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후반, 합성물질의 급부상은 산업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석유에 기반한 인공물질이 목재, 가죽, 라텍스와 같이 인간의 물질생활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천연재료를 급격히 대체해 나갔던 것이다. 파이프 부문에서는 부식에 취약한 금속 대신 플라스틱이, 타이어 부문에서는 천연고무 대신 마모에 강한 합성고무가, 의복에서는 모피 대신 관리가 용이하고 내구성이 높은 합성섬유가 도입됐다. 이른바 “합성혁명(synthetic revolution)”의 진전과 함께, 수많은 종류의 합성물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공장은 이제 농장, 산림, 광산 등을 대신해 산업자원의 핵심 공급 기반으로 대두했다.
본 강연은 천연에서 인공으로의 전환을 촉발한 합성혁명이 개별 국가의 산업을 넘어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형성된 소련과 미국 간 예기치 못한 비즈니스 관계를 중심으로 합성물질이 냉전 구도에 가져온 변화를 탐구한다. 석유화학 부문을 통해 국가 경제의 질적 및 양적 성장을 도모했던 소련 정부와 미국 기업인들에게, 상대방은 냉전의 적대 세력인 동시에 잠재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특히, 소련 당국이 “국민경제의 화학화”라는 기치 하에 석유화학 산업 건설에 박차를 가하자 미∙소 양국 사이의 산업 협력은 정치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급물살을 탔다. 소련은 미국 기업들의 설비, 생산 기술 및 노하우 등에 주목했고, 미국 기업인들은 소련이 전례 없는 규모의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본 강연은 오늘날에는 망각된, 그러나 당대에는 유망했던 미∙소 관계의 산업적 변곡점을 조명하며, 합성물질을 매개로 한 양국의 경제 협력 구상을 살핀다. 궁극적으로, 냉전의 이념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미∙소 산업가들이 석유화학 중심의 경제 발전이라는 공통의 비전 아래 서로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재정립한 과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본 발표는 AI 시대인 오늘날 역사학의 현재와 근미래에 대해 전망한다. AI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디지털 역사학의 핵심 단계인 데이터 가공(전처리)과 분석을 AI를 활용해 빠르게 진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AI화의 가속은 역사학의 탐구 방식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질 것인가? 본 발표는 AI를 활용해 인문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기획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본 강의의 목적은 글로벌 핵 역사의 관점에서 안보와 국방을 고찰하는 것이다. 핵 역사는 원자력 발전이나 핵 무기 개발 등 인류의 핵 활동을 탐구의 대상으로 하는 역사학의 하위 분야이며, 간학제적인 접근법을 특징으로 한다. 한편 글로벌 핵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필요한 데이터는 냉전 안보 국가의 비밀주의 속에서 거의 공개가 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강의는 냉전기 핵 역사와 그 안에서 한국의 위치를 소개하며 안보와 국방을 글로벌 핵 역사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미시사와 소빙하기 연구는 절충이 가능한가? 언뜻 답이 자명한 질문처럼 보일 수 있다. 기후사라는 분야는 애초부터 거시적인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949년 출간된 『펠리페 2세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의 저자 페르낭 브로델은 인간이 아닌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브로델은 지리와 자연현상이 인류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인간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장기지속’ (longue durée)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기후’의 기본 정의가 약 30년 간 다양한 기상 지표들의 평균값임을 고려하면, 인물과 사건 중심의 미시사와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기후사 연구들의 경향을 살펴 보면, 소빙하기 (ca.1300 ~ 1850)의 사회/경제/문화적 영향력을 부각하기 위해 전쟁이나 기근, 반란 등의 인간 중심적 사건들을 당대 기후조건과 병치하는 데 집중한다. 환경결정론이라는 비판조차 무릅쓰고 이들이 거시적인 기후사로 미시적인 사건사를 해석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상과 기후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 미시사적 접근으로 소빙하기를 연구할 필요와 방법이 있을까?
본 발표는 사회 제 분야에서 큰 변화를 만들고 있는 인공지능과 역사학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역사학에서의 문제들과 역사적 정보의 소비 양상을 비판적으로 예측한다. 이를 통해 본 발표는 이어질 토론에서 인공지능 환경에서 역사적 정보의 유통과 취사선택, 인공지능 인문학 또는 디지털 인문학의 가능성과 한계 등의 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This presentation argues that Pyongyang's desire to balance expertise development and expenditure reduction enables us to efficiently challenge the prevailing narratives of North Korean history studies that view 1956 as the most important moment for Kim Il-sung's nationalistic Juche politics.
본 발표는 연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무엇인지 개괄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연사는 디지털 역사학이라는 융합적인 학술적 접근을 활용, 1945년부터 1991년까지의 지구사(global history)를 일컫는 ‘냉전’의 역사를 과학기술을 매개로 살피는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연구의 주된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 저 비밀 해제된 유관 데이터를 수집·가공하고 이에 디지털 분석 기술을 접목시켜 냉전 과학기술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역사 서사를 창출하는 것이다. 나아가 여러 아울렛을 통해 이러한 서사를 적극 발간·공유하여 ‘기정학(技政學)’으로 대변되는 ‘신(新)냉전’ 시대인 오늘날의 세계질서를 창의적이면서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관점과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외부의 관찰을 거부하고 내부적으로도 극도의 언론 통제와 검열이 이뤄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은 가능할까? 그러한 작업의 의미는 무엇이고, 오늘날 북한을 이해하는 데 어떠한 유용함을 가지고 있을까? 본 발표는 1) 초기 북한의 과학기술사(史)를 새롭게 살펴보고, 2) 초기 북한사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이용법을 개괄하는 방식으로 앞선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