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에 이제 막 입문하는 학부생들에게 언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의 아홉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고 답한다.
무언가의 의미를 파악함에 있어 “A = A이다”와 같은 정의를 내리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식이 될 수 있을 텐데, 그와 같은 정의는 많은 경우 말장난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tautology의 사례가 되겠다). 그래서 “A = B다”와 같은 형식을 빌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와 같이 정의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이와 같은 정의는 여러 면에서 문제를 가진다. 그 여러 문제점 중의 하나로, 우리는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거꾸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언어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어 외에 인간이 사용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제스처가 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제스처는 경우에 따라 언어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상황에 딱 맞는 제스처를 구사함으로써 나의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언어적 배경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상호 교류하는 장면에서 언어 대신 제스처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경우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언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제스처만큼은 의사소통의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