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한 친구의 부인이 검사이다. 딸 아이 셋을 키우며 하는 직장 생활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던 중 해외연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친구는 직장 문제가 있으니 이곳에 남았고, 제수씨만 아이 셋과 함께 미국의 뉴저지로 떠났다. 하필 그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가끔 친구를 만나면 딸 가진 여느 아빠들처럼 아이들 자랑이 은근하다. 대놓고 떠벌리는 자랑은 아니라서 듣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몇 마디 하다 다른 화제로 대화를 옮겨가는 모습을 보자면 아빠로서 아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짠한 마음도 든다. 자유롭게 왕래조차 못하고 있던 상황이 아니던가.

친구가 내게 동영상 하나를 내보였다. 5분 정도 되는 짧은 영상 속에는 막내딸이 화상으로 선생님과 읽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학교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막내딸의 서툰 영어가 걱정이 된 나머지 과외 선생을 붙였다고 했다. 영상 속의 아이는 떠듬떠듬 동화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선생님이 책의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아이의 대답은 충분히 훌륭한 것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우리 나이로 8살이다.

선생님: What was the book about? What do you remember from the book?

아이: The king was want new crown.

(선생님의 칭찬하는 말이 잠시 이어졌다.)

선생님: Why did the king want a new crown?

아이: Because king was don’t like a old crown and he want change.

아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해 되묻는 경우가 없이 곧잘 이해했고, 말은 다소 느렸지만 발음이 또렷하고 좋았다. 아마도 친구는 원어민 교사와 원활하게 의사소통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영어교육을 전공하는 나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아이의 영어 실력은 대견한 수준이었다.

친구에게 곧바로 동영상을 내게 전송해 달라 청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나의 요청에는 조금 다른 뜻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