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라도!

김지은

 

지난 새 새로운 일터에서 근무하는 시간에 들어오는 핵없세 시민모임은 또 다른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공동으로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모임에 들어올 수 없었고, 오전에 공지할 일이 있어서 결국 제대로 참여하기 어렵기도 했다. 직장 사람들은 내가 <핵없는세상> 모임에 한 달에 한 번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그 직장에서도 한 달에 1번 토요일 아침 8시 플러깅 모임을 하고 있다. 일회용 컵도 쓰지 않는다. 에어컨도 25-26도를 유지한다. 한여름인 8월에는 성가대 가운도 벗고, 남자분들은 넥타이도 하지 않는다. 청년 친구들도 텀블러를 이용하며 기후 위기에 관심을 나타낸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있다.

 

‘핵없세’를 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워가고 있던가. 뉴스들 속에서 그래도 관심 있게 전력, 핵발전소, SMR 뉴스를 듣고 있다. 비판의 시각으로 우리가 이렇게 전력을 많이 사용한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덜 전력 소비하게 된다. 커피도 필요한 만큼만 버리지 않고 마시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생활을 관심 있게 듣는다. 뉴스를 흘려듣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뉴스를 들으려고 하게 된다.

 

최근에 ‘월성’ 영화 상영을 해서 이웃들에게 권해보았다. 나도 새롭게 영화를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대로만 보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놀라기도 했다. 왜 그렇게 공부하듯이 영화를 보았을까. 저렇게 당연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의 좁음이란! 그곳의 주민들과 만나 대화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할 점들을 서로 상기하게 되었다. 핵발전소와 주민들의 주거지 사이에 당연히 확보되어야 할 거리가 없는 것, 그리고 그 거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주민이 몰랐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사는 주민들의 건강히 살 권리가 없는 것처럼 암을 안고 사는 것에 무관심했다. 출입 금지 구역에 운동시설을 마련해 놓아서 사람들이 들어오게끔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고 핵이라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 양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게 힘 빠지게 한다.

 

앞으로 우리가 손잡고 하나의 문제해결에 연연하기보다 핵발전소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듣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질문하는 사람으로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옆에 사람들과 같이(!)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뀌고 싶다. 어느새 ‘핵없세’를 하면서 질 싸움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는 수동적인 삶을 지나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인재를 키워서 활동할 만한 사람이 스피커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 잔재주를 지나쳐서,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그 한 명이 내가 되어도 해야 할 운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한 명이지도 않다. 우리끼리 노래도 만들고 춤도 추고, 얘기도 나누면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끊이지 않고 관심을 나눌 수 있다. 아파할 일이라면 아파하고 웃어도 좋을 일이라면 웃으며 사람같이 살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힘을 모아 의미 있는 변화를 거듭하는 핵없는세상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