 지음 받았을 때의 인간은 창조에 속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자녀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창조했다고 말하지 않고 낳았다고 말씀하십니다.(행13:33)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충성된 일꾼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법적으로는 창조에 속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를 피로 사시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혈육은 창조에 속하지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낳으셨기에 자녀에 속합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듭난 자녀를 더 깊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일의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지옥자식이요 멸망할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을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셔서 구원해 내시고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후에 다시 실족한 사람을 지옥자식이라 하지 않고 탕자라고 합니다. 신자들의 범죄는 탕자로서 범죄이지 지옥자식으로서의 범죄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멸망할 죄인과 하나님의 자녀는 비록 타락하는 모양이 같을지라도 신분이 다릅니다. 창조에 속한 자가 타락하면 영원히 멸망시키시지만 자녀에 속한 자가 타락하면 아버지는 끝까지 탕자로 기다리십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자식이 타락한다고 해도 자식을 버리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은 목숨이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품꾼이 주인을 떠날 때는 미워함을 갖기 때문에 영원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주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아버지의 품을 떠날 때는 싫어하고 미워함을 갖지 않습니다. 부자간에는 원수를 맺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아들은 반드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낳으신 자녀를 영원히 버리시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타락할지라도 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타락했는데 돌아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녀에 속한 자는 창조에 속한 자보다 월등한 수준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이 낳으신 것이 아니라 천사는 창조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는 낳으신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와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하리라.”하고 아버지께 돌아갔지만 자녀는 비록 아버지를 거역하고 불효했을 지라도 품꾼이 될 수 없습니다. 품꾼과 함께 일을 해도 품꾼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품꾼이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창조에 속한 자가 아니라 자녀에 속한 자입니다. 창조에 속한 자들이 멸망할지라도 하나님은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죄인에게는 영원한 심판만 있기 때문입니다. 충성스럽게 주 예수를 사랑했다할지라도 큰 아들같이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탕자입니다. 주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탕자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작은 아들 탕자도 아버지와 일평생 모시면서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큰 아들 같은 탕자도, 주 예수께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준비한 새 옷을 입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삼고 내 영혼을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는 약속대로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이제 신약성경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과 세상 끌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수천 년 동안 기다리며 보고자 해도 보지 못했고 듣고자 해도 듣지 못했으나 신약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주 예수께서 함께하시는 경험과 은총을 계속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 사람들은 과거 사람보다 더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에게 어떻게 인내하시고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증표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인정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입으로만 강조하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또 예수 믿는 자가 사랑이 변하면 믿음도 변해서 불신자와 똑같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는 것 입니다.아담이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순간에 불순종 했습니다. 아담은 자기 본분을 떠난 것입니다. 하와도 하나님을 사랑했으나 순간에 월권을 했습니다. 월권은 자기 밖에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같이 되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와의 월권행위와 아담의 불순종으로서 에덴동산에서의 사랑을 망쳐 버렸습니다. 오늘날에도 노년에 믿음이 있노라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의인이라서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로워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도 아니고 불의하고 연약하지만 은혜로 구원받은 그 시간부터 주 예수님을 부지런히 사랑하고 계속 사랑하기 때문에 영원히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면서 믿음과 순종은 주 예수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 이름을 믿고 영접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삽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내안에 계신가 안 계신가를 진단하려면 어떻게 진단합니까? 바로 내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아니한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에베소교회는 생활과 행위 면에서는 매우 성장한 교회지만 주 예수만을 향한 사랑이 식어짐으로서 주 예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교회가 주 예수님께 예배할 사랑이 식어졌다는 것은 곧 타락입니다. 주 예수님께 대한 사랑만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돈도 벌고 직장도 생기고 병도 나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주 예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평생에 주 예수님만을 믿고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거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값없이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값없이 주시고 자기의 소유를 값없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은혜”입니다. 성경 가운데 많이 나오는 단어가 은혜입니다. 또한 성경에 귀중하게 취급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라는 말에는 “구원을 얻었다. 축복을 받았다. 생명을 얻었다. 영원히 살게 되었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면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지금 죽는다 할지라도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약속을 얻은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히 받은 사람입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점은 신자는 은혜 받은 사람이고 불신자는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았다는 점에서 불신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경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서 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큰 문제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크고 작고가 아니라 오직 죄인은 지옥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십니다. 인간의 아주 작은 죄라도 하나님이 일단 죄로 정하시면 우주전체를 주고도 그 죗값을 지불할 수 없고 죄를 지으면 인간을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죗값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지 않으면 인간의 죄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죄는 중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는 것도 죄고 남의 마음에서 미움을 끌어낸 것도 죄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섭섭한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에 약간의 분을 품은 것도 하나님의 아들이 없이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로 인정하십니다. 사람이 죄에서 구출된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죄 문제는 인간의 노력과 돈과 세상의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보낸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한 문둥이가 예수께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너는 즉시 가서 모세의 명한 예물을 제사장 앞에 드리고 증거 하라.”하셨습니다. 모세가 명한 예물은 최소한의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쉽습니다. 반면에 예수의 율법은 더 무섭습니다. 예수님의 율법은 마음으로 범한 죄까지입니다.(마5:27-28) 예수께서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라”하는 것은 과부가 엽전 두렙 돈을 드리듯이 있는 힘을 다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이 은혜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금방 소멸해 버리고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은망덕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자입니다. 아벨과 가인은 분명히 감사의 예물을 드렸지만 하나님은 이들에게서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믿음의 감사를 찾으십니다. 감사는 신앙의 표시로서 서로 분리 될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신앙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명한 예물은 치료 값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 받은 자로서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십니다.하나님이 하신 약속도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서 이것이 약속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신 말씀은 우리에게 주실 때를 가리켜서 “약속”이라고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영접하여 영원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을 “믿음”이리고 합니다. 믿음과 약속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하는 하나님의 계약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것도 이미 계약된 것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모든 신앙생활이 하나님과 계약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은 곧 계약을 어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도 인간에게 하신 그 계약이 깨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라도 희생시키면서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방신앙 즉 자연을 숭배하는 자연종교는 계약이 없이 오직 제사만 지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으로 사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해서 백세에 주신 아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바쳤던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삭을 바쳤던 사랑을 아시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주시겠다고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사랑으로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사랑으로서 견고케 됩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번 주의 이름을 부른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할지라도 주 예수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 신들을 섬기는 이방 종교인들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노여움 풀이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배하고 예수를 사랑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사랑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신앙이 견고하게 되어서 자손들에게 믿음을 물려줄 수 있는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주 예수님께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주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다하여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사랑을 그 만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진실로 주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신앙의 유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어 천대까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복을 받은 역사가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이시며 만물을 지으신 주물주이십니다. 땅에 있거나 하늘에 있거나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의 아버지하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아버지가 우리 자신들의 영적존재임을 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영적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짐승에게 진화되었다고 진화론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내세가 없는 짐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하는 데에는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적존재로서 영원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존재이기 때문에 영으로 삽니다. 우리 사람의 영과 육은 다 갈급합니다. 우리가 영이 목마르고 주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아주 짧은 한 평생 사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영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영은 영이 요구하는 양식을 영에게 공급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저주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4:4) 라는 진리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사람들은 문둥이처럼 영혼의 곤고함과 괴로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둥이는 육체를 갖고 있지만 춥거나 더운 줄도 모르고 아픈 줄도 모르기 때문에 빌어먹고 사는 것입니다. 문둥이는 손가락이 다쳐도 귀가 떨어져 나가도 코가 문드러져도 발가락이 문드러져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만일 우리 영혼이 고단하고 괴롭고 피곤하고 갈급한 것을 모른다면 마치 문둥이와 같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문둥병은 저주의 상징으로 취급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육체의 신경이 있어서 배고픈 줄 알고 몸부림치는데 영혼에 갈급함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영혼에 갈급함을 알지도 못하는 것은 마치 문둥이와 같이 영적으로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혼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열망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여하고 가더라도 자기 영혼에 갈급함이 없는 사람은 자기 영혼에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매우 충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내 영혼이 하나님의 축복 받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잠깐 있는 존재지만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친히 당신의 아들로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그 아들의 피와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2가지 은혜 즉 피와 말씀을 베푸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가인은 예물로 예배하였고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믿음을 열납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물의 관심보다 믿음에 대한 관심이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물질로써 표시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져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그 예물이 믿음의 분량이어야 됩니다. 믿음이 적으면 예물의 분량도 적어질 수 있고 또한 예물의 분량이 많다 해도 믿음 없이 예물로만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 창고에 맡겨 두었던 것을 어느 때든지 필요할 때 간구하여 쓸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헌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생명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주장이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살았다는 경험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을 먹어 배부른 것이 아니라 생명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떡을 먹고 배부름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양육하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게 된다면 우리를 구해 주실 분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아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신에게도 할 수 있는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만 할 수 있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려면 우리에게 순종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자기의 뜻대로 하고 싶어 하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100% 순종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질 때는 이론이나 생각이 아니라 만왕의 왕을 영접하는 실질적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일5:12) 예수를 믿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요6:29)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일은 예수의 살을 먹는 것이고 예수의 피를 마심으로써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속에 생명이 되어 나를 주장하고 역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일은 하늘로부터 온 생명에 의해서 자신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는 사람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죄가 나를 좌절시키지 전에 우리는 생명으로 죄를 저주하고 진멸해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수만 가지의 경험들이 사람을 낙심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은 모든 시험을 다 내쫓고 묵살시켜 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시험에도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의 피의 능력은 마귀로부터 오는 어떤 세력도 다 꺾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의 피의 능력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떤 세력도 다 좌절시키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주신 피의 능력은 하늘로부터 꽃을 피게 하고 싹이 나게 하고 하늘로부터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임을 알고 주 예수를 열심히 믿고 의지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있으신 분이십니다.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뜻이나 세상에서 나는 뜻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음을 받은 후에 영적생활을 하면서 영을 다 믿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요일4:1) 그런데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뜻을 행동으로 나타나게 될 때 우리에게 역사하는 영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모든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주 예수께 순종하여 따르다가 갑자기 변함으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허물을 남기게 되었고 아나니아부부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재산을 다 팔아 하나님께 드리려 했으나 배후에서 역사하는 영 때문에 졸지에 마음이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요 또 하나는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말만 듣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늘에 속한 말만 듣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이 어디에 속하였는가를 시험해 봐야 합니다. 사람이 신앙의 기준이 없으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기준이 없으면 영적생활을 하면서도 순식간에 신앙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을 때 영광중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사람과 똑같은 육신의 모습으로 고난의 종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에게 복음이 되었습니다. 만약 주 예수께서 영으로 오셨다면 결코 고초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를 사모하든지 아니면 어떤 다른 영광을 사모하는지 자신을 분별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서 낙이나 누리려고 하는지를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은 예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요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뜻대로 영접하여 받아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육신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입니다.(벧전2:24)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악과 병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와 병을 담당하실 수 없었다면 주 예수님이 고난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속에 일어난 변화가 무엇입니까? 바로 죄가 옮겨지고 병이 떠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와 병을 동일하게 취급하셨습니다.(시103:3) 죄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병은 보이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병이 있다는 것은 죄가 보이게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자기 몸에 병이 있다는 것은 죄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가 예수께 나왔을 때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이 “내가 죄 사함 받았다”는 사실을 내 속에 병이 실제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와 병을 담당하시므로 속죄와 치료가 되었음을 알고 주 예수만 의지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일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도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권리와 능력과 영감을 주십니다. 과거 선지자들은 이적과 능력을 많이 행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택함 받은 자로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먼저 길을 예비한 안내자와 같은 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필요한 능력들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나 영감을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부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감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정직하게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가졌던 능력이나 영감을 엘리사라고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갑절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에게만 독점 당하시는 분이 아니라 누구나 사모할 수 있고 사모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 하 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멸하고 무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뜨겁게 사모하고 환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기 전에 인류의 죄가 대속 받기 전에도 “영감을 주옵소서. 능력을 주옵소서.”하고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영감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엘리사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원수 귀신을 제어할 권세는 없었습니다. 능력과 권세는 다릅니다. 능력은 힘을 가리키는 것이요 권세는 임금의 권한을 가리킵니다. 세상임금 마귀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밖으로 벗어난 자들 속에 역사하는 영으로 마귀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자(행10:38)라고 했습니다. 임금은 나라를 지배하는 자이기에 나라에서 임금보다 더 큰 세력은 없습니다. 여기 “세상임금”이란 마귀보다 더 큰 세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일을 행하시기 전까지 많은 이적을 행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에게는 귀신을 쫓는 권세가 없습니다. 만일 선지자들이 세상임금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다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를 가리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임금의 권한을 가지신 이가 오셨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하늘의 임금이 오셔야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마귀를 굴복시켜 당장 임금의 자리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과거 선지자들이 받은 것은 이적을 행할 수 능력이 있었으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받은 것은 권세로서 세상임금을 제어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자는 누구든지 임금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기는 생활과 능력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약의 엘리야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임금 같은 권세를 가지고 사람의 원수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신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실 때 빛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도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받을 때는 말씀을 빛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빛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은 정직하고 진실하고 일방적으로 비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정직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심은 고난의 계명을 받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려고 오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죄인의 모습으로 예수께 정직한 고백과 정직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사도도 인간을 질그릇으로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의가 하나도 없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공로 전부가 복이 되고 예수 공로 전부를 생명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빈 그릇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빈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비어있는 빈 그릇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과 빛이 가득 채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영혼이 죽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화환도 아니고 꽃다발도 아니라 죽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주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내 영혼에 주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피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고전6:20) 예수께서는 고난당하시고 흘리신 피로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피로 사신 오직 주 예수의 것입니다. 교회는 사고 팔 수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를 훼방하거나 어지럽히는 말을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도전입니다. 교회를 훼방하는 것은 값 주고 사신 주 예수의 해산에 수고의 대한 도전이요 협박입니다. 교회는 전도하고 영혼을 구원하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주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짊어져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영광과 고난을 주 예수와 함께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기를 거절하고 피해 가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같이 예수의 남은 고난을 짊어진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고난을 짊어진 사람을 도우십니다. 성령 충만해지면 만사가 형통해져서 장애물과 고통이 없어질 것을 오해하는데 스데반집사와 제자들은 성령 충만할 때 목숨을 잃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는 자는 비겁하고 치사하게 타락해 버립니다. 교회는 성령 충만함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살 수 있는 계명을 받았으면 죽음에 대한 계명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빈 그릇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있다고 말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일을 해도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모독하게 됩니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보다 더 강력한 것은 목숨을 내놓고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주 예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주 예수님의 고난의 계명에 순종하여 목숨을 다하여 예수님만을 사랑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믿음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협동하여 이루어야 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합력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소유하지 않으면 능력과 이적과 표적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라”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이여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하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주고받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병도 낫고 소망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이기기도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만약에 우리 속에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미신을 섬기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고 허송세월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재능이 있어도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자라도 하나님께서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효력이 없습니다. 겨자씨는 아무리 작을 지라도 땅에 심겨지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가 그대로 있으면 새에게 먹혀 버립니다. 이같이 믿음을 그대로 둔다면 세상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삼켜 버립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인내로 믿음을 유지하면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직하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예수를 체험해야 합니다.(시68:19) 하나님은 정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정직한 믿음을 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 도우시고 믿음 있는 자를 도우십니다.(사26:7) 믿음이 없는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므로 항상 속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는 날마다 마귀에게 속고 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마귀에 속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절대로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믿음에는 하나님의 명예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의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접근 하실수록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이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마귀는 죄와 저주를 지배할 수 있고 재산도 육신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믿음은 지배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어떠한 힘도 마귀를 지배할 수 없으나 예수 믿는 믿음은 마귀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라”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믿음 있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믿음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협동하여 이루어야 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합력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소유하지 않으면 능력과 이적과 표적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라”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이여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하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주고받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병도 낫고 소망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이기기도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만약에 우리 속에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미신을 섬기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고 허송세월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재능이 있어도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자라도 하나님께서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효력이 없습니다. 겨자씨는 아무리 작을 지라도 땅에 심겨지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가 그대로 있으면 새에게 먹혀 버립니다. 이같이 믿음을 그대로 둔다면 세상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삼켜 버립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인내로 믿음을 유지하면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직하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예수를 체험해야 합니다.(시68:19) 하나님은 정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정직한 믿음을 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 도우시고 믿음 있는 자를 도우십니다.(사26:7) 믿음이 없는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므로 항상 속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는 날마다 마귀에게 속고 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마귀에 속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절대로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믿음에는 하나님의 명예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의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접근 하실수록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이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마귀는 죄와 저주를 지배할 수 있고 재산도 육신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믿음은 지배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어떠한 힘도 마귀를 지배할 수 없으나 예수 믿는 믿음은 마귀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라”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믿음 있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믿음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협동하여 이루어야 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합력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소유하지 않으면 능력과 이적과 표적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라”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이여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하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주고받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병도 낫고 소망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이기기도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만약에 우리 속에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미신을 섬기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고 허송세월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재능이 있어도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자라도 하나님께서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효력이 없습니다. 겨자씨는 아무리 작을 지라도 땅에 심겨지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가 그대로 있으면 새에게 먹혀 버립니다. 이같이 믿음을 그대로 둔다면 세상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삼켜 버립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인내로 믿음을 유지하면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직하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예수를 체험해야 합니다.(시68:19) 하나님은 정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정직한 믿음을 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 도우시고 믿음 있는 자를 도우십니다.(사26:7) 믿음이 없는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므로 항상 속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는 날마다 마귀에게 속고 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마귀에 속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절대로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믿음에는 하나님의 명예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의가 담겨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접근 하실수록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이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마귀는 죄와 저주를 지배할 수 있고 재산도 육신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믿음은 지배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어떠한 힘도 마귀를 지배할 수 없으나 예수 믿는 믿음은 마귀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라”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믿음 있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세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삼위가 되시는 분이시지 세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몸이 있고 피가 있고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생명이 떠나면 나머지는 다 없어집니다. 나는 하나이지만 내게는 몸이 있고 피가 있고 생명이 있듯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처음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끝은 온 세상의 불순종하는 자와 죄인과 불법 자와 불의한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마지막으로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심판주 하나님만을 뵐 수밖에 없었는데 심판하기 바로 직전에 주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구세주를 뵙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땅에서 우리가 구세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심판주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로서 도무지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영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부어서 생령이 되게 하여 인간을 영적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생령’으로서 ‘산영’이라는 말입니다. 흙으로 비벼 만들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산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 영을 불어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만 산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에덴동산 밖으로 내쫒기로 작정하고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창3:21) 여기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은 산영인 아담이 다시 동물과 같이 육체로 돌아간 것입니다. 인간이 말초신경인 감각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육체로 돌아간 것이 바로 죄악이요 타락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남 것은 육체의 사람이 다시 산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행1:8) 했습니다.
여기 기다리라는 뜻은 막연히 잠자고 편히 쉬면서 앉아서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군인이 출격명령을 기다리는 것같이 완전무장하고 “출격”하면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출격명령을 따르려면 하나님 앞에서 영적예배를 드려야 하고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감동되어야 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아주 열렬히 환영하고 성령님을 뜨겁게 영접하고 성령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이 성령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성령님을 참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핍박하고 욕해도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마12:31-32)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린 것처럼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고 운동하시고 성령님을 힘입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능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고 성경은 성령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일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성령훼방 자들이 지옥의 경고를 받는 곳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목숨보다도 귀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거룩함도 귀하고 의로움도 귀하고 모두다 중요하지만 성령님을 영원토록 순종하는 성령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315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시는 분이시다(요14:13-21)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하시되 자신의 일을 쉬지 않고 끝까지 주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밤이나 낮이나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피조물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사단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하나님의 천사들 중에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을 버리고 자기 위치를 떠난 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를 버린 자를 심판 때까지 흑암의 가두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에게는 각각 자기 일을 주셨습니다 아담에게는 에덴의 동산지기로 경비원이나 국경선을 지키는 군인들과 같이 밤낮없이 지키는 일을 주셨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하는 일을 돕는 배필로서의 일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일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와의 범죄입니다 아담 역시 자기의 일을 버리고 지배하는 자가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를 실망하시고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아시는 것 같이 우리도 각각 자기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려고 합니다 본래 이 땅에는 일터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고 식물을 먹더라도 땀을 흘려야 먹고 여자는 아이를 낳더라도 수고해야만 아이를 낳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영광의 왕실에 태어나 평안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에 오셔서 어려서부터 목수의 일을 했고 육신을 양육한 부친을 도와서 함께 일하셨습니다 예수는 공적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 예수의 공적 활동이 인류 생활에 표준입니다 이 땅은 일하는 곳이고 이 땅은 쉬는 곳이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막14:38) 하신 말씀은 밤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는 작업만이 있을 뿐 우리가 쉴 곳은 저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마치기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도 그날의 할 일을 그날의 완성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날 해야 할 자기 일을 하지 않기에 일이 밀리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은 좀 먹게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을 누적되면 365일 가운데 자기가 일을 하는 날은 실제로 100일도 못 되고 결국 265일을 허비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갑절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에 ‘자기 일을 하고 너희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고 하셨는데 이는 네 손에 잡은 일은 네가 스스로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순종하는 자기의 일을 버렸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불순종하여 자기 일을 버림으로 저주받고 심판받는 인간들에게 용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첫째, 회개가 있어야합니다 사람이 회개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회개해야합니다 생명은 영원하지만 회개는 영원하지 않는데 어느 날에는 회개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회개는 인간이 자기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용서를 약속하셨는데 용서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셋째, 용서의 약속을 받은 우리는 재헌신에 순종해야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해야합니다 본문에 주 예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에 시작과 끝을 시행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열심히 일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308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시는 분이시다(요14:13-21)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하시되 자신의 일을 쉬지 않고 끝까지 주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밤이나 낮이나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피조물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사단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하나님의 천사들 중에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을 버리고 자기 위치를 떠난 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를 버린 자를 심판 때까지 흑암의 가두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에게는 각각 자기 일을 주셨습니다 아담에게는 에덴의 동산지기로 경비원이나 국경선을 지키는 군인들과 같이 밤낮없이 지키는 일을 주셨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하는 일을 돕는 배필로서의 일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일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와의 범죄입니다 아담 역시 자기의 일을 버리고 지배하는 자가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를 실망하시고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아시는 것 같이 우리도 각각 자기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려고 합니다 본래 이 땅에는 일터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고 식물을 먹더라도 땀을 흘려야 먹고 여자는 아이를 낳더라도 수고해야만 아이를 낳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영광의 왕실에 태어나 평안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에 오셔서 어려서부터 목수의 일을 했고 육신을 양육한 부친을 도와서 함께 일하셨습니다 예수는 공적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 예수의 공적 활동이 인류 생활에 표준입니다 이 땅은 일하는 곳이고 이 땅은 쉬는 곳이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막14:38) 하신 말씀은 밤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는 작업만이 있을 뿐 우리가 쉴 곳은 저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마치기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도 그날의 할 일을 그날의 완성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날 해야 할 자기 일을 하지 않기에 일이 밀리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은 좀 먹게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을 누적되면 365일 가운데 자기가 일을 하는 날은 실제로 100일도 못 되고 결국 265일을 허비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갑절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에 ‘자기 일을 하고 너희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고 하셨는데 이는 네 손에 잡은 일은 네가 스스로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순종하는 자기의 일을 버렸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불순종하여 자기 일을 버림으로 저주받고 심판받는 인간들에게 용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첫째, 회개가 있어야합니다 사람이 회개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회개해야합니다 생명은 영원하지만 회개는 영원하지 않는데 어느 날에는 회개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회개는 인간이 자기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용서를 약속하셨는데 용서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셋째, 용서의 약속을 받은 우리는 재헌신에 순종해야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해야합니다 본문에 주 예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에 시작과 끝을 시행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열심히 일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517 악한 자를 이기는 힘은 예수 이름이다(마8:14-17)
하나님은 긍휼히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질병과 고통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어 질병과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의 고통과 괴로움은 부모가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담당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우리 마음의 생각에서 그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있어야 영적 생활은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것도 나의 열심을 바치고 나의 열심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시고 오직 이 땅에 보내신 예수로 인하여 계속해서 은혜를 받는 생활과 복 받는 생활이 예수 믿는 생활이요 영적 생활이요 신앙생활입니다 주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생활은 죽은 생활이고 예수님과 분리된 생활은 멸망입니다 가지는 나무의 뿌리에서 진액을 공급받아야 살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있어 은혜를 계속 유지하는 영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어 멸하신 마귀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고 귀신도 생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가운데 귀신을 생각하면 귀신이 있는 것이고 귀신을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귀신을 생각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 속에 들어와 사람을 해칩니다 성경은 귀신을 ‘악한 자’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악한 자의 손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을 배우고 알게 되었는데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또 하나의 지식을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원수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의 배후에는 어떠한 조종자들이 있는가를 확실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마귀와 귀신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에서는 인간의 고통은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 이상을 다루거나 설명하지 못합니다 선지자도 죄를 다루고 죄를 꾸짖고 죄를 학대하고 심판했지만 죄 이상은 최급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의 원인이 ‘죄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했고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관념이 아니라 죄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는 증서와 같고 하늘에 신령한 법적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이미 가르쳐 놓은 죄를 가르치지 않고 율법을 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직 드러나지 못한 부분인 죄 원인이 무엇인가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배후를 공개했는데 죄를 짓게 하는 자는 마귀요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고 알려 주셨고 사람의 모든 저주와 질병의 원인은 귀신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는 저주의 원인이 죄요 인간은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죄뿐만 아니라 죄의 원인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만 안다면 모세의 제자지만 죄의 원인까지 알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마귀도 인격이요 귀신도 인격입니다 마귀는 세상 신으로 사람을 해치는 존재인데 사람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존재이기 때문에 부인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목수로사셨으나 세례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생업을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병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사가 아닌데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제자들도 갑자기 병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의학 공부와 상관없이 어부들과 세리들을 부르시어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마귀와 귀신을 없애는 능력은 예수 이름임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능력 있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712 오순절 증거를 확실히 체험하라(행2:1-4)
하나님이 구주이신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과 해를 받으시고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 마음속에 오직 예수만으로 충만하고 예수만으로 복음의 주인이 되고 예수만으로 모든 메시지에 중심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성령을 기다리라’하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보혜사는 예수와 성령이 질이 다른 분이 아니라 삼위하나님으로서 사역이 각각이라는 말로 예수는 눈에 보이는 우리의 보혜사요 성령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혜사로서 성령은 우리 속에 함께 계십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수를 소개했는데 예수가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의 내용과 중심은 예수님 자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받은 자들은 오직 예수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가신 후에는 성령이 오셔서 예수를 영접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주시고 예수를 아는 것과 같은 경험을 주시고 예수는 모신 것과 같은 경험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이 사모했던 신앙의 열기는 성령이 오신 지금도 똑같은 분량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 교회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는데 근래에는 지나친 이기주의와 인간의 노력과 의지와 형식이 묶여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때와 같은 감격에 찬 마음으로 성령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는 세상을 떠나 하늘에 오르신 후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강림은 예수가 모든 가정과 모든 심령에 실질적으로 임하시고 구체적으로 임하신 표적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모든 사람 속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과 성령님의 질이나 주장이나 사역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와 성령은 사람 눈에 보이지 못하나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나 눈에 안 보이지만 예수 믿는 자들 안에 똑같이 예수님의 역사는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따르던 신앙생활이 이제는 자기 안에서 움직이는 신앙생활로 바꿔진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이 결정합니다 성령은 사람 마음을 움직여 몸으로 행동하도록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성격이 다르고 출신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목적과 방향으로 순종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불신자의 기억에는 예수의 기억이 사라졌지만 신자들의 기억 속에는 성령체험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비밀이 있는 사람에게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는 기쁨이 있게 하는데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비밀입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가신 후에 성령이 임하시니 그때부터 비로소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명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따라 방언를 말하게 된 것은 성령이 임재하신 최초의 표적으로 방언한 사람이 길들을 수 없는 혀를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놀라운 표적입니다 모든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성령으로 체험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모든 믿는 사람 속에 똑같이 어느 시대에든지 나타납니다 인류를 구속하신 예수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성령님도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임하셨으나 예수와 성령이 조금 다른 점은 예수의 죽음은 세상이 목격하는데 확인이 되었지만 성령의 역사는 믿는 사람들에게만 제한된 체험이라는 점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오직 예수의 길과 예수의 말씀대로 가도록 역사하십니다 과거에 율법을 듣고 회개했지만 성령이 오신 지금은 성령 안에서 회개합니다 우리는 오순절 증거를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719 천국은 예수를 사모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마11:2-19)
하나님은 예수를 사모하는 자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정하신 뜻을 땅에서 이루시려고 율법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세상에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 중에 율법으로 양육 받은 백성이 이스라엘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중시하는 자들은 율법을 배척하거나 대수롭게 여기기 쉬우나 율법은 이 땅에서 난 법이 아니요 사람을 위해서 만든 법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으로 이루어진 법입니다 천하의 법 중에서 율법보다 더 거룩하고 위대한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면 지옥자식을 면하고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선지자로 양육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천국에 속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정하셨고 일방적으로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무거운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마땅히 지켜야할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자발적으로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야 합니다 율법은 처음에는 모세에게서 나타났고 그 후 다윗에게 나타났으며 마침내 세례요한에게까지 나타났습니다 세례요한까지는 하나님나라가 일방적으로 임했고 일방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했고 일방적으로 율법으로 양육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고 율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엄격하지만 엄격한 율법은 세례요한까지였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까지는 율법이 일방적으로 임하여 사람을 다스리고 양육했지만 세례요한 이후에는 율법이 강제로 침투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누구든지 살고자 할 때 율법 안으로 뛰어 들어오도록 하셨습니다 왜 선지자가 필요합니까 선지자는 율법을 어긴 자들을 다시 한 번 강제로 율법의 복종시키고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한 것이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도 율법과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로 양육하던 천국은 세례요한까지로 끝이 났으나 세례요한 이후부터는 천국이 침노를 당합니다 이제 천국은 예수님을 사모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길 때는 즉시 보응이 오고 진노가 임했으나 세례요한 이후에는 법을 어기면 보응이 없고 어겨도 진노가 임하지 않습니다 세례요한까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늘나라 백성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세례요한 이후부터는 천국에 가기 싫은 사람은 그대로 두시고 강제로 천국 가게 하지 않고 자유를 주어서 천국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과거는 예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는데 아브라함의 집안에, 다윗의 집안에, 처녀에게 잉태될 때에도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셨으나 세례요한 이후에는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네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리라’ 하십니다 이제는 반드시 문을 열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고 이제는 예수를 안 모실 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배척한 것에 대한 심판은 결단코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법이 무겁다고 불평하지만 천국을 사모하지 않은 사람은 율법이 무거울 것이 없습니다 세례요한 이후로 천국은 침노 당한다는 말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어진 반면에 책임도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부족할 때 강제로 깨우치고 강제로 지배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세례요한 이후에는 강제로 깨우는 것도 없고 강제로 지배하는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자기가 선지자가 되고 자기가 율법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자기 속에 믿음이 율법이 되고 자기 속에 믿음이 선지자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세례요한 이후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사모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율법과 선지자가 있던 시대보다 자유가 있는 반면에 우리의 부담이 더 커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뜨겁게 지배하시고 감동이 되게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으로 천국을 사모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사모하는 자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정하신 뜻을 땅에서 이루시려고 율법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세상에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 중에 율법으로 양육 받은 백성이 이스라엘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중시하는 자들은 율법을 배척하거나 대수롭게 여기기 쉬우나 율법은 이 땅에서 난 법이 아니요 사람을 위해서 만든 법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으로 이루어진 법입니다 천하의 법 중에서 율법보다 더 거룩하고 위대한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면 지옥자식을 면하고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선지자로 양육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천국에 속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정하셨고 일방적으로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무거운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마땅히 지켜야할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자발적으로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야 합
20260816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마8:23-27)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너는 다른 신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기만 섬김을 받으려고 다른 신들을 질투하여 말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요 자존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고 자존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원론자들은 마귀는 애초부터 하나님과 공존했다고 하는데 이 주장은 음양지설과 비슷하여 음양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상대적인 이론입니다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지구는 자전하기 때문에 밤낮이 바뀌고 공전하기 때문에 계절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그림자가 없으시고 변치 않으십니다 사람도 변하고 땅도 변하고 마지막은 순간에 변하여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며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모든 만물이 사라지고 태양도 빛을 잃을 날이 옵니다만 하나님 결코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풍성함을 말해 주고 하나님은 만물을 직접 지으셨고 짓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만들어졌기에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귀를 갖고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 음성에 복종하는 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 믿은 후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만물이 하나님 음성에 복종치 않을 수 없는 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다른 신들이라도 만물을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면 만물은 어떤 다른 신이나 천사의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다에게 명하여 바다가 순종했고 나무를 꾸짖으니 말라 버렸듯이 어떠한 피조물도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들을 귀가 있습니다 불신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하는 것은 잠시 일뿐 생명에 대해서는 거역할 수 있으나 죽음에 대해서는 거역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바로 하나님 음성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사람이 죽은 자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습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이룰 줄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만물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움직일 의지를 나타내고 만물이 의지가 있다는 것은 인격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만물이 인격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부르실 때 인격화시켜서 부르셨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고 하나님이 만물을 인격화시켜 명령하시니까 그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병아 떠나라’ 명령하면 병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어서 순간에 떠날 의지를 나타내고 병도 인격의 정체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언제 귀신을 보고 만져 보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로 명령한즉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귀신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명령 앞에 만물은 자신의 의지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가난합니까 돈이 없어서 일이 안 되어서 병들고 가난해서 이유를 대지만 성경을 통해서 안 것은 사람은 만물을 복종하길 능력이 없습니다 만물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없기에 환난과 가난을 면치 못 합니다 예수는 ‘가난한자도 오라 억압당한 자도 오라’ 하신 것은 구호문자 타가듯이 받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에게 권리를 주고 권능을 주어 평생토록 만물을 지배하도록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평생토록 만물을 지배하도록 권리를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병이 의지를 드러내고 순간에 행동하여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믿음의 명령에 순종하여 물러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 육체로 오신 분이 예수이십니다 때문에 만물은 예수 뜻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음을 알고 주의 능력으로 만물을 복종시키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920 성령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 되라(욥42: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하나님은 눈으로 확인되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봄으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베푸신 사랑을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이 하찮은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알리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부러운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대단히 부럽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은 깊고 넓지만 하나님이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독점해 주셨으면 하는 갈망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심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방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스스로 거절한 자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아서 범사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만일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고통과 부담감은 매우 큰 것입니다 세상에는 남녀의 사랑과 부모와 자식의 사랑과 임금과 백성의 사랑과 벗과의 사랑 등이 있으나 사람들은 사랑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고 목적도 다르지만 사랑에 쏟는 마음은 동일합니다 세상에서 거짓 없이 진실한 사랑이라면 사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동서고금에 부모와 나라와 임금을 위해서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하려했던 자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독생자 예수의 목숨을 주고서 이루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아들을 죽는 데까지 내 주셨는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노력입니다 목사는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내가 가진 모든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모두 다 동원하려고 힘씁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이 되게 한 것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심인데 이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시인한 자들에게 역사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은 영혼의 저주 외에는 어떤 이익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 으뜸인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율법과 복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로 인하여 모세에게 전해준 율법도 사랑의 가르침이요 예수가 친히 주신 복음도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준비하는 법이라면 복음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나 받을 수 없고 준비된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 법인데 율법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회개에 이르는 자만이 예수 안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때 예수께서 부르시더라도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돼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기합을 넣어 ‘믿습니다’ 하고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너는 신앙이 있느냐’라는 말은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말이고 ‘나는 신앙이 있다’는 말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였듯이 우리도 목숨을 다하도록 예수를 사랑하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60920 성령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 되라(욥42:1-6)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 창조주가 없고 시작한 날도 없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에 ‘태초’는 만물을 시작한 때를 말하고 요한복음 1장에 ‘태초’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태초입니다 모든 만물은 지음 받은 날이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믿는 믿음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부끄럽지 않는 이유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가운데 제일의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보다 못한 것들을 신이라 하여 굴복하고 섬긴다면 이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산자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산자의 아버지란 믿음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을 믿고 죽었으나 이들의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소유한 신앙을 자손들에게 축복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이들 신앙이 자손들에게 살아 있기에 신앙으로 약속 받은 것들이 지난 후에도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는 산 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육체가 죽을지라도 신앙생활을 잘했던 사람들은 신앙이 살아있어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체 때문에 부활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이 살아 있기에 신앙과 함께 살아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심판받기 위한 부활은 있어도 생명의 부활은 없습니다 예배할 때 육체는 교회에 와있어도 신앙이 없다면 산 자가 아니고 죽은 자입니다 우리 신앙이 살아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는 신앙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을 위해 언제나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부활도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약속한 믿음을 이행하시고 병이 낫는 것도 이적이 나타난 것도 산 자들에게 나타나는 약속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산 자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자들의 절대적인 구속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귀로 듣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욥은 처음 고통이 올 때 감사했고 두 번째도 감사하면서 극복했으나 다음은 억지로 참아가며 때를 기다렸습니다(욥10:4-7) 욥은 하나님께 ‘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며 저주의 원인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욥은 ‘내가 스스로 거둬들이고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0:2-6)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생각적으로만 알았던 하나님을 깨닫고 회개한 후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욥이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욥이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과거에 잃었던 건강 물질 친구 자녀들까지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욥은 간음이나 악행을 행함으로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저주와 환난을 받은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다시 발견한 순간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되었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확실하게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영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변화되는 실질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는 불신자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기 전과 후가 변화의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육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육체는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장소요 회개한 심령을 가진 육체는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가 되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주로 오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려 주려고 성령님으로 오셔서 우리로 체험케 하십니다 체험의 생활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예수명령은 보편성이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명령합니다 예수의 증인은 성령을 체험한 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학이나 학문에 의해서 예수가 변호되기를 원치 않고 성령님이 예수를 변호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알지 않으면 신앙은 철학이 되고 철학은 우상이 되고 맙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꿈과 생각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체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