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유행하는 트렌드 컬러가 있듯 특별히 유행을 타는 말이 있다. “꽃길만을 걸으라”처럼 문장 단위에서 유행하기도 하고, “인싸”처럼 단어 단위에서 유행하기도 한다. 문장이나 단어보다 작은 단위가 접사로서, 예를 들어 아주 근래엔 “찐”이란 접두어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려오기 시작했다(예: 찐우정, 찐팬).
해마다 유행하는 트렌드 컬러가 있듯 특별히 유행을 타는 말이 있다. “꽃길만을 걸으라”처럼 문장 단위에서 유행하기도 하고, “인싸”처럼 단어 단위에서 유행하기도 한다. 문장이나 단어보다 작은 단위가 접사로서, 예를 들어 아주 근래엔 “찐”이란 접두어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려오기 시작했다(예: 찐우정, 찐팬).
“개”라는 접두어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지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15년쯤 들어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접두어로 “킹,” “왕,” “짱,” “캡” 등이, 예를 들어 “킹받네,” “왕짜증,” “짱 싫어,” “캡 좋아” 등으로 쓰이며 유행을 주도하던 것이 어느새 모두 “개”로 정리가 된 모양새다.
유사 접두어들을 평정해 버린 “개”는 이전의 그 어떤 접두어보다도 생산성(productivity)이 높아서 그 쓰임새가 실로 넓고 다양하다. 본래는 주로 명사 앞에 붙여 부정적인 의미를 부가하는 기능을 하였던 것이(예: 개죽음, 개고생, 개살구, 개떡, 개꿈, 개수작, 개망나니), 이젠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 어느 품사에나 붙어 다니고(예: 개여신, 개까불다, 개빠르다, 개몹시), 긍정과 부정을 가리지 않고 두루 쓰인다(예: 개예쁘다, 개좋다 vs. 개못생겼다, 개싫다). 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 이름으로 JTBC의 “개이득,” KBS의 “개훌륭(개는 훌륭하다)”까지 등장한 마당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개”가 이렇게까지 유행하게 되었을까? 혹자들은 “개”를 십 대들의 언어라고 말한다. 생물학적인 성장기와 사회화 과정을 겪는 십 대들은 기성세대의 질서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한다. 행동에서뿐만 아니라 언어에 있어서도 저항의 양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며, 그 결과가 바로 십 대들의 언어이다. 십 대들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집단문화이다. 언어를 포함한 특정 행동 양식을 동경하며, 상호간 유사한 양식을 공유하곤 한다.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과 집단문화에서 비롯한 것이 “개”로 예시되는 십 대들의 언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발적인 생산성을 자랑하는 만능 접두어 “개”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순간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궁극적으로 언어 변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아직 내릴 수가 없다. 예측이 불가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여러 가지 변인에 의해 화자 집단 간 언어 사용의 실제에 있어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 중요한 변인 중의 하나가 바로 화자의 연령이다. 특정 연령대, 특히 변화를 주도하곤 하는 십 대들의 언어가 언어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십 대, 삼십 대는 물론 오육십 대에 이르러서까지 그들의 언어를 유지해야 할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지금의 십 대 소녀들이 나이 들어 결혼을 하여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아버님, 이 음식 개맛있지 않으세요?”와 같이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언어 변화가 나타났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개”는 십 대들에 국한하여 유행하는 언어에 그치게 된다.
지금까지 거센 유행의 흐름을 탔던 말들은 많았다. 앞서 언급한 “킹,” “왕,” “짱,” “캡”은 물론이요, 하나만 더 예를 들자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10여 년 전쯤에 유행했던 “급”이란 말도 있다. 시급하다는 의미를 가지는 한자어 急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들은 너나없이 “급 늙어버렸다,” “급 짜증이 났다,” “급 먹고 싶었다”와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역사의 뒤안길로 급사라질 처지에 놓이고 말았지만...
“개”가 수많은 유행어들이 이미 지나쳐간 흥망성쇠의 길을 답습할 것인지, 새로운 언어로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사전에까지 등재되는 식의 쾌거를 올리게 될 것인지 그 미래가 몹시도 궁금할 따름이다.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한치 앞도 예측이 불가한 지금, 다만 “개”의 공세가 개무서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