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7
중국 춘추전국시대 병법 전략가인 손자는 전쟁터의 지형을 아홉 가지가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그 중 마지막이자 가장 고통스러운 지형을 군대가 지체없이 싸워야 파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도망갈 곳도 없고 쉽게 후퇴할 수도 없는 곳, 즉 사지(死地), 죽음의 자리라고 불렀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 우리는 사지에 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길 위에 서서 생존권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사지에 선 사람들을 동정하고, 또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 언제라도, 내가 서거나 앉은 이 자리가 사지일 수 있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각자도생을 외치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투를 벌이거나,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바로, 사지에 서 있는 나의 진짜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정확히 스스로가 현재 무엇과 싸우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황심소는 바로 그런 사지에서 우리가 맞서야 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우리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지 파헤쳐 살길을 찾아드립니다.
생명을 살리는 방송, 황상민의 심리상담소의 이번 상담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사진: 뉴시스 / 관련기사: 교사 5000명, 검은옷 입고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 “생존권 보장하라”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강남. 법원과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한 서초구.
돈과 권력을 끝없이 탐하는 인간의 욕망이 넘실되는 그 곳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죽음들.
2023년 4월, 강남에선 10대 여학생의 투신 자살 생중계가 있었고, 석 달 뒤인 7월, 강남 한 초등학교 교실에선 선생님까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 2년차에 접어든 스물세살 초등교사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 후, 강남 서이초등학교 앞에 5,000명의 선생님들이 모였습니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하고 길거리로 나선 선생님들은 “교사 생존권 보장”이란 피켓을 들고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님 정부에, “진상규명”과 “교권 보장”을 요청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악성 민원인의 만행“으로 마음 여렸던 어린 동료 교사를 잃고, 또 다른 동료의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정부에 “진상규명”, “생존권 보장”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선생님들의 절박한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23년 7월 21일, 경찰은 “서이초 교사 60명 전원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단독] 경찰 “숨진 서이초 교사 동료 60명 참고인 조사”
교사도 학생도 행복하지 않은 교실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선생님들 “전원”이 경찰에 불려가 취조에 참여해 조서 작성을 하게 됐다니?!
정말 선생님들이 바랬던 “진상규명“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왜, 이 비극적인 상황에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는 선생님들이 경찰서까지 불려다니며 민원인, 교장, 교감 앞도 모자라 경찰관 앞에서까지 감시, 조사의 대상이 되고, 경찰관 조서 작성에 괴로운 협조를 해야 하는가, 정말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오늘, 이 가슴 아픈 서이초 2학년 선생님의 죽음과 관련해,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셔서 학생에게 “상상이상”이라는 놀라운 상을 받았던 초등학교 담임, 조승연 선생님과 심리상담사 박지현 선생님이 출현해서,
언제나 사건의 핵심 문제를 간파해 명료하게 설명해주시는 셜록황, 황상민 박사님과 함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함께 사지에서 반드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법을,
아니,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지 하나씩 찾아가 보겠습니다.
조승연(초등학교 교사):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데 저도 모르게 주저했던 말이 솔직히 그분이 자살을 하기까지 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가 교사부터가 자기가 뭐 하는 사람인지를 놓쳐버리고, 자신의 역할을 정신과 의사에게 던져주고, 그리고 나서 본인이 해야 될 일을 정신과 의사가 대신하게 만든 다음에 ‘저의 교권을 찾아주세요’라고 하는 순간부터 이미 학부모님들이 민원을 하거나 교사를 무시하거나 이런 게 예정되어 있는 수순이고 그게 10년 동안 이루어지면서 그 곪아 터진 게 지금 이번에 사건으로, 이번에 사건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거고. 만약 지금도 선생님들이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를 망각하고, 다시 내가 아픈 힘든 아이들을 정신과 병명으로 붙여서 정신과로 계속 보내는 순간부터 지금 이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 반복될 거라는 거를 말씀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황상민 박사: 맞아요! 지금 '호랑이한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라고 하는 이야기, 속담 있잖아요. 지금 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비극은 우리가 학생들을 정신병자로, 정신병명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를 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언젠가 내 목숨도 지키지 못하는 그 비극을 겪게 될 것이다. 왜 그거를 생각을 못했을까요?
학원 선생님이 나눠준 교재와 유인물이 교실에서 버젓이 나뒹굴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도 안 가르쳐서 학교에 보냈다며 핀잔주는 선생님 이야기가 흔한 세상입니다.
과연, 선생님과 학생은, 2023년 대한민국 교실 어디에서 도대체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번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두고, 전국각지의 선생님들은 눈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재작년 원치 않게 1학년 담임을 맡아 악성 민원에 시달렸습니다.
병가를 내고 담임 교체까지 한 경험이 있습니다.
부모 민원에 더해 친구를 때리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게 아무런 제재도 할 수 없는 교육 시스템,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며 훈육보다는 애원에 가까운 호소를 하며 느끼는 무력감,
소수의 학생으로 인해 피해받는 선량한 다수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느낍니다.”
"초임교사 시절, 남의 아이 잘못만 1시간 이야기하는 그들(학부모)을 보면서,
내가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서 학폭으로 번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한 학기 동안 받은 민원은 너무 많아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음기가 사라진 채 점점 영혼도 썩어가는 느낌으로 교직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얼마 전) 저희 반 남자 학생들이 공공연한 성희롱을 했고, 성희롱 민원에 예민해져 있던 저는 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학부모 민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가 민원이 없는 학교에 속합니다"
"교권 침해는 소수의 특수한 케이스가 아닙니다.
매 학기, 어느 학교에서나 발생하고, 우리 교사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사진: 파이낸셜뉴스 / 관련기사: "나는 자살할뻔한 교사입니다"
수백년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던 한국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교사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아이들, 그 사이에서 한없이 눈치보며 숨죽이는 대다수의 아이들까지. 그동안 사람들은 교권 추락, 교실 붕괴, 학교 폭력, 업무 과중, 상사 갑질, 인성 부족, 자격 미달 등등을 이런 혼란한 상황의 원인이자 결과로 지목해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이 언급되고, 그 과정에서 생각도 못했던 인물들이 학교 교육 일선에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잔뜩 성이 난 학부모와 학폭 문제를 처리할 경찰관, 변호사와 문제적 아동들을 치료한다는 명목의 심리상담교사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그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쩌다 교실의 당당한 주인인 선생님과 학생이, 교실에 있지 말아야 할 경찰관, 정신과 의사, 법조계 학부형들까지 만나 고초를 겪어야 하는 건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동료 교사들이 평가와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해, 초라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야만 하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생존권을 외치는 현재의 모습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연유로 이토록 큰 혼란의 얼굴로 나타났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황심소는 가장 먼저, 교사가 지난 십 여년간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 교사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게 된 강력한 해결책’, 아이들의 이해 못할 행동을 ‘병’으로 여기고, 정신병원으로 보내 여러 병명을 부여받게 한 이 땅의 현실에 대해 짚어보려고 합니다.
혹,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갸우뚱하실 시청자분들은 몇 해 동안 승승장구했던 방송, <금쪽 같은 내새끼> 등의 아동양육 및 아동상담프로그램을 떠올려보시면 된답니다. 우리 대다수는 이와 같은 교양인지 예능인지 모를 프로그램을 통해 집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도저히 이해못할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치료한다며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서 환자로 만드는 과정을 매주 보았답니다. 너무 친숙하게, 또 보기 좋게 잘 설계된 문제아 갱생 프로그램을 시청해왔던 것이지요. 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부는 매해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병든 아이들을 사전에 선별해 치료하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필두로 한 놀라운 시스템을 구축해두었습니다. 지금 이순간, 학교에서 병원까지 이렇게 가깝게 이어져 있다니 놀라우신가요?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며,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사지에서 학생도 교사도 건강하게 살아남는 법을 찾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방송에선,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조승연 선생님이 놀랍게도 소위 문제적 행동을 하는, 교사들이 겁내는 아이들이,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만 나을 수 있는 위험한 병에 걸린 아이가 아니’라는 이야길 꺼냅니다. 그러자 황상민 박사님은 우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 서서 이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하시네요. 어째서 그런 빙의기술을 선보이시는지 궁금하신가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이 어떤 믿음으로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진단하고 치료행위를 하게 되는지, 또 마음이 아픈 학생을 두고 의사의 역할과 교사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려드리기 위해서랍니다
- 황상민 박사 : 조승연 선생님, 제가 이제 정신과 의사로 빙의해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신병에 걸린 애들을 교사의 교육으로서 지금 혹시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조승연(초등학교 교사) : 그럼요, 가능합니다.
- 황 : 뭐가 가능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실래요? '정신병에 걸린 애들을 교사의 교육으로서 지금 혹시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조 : 보통 adhd라고 불리는… 불리는(?) 진단명을 받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라고 했을 때 부모님들이 물어보세요. ‘애가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했나요?’, ‘친구들이랑 잘 지냈나요?’ 그러면 ‘예전보다 좀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정신과를 가잖아요? 그럼 제가 들은 이야기는 다 약을 증량했다, 또 그게 효과가 없다, 그럼 약을 바꿨다. 이 이야기를 대부분 들을 뿐이지, ‘이 아이가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어떨 때 집중을 했고 학교의 생활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라는 대화를 나눠본 학부모님들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 황 : 아니, 정신병 환자가 학교에 너무 많기 때문에 치료를 하는 교육청에 학생 정신 건강을 위한 지금 법적인 활동을 지금 조승연 선생은 문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정신과 의사들이 오죽해서 얼마나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걱정했으면 이거를 열심히 하는데, 지금 무슨 소리예요! 그러면 정신과 의사들이 멀쩡한 애들을 정신병 환자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에요?
조: 그럼요, 가능합니다.
지금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께서 멀쩡한 아이들을 정신병 환자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했기에 이 선생님은 이토록 놀라운 발언을 하시는 것일까요?
조승연(초등학교 교사) : 그러니까, 보통 이제 분노 조절 장애라고 의심을 받거나 adhd라고 의심받는 친구들
- 황상민 박사: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진단을, 그렇게 진단명을 내리고, 그 다음에 위센터에서도 고위험군으로 해가지고 이미 보고서를 만들어서 정신과 의사한테 보냈는데 의심을 받다니 지금
조: 제가 그 아이들이 환자가 아니라고 믿어서, 그 아이들이 아픈 아이들이 아니에요.
- 황: 아니, 본인은 교사인데, 초등학교 교사인데, 네가 뭐 한다고 아픈 아이가 아니라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환자라고 하고 아픈 아이라고 진단을 내렸는데
조: 그분들이 환자… 환자라고 얘기하면 제가 어떻게 상담을 하거나 아이들과, 아이들과 지내보고 그 아이들이 약물 치료도 아닌 상태에서 교육으로, 상담으로 변화를 일으켰다면 그 아이들은 환자가 아닌 거잖아요.
- 황: 금쪽이 케이스가 상담을 몇 번 해가지고 되는지 안 되는지 뭐, 그거 언급을 했는데 금쪽이든 좀 문제 있고 폭력 성향이 있는 애들은 다 정신병, adhd, 자폐, 이렇게 진단을 내려가지고, 정신병 약을 먹여가지고 지내면 교사 책임 없는 식으로 해주는 게 지금 교육부 정책인데 그게 무슨 문제예요?
정신병 약을 먹여가지고 지내면, 교사가 책임 없는 식으로 해주는 게 지금 교육부 정책이라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싶으신가요?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그리고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란 이름의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이 검사가 아이의 정신질환을 확인하기 위한 진단검사는 아니지만, 아이의 성격특성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이른바 ADHD, 그리고 우울, 불안, 학교폭력피해, 자살위기 등 주요 정서 행동특성의 전반에 대해 알려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은 이 검사의 결과에 따라, 정상군 또는 관심군으로 나뉘어집니다.
특히 이 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학교 내 상담실인 위클래스나 위센터 혹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거쳐 신경정신과 병원으로 보내져 심리검사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시스템의 끝자락에서, 다수의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신과 약물을 권유받고 또 복용하기 시작합니다.
교육부가 만들어낸 놀라운 아이 갱생 프로그램은 문제아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기 쉬운 하나로, 오은영 박사님은 억울하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출연하는 방송 <금쪽같은 내 새끼>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방송에선 통제하기 힘든 문제적 해동을 하는 아동을 만나 아동이 지금 어떤 문제적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이 아이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변했는지 오은영 박사가 마치 마술봉을 든 마법사처럼 등장하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이 방송을 통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방송을 보면, 문제아를 위한 해결책은 항상 정신과에서 한다는 심리상담과 약물치료입니다. 물론, 방송에선 약물치료에 대해서는 항상 아주 최소한으로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부분이라고 언급합니다. 이로써 아이에게 어떻게 정신과 약을 먹일 수 있냐는 비난을 피해가는 동시에, ‘얼마나 치료하기 힘들면 약물을 쓸까?’ 혹은 ‘약이라도 써서 나아져야 모두가 행복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정신과 치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부단히 애쓴 정신과 의사선생님들의 노력과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정신과에서 치료가능한 병이라는 이 시대의 신화가 얼마나 대한민국 땅에 잘 스며들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2년차 초등교사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서울대 박사는 오은영 박사 등이 출연하는 ‘육아상담 예능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오 박사가 출연하는) ‘금쪽이’ 류의 프로그램들이 지닌 문제점은 방송에서 제시하는 그런 솔루션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사안에 대해서 해결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우 심각해 보이는 아이의 문제도 몇 차례의 상담, 또는 한두 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듯 꾸민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결 못하는 부모와 교사에게 책임이 갈 수밖에 없다”면서 “실력이 부족하든, 노력이 부족하든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정신과 의사라면 알고 있다”
“노력해도 바꾸기 어려운 아이가 있고, 상당수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런 노력에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들은 안다)”
“그런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도 프로그램은 흥행 내지 권위를 위해 의도적인지 아니면 은연 중에 그러는지 환상을 유지하려 든다”
“엊그제도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걱정을 갖게 한 교사 폭행 사건이 있었다. 오늘은 서초구의 한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반적 교권 침해 문제는 그 문제대로 강력한 해결책을 만들고, 아이들의 정신적 문제 내지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교실 내 어려운 상황에 대해선 이를 적극적으로 다룰 치료기관과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적 장기 입원까지 가능한 전문적 접근은 물론 행동치료 경험이 풍부한 일대일 전담 교사(치료사) 배치 등 강력한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 아이도, 나머지 아이들도, 교실도 지킬 수 있다”
이 의사 선생님의 글을 읽고, 조승연 선생님은 이런 질문이 생겼다고 합니다.
조승연(초등학교 교사) : 그분은 교사를 어떤 사람이라고 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었고요.
- 황상민 박사: 정신병에 걸린 애들은 정신과 의사가 약을 열심히 먹여가지고 정신병자로 삼아야지, 일개 교사가 어떻게 정신병자를 교실에서 교육을 시켜, 이 마음이죠.
조: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일으키거나 그러면 다 정신병적 문제가 있을 거라고 전제를 깔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교육적 문제로, 교육으로 해결할 수 없다라는 거를 깔고 있는 거잖아요.
- 황: 당연하죠.
조: 그럼 교사는 교육적으로 이거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다.
- 황: 이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교육청 주관으로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가지고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검사를 만들어서 학생정서행동특성 검사를 하면 고위험군, 지금 정신병 환자를 만들고 adhd 병에 걸리고 그런 애들, 그런 애들이 나와가지고 최소한 6-7% 정도는 되니까 adhd 발병률, 유병률은 한 10% 정도 되니까, 10% 되는 애들은 다 정신병자로 솎아 내야지, 교사들이 뭘 안다고, 그 애들을 붙들고 있어, 빨리 특수학급으로 보내고 정신병 약을 먹여가지고 처리를 해야지. 그게 지금 교육청에서도 그래서 학생 정신건강센터 이런 거 만들어 가지고, 정신과 보내가지고 정신병 약 먹으면 애를 교실에 있게 하고 교사 책임 안 하잖아요.
교육부의 주도에 따라 교사는 무한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쉽게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해, 나아가 학교관리자와 사회가 기대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쉽게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통한 학생 관리를 긍정하고, 권위자로 불리는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역할을 미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사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교사에게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병에 걸린 애들을 교사의 교육으로서 지금 혹시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혹 교육부가 ‘정신병에 걸린 애’를 쉽게 거르고 교사의 학생 관리 부담을 덜어준 것처럼 보이시나요? 그런데 사실 학생과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교사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사는 자신이 학생들을 관찰하고 소통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질문하는 등, 학생들에게 자신의 교육 방식을 적용해보고 효과가 없을 때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는 등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학생정서행동검사가 학생의 관리 방법을 규정하면서 교사의 본래 업무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사는 학생들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정신과 의사보다 학생에 대해 말할 권한이 없어졌습니다. 부모는 더이상 학교의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조승연 선생님은 자꾸만 병원에서 진단받은 아이들이 아픈 아이들이 아니라는 말을 하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으로 빙의된’ 황상민 박사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 황상민 박사: 정신병에 걸린 애들을 교사의 교육으로서 지금 혹시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조승연(초등학교 교사): 그럼요. 가능합니다.
- 황: 뭐가 가능해요?
조: 그러니까, 보통 이제 분노 조절 장애라고 의심을 받거나 abhd라고 의심받는 친구들
- 황: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진단을, 그렇게 진단명을 내리고, 그다음에 위센터에서도 고위험군으로 해가지고 이미 보고서를 만들어서 정신과 의사한테 보냈는데 의심을 받다니 지금
조: 제가 그 아이들이 환자가 아니라고 믿어서, 그 아이들이 아픈 아이들이 아니에요.
- 황: 아니, 본인은 교사인데, 초등학교 교사인데, 네가 뭐 한다고 아픈 아이가 아니라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환자라고 하고 아픈 아이라고 진단을 내렸는데
조: 그분들이 환자… 환자라고 얘기하면 제가 어떻게 상담을 하거나 아이들과, 아이들과 지내보고 그 아이들이 약물 치료도 아닌 상태에서 교육으로, 상담으로 변화를 일으켰다면 그 아이들은 환자가 아닌 거잖아요.
- 황: 어, 그거는 그냥 조승연 선생이 우연으로 일어난 거지, 그거는 조승연 선생의 특수한 경우지. 지금 1년에 몇만 명의 애들이 고위험군으로 해가지고 우울증이든 조울증이든 과잉행동 장애든 adhd든 ads든, 이런 진단받는지 아세요? 수천, 수만 명의 adhd 진단받고 본인이 의사도 아니면서 전교 1등 수재들만 되는 그 의사 선생님이 아이들을 환자로 한 거에 대해서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거, 그거는 조승연 선생님이 지금 뭔가 잘못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실래요?
조: 실제로 제가 맡았던 아이들 중에 초등학교 1, 2학년 때 adhd 진단을 받고 약도 먹고 한 아이들을 만나거든요.
- 황: 네
조: 그럼 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좀 오랜 시간 보잖아요. 한 장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보면 이 아이들이 모든 상황에서 집중을 못하는가, 아니면 언제 집중을 할 수 있고 언제 집중을 못하는가를 관찰하면 이 아이는 집중력이라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아니라, 이 아이의 성향에 맞게, 자기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자기가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거를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아이(가) ‘가만히 있기 힘들다’라는 이 아이(가) ‘괴로워요’, ‘고통스러워요'라는 그 표현을 ‘이 아이는 집중을 못해요.’, ‘바른 자세로 앉아서 40분 동안 떠들지 않고 딴 짓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어야 이거는 정상적인 아이예요.’ 이런 마음으로 본다는 것도 알겠거든요. 그러면 언제 집중할 수 있는가라고, 그 아이가 집에서 했던 일들을 얘기를 나눠보면 레고를 조립할 때 앉은 자리(에서) 4시간, 5시간 동안 그거를 조립한 적도 있고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 이런 거는 전혀, 돌아다니거나 딴 짓 하거나 떠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하나라도 더 하고, '한 번 더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아이들도 충분히 있거든요.
조승연 선생님은, 정신과에서 집중력결핍이라고 병명이 붙여진 아이들도 관심을 두고 살피면,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이나 분야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이 있다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산만하다고 학습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비난받던 아이에게 실제로 집중력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니, 집중력결핍증 환자라고 불러선 안된다 하시니, 정말 그럴 수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걸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정해진 교과 과정을 담당 선생님의 방식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제멋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들에게 장난을 과하게 치면, 아니, 아이의 도 넘은 장난 앞에 어른으로서 선생으로서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속수무책이 되면, 그 아이를 잘못된 존재라고, 피해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여기고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 순간, 제 설명이 과한 비약이며,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제3자의 무지한 지적질처럼 느껴지시나요?
자, 다시 단순하게 질문해보겠습니다.
대다수가 재미가 있든 없든 참고 따라가는 일에, 도통 집중하는 못하는 아이를 두고 그 아이는 ‘병’에 걸린 것이라고, 또 치료해야만 할 환자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우리는 왜 못하는 것일까요? 의사 선생님이 당연히 병이다 하면, 병이어야만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으면 도리가 없으니, 차라리 병에 걸린 것이고, 환자라고 믿자는 마음이 작동하는 것일까요? 계속해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으로 빙의 중인 황상민 박사님은 또 어떤 말씀을 하실지 들어보겠습니다.
- 황: 그거는 조승연 선생님이 의사가 아니라서 지금 그 병에 대해서 제대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High Functioning Autism(고기능 자폐증) 아이들도 다 그런 각각의 과제에 따라서 다른 주의력이나 능력을 특별하게 다르게 보여요. 그래서 본인이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으로만 이야기하는 거기 때문에, 지금 그거를 일반적으로 많은 소아, 청소년 정신병 환자라고 진단받는 아이의 경우에 적용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뭐라 그러실래요?
조: 도대체 이 아이의 병에서 뭐가 문제가 되길래 그걸 환자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아프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다시
- 황: 아니, 담임 선생님이 이 애를 교실에서 가르치기 힘들다고 하고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나왔잖아요. 그리고 부모들은 인정을 안 하지만은 어쨌든 애를 학교로 보내려면 약을 먹여야 되잖아요! 법으로 정했어요! 뭐라고 하실래요?
조: 그거는 학교 교실 상황에서 40분 동안 앉아 있어야 되고 이 교과 과목에서만, 이 선생님(이 부여한) 주어진 활동에서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믿음 하에 그걸 하지 못하면 ‘비정상’, ’아픈 거다’ 라고 보기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이 방송 너무 삐딱한 것은 아니냐, 어째서 정신과 의사의 말도 듣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따져묻고 싶은 마음이 드실 분들께 한국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께서 성경처럼 여기는, 정신장애진단의 교본으로 사용되는 DSM을 집필하신 의사 선생님의 고견을 덧붙여 드리겠습니다.
DSM 3판을 작업한 앨랜 프랜시스 박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놀라우리만큼 심각한 정신진단의 거품을 경험하며 여러 거짓된 정신 장애가 유행하는 현실을 막지 못해, 큰 책임감을 느끼며 책<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폐증, 주의력 결핍장애, 소아 양극성 장애가 무서우리만큼 광포하게 진단되어 환자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두고 이런 느슨한 진단이 의약품 과다 복용으로 이어져 사람들을 중독시키거나, 죽게하는 상황에 이르는 상황에 대해 고발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의 글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모두 선의로 시작되어 악의로 귀결되는 현상이며,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인 자신의 선후배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입니다.
이쯤 상황을 파악하다 보니, 여러분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환자가 안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금주, 금연, 운동보다 웬만하면 어떻게든 병원을 안 가고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조승연 선생님은 교사가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병원에 가서 진단명을 받고 돌아와 환자가는 되는 현실을 두고 그것이 진짜 병인지, 아이가 자기의 마음이나 아픔에 대해 광폭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묻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으로 빙의하신 황상민 박사님께서는 의사선생님들이 어떤 시스템 하에서 어떤 믿음으로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다루고 있는지 계속해서 생생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노력중이십니다.
- 황: 지금 이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교육청 주관으로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가지고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검사를 만들어서 지금 정신병 환자를 만들고 그 정신병 환자가 학교에 너무 많기 때문에 치료를 하는 교육청에 학생 정신 건강을 위한 지금 법적인 활동을 지금 조승연 선생은 문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정신과 의사들이 오죽해서 얼마나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걱정했으면 이거를 열심히 하는데, 지금 무슨 소리예요! 그러면 정신과 의사들이 멀쩡한 애들을 정신병 환자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에요?
조: 보통 adhd라고 불리는… 불리는(?) 진단명을 받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라고 했을 때 부모님들이 물어보세요. ‘애가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했나요?’, ‘친구들이랑 잘 지냈나요?’ 그러면 ‘예전보다 좀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정신과를 가잖아요? 그럼 제가 들은 이야기는 다 약을 증량했다, 또 그게 효과가 없다, 그럼 약을 바꿨다. 이 이야기를 대부분 들을 뿐이지, ‘이 아이가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어떨 때 집중을 했고 학교의 생활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라는 대화를 나눠본 학부모님들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 황: ‘아니, 조승연 선생님’, 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전부 다 정신과의사로 빙의해서 한 이야기예요. (-조: 아, 그럼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교사잖아요. 저는 의사고요. 교실에서 학생들이 어떤 변화가 있는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건 교사의 역할이고 교사의 책임이고요. 저는요,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환자한테 약을 줘가지고 그 약에 의해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가 저의 역할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교실에서 애가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고요. 제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에요!’
분명, 선하고 착실한 많은 선생님들은, 정부와 교육청이 주도한 학생정서행동특성 검사를 성실히 행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아플 수 있거나, 아픈 아이를 조기에 발견해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했다”라고 믿거나, “아픈 아이는 의사가 치료가 먼저야”, “병든 아이 하나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피해 입도록 방치할 수 없어”라고도 생각하셨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교육 현장을 모르는 정신과 의사를 대신해 “정신병 아동의 조기 발견”에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 아이들! 정신과에서 “정신질환자“로 치료받은 이 아이들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어 왔을까요?
23년 7월 기사에 따르면, ‘서울 한 유명 대학병원에 30개 정신과 보호(폐쇄)병동 환자 90%가 14~15세 아이들“이고, 아동·청소년(만 0~17세) 자살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합니다.
여기에, 연세대 신의진 정신과교수나, 예일대 나종호 정신과 교수는 국가적 투자를 더 늘려야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5) 그런데 신의진, 나종호 교수님, 자살을 막기 위한 정부 투자는 해마다 늘려온 지가 20년이 넘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간,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 자리를 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세요! 정신과에 쏟아부은 돈이 자살공화국의 해법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거짓말일 뿐입니다. 자살률을 올리는 정신과 약물들이 25세 미만의 어리고 젊은 생명들에게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복용시키는 실태에 대해 공론의 장애서 토론하고 해법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야 말로, 한국인들의 이토록 허무한 자살들을 낮추는 현실적인 하나의 방법은 아닐까요?
- 황: 이 정신과 의사들이 학교에서 적응하기 힘들고, 학습 활동에, 특히 군대 같은, 감옥소 같은 학습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문제를 교사들이 학교에서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그거를 환자로 만들어 가지고 정신과 의사로 옮기게 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이제 아시겠죠? 그리고 그것이 학생 정신 건강 운운하는 검사를 통해가지고 대한민국 초등, 중등, 고등학교가 정신병자를 만들어내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만들어지는 놀라운 시스템이 정신과 의사의 도움에 의해가지고 대한민국의 좋은 의료보험 혜택과 의료복지 혜택으로 학교가 붕괴되고, 교실이 망가지는 그 과정에서 우리 학생들을 교사가 각기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교사가 제대로 교육시키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그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교육시킬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 정신과 의사와 합심해가지고 정신병 환자로 만드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지금 조승연 선생은 이야기하고 계신다는 거 아시겠어요?
조: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에서 계속 노력하는 부분이 선생님들도 본인들도 모르게 이 아이는 그냥 ‘이상한 아이’, ‘아픈 아이’로 볼 때, 왜, 어떤 마음으로 이 행동과 이 말을 했는지를 제가 직접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 아이를 ‘제가 상담해보겠습니다’라고 해서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눴던 거를 같이 공유도 하면서 얘기를 나누면 그때 선생님들의 반응,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은, 사실 제가 이렇게 설명해 주기 전까지 그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저 행동과 말을 했는지는 사실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이제 좀 궁금해하게 됐다. 이해를 하게 됐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아, 또 하나 사람 하나 살렸구나’ 이런, 이런 느낌을 가지면서 살기도 합니다.
- 황: 자, 조승연 선생. 지금 조승연 선생이 이야기하는 게, 교사가 스스로 희생자가 돼 가지고 내가 학교 생활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상황에서 교사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라고 하는 거를 고민하고 안타까워한다면, 그 교사는 이미,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고 어떻게 잘 교육시켜야 될 것인가라고 할 때, 그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 전에, 아예 정신과에 보내 가지고 약으로 완전히 걔네들을 마취시키고 진정시키는 그 놀라운 프로젝트에, 그 놀라운 정신병자 만드는 프로젝트에 교사가 이미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게 지난 10년 이상 벌어지고 나니까 결국에 그 또 다른 폐해를, 더 이상 아이들이 약만 먹고 교실에서 조용히 얌전히 있는 게 아니라 인제 미쳐 날 뛰는 학부모들의 그 광기와, 그 민원을 교사가 이제 온전히 받으니까, 그 학부모들을 정신병동으로는 못 보내니까, 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이 됐다라는 거. 비극의 탄생이 어디에서 시작이 됐고 어떤 놀라운 결과가 지금 역으로 교사들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이 결과로 된다는 거. 이제 이해가 되세요?
조: 네.
부모들의 입김과 치맛바람이 어디보다 강한 강남에서 벌어진 초등교사 자살사건을 두고, 선생님의 자살이 어떤 의미인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기에 이토록 끔찍한 일이 벌어져야 했는지 사람들이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은 과도한 업무 부담, 학부모의 민원 등을 이유로 들었고, 동료들 역시 초임이었던 작년보다 ‘10배는 더 힘들다’던 고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애통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 와중에 그녀의 교실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 하나도 언급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뒷자리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긋는 행위가 문제가 되었고, 이 일과 관련된 아동 부모님의 항의가 선생님의 개인 휴대폰으로 쏟아졌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마음 여리고 예민한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동의 문제적 행동과 이를 어떻게 교육하고, 또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학부모들의 도를 넘는 항의와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거라는 느낌. 그것이 2년차 교사의 혼란과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뒤, 오마이 뉴스에 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기고했습니다.
친권자의 방임 및 학대 행위를 막기 위해 제정된 아동학대법은 학교에서 마구잡이로 교사들을 찍어 내리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교사는 직위 해제 상태에서 수사를 받는다. 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이 나온다 하더라도, 장기간 수사에 시달리며 몸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소수의 제어할 수 없는 학생과 적대적인 학부모는 법을 악용하여 교사를 궁지로 몬다.
학교폭력법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갈등이 생긴다. 성장의 과정에서 충돌하는 순간이 없을 수는 없다.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선생님이 개입할 것은 개입해서 중재해야 하는 사안들이 있다. 그런데 사안의 경중을 논할 여지도 없이 일괄적으로 학폭 신고를 해버리려 하니 학교가 경찰서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학교 밖에서 발생한 사안을 학교에서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출처: 오마이 뉴스, 사보험 가입하고 음성 메모 켜는 교사들, 이게 현실입니다. 2023.07.24]
교육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학생과 교사가 나란히 배우고 성장해야 할 자리에, 경찰관이, 변호사가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교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학교가 학교의 기능을 잃고,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까지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 황: 이게 그냥 근조리본을 달고, 49제에 우리가 학교를 하루 휴교를 하고, 그러면서 내 아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받는 거, 된다라는 것이 얼마나 제 2의, 제 3의 교실에서 목숨을 끊는 교사를 만들어내는 일이 될 거다라는 거. 이것이 문제가 뭐냐라는 거는 교실에서 교사들이, 본인이 마음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정신병자라고 만들어서 그 아이들을 정신병원으로 보낼 때, 이미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지만 교사 생활을 견딜 수 있는 물꼬를 트기 시작을 했다, 그 시초를 만들어냈다라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 이제 이해가 좀 되세요?
조: 네, 네, 네.
- 황: 단순히 정신과 의사가 그냥 아이를 보지도 않고 정신병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 정신과 의사가 상담은커녕 약으로, 더 강한 약으로 아이를 좀비처럼 만들어내는 거를 금쪽이 치료한다고 주장하는 이 놀라운 나라에서 교사들이 그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본인, 자기 교실에 있는 한두 명의 금쪽이들을 정신병 환자로 만드는 것까지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빌려서 할 수는 있겠지만 마지막 결론은 본인 목숨을 던져야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던진 교사들을 본인이 직접 보게 되는 비극을 겪는다는 거. 그동안 이게 뭐지? 뭐지? 누구 잘못이지? 누구 탓이지? 이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저 정신과 의사의 문제인가, 아이들의 잠재력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병이니까 약으로 치료해야 된다는 정신과 의사의 잘못인가, 이런 본인의 오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으세요?
조: 이게 누구의 문제인가에서
- 황: 그 이슈가 아니라는 거예요.
조: 네
- 황: 누가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가, 그 아픔을 내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가, 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 책임이야 손가락질하고, 그거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는 이 놀라운 피해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의 비극을 끊임없이 보고 있고 비극의 탄생과 비극의 결과는 오늘도 우리는 내 목숨을 걸어야 되느냐, 니 목숨을 걸어야 되느냐, 서로서로 각자의 목숨 돌리기 하는 이 놀라운 경험을 생생하게 겪고 있다는 거.
몇몇 사람들은 서이초 교사를 괴롭힌 민원인이 누구인지, 어느 부모가 그런 극악무도한 일을 했는지 찾아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부모를 찾아내 그에게 모든 죄를 묻는다하여,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일까요? 만에 하나, 그 부모를 찾아내 단죄하면, 그 부모의 아동은 어떤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우리 선생님을 우리 부모가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가게 되진 않을까요?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교육현장에서 교육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일이 아닐까요?
황심소에서는 이 안타까운 죽음이 어느 인물 한 사람을 가해자로 지목해 단죄하고, 잊혀지는 방식으로 종결되는 것은 진짜 이 죽음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살펴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교육 현장의 아픔이 어디서 발생되었고, 현재는 그 아픔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아픔이 반복적인 죽음으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사지에서 살아남을 그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 황: 드디어 이제 우리 교실에서, 학교에서,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이미 아파트 옥상에서 목숨을 던지는 애들 우리 많이 봤잖아요. 강남에 얼마나 그게 많이 일어나요. 그런데 드디어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던져야 되는 이 비극의 탄생은 어디에서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adhd 병명 붙이면서 정신과 의사한테 보내서 약으로 환자를 만들 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면 학생 인권조례 운운하고 교권이 떨어졌다라고 하는 이 모든 분들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실까요?
조: 네, 맞는데, 쉽지 않은 길인 것 같습니다.
- 황: 왜? 뭐가 맞는데? 뭐가 쉽지 않아요?
조: 어, 당장 선생님들이 마음이 아픈데, 이거는, 이 아이가 환자라면 더 마음이 편안한…? 덜 자책하는 마음이 들 것 같아서요.
많은 이들이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필사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부상되는 죽음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혹은 그녀가 생전에 우울증을 앓았다거나, 정신과를 다닌 경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정신과 의사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자살의 이유라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차분했다고 묘사되는 서이초 교사를 두고도, 우울증이 그 죽음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기사가 나왔다 사라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기사 속에선 그녀의 일기장의 일부가 공개되며 그녀가 업무 스트레스와 남자친구와의 문제로 우울증을 앓고 병원에 진료를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서이초 교사 개인의 나약함을 죽음으로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정신질환으로 돌려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상황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꼭 이런 기사의 하단에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상 상담전화나 정신 건강 상담전화를 이용하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아픔을 경험할 때, 가야할 곳은 정신과라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려주듯 말이지요. 마치 이런 기사가 성인들을 위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의 역할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놀랍게도 검사지 형태가 아닌, 기사로 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틈을 파고들어, 병원으로 가는 길을 더 잘 알려주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면, 너무 상상이 과한 것이겠지요?
- 황: 그러면 선생님 마음 편하게 하려고 교사는 애들을 환자로 만들고 정신과 의사는 지 환자 많이 생겨서, 손님 많이 생겨서 환자 만들고, 그러다가 결국에 마음 조금 더 예민하고 경험이 부족한 또는 인성이 너무나 섬세하고 고운 선생 순서대로 먼저 자살해서 죽어야 되는 지금 학교 상황에 우리는 있다는 이야기예요? 끈질긴 놈만 끝까지 살아남는 세상에 우리는 살아야 되는 거예요?
조: 아니죠, 아니죠. 근데 당연히 박사님 말씀처럼 이렇게 아이를 환자로 보는 게 아니라, 교사부터가, 내가 이 아이와 함께하면서 교육적으로 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 아이 스스로가 문제아가 아니고 환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거를 해줘야 되는데 그걸 선생님들이 근데 지금은,
- 황: 내가 애 마음을 읽어주기 전에 부모부터 정신병 환자로 와 가지고 학교에 민원을 넣고 난리를 치는데.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 그 부모를 빨리 정신병원에 보내서 약이라도 먹여야지, 왜 애꿎은 애만 뭐라 그래,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조: 음
- 황: 그리고 그런 부모일수록 지가 정신병원에 가서 약 먹겠다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조: 안 하죠.
- 황: 대한민국에서 돈 있고 이 권력 있는 인간은, 지가 어떤 미친 짓을 해도 결코 자기 스스로 정신병 환자라고 인정 안 하고 약 안 먹는데. 그래서 대한민국에서의 정신병은 권력과 돈의 문제이지, 결코 뇌와 신경계의 이상과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 그 정신과 의사부터 인정할까요? 안 할까요?
조: 안 하죠, 못하죠.
- 황: 네. 그러면 그래도 계속 지금, 그래도 아픈 선생님이 계속 아파하고, 그냥 같이 근조리본 달면서 우리 계속 아파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박사님, 너무해요. 이런 이야기 나한테 할 거예요?
조: 아닙니다.
- 황: 뭐, 아니고 어쩌라는 거예요, 지금! 박지현 쌤. 지금 이 불쌍한 조승연 선생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어줘서 조승연 선생님은 이럴 때 무슨 소리를 해야지 그래도 이 곤란한 상황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까요? 조승연 선생이 참 훌륭하고 착하고 능력 있는 선생님이 무슨 오늘 일진이 나빠가지고 황심소에 나와서 이렇게 곤욕을 치러야 돼요?
박 : 박사님 말씀이 다 옳은 말씀이시지만 지금 이 마음 상태에, 마음 아픈 상태에 참 많은 선생님들이 이거를 직면하면서 받아들이시기에는 아직 마음이 많이 무거울 것 같습니다.
- 황: 그러면 나는 지금 안 무겁고 지금 즐거워서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줄 아세요? 지금 뭔 소리예요, 지금~! 아니 박지현 선생님조차 나를 나쁜 사람으로 지금 이렇게 모는데 일조를 하시면 (-ㅎㅎㅎ)
조: 박사님, 혹시,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데 저도 모르게 주저했던 말이 솔직히 그분이 자살을 하기까지 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가 교사부터가 자기가 뭐 하는 사람인지를 놓쳐버리고, 자신의 역할을 정신과 의사에게 던져주고, 그리고 나서 본인이 해야 될 일을 정신과 의사가 대신하게 만든 다음에 ‘저의 교권을 찾아주세요’라고 하는 순간부터 이미 학부모님들이 민원을 하거나 교사를 무시하거나 이런 게 예정되어 있는 수준이고 그게 10년 동안 이루어지면서 그 곪아 터진 게 지금 이번에 사건으로, 이번에 사건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거고. 만약 지금도 선생님들이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다시 내가 아픈 힘든 아이들을 정신과 병명으로 붙여서 정신과로 계속 보내는 순간부터 지금 이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 반복될 거라는 거를 말씀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 황: 맞아요! 그런데 그게 지가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거는 살기 위해서 뚜렷이 알아야 되는데. 지금 호랑이한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라고 하는 이야기, 속담 있잖아요. 지금 이 전국의 선생님들이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비극은 우리가 학생들을 정신병자로, 정신병명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를 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언젠가 내 목숨도 지키지 못하는 그 비극을 겪게 될 것이다. 왜 그거를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지금 죽어 나가는 이 상황에서 진짜 이 비극이 어떻게 탄생됐는가. 그거는 조승연 선생님 같으신 분이, 박지현 선생님 같으신 분이 생생하게 이야기를 해야지, ‘그래도 너무 힘드시니까 그분들이 차마 그거를 어떻게…’ 힘들고 힘드니까 다른 생각할 수는 없지만 호랑이에 물려가는 이 순간에 우리가 더욱더 생생하게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의 정체가 뭔지에 대해서 알아야지, 그냥 ‘저의 슬픔을 읽어주세요.’, '저의 슬픔을 공감해 주세요.’, '저의 슬픔을 위로해 주세요.’ 그거는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사기치는 거지 결코 진정으로 마음이 아픈 분의 마음을 읽어주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진정한 심리 상담은 자기의 죄책감과 자기의 쪽팔림을 그렇게 슬프고 아픈 마음으로 표현하는 거를 위로하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거, 그거 심리 상담 아니에요. 네, 어쨌든, 너무너무 가슴 아프고, 너무너무 진짜, 이 온갖, 이거야말로 지금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내가 이 졸피뎀 한 움큼씩 먹지 않고서는 내가 진짜 지내기 힘들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네, 오늘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조: 네, 감사합니다.
박: 감사합니다.
2년차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바탕 거대한 폭풍이 되어 세상을 휩쓰는 중입니다. 언론들은 너나할 것없이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고, 의견을 개진합니다. 경향일보에선 “학교는 어느새 목소리 큰 학부모가 설치는 정글이 됐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제목을 읽자마자, 묻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미 정글인데, 그 거대한 정글 속에 학교가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하고 말입니다.
기사 속엔 한 중학생 아이가 핸드폰이 망가진 친구를 놀리다 학폭으로 신고당해 피해자 가해자 분리 조치로 하루 출석정리를 받은 사례가 나옵니다. 아이의 부모는 억울한 심정에 학교 담임에게 하소연하러 갔다가, 담임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초췌한 얼굴을 보고선, 수습에 급급하던 교사를 일부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교사를 위해 누군가 중간에서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를 차단해주는 방패막이가 돼 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작은 하소연부터 무리한 요구까지 모든 것을 담임교사가 혼자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교권 수호를 위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언급합니다. 마치 학생 인권의 확대가 교육활동을 침해한다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 세우는 것만 같아, 학생과 선생이 함께 배우고 성장할 교실을 더욱 더 무시무시한 정글로, 아니 전쟁터로 만들어 양쪽을 대치시키려는 하는 어른들의 노력에 놀라울 지경입니다. 이렇게 제각기 상황을 제 자신에 유리하게, 혹은 보고 싶은대로 보는 동안, 교사들은 더는 새로운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훈육도 겁을 내며 못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그래서 황심소는 지금부터 감히 그런 아픔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선생님들께 말씀드립니다.
하나! 선생님. 선생님마저 지키지 않는 교권은, 안타깝지만 타인이 지켜줄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학부형의 본분을 망각한 악성 민원인에게 “나를 교사는커녕 인간 취급도 하지 않으면서, 나의 헌신을 강요하지 마라!”라고 분명하게 말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혹여라도 가슴이 벌렁벌렁 큰 일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이 되신다면, 언제든 황심소로 그 민원인의 갑질과 진상짓을 자세히 제보해주세요. 황심소는 마음 아픈 선생님들을 대변해, 그 악질 민원인의 사악한 마음을 낱낱이 까발려 드리겠습니다.
둘! 선생님, 선생님은 정글이 아니라, 사지가 되어버린 학교에 계신 교장, 교감선생님께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하세요. “교장, 교감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부디 교사의 감시자나 관리자가 아니라 후배 선생님의 멘토, 지지자로서, 민원 전화와 민원인을 전담해주세요! 평생을 교사로 살아온 자부심으로 교권을 보여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 목소리를 스스로 분명하게 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께 감사하고, 선생님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제대로 내어 보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교육청이~” 정말로 선생님들을 보호해주고, 교권도 찾아주고, 생존권도 만들어 줄까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황심소는 많은 선생님들이 입 밖으로는 꺼내길 피하시는, 울산의 한 선생님, 섹시팬티 교사라 불리는 김승주 선생님의 이야기를 잠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승주 선생님은 이곳 황심소에 출연해 어떤 상황을 거쳐 자신이 천하에 죽일 몹쓸 아동학대범이 되었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김 선생님은 22년 동안 초등학생들을 그 누구보다 아끼며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애정과 열정을 쏟으며 교육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맡지 않으려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자발적으로 맡는, 선후배 모두를 위할 줄 아는 멋진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 김선생님을, 아이들에게 자립과 효도를 알려주려 양말과 속옷 빨래를 숙제를 내주고 학부형에게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케 한 고마운 선생님을, 교육청과 정부는 어떻게 했나요? 선거를 앞두고 한 민원인의 고발이 성가셨던 혹은 무서웠던 교육청과 정부는 그를 변태로 만들고, 평생 섹시팬티교사로 불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 형사 고발하고 범죄자로 만들어 선생님 이름표까지 심장에서 뽑아내버렸습니다. 가족, 자식 앞에서조차 마음의 장애인으로 살게 만들었습니다.
혹 ‘내가 아는 사건은 그렇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황심소에서 섹시팬티 교사, 울산 김승주 선생님을 검색해 그와의 상담방송을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째서 그러하냐고요? 실상 김선생님의 끔찍한 경험은, 교사의 신분을 잃고, 범죄자로 낙인찍힌 그 사건은, 서이초 교사의 자살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승주 선생님의 사건은, 교사들의 다양한 교육 활동 또는 새로운 교육 활동에 대해서 조금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논란의 상황에 빠졌을 때, 교사를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이나 지역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이 자신만의 안위와 정치적 지위 유지에만 초점을 두고, 교육의 변화 교육을 직접 수행하는 교사의 교육활동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거의 일회용 물컵 사용하고 버리듯이 교사를 무참히 폐기처분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어떠신가요? 지금 선생님들께서 느끼시는 슬픔과 무기력감 그리고 억울함과 분노가 김승주 선생님이 경험한 사건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 느껴지시나요?
이번 황심소 방송은,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살아가시는 선생님의 아픈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니, 부디 그 아픔에만 머물지 마시고, 그 아픔의 원인을 제대로 직면하고, 나아가 아이들과 함께 성장 발전할 교사로 나서주세요!
우리는 결정된 채로 태어나지만, 자유로운 상태로 생을 마질 수 있는 작은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유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지만, 주체가 될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프랑스 사회학자)
아이들에게 그 작은 기회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선생님들이 직접 나서서 알려주세요! 아니, 스스로를 위해, 교사로 뿌듯하게 살아낼 시간을 위해 나서주세요! 그리고 사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먼먼 미래에 우리가 이렇게 멋지게 전투에서 살아남아 반짝이는 세상을 너희와 함께 할 수 있었다 말해주세요! 반드시 황심소가 함께 하겠습니다.
이제 방송을 마무리하며,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가 사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는 한국 사회의 혼란과 아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누가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가, 그 아픔을 내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가”
황심소는 이 질문이야 말로, 생명을 살리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에게, 당신의 직업은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으로, 당신의 직업과 연관된 사회적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민주사회의 독립된, 주체적 성인으로 기꺼이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