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호칭의 사용은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모르는 말 중에 “간호원”이 있다. 찾아보니 1987년에 이르러 지금처럼 “간호사”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간호원”이 하루아침에 “간호사”가 되었으니 당시의 혼란스러움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병원에 갔다가 간호원을 불렀더니 그간 친절했던 간호원들은 온데간데없고 간호사들의 차가운 눈총만이 돌아오더라는 식이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렇게 상의하달의 방식으로 우리가 쓰는 말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또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는 화자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말의 용례가 아주 조금씩 서서히 달라지곤 한다. “선생님”이란 말이 그 좋은 예다.

나의 스키마에 따르면 “선생님”은 교사에게 부여된 특별한 호칭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생님”이란 말의 쓰임새가 내가 애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갓 데뷔한 신인 코미디언이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30대 중반의 상대적으로 인지도 높은 선배 코미디언을 “선생님”이라 지칭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후배 연기자가 아버지뻘 되는 선배 연기자를 공공연히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장면이 방송을 탄다. 나 역시도 이제는 익숙해진 것이,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낯선 이에게 말을 걸 때 이젠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다가서야 함을 직관적으로 안다. “아저씨”나 “아주머니”와 같은 호칭은 도움을 구하는 일에 있어 적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선생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교원대학교에 막 부임했을 적 생각이 떠오른다. 난 그간 만났던 나의 은사님들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도 이제 드디어 선생님이 되었구나 하는 감회에 젖어있었을 당시,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그 호칭이 너무도 익숙하지 않아 오랫동안 불편하였고, “선생님”과 “교수님”을 맥락도 없이 교차하여 사용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나는 교원대의 문화가 반영된 부분으로, 대학원에 초중등 교사들이 학생으로 많이 재학하고 있다 보니 경우에 따라 교사와 교수 간에 굳이 구별이 필요한 장면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다른 하나는 대학 문화 자체가 사실상 점차 변화하고 있으리라는 해석으로, 스승과 제자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다 공식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경향이 점차 커지고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선생님”이 너무나도 흔해진 요즘에 굳이 “선생님”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고, 또 말이란 으레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말뿐이다.

“교수님”이란 호칭도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한동안은 “박사님”이 “교수님”에 비해 상대방에게 더욱 격식을 갖추는 호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황이 역전되어 “교수님”이 “박사님”에 비해 더 큰 대접을 해주는 느낌이다. 예전엔 대학교수들 중 박사학위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박사님”이 더 격이 높았던 것이고, 지금에야 박사학위가 없는 대학교수가 거의 없고 거꾸로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박사가 많은 시절이 되어버렸으니 그러한 변화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호칭이 경쟁 구도를 보이는 경우는 흔하다. 은행이나 구청, 병원 등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고객을 호명할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개씨”와 같이 부르던 것이, 요즘엔 “아무개님”과 같은 호칭이 더욱 보편화되어 있다. 그 편이 더욱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