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로 소위 썸 타는 상대가 갑작스러운 고백을 해왔다.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
여러분이 이 고백을 접한 당사자라면 어떠한 기분이 들겠는가?
무척이나 고전적인 말에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말에 기분 상해할 사람은 정작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라는 말이 듣는 이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부정이 아닌 긍정 쪽에 훨씬 더 가깝다. 왜일까?
요즘 말로 소위 썸 타는 상대가 갑작스러운 고백을 해왔다.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
여러분이 이 고백을 접한 당사자라면 어떠한 기분이 들겠는가?
무척이나 고전적인 말에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말에 기분 상해할 사람은 정작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라는 말이 듣는 이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부정이 아닌 긍정 쪽에 훨씬 더 가깝다. 왜일까?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라는 말을 들은 사람에게는 태양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하는 힘,
거대하여 감히 맞설 수 없는 절대자의 권위,
듬직한 맏형,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을 떠올릴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바로 그것!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라는 짧은 고백의 말은 이와 같은 긍정의 메시지를 응축하여 전달한다. 태양이 가지는 긍정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하여 그것의 부정적 이미지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예를 들어, 고운 얼굴에 옥의 티 마냥 자리 잡은 태양의 흑점을 먼저 떠올릴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는 말이다). 촌스럽다고 손사레치는 사람에게도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라는 고백은 만점짜리 효과를 가진다.
나를 태양이라 말하며 고백해 오는 사람에 대한 상상으로 한껏 기분이 들떠있을 여러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엔 새로운 가정을 해보자.
여러분이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방에게서 이번에도 고백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다른다.
“당신은 나의 명왕성이오!”
“당신은 나의 명왕성이오!”라는 고백에는 어떠한 느낌이 드는가?
“명왕성은 규모도 작고 궤도도 제멋대로여서 2006년에 이르러 태양계의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는데... 뭐야 그렇다면 나도 그저 그런 퇴출 대상이란 말인가?”
그런데 얄궂게도 메시지를 전해온 이는 여러분이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다. 서로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상황에서 이렇듯 단호하게 부정적 해석을 내려버리기엔 무언가 너무나도 아쉽다.
여러분은 “당신은 나의 명왕성이오!”라는 말을 해독하기 위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밤새 뒤척이며 수백, 수천, 수만의 해석을 떠올린다손 치더라도 그것들 중 무엇이 정답에 해당하는지를 알 수 있는 재간이 없다.
내가 명왕성만큼 존재감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메시지였던 것인지, 미지의 명왕성과도 같은 나의 존재에 대해 매력을 느껴 탐험에라도 나서 보겠노라는 긍정의 메시지였던 것인지, 말을 전한 그 사람과 직접 대면하여 그 진실한 속내를 물어야만 할 일이다.
상대방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정답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당신은 나의 태양이오!”는 메타포(metaphor; 은유, 비유)로서 온전히 기능한다. 이에 비해, “당신은 나의 명왕성이오!”라는 말은 메타포가 될 수 없다. 메타포는 듣는 이에게 말하는 나의 의도를 헛갈림 없이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경우에 성립한다. “당신은 나의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존재요!”와 같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태양이 가진 이미지를 빌어 나의 의사를 명확히, 또한 어쩌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메타포이다.
메타포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비유가 되는 대상에 대한 화자 상호간의 공통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태양에 대해 상호 공감하는 바가 명왕성에 대한 그것에 비해 명쾌하였기에 태양의 메타포가 비로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태양에 대해, 그리고 명왕성에 대해 우리가 세상을 살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바의 소산이다.
이렇듯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의 세상에 대한 경험을 충실히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