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까지도 한참이나 멀었던 오래 전의 일이다. 서울 사는 사촌 형은 방학 때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를 왔다. 자상한 성격의 형은 세 살 어린 나와 살갑게 놀아주었다. 며칠을 그렇게 붙어 놀다가 형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러면 의젓한 말투로 형은 동생을 달랬다. “울지 말고... 너가 형네 집에 놀러오면 되잖아, 이?” 형의 말투는 참으로 다정다감했다.
초등학교 입학까지도 한참이나 멀었던 오래 전의 일이다. 서울 사는 사촌 형은 방학 때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를 왔다. 자상한 성격의 형은 세 살 어린 나와 살갑게 놀아주었다. 며칠을 그렇게 붙어 놀다가 형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러면 의젓한 말투로 형은 동생을 달랬다. “울지 말고... 너가 형네 집에 놀러오면 되잖아, 이?” 형의 말투는 참으로 다정다감했다.
조금 커서 깨닫고 보니 형은 서울사람이 아니었다. 형은 정확히 경기도 평택시 안중면에 살았다. 지금이야 나름 수도권 행세하는 지역이 되었지만, 당시엔 내가 살던 충청도 산골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시골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산과 논이 주변의 전부였음에 비해, 큰아버지 댁에 가서 둘러보자면 온통 염전만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차이점이 있었을 뿐. 형이 서울사람이라는 것은 나와는 다른 말투를 쓰는, 일 년에 두 어 차례나 볼까말까 하는 특별한 손님에 대해 꼬맹이가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형이 나에게 지긋한 말투로 했던 말도 알고 보니 서울말이 아니었다. 말끝마다 “그지, 이~?”와 같이 덧붙이곤 하는 것이 형 특유의 말투였는데, 그것이 결국 형이 살던 경기도 평택 지역에서 쓰던 말이었구나 싶다.
대학입시에 낙방하고는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충청도 부여와 공주에서 스물이 되도록 살았으니 꼬질꼬질하게 들러붙어 있던 촌티는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종로학원에서 재수생활이 시작됐다. 한 반에 100명이나 되는 콩나물시루 같은 환경이었는데, 그중 40명가량이 여학생이었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여학생들이 줌인되어 눈에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촌티 줄줄 흐르는 내 모습은 창피함의 근원일 뿐이었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서울 출신의 멋진 친구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자연스럽게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하고 노래 한 곡씩을 뽑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역시 촌스런 자리였다.
한 달 동안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내게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내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숨은 턱턱 막혀왔다.
어찌어찌 소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꽤 그럴싸하게 준비한 인사말을 하였고, 노래도 그럴듯하게 불렀으니 어깨가 으쓱해질 만도 했다.
그러나 재수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알고 말았다. 그 자기소개의 무대에서 내 별명이 생겨버렸다는 사실을. 그 시절 나 몰래 반 친구들이 나를 이르는 별명은 “그려”였다.
“그려”는 잘 알려진 충청도 사투리로 “그래”라는 뜻이다. 사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말하자면 충청도 사투리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말이다. 나는 아마도 무의식 속에서 서울말을 하려 하였을 것이다. 어색하지만 억양은 어찌어찌 흉내를 내는데 성공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어휘 선택의 맥락에서만큼은 내 충청도 아이덴터티를 감추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서울사람들이 쓰는 어휘를 선택하여 쓰기 위해 애를 썼든 애를 쓰지 않았든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이었다는 말이다.
내가 구사하는 말은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언어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그럴듯한 답 중의 하나는 “언어는 나의 정체성이다”와 같은 답변이다. 나의 경우를 두고 말하자면, 나는 남성이기에 남성의 언어를, 서울생활을 오래하였기에 서울말을, 그러면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충청도말을, 학자이기에 학자의 언어를 쓴다. 내가 처한 환경에 맞춰가며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언어는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우리가 가진 정체성이 다중적이듯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도 여러 겹의 옷을 두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