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문이 이뤄지고 있는 법정이다. (사실 실제 법정에 가봐야 드라마틱한 신문 과정을 볼 일이야 없다. 그런 건 진짜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A: 피고는 지금부터 ‘네’ 혹은 ‘아니오’로만 답하세요. 피고는 근래에도 여전히 노상방뇨 행위를 하십니까?

B: 아니, 노상방뇨라니요? 제가 사람은 이렇게 생겼어도...

A: 이거보세요, 피고! ‘네’ 아니면 ‘아니오’로만 답하시라니까요! 자, 그렇다면 피고는 이제 노상방뇨 버릇을 고치셨나요?

A는 B가 노상방뇨라는 불법적 행위를 범한 적이 있는지를 추궁하고 있다. B가 노상방뇨와는 거리가 멀어 한없이 결백하다 하였을 때 그는 A의 질문에 대해 도대체 무어라 답을 해야 할까? 근래에도 여전히 노상방뇨 행위를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을 해봐야 B가 과거에도 노상방뇨를 한 적이 없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는 없다. 이제 노상방뇨 버릇을 고쳤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아니오’는 말할 것도 없고 ‘네’라고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는 노상방뇨를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었노라고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A는 B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전제(presupposition)를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전제란 진술이나 의문, 혹은 명령 등의 단언이 이뤄지기 위한 배경이 되는 가정을 말한다. 전제는 화용적 전제의 경우에서와 같이 상황 맥락을 통해 구성될 수도 있고, 위 대화에 제시된 A의 질문에서와 같이 언어적 표현을 통한 의미론적 전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언어적 전제는 예시한 대화에서 잘 드러나듯 상대방을 추궁하는 장면에 있어 특히 유용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