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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었다.

"재스민, 너한테는 뭐가 있지? 그들은 모두 유능한 경영자고 지도자야. 지금까지 힘을 합쳐서 쿠어를 발전시키고, 업적을 쌓아왔지. 부하들의 신뢰도 두터워. 그에 비해 너한테는 뭐가 있다는 거야? 갑자기 나타나서 맥스가 했던 것처럼 지휘하려고 해도 납득할 사람은 없어."

"아버지처럶 되려고 하는 건 내가 아냐. 너희들 중 누군가지. 일곱 개로 나뉜 일개 부문의 톱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여섯 명의 정점에 서려고 하는 인간이 분명히 있어."

딱 잘라 선언하고서, 재스민은 탁자 위의 휴대단말기를 작동시켜 어떤 화면을 불러냈다. 가리키는 대로 들여다보던 제퍼슨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버밀리온'의 사고 원인에 대한 보고서였다.

단정은 내릴 수 없지만 외부에서 감응두뇌에 간섭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그 영향으로 오작동을 일으켰을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 '사고'에는 '버밀리온'을 제조한 우주선 제조판매국의 상층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외부에서 감응두뇌에 간섭을? 말도 안 돼!"

"그래. 보통은 불가능하지."

감응두뇌는 출하되는 순간 이미 완성된 물품으로, 구이한 뒤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우선순위의 설정과 조종자 등록 정도뿐이다.

"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건 아냐. 일반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출하된 뒤의 감응두뇌를 변경할 수도 있지. 물론 비합법적이지만."

제퍼슨은 혀를 찼다.

"다들 감응두뇌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하잖아. 그렇게 간단하게 손을 댈 수 있다면 배의 안전은 대체 어떻게 되는데?"

"누가 간단하다고 했지?"

재스민은 허브티를 한 모금 머금고 뭔가를 회상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간단하기는커녕, 잘도 그런 고생까지 해가면서 일을 저질렀구나 싶을 정도야. 우선 엄청나게 특수한 장치가 필요해. 실행자의 정신과 감응두뇌를 연결하는 장치지."

"정신을... 연결해?"

"그래. 실행자의 정신이 통째로 감응두뇌 내부로 들어가서 바라는 대로 수정을 하는 거지. 하지만 너도 아는 것처럼 감응두뇌는 특정 분야의 작업에는 천재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먹는 어린애나 다름없어. 억지로 수정을 강요하면 그것망느로도 터져버리지. 즉 고장이 난다는 말이야. 이 수정ㅡ전문용어로 어레인지라고 하지만, 이걸 성공시키려면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장치에다 특별한 재능이 필요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재능이라니, 무슨 재능인데?"

"어레인지하는 재능 말이야. 체조선수가 되려면 운동의 재능이 필요하고, 가수가 되려면 음악의 재능이 필요한 거나 마찬가지지. 단, 운동신경이 둔해도 달릴 수는 있고 음치라도 노래는 할 수 있겠지만, 감응두뇌의 어레인지는 이야기가 달라. 어설프게 접속을 시도했다가는 50퍼센트 확률로 감응두뇌가 망가져. 인간 쪽은 미쳐서 폐인이 되지."

"......"

"그러니까 최초의 접속 자체가 도박이라구. 어지간히 담력이 큰 인간이 아니면 못할 노릇이지. 설령 접속하는 데에 성공했다 쳐도 그 뒤에는 실행자의 실력이 문제가 돼. 얼마나 감응두뇌가 말을 듣게 만들 수 있을지, 얼마나 시스템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도 실행자의 재능에 달려 있어. 감응두뇌의 어레인지는 절대로 손쉬운 작업이 아니야. 아무리 튼튼한 사람이라도 매일같이 했다가는 몸이 못 버텨.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한계인데다, 계속 하면 할수록 실행자에게 걸리는 부담도 커지지. 그런 부분에서는 운동선수나 마찬가지야. 젊고 팔팔할 때가 승부고 오래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은 아냐."

"잠깐. 넌 직업이라고 했지만 이런 일에 무슨 수요가 있다는 거야?"

"있고 말고. 뒷세계에서는 꽤 잘 나가는 직업이야. 특히 우주 해적에게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지. 일반적인 감응두뇌는 위험해역으로 비행하려고 하지 않아. 민간기를 향해 발포하려고도 안 하지. 그래서야 해적질이 되겠어?"

"......"

"군용 감응두뇌라면 몰라도 그런 걸 해적이 손에 넣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시판되는 우주선을 사다가 개조하는 편이 빠르다는 말이 돼. 그래서 해적도 조직이 크면 커질수록 솜씨가 좋은 어레인저를 고용하지만, 개중에는 '떠돌이'도 있다더군. 반년이나 1년 정도 한 조직에 고용돼서 일하다가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는 식이야."

제퍼슨은 진귀한 동물이라도 보듯이 재스민을 바라봤다.

"상당히 자세하게 알고 있군?"

"해적 중에는 대놓고 군대에 반항하는 간 큰 놈들도 있으니까. 몇 번 충돌한 적이 있어. 그런 놈들을 상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부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지."

재스민은 어깨를 으쓱하고 대화를 원래 주제로 되돌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동 중인 감응두뇌에 접속하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었어. 뭐, 그다지 실력이 좋은 녀석이 아니었던 거겠지. 운이 좋았어."

이 말에는 제퍼슨도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그래. 더 실력 있는 녀석이었으면 '버밀리온'이 어디로 끌려갔을지 짐작도 할 수 없어. 어중간한 녀석이었으니까 '버밀리온'의 감응두뇌가 재빨리 방어기능을 발휘해서 스스로 자기 선체의 연료계통을 폭파시킨 거야. 외부에서 내리는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으려고. 거기까지가 한계였겠지만. 역시 쿠어 제품은 우수한걸."

제퍼슨은 한동안 굳어 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버밀리온'을 조종하려다 실패했고 그 결과 사고가 일어났다는 말이야?"

"그래."

"하지만 조종하다니, 대체 왜?"

"확증은 없지만 대충 짐작은 가. 이 옷이나 마찬가지지. 본 무대를 시작하기 전의 리허설이야."

"뭐......?"

"진짜 목적은 '버밀리온'이 아니었어. 실험이니까 배는 아무거나 상관없었을 거야. 진짜 무대는 아마도 '쿠어 킹덤'이겠지."

"......"

"하지만 나도 되게 만만하게 보였나보지. '버밀리온'도 제대로 조종할 수 없는 놈이 펠릭스를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재스민은 세상 사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지만, 제퍼슨은 눈을 부릅떴다. 원래부터 삼백안인 눈이 완전히 사백안이 되어 있다.

재스민이 군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제퍼슨이지만,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오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누가 뭐래도 고등사교술이나 회화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아가씨'가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와 동시에 우주해적과 전투를 거듭하며 해적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고 있는 우주군 병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 실험이라는 걸... 누가 했는지도 알고 있어?"

"물론. 너희들 일곱 명 중에 한 명이야."

"여섯 명이야. 적어도 난 아냐."

제퍼슨은 힘차게 단언했다.

"게다가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지만 해적 전문의 그 직업하고 '버밀리온'의 사고를 연결짓는 건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감응두뇌나 선체의 제조단계에서 이상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다면 시먼스도 더 철저하게 원인규명을 명령했겠지. 쿠어에서 제조한 우주선에 결함품이라는 낙인이 찍힐지 아닐지의 분기점이니까."

제퍼슨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시먼스는, 기계라는 것에는 아무래도 이런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부품으로 같은 공정을 밟아 똑같이 조립해도 괜찮은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이 나오며 때때로 아주 드물게 오작동을 일으키는 물건도 있다고. 설령 감응두뇌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라고.

이번 사고는 수만, 수십만 분의 일 확률로 우연히 그런 감응두뇌가 '버밀리온'에 탑재된 것이 원인이며,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강조했다.

"넌 그 사고에 시먼스가 관여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사람 말을 좀 듣지 그래. 네 말을 믿는다고 치고, 너 이외의 여섯 명 중 누군가야. '버밀리온'에 휴고와 휴고의 가족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판된 물건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회사용 우주선으로 시험해본 거겠지. 자, 그래서 묻는 건데 넌 나하고 그 녀석들 중 어느 쪽에 붙을 거야?"

제퍼슨은 더욱 떫은 표정을 지었다.

"잘 들어, 재스민. 네가 유능하다는 건 인정하지. 편협한 생각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꼬마 계집애 아래에 붙고 싶지는 않아."

재스민은 짐짓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여자를 보고 꼬마 계집애라니, 거 고마운걸. 고마움을 넘어서 짜증까지 날 정도야."

"그런 옷을 걸치고 있는 네가 나빠. 게다가 56년이나 남자로 살다보면 마흔 아래의 여자는 전부 꼬마 계집애나 다름없지."

"과연. 열다섯 살짜리 소녀한테 25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아저씨인 거나 다름없나. 아니 넌 할아버지겠어."

이 여왕은 실력은 물론이고 입심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제퍼슨은 재스민의 실력을 알지 못하는 만치 철없는 딸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아버지 같은 심정이었다.

"이봐, 재스민. 넌 지금 결혼해서 아이까지 생겼고, 여자로서 최고의 행복을 맛보고 있어. 그 녀석들이 뭘 꾸미든 총수 지위따위에 집착하지 말고 좀더 평범하게 한 남편의 아내로서, 조만간 태어날 아이의 어머니로서 살아가도록 해. 맥스도 분명히 그러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감상어린 제퍼슨의 말에도 재스민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네 이론대로 보자면 독신여성이나 결혼했어도 아이가 없는 여자는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같네?"

"정말, 계속 말꼬리만 잡으면서...... 조금은 사람 말 좀 듣는 게 어때?!"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리처드, 적당히 자백하라고. 날 내부 분규에 말려들지 않게 하려는 진짜 이유는 그런 게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나하고 내 어머니를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는 소리야. 어머니는 병약하고 얌전한데다 여자답고, 분쟁을 싫어하는 다정한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난 아냐. 넌 날 위험에서 격리시킬 생각이겠지만 그거야말로 민폐야. 정면에 적이 있는데 등을 보이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등을 쏴달라고 부탁하는 거나 다름없지. 우선 네 가족들은 난시가 너무 심해. 어떻게 하면 어머니와 내가 동일인물로 보이는 거야?"

재스민의 지적이 정곡을 찌른 듯, 제퍼슨은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잖아, 모녀니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난 세실의 분신인 동시에 맥스의 분신이기도 해. 아버지는 안 닮은 것 같아?"

씨익 웃는 얼굴생김에 닮은 구석은 없다. 재스민은 원래 부모 중 어느 쪽도 닮지 않았다. 병약한 어머니는 논외라고 치고, 아버지도 체구가 작은 사람이었으니 체격도 닮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눈빛, 색은 달라도 강렬한 의지를 담고 있는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넌 내가 총수 지위에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