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태어난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의 앞에 펼쳐진 세상은 한없이 복잡할 따름이며,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의 방대함은 그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행인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은 세상의 복잡함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를 갖추게 될 것이며, 앞서 축적된 지식을 익히고 활용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창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에 특별히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고, 과정과 결과에 있어 큰 예외라 할 만한 것도 없어 보이니 인간은 본디 크게 축복받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과연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지식을 익히게 되는 것일까?

암기, 추론, 분석, 유추, 추상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습 기재 중 내가 주목하는 것은 범주화(categorization)이다.

아이는 생후 4개월이 되면서부터 주변 사물에 대한 범주화 과정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에게 있어 범주화는 가장 강력한 학습의 수단이다. 그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새롭기만한 상황에서 범주화라는 기재가 없다면 세상은 아이에게 끔찍한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매일 매순간 마주하는 대상들이 독립적으로 이해되고 기억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 아이는 범주화에 능한 존재이다.

나를 어르고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엄마를 알고 또 아빠를 알게 되면 두 사람을 나의 부모라는 범주의 틀에서 이해한다. 가족이라는 확장된 범주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 연후엔 가족이 아닌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거나 나를 들어 올리려고 하면 자연스레 울음이 난다.

밖에 산책을 나갔더니 네 발 달린 동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엄마는 멍멍이라 이른다. 엄마의 언어 자극 덕분에 나는 발이 네 개인 동물을 모두 멍멍이라는 범주에 두고 이해한다. 그것의 실제가 고양이이든 말이든 혹은 곰이든 말이다. 성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의 결과가 될 것인데, 범주화의 부산물인 과잉일반화의 과정이 없다면 세상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구축이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된다.

부모를 비롯하여 내가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가까운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노출한다. 이때 그 다양한 감정들도 범주를 통해 이해되고 학습된다. 즐거운 감정과 행복한 감정은 상호 비슷한 속성을 보이는 반면, 슬픈 감정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감정의 범주들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상대방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를 통해 다른 이와 상호작용하는 법도 점차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