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생애과정, 또는 생애사 연구의 맥락에서 한국인의 생애를 규정하는 사회적 시간표와 이를 떠받치는 사회 제도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다수자 생애와 소수자 생애가 맞물리는 방식에 주목해 크게 세 갈래의 연구를 해 왔습니다. 구술생애사 자료를 활용해 소수자의 생애를 분석한 작업, 일반 인구집단의 노동이력으로 성인 이행 경로와 노동시장 구조를 파악한 작업, 지역·국가 단위에서 사회적경제 활동이 전개되는 방식을 비교한 작업이 그것입니다.

구술생애사 연구 흐름에서는 한센인, 노숙인, 형제복지원 수용자의 생애 구조와 시간 의식의 특징을, 또 그러한 생애를 떠받치는 시설이라는 제도적 장치의 특징을 탐구했습니다. 최근에는 장애인 탈시설 당사자와 장애인 탈시설 운동 활동가의 생애사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특히 관계론적 관점에서 생애사 자료를 조직하고 분석하는 나름의 시각과 틀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성인 이행 국면 연구로는 대졸자의 졸업 후 7년의 노동이력을 졸업 코호트별로 비교해 경제위기 전후 청년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를 살펴본 연구, 1997년 경제위기 직후 졸업한 여성들의 15년 노동이력을 유형화해 노동과 가족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를 한 바 있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은 이들 연구를 확대·심화한 것으로, 이 작업에서 저는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변동의 맥락을 라이프코스 패턴의 변화로 포착해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1970-80년대 출생자들의 성인 이행기라고 보고, 이들의 교육, 노동, 가족 이력의 변화를 코호트로 비교한 작업을 했습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세대 효과와 계층 효과가 맞물리는 방식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과 교육, 노동, 가족 이력을 일련의 생애과정으로 포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의 성인 이행기를 역할 구조와 역할 인식이라는 두 차원에서 구성하고, 이것을 국가 비교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안적 라이프코스가 가능한 사회경제적 조건은 무엇인가를 묻는 맥락에서 일본과 인천 남구의 사회적경제 활동을 연구한 바 있습니다. 일본 연구에서 사회적경제 활동 등장의 정치경제적 맥락과 제도적 조건을 국가 수준에서 살펴보았다면 남구 연구에서는 지역에서 사회적경제 활동이 어떤 식으로 실천되는지 그 행위 주체와 조직, 제도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적경제 활동의 주체와 맥락, 의미를 사회학 전공 학부생들의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작업을 한 바도 있습니다.

이들 연구로 제가 장기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은 근대 한국인의 라이프코스 구조와 그것의 형성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 제가 고안한 시각이 ‘라이프코스의 이중적 제도화’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가족, 학교, 공장(노동시장) 제도의 틀에 따라 사회구성원 상당수의 라이프코스가 표준화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탈락한 이들의 라이프코스가 시설이라는 또 다른 제도적 틀에 따라 표준화되는, 이중적 표준화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소수자와 다수자의 생애를 관계론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수자와 소수자의 삶이 맞물려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정상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정상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립한 시각이 바로 관계론으로 본 라이프코스 연구입니다. 라이프코스란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겪는 사건이나 경험, 또는 수행하는 역할로 구성된 이력에서 나타나는 패턴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패턴을 특정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술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연구의 기본 취지입니다. 사회학을 근대화에 따른 사람들의 삶의 문법 변화와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으로, 어떤 현상을 속성이 아닌 관계로 설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면 저의 문제의식은 사회학적 시각의 핵심과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애의 근대적 조건을 자각해 봄으로써 조금은 다른 삶을,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가져보자는 것—이것이 위의 작업으로 제가 말해보고 싶은 지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