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개봉한 애덤 샌들러와 드루 배리모어 주연의 “첫 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영화이다. 나에겐 꽤나 친숙한 하와이가 배경인 것이 하나의 이유이고, 내가 좋아하는 드루 배리모어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다. 장르 자체가 내가 즐겨 찾는 로맨스 코미디라는 점도 빼먹을 수는 없겠다.
드루 배리모어가 역할을 맡은 여주인공 ‘루시’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아침이면 그 전날의 기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애덤 샌들러 역의 ‘헨리’는 ‘루시’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지극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픽사의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것들은 못해도 다섯 차례 이상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엄청난 영화광이 아니다보니 나에게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니모를 찾아서”(2003)와 그 후속편인 “도리를 찾아서”(2016)도 내 기준에선 대단한 수작이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조연을 맡았던 ‘도리’가 후속작인 “도리를 찾아서”에서는 주연으로 격상되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구성이다. ‘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는 물고기이다. ‘루시’에 비해 증세가 훨씬 더 심각하여, ‘도리’는 자신이 방금 한 말조차 돌아서면 곧바로 모조리 잊어버린다. 그리하여 ‘도리’는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숙명에 놓여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도리’ 본인은 물론이요, 그의 반복되는 말을 들어줘야 하는 주변의 물고기들에게도 여간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