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말의 유구한 역사를 여기서 새삼 되짚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에 주목하는 말로, 젊은 세대가 진짜 버릇없어서라기보다는 나이 들어가는 기성세대의 보수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말로 나는 이해한다. 그런데 그렇게 찰떡같이 이해를 잘 하면서도 정작 요즘 사람들은 왜 저렇지 하는 생각을, 고백하건대 나는 가끔 한다. 특히 학생들이 보내온 이메일을 받아볼 때 그렇다.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말의 유구한 역사를 여기서 새삼 되짚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에 주목하는 말로, 젊은 세대가 진짜 버릇없어서라기보다는 나이 들어가는 기성세대의 보수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말로 나는 이해한다. 그런데 그렇게 찰떡같이 이해를 잘 하면서도 정작 요즘 사람들은 왜 저렇지 하는 생각을, 고백하건대 나는 가끔 한다. 특히 학생들이 보내온 이메일을 받아볼 때 그렇다.
그곳이 어디이든 새로운 도시에 가게 되면 나에게 방문 1순위는 그 대학을 대표하는 대학교가 된다. 대학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많지가 않다. 대학의 여러 공간 중에서도 서점은 단연코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이다. 서점은 대학의 중심부에 위치하기 마련이며,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어서 기념품도 잔뜩 구경할 수 있고, 그를 통해 그 대학의 전통, 문화, 상징하는 바 등을 두루 깊이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는 지금까지 세 번 방문했는데, 그 맨 처음은 2012년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서였다. 바쁜 일정 중에도 숨길 수 없는 욕심에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 홍콩대학을 방문하였다. 개교 100주년이 훌쩍 넘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인 홍콩대학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한참을 헤매서 도착한 홍콩대학은 언덕배기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답게 키가 제법 큰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홍콩대학의 구내서점에 들렀다. 생각보다는 그 규모가 아담했다. 대개 서점에서는 대학의 기념품을 하나쯤 사곤 하는데, 어쩐지 마땅히 손이 가는 무엇이 없었다. 시간에 쫓겨 집어든 것이 Geoffrey Finch 교수가 쓴 책, Word of Mouth. 가벼운 책이어서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Finch 교수의 책에서는 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사이버 공간 상의 의사소통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메일 메시지를 연구해보면 사람들이 넷 상에서 날이 갈수록 예의가 없어지고 있음(an increase of rudeness on the net)을 알 수 있다고 그는 언급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호칭(Dear John 혹은 Dear Mabel과 같은)이나 말미의 인사말(Best wishes나 Yours sincerely와 같은)이 생략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Finch 교수의 책에서 이메일에 나타나는 무례함에 대한 언급이 기억에 남은 것은 나 역시 그에 공감하였던 바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나나 Finch 교수만이 느끼는 무엇은 아니어서, 적어도 내가 교류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이 부분에 대해 지적한다. 젊은 사람들 혹은 학생들의 시선에서는 대학의 교수들이 꼰대일 뿐이라 여겨질 법도 할 일이지만, 사실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결국 진짜 꼰대가 되어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겠구나 싶은 생각을 늘 품고는 있지만, 대놓고 이야기를 꺼낼 기회를 포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나마 이메일 쓰는 법을 정리해볼까 한다. 상대방에게 무례하지 않게 읽힐 수 있는 이메일, 요즘엔 예의 없는 이메일이 범람하다 보니 사실 조금만 신경 써도 상대방에게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런 이메일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것이 참 별 내용이 없다. “기체후 일양 만강하옵신지요?” “옥체 만안하시온지요?” 등 이젠 역사드라마에서 조차도 외면 받을 법한 거북스러운 표현을 동원하라는 것도 아니고, 용건부터 다짜고짜 말하지 말고 계절 인사 등으로 완충 장치를 마련하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소속과 이름부터 밝히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메시지를 담게 되는 본문이야 각자들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메일의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이다. 처음과 마지막만 신경 쓰면 사실상 반은 먹고 들어간다.
하나, 상대방의 지위에 적절한 호칭으로 시작하자. 상대방이 선생님이면 “선생님,” 교수님이면 “교수님,” 박사님이면 “박사님,”과 호칭하며 이메일을 시작하면 된다. 손아래 사람이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길동,”과 같이. 영어의 “Dear John/Mabel,”과 같은 기능을 하는 부분이다.
둘, 영어로 된 이메일에서 “Yours sincerely,”와 같은 표현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말로 된 이메일에서도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 나보다 윗사람이거나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경우에는 “홍길동 올림”과 같이 쓰면 되고, 상대방이 나와 엇비슷하거나 동등한 관계에 있는 경우, 혹은 상대방과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일례로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홍길동 드림”과 같이 쓰면 된다. “올림”과 “드림”이 국어사전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착각한 나머지 윗사람에게 “홍길동 드림”과 같이 쓰거나 “올림” 혹은 “드림” 등의 덧붙이는 말조차 없이 “홍길동”이라고 쓰지 말라. 상대방은 십중팔구 그에 대해 예의 없다고 느낀다.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지 않을 뿐.
여담으로 딱 한 번 드러내놓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박사과정에 있는 제자 하나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지도교수인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홍길동 보냄”이라고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 예의를 잘 알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염려가 되었다.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메일 쓰는 법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을 돌려보낸 후 내가 느꼈던 자괴감은 아무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어코 꼰대 짓을 하고 말았구나...
말과 글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말과 글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닌 독특한 장르의 이메일, 그를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금세 드러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