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그룹 피노키오는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공전의 히트곡을 내놓았다. 그 시절 나 역시 “사랑과 우정 사이”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지금은 쉬이 소환되지 않을 청년 시절 특유의 감성으로 가사 하나하나에 공감하였다.

노래 중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나는 떠나리.” 나에 대한 너의 마음이 사랑과 우정이라는 두 감정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다는 말이다. 어찌할 도리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니던가. 청춘남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법한 그 애매한 감정의 굴레.

사랑과 우정은 감정이라는 상위 범주에 속하는 두 가지의 하위 사례들이다(감정과 사랑, 감정과 우정은 각각 상위어(superordinate)-하위어(hyponym)의 관계를 이룬다). 사랑은 다시 독립적인 범주를 이루고, 우정 역시 그 나름의 독립적인 범주를 구성한다.

마치 “새” 범주에서 전형성이 높은 예시로 까치나 참새를 떠올려 볼 수 있듯, “사랑”이란 범주에서도 전형성이 높은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내리사랑과 같은 것 말이다. “우정”의 범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형성이 높은 사례가 그 중심부를 차지한다. 이때 각 범주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나아갈수록 전형적인 “사랑”과 전형적인 “우정”에서 점차 거리가 멀어진다. “사랑”의 가장자리에는 그것이 사랑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우정”의 가장자리는 그것이 우정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자리한다. 무언지 가늠하기 어려운 그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자리를 잡은 감정이다.

인접하는 범주와 범주는 이렇듯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경계의 모호성(fuzziness of the boundary)”은 범주를 논함에 있어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