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크면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꼭 비행기 태워드릴게요!
내가 어릴 적에 심심치 않게 듣던 말이다. 아마도 드라마가 그 주된 소스였던 것 같은데, 이는 예를 들자면 고된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아버지를 위로하는 아이들의 단골 멘트였다. 1992년 나의 찬란했던 청춘 시절, 마르고 닳게 들었던 015B의 수필과 자동차는 “이젠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더 궁금하고 해외여행 가봤는지 중요하게 여기네”와 같은 노랫말을 담고 있다. 해외여행은 물론 비행기 타는 일 자체가 더 이상 대단한 것이 아니게 된 지금 시대엔 그 누구도 부모님께 비행기를 태워드리겠다는 말로 효심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비행기를 태우다”는 그 역시 요즘엔 잘 쓰지 않는 것으로 “호강시키다”는 말과 유사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런데 “비행기를 태우다”가 “호강시키다”는 뜻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2) (승무원이 다른 승무원에게 몸이 불편한 승객을 가리키며) 이 분 좀 (비행기) 태워드리세요.
3) (물건들을 태우는 와중에 종이비행기를 가리키며) 비행기 태워도 되지?
4) A: 오늘따라 더욱 멋져 보입니다. B: 아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5) (누운 자세에서 두 발로 아이를 들어 올리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얘야, 비행기 태우지 마라. 아이 다칠라.
2)는 물리적으로 비행기를 태우는 경우이다. 3)은 역시 물리적으로 비행기를 태우는 경우인데, 이때의 “태우다”는 높은 온도로 불을 붙이는 것을 의미하니 2)에서의 “비행기를 태우다”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4)는 심리적 상황에 대한 묘사이다. 여기서의 “비행기를 태우다”는 “칭찬하다” 혹은 “추켜올리다”쯤의 의미를 가진다. 마지막 5)에서의 “비행기를 태우다”도 그 의미가 앞선 것들과 여전히 달라, 어린 아이와의 놀이 방식 중의 하나가 비행기를 태우는 일로 묘사되고 있다.
전혀 다른 “태우다”의 의미를 가지는 3)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사실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하여 물리적으로 실제 비행기에 사람을 태우는 행위를 묘사하는 2)의 의미에서 1), 4), 5)의 의미가 비롯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순서를 뒤집어 먼저 5)는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과 어른의 두 발에 올라탄 아이의 모습을 동일시한 표현으로 외양의 물리적 유사성에 착안한 경우이다. 그에 비해 1)과 4)는 비행기를 타는 경험이 주는 심리적 특별함에서 기인하여 추상성을 띠는 방향으로의 의미적 확장이 이뤄진 경우들이다.
한편 흥미로운 점으로, 2), 3), 5)와는 달리 1)과 4)의 경우에는 “비행기에 태워졌다”는 식의 수동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 또한 비행기를 수식하는 특별한 말을 덧붙일 수도 없어서, 1)과 4)의 의미에서는 “큰 비행기를 태우다”와 같은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