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썼던 편지가 아직도 컴퓨터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네요. 지금 하고 싶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올려둬 봅니다.


밤이 늦어 두서없는 글이 될까 염려가 됩니다. 새로 만나게 된 선생님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선생님들 모두 반갑습니다. 근래 어느 선생님께서 제게 전하신 말씀으로, 지도교수 배정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참으로 설렜다 하시더군요.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분이 제 지도학생으로 배정이 되실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학교에 부임한지 몇 년이 지나면서 그간 적지 않은 수의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살아온 이력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모습의 선생님들을 만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곤 하였습니다.왜 우리 선생님들은 교원대 학위과정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하셨을까?어떠한 연유로 저와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게 되셨을까?선생님들이 저에게 바라는 바는 무엇일 것이며, 저로서는 선생님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간은 오늘과 같은 만남에서 주로 이야기를 통해 말씀을 나누곤 하였는데, 이번엔 특별히 글로 내용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사실 앞선 질문들에는 선생님들에게 대한 제 관심과 애정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당연히 그런 것이라 주변에도 수도 없이 이야기를 들었음에 불구하고) 우리 선생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둘씩 이런 저런 이유로 저와 멀어져 가시더군요. 분명 처음 마음은 그러하지 않으셨을 텐데 말이지요. 좋은 인연을 어렵게 맺었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결국 관계가 남을 터인데, 선생님 모두 만족스러운 공부도 하시고 밖으로 내놓고 싶은 논문도 쓰시고 하는 것 이상으로 저와 선생님들이 되도록 서로 좋은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욕심이겠죠. 그래요, 당부의 말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다행히 우리 선생님들은 현장의 교사들이시니 역지사지가 쉬우실 겁니다. 선생님들 학교에서 제자들을 만나시면 어떠한 생각들을 하시나요? 제자들이 좋은 모습으로 공부해 나가기를 바라게 되지요? 또 내가 제자들에게 좋은 선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시게 되지요? 그런 마음으로 글 드립니다. 결국, 행복한 대학원 생활하시라는 뜻이고, 어렵게 맺은 인연 서로 노력하여 좋은 관계로 이끌어 보자는 뜻입니다. 하나, 교원대에 적을 두시게 된 이상, 교사로서의 아이덴터티는 잠시 접고 학생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 이상의, 아니 사실 수도 없이 많은 아이덴터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 선생님들은 교사가 아닌 학생으로서의 아이덴터티를 스스로 선택하여 이곳에 오셨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런 상황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혹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방황을 하십니다. 학생으로서 필요한 자세는 이미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마인드 세팅이 되지 않으면 대학원 공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교사로서는 말이지요. 어떤 학생이 사랑받는 학생인지 잘 아시잖아요. 둘, 보채셔야 합니다. 어디가 불편한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로서는 알 길이 묘연합니다. 침묵하고 있어도 서로가 공감할 수 있겠지 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입니다. 울어야 젖을 물릴 수밖에 없는 것은 돌보아야 하는 대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셋, 보채는 과정에서 상대를, 즉 저를 배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고, 스스로가 하실 수 있는 것은 해보시고, 그런 연후에 체계적으로 접근해 주세요. 제 경우 제 은사님과의 만남에서는 늘 일지를 작성해 두었었습니다.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을 정리해 준비하니 이어지는 만남이 수월하고 효율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제 한 이야기 오늘 잊을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것 보다 수많은 일로 많이 바쁘거든요. 또한 관계는 주고받는 것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받으려고만 하는 모습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넷, 이것저것 재고 따지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계산속에 관계를 맺고 이어가려 하면, 그 계산이 아무리 치밀하다손 하더라도 결국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여 금세 한계를 보이고 맙니다. 선생님들 논문만 쓰고 서로 잊히길 바라지는 않으시잖습니까. 다섯, 처음 마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출발에 이르기까지 선생님들 각자는 모두 다른 과정을 지나오셨겠지만, 출발선에 선 지금 잘 찾아보면 모든 선생님들에게 공통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공부하고 싶으셨잖아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셨고요, 우리 아이들이 영어 공부로 조금 덜 아파했으면 했고요. 그 마음 잊지 않도록 노력해 봅시다. 혹 잊히려 하거든, 주변의 동료에게, 혹 저에게 넌지시 이야기 전해 주세요. 그냥 사라지진 마시고요. 다음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다시 하나, 대학원 공부는 사실 혼자 하셔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수업을 통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겠거니 생각하시면 실망하시게 될 가능성이 커요. 관심 있는 것은 스스로 찾아서 파고드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영어교육과 관련한 학문의 분야에서 대학원 졸업자, 즉 석사 혹은 박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용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실천하는 독립적인 연구자입니다. 연구의 주제를 의미 있는 맥락에서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을 구현하여 실천하고, 발견한 바를 합리적인 절차로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이릅니다.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부분은 선생님들마다 다르실 것으로 압니다. 제 역할은 혼자 가시게 되는 길이 혹 잠시 어두워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 작은 등불 하나 비추어 드리는 것이 되겠지요. 둘, 그럼에도 수업을 열심히 들으세요. 읽어야 하는 것 게으름 피우지 마시고, 모두 하실 수 있는 범위의 것들이니 조금만 더 힘내주시면 됩니다. 읽고 잘 정리하는 습관도 잊지 마시고요. 읽은 것 또 읽고 또 읽고 하는 우를 범하기가 너무 쉬워요. 잘 정리해 두면 세 번 읽을 것 두 번만 읽어도 되고, 두 번 읽을 것은 한 번 읽기로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셋, 저와 소통합시다. 지도교수라 하여 제 수업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서로 너무 무심하여, 어느 공간에서 무슨 과정을 지나시는지를 제가 전혀 모르고 있다면 그건 바람직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어디에서 뭐하고 계시는지 제가 모르다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논문 쓰겠다고 하시면 저는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필요한 과목을 찾아 잘 들으시되, 경우에 따라서는 저와 상의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넷, 전 선생님들께 논문 주제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건 별로 좋은 방향의 공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개 저는 선생님들이 스스로 논문의 주제를 탐구해 나가시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적당히 이것저것 기웃거리시다 보면, 때가 되고 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곤 합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의 연구 주제를 마련하시게 될 거예요. 더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더딘 것이 아니고, 더구나 조금은 더 애정을 가지고 공부해 나가실 수 있는 방향이 될 겁니다. 다섯, 앞선 내용과 관련하여, 선생님들 하시고 싶은 연구 주제는 어느 것이든 환영합니다. 지도교수의 관심분야가 어떠하니 그에 맞추어야겠다는 식의 생각은 전혀 환영하는 바가 아닙니다. 어떠한 주제를 가져오셔도 좋고(다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 많이 겪으시고요), 그렇게 가져오신 것들에 대해 우리 함께 들여다봅시다. 연구가 가능한 부분인지, 더 좋아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지 말이지요. 제가 가끔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일은 지적인 사치를 부리는 일이랍니다. “사치”라는 개념을 이루는 본질 중의 하나가 중독성에 있는데, 돈을 잘 쓰는 사람들은 그 돈 쓰는 일에 중독되기 십상인 것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돈 쓰는 일도 돈을 써본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공부가 지적인 사치라는 입장에서, 공부도 공부해본 사람만이 잘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새 그것에 중독되기 마련일 터이고요. 우리가 교사로서 언제 한 번 마음 편하게 돈 쓰는 일에 중독된 적이 있었을까요? 대신 공부라는 지적인 사치에 한 번 중독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막연히 중독되는 시점을 기다리지 말고 공부를 사랑하고 먼저 빠져들어 보려 애써보면 어떨까요. 혹시 공부에 중독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말입니다. 선생님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이상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