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대개 3월 둘째 주쯤이 되면 대면식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학과행사가 어김없이 열린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신입생들과 그들과 4년을 함께 보낼 학과 교수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귀중한 자리이다. 학과의 같은 학번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전체적으로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대면식이 유일하다. 한 학번의 학생 전체를 모두 불러 모을 기회가 다시는 없을뿐더러, 혹여 기회가 생긴다 하여도 아이들은 각자 사정들로 바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고, 신입생대면식이 이뤄지는 즈음이 아이들이 가장 순진하고 말을 잘 듣는 시기여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다 해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대면식은 대개의 경우 신입생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요즘 입학하는 아이들이 대략 26~27명 정도 되다보니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을 염려하여 학과장 선생은 간략하게 자기소개 할 것을 주문하곤 한다. 그 특별한 주문이 문제인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아이들의 자기소개는 10초를 넘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10년째 아이들을 대면식을 통해 만나오면서, 자기소개 시간이 저렇게 짧을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이 늘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자기소개의 내용이다.
26~27명의 아이들은 번갈아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주에서 온 스무 살 홍길동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에서 온 스무 살 홍길순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스무 살 홍길준입니다. 열심히 해서 꼭 교사가 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홍길숙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아, 저도 스무 살입니다.”
...
10초가 채 못 되는 그 짧은 자기소개 내용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요소가 셋이다.
출신 지역과 이름, 그리고 나이 정보. 여기서 나이 정보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사실상 아이들의 거의 대다수가 스무 살이다. 10년 전에도 스무 살짜리 신입생들을 만났고, 이번 2019년 3월에도 스무 살 먹은 신입생들을 만났더랬다. 대부분이 스무 살이고 가물에 콩 나듯 열 아홉 살 혹은 스물 한 살이나 스물 두 살 먹은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미안하지만, 어떤 아이가 스무 살인지 스물 한 살인지는 대면식 자리에서 전혀 의미를 가지지 못하여 어쩌면 10초의 시간마저 더욱 아깝게 만들고 마는 불필요한 정보에 불과하다. 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왜들 한결같이 별스런 정보도 아닌 스무 살이라는 (열 아홉이나 스물 하나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지가 매우 신기하고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 이것은 한국적 문화의 충실한 반영이다.
우리의 문화는 타문화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서열을 강조하는 문화이며, 서열을 결정함에 있어 그 어떤 요소보다도 나이가 중요하게 작용하곤 한다. 처음 만나자마자 "민증부터 까서" 네가 손위인지 내가 손위인지를 따져야 비로소 개운한 관계가 시작된다. 첫 만남에서 나이에 관련하여 서열을 확실히 정리하지 못했을 경우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찜찜함이 가시질 않는다.
나이 문제가 민감한 연예계에서는 본래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보니 서로 "족보"가 꼬이는 것이 다반사이고, 그로 말미암아 빈정이 상한 아무개와 아무개가 다툼을 벌였다는 스캔들마저도 제법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