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학자다.
전자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고 회사에 들어가서 CDMA, LTE 등 이동통신 시스템을 개발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성이 너무 없어서 탈이지...
그런데 회사를 때려치우고 한의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한의사로서 진료를 하고 있다.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라고 한다.
음양오행을 한의학의 가장 대표적인 비과학이라고들 한다.
심지어 상당수의 한의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침이든 한약이든 과학적 접근을 하는 것이 한의학이 살아남을 길이라고들 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침 찌른다고 무슨 병이 낫고 시커먼 한약 먹는다고 무슨 병이 낫겠는가.
어머님이 억지로 지어 주신 한약은 먹기만 하면 설사를 했다.
집사람이 임신 중에 입덧이 그렇게 심했는데도 한약 먹일 생각을 한번 안 했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어 한의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을까.
많은 한의사들이 갖고 있는 스토리일 텐데...
대학원 공부할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생겼다.
화장실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못 참고 뛰어가서 설사를 하는 병이다.
그래서 셔틀버스 20분을 못 타고 차를 가지고 다녀야 했고 출근길에 주유소 화장실을 항상 들러야 했다.
10년 넘게 고생하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정상 생활이 안 되겠다 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잘 고친다는 분을 찾아서 한방 치료를 받았는데... 나았다!
한의학에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에는 나름 자신이 있으니까 한의학 공부에 새로 도전하고 싶어졌고,
회사는 오래 다닐수록 나의 가치관과는 멀어져 갔고,
이제 남은 인생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준비를 해서 한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고,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여 지금은 한의원을 개원하고 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배경을 밝혔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한의학의 기반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어떻게 보면 두리뭉실하고 어떻게 보면 아주 정밀한 개념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렇고 심지어 상당수 한의사들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형이상학적으로만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한의학은 옛 사람들이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이치를 사람의 몸에 적용하였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맞추어 자연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돌아가는 것을 추상화한 것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한의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에는 음양오행(陰陽五行) 보다 사시(四時)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자연의 사계절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여 인체에 적용하였고, 편의를 위해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만든 것이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온다.
봄에 싹이 나서 여름에 크게 자라고 가을에 거둬들여서 겨울에 저장을 한다.
아침에 해가 뜨고 중천을 지나 저녁에 해가 지고 어두워진다.
해가 내리쬐어 수증기가 증발하여 구름을 이루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한의학은 사람의 생명 현상도 이런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돌아가고 있다고 본다.
밤에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낮 동안 활발히 활동을 하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밥 먹고 소화 잘 시켜서 영양과 기운을 만들어 온몸에 보내서 체격을 유지하고 활동을 한다.
계절에 따른 정당한 기후변화에 따라 만물이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 것처럼
사람도 정당하게 생활을 하면 건강하게 자기 수명을 다 누리고 살 수 있다고 본다.
어떻게 생활을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쳐다보고 있으면 움직이고 있는지를 모른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정작 언제부터 여름이고 가을인지는 모른다.
사람도 이렇게 충격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단순한 자동화 기계가 아니고 내 마음에 따라 손과 발이 움직이고, 내 마음 상태가 자율 신경에도 영향을 줘서 내부 장기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에 충격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食飮有節
하루 세끼 밥 잘 챙겨 먹고
起居有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不妄作勞
쓸데없는 일에 힘쓰지 않고
恬憺虛無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病安從來
병이 어디에서 오겠는가?
이천여 년 전에 쓰인 황제내경에 나오는 말이다.
과식하거나 생활이 불규칙하거나 과로를 하거나 마음을 많이 써서 병이 난다는 말이다.
사고로 다친다거나 독극물에 중독된다거나 치명적인 바이러스 세균에 감염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든 수긍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는가?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홍수가 나고
해가 너무 내리쬐고 비가 안 오면 가뭄이 들어 땅이 쩍쩍 갈라지고
기압차가 너무 커지면 태풍이 불어 나무가 뽑혀 나가고,
습기가 많이 차면 곰팡이가 피고
기온차가 많이 나면 창문에 김이 서린다.
사람의 몸에서도 어떻게 생활했느냐 어떻게 마음을 썼느냐에 따라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습기가 너무 차 있으면 말려야겠고
너무 말라 있으면 촉촉하게 적셔야겠고
기운이 막혀 있으면 뚫어야겠고 벌어져 있으면 오므려야겠고
기운이 너무 뭉쳐 있으면 흩어야겠고 너무 흩어져 있으면 모아야겠고
기운이 너무 올라가 있으면 내려야겠고 너무 처져 있으면 들어 올려야겠고
너무 식어 있으면 덥혀야겠고 열을 너무 내고 있으면 식혀야겠다.
한약재는 그 기운과 맛으로 사람의 기운과 영양을 조절한다.
달짝지근한 걸 먹으면 마음이 풀어진다.
매운 걸 먹으면 몸에 열이 난다.
신 걸 먹으면 몸이 움츠러든다.
이런 식의 작용을 약재별로 정밀하게 파악하여 활용하는 것이 한약 치료이다.
환자에 따라 잘못되어 있는 병리 상태를 파악해서 약재들을 조합하여 처방을 구성해서 약을 달여 복용함으로써 기운과 영양을 조절하여 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치료가 됐다고 자기 생활과 마음 쓰는 것은 그대로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비슷한 과정을 거쳐 병이 재발하겠다.
따라서 어떤 병을 치료하려고 하든 생활과 마음 쓰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우선이어야겠다.
나는 스스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을 보고 병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모색하고 병을 예방하는 것은
합리성을 추구하고 이해 안 되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나를 납득시켰기에
나는 한의학 공부를 계속하고 한의사로서 진료를 한다.
한의학은 신기한 것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것도 아니고 고수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비밀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법칙을 이해하듯이 매우 직관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한의학은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