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가정하자.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부산에 올라갔다 왔어요.”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가정하자.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부산에 올라갔다 왔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말 중에 “상경(上京)”과 “낙향(落鄕)”이 있다. 서울에 가는 행위는 ‘위 상(上)’을 써서 표현하고, 시골로 거처를 옮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떨어질 락(落)’을 쓴다. “서울에 올라가다”와 “시골에 내려가다”에 같은 우리말 표현에 상응하는 것들이 될 것이다. 주지하듯, 이와 같은 언어 표현은 문화, 행정, 경제, 정치의 중심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영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travel up to London”과 같은 표현을 사람들은 줄곧 사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말들이 화자의 지리적 측면에서의 이동의 실제 방향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서울이나 런던에 비하여 지리적으로 위쪽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이나 런던으로 실제 ‘내려가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들은 “상경하다,” “서울에 올라가다”와 같이 표현한다. 물론 이는 대부분의 화자들에게 상식적인 내용에 불과하여 새로울 바 없는 뻔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앞서 제시한 “부산에 올라가다”라는 말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것은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교대를 졸업한 후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20대 후반의 어느 교사로부터 목격한 실제 발화 내용이다. 선생님은 당시 청주에 소재한 우리 학교에 파견 근무를 와 있었다. 월요일 오후 공부를 위해 학교에서 만난 자리에서 “주말 잘 보내셨어요?”와 같이 나는 물었고, 선생님은 나의 안부 인사에 대한 응답으로 “네, 부산에 올라갔다 왔어요”라고 답했다. 귀가 번쩍 뜨여서 동일한 질문을 다시 던졌더니, 어찌하여 두 번이나 묻느냐는 식의 반응과 함께 똑같은 답변이 되돌아 왔다. 그렇듯 선생님은 청주를 출발하여 부산을 다녀온 행위에 대해 “부산에 올라갔다 왔다”고 똑똑히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부산은 우리나라 제 2의 도시이다. 제 1의 항구 도시라는 사실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타 지역 출신 사람들과 비교하였을 때 더욱 도드라지는 부산 출신 사람들의 특징으로, 그들은 고향인 부산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다. 해당 발화와 관련하여 추가적인 다양한 해석이 물론 가능하겠으나, 부산 사람의 부산에 대한 자긍심을 통해 발화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충분한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대학교 1학년 시절로 기억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동기들과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통편이 원활하지는 못하였기에 명절에 시골 가는 것이 대단히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부산에서 온 친구에게 “너는 언제 시골가니?”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발끈했다. “뭐? 시골! 부산이 왜 시골인데?” 부산이 시골이라는 말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느껴지는 응답이었다)
한편, 이와 같은 추론이 가지는 타당성을 입증해볼 요량으로 나는 부산을 비롯하여 광주와 대구 등을 고향으로 하는 화자들을 대상으로 “부산에/광주에/대구에 올라가다”와 같은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한동안 묻고 다녔다. 그 결과, 광주나 대구 출신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비율로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경우 그와 같은 표현에 대해 크게 어색하지 않게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여전히 추정에 지나지 않겠으나, 부산에서 태어나 줄곧 부산 밖을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즉 소위 부산 토박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서 “부산에 올라가다”는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우리의 사고 양식을 언어가 그대로 반영하게 됨을 잘 예시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