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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표정을 지었다.

"쌍검은 없지만 말이야, 그게, 평소에는 위아래 모두 검은 옷은 피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스구 녀석이 내 옷을 한꺼번에 빨았거든. 그레서 이것밖에 없었어."

"빨랫감을 쌓아 두니까그렇게 되지! 떽."

카즈토의 어께를 콕 쥐어박고는 살짝 팔에 손을 감는다.

"그럼 오늘은 둘 다 우연히《그 무렵 컬러》구나. 엄청난 확률인걸."

살짝 높은 위치에 있는 카즈토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하자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무드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뭐. 1년 내내 이렇게 만나면 언젠가는 그럴 때도 오겠지만."

"아이 참, 그럴 때는『그러게』라고 한 마디 하면 되는 거야!"

살짝 입술을 비죽거린 후, 아스나는 가죽 재킷을 걸친 팔을 잡아당겼다.

"자자. 계속 서서 이야기만 하지 말고 걷자. 금방 깜깜해지니까."

"어, 응."

고개를 끄덕이는 카즈토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해자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고색창연한 하얀 벽에 붙은 정문은. 벌써부터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저녁 햇살에 비춰져 시커먼 그림자를 다리에 드리우고 있었다. 일요일이지만 계절 탓인지 관광객의 모습은 별로 없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은 경찰관의 옆을 지나 문을 통과해, 조그만 티켓 부스에서 플라스틱 입장표를 받았다. 은색 담장을 빠 지나간 너머에는 이곳이 도쿄 도심에서도 중심부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녹음이 있었다.

일요일에 놀러 나가자고 제안한 것은 아스나였지만, 약속장 소를《황거 정문 앞》으로 지정한 것은 카즈토였다.

황거 자체는 물론 비공개지만, 해자 안쪽이라 해도《히가시 교엔(東御苑)》이라 불리는 북동쪽 일각만은 요일에 따라 일반에 개방된다. 아스나는 이제까지 그 사실조차 몰랐다. 물론 실 제로 들어와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넓고 깨끗한 인도를 따라 걷는 사이에 새삼 궁금증이 느껴진 아스나는 오른쪽 곁 에 서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왜 데이트 장소를 황거로 정한 거야? 키리토 군이 역사를 좋아했던가?"

"어, 그런 건 아니야.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금 전까지 개인적인 용무로 근처에 불려 나갔다 온 참이었기 때문이지만......."

카즈토는 한순간 무언가롤 떠올린 듯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더니, 금세 평소의 조용한 미소로 돌아와 말했다.

"그쪽은 나중에 설명할게. 그건 그렇다 쳐도, 황거란 어찐지 재미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재미있어? 어떤 점이?"

어리둥절해 눈을 깜빡이고 있으려니, 오른팔이 움직여 주위 의 울창한 나무들을 가리켰다.

"남북으로 약 2킬로미터，동서로 1.5킬로미터. 키타노마루 공원이나 외원까지 합치면 면적은 230만 평방미터나 돼. 치요 다 구의 거의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 바티칸이나 버킹엄궁전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넓어. 베르사유 궁전에는 좀 못 미치지만...... 평면만이 아니야. 아래쪽으로는 지하철이나 터널 하나 다니지 않고, 위로는 어떤 항공기도 비행 금지. 다시 말해 이곳은 도쿄의 한복판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거대한 진입불가 에어리어인 셈이야."

그 말에 이스나는 뇌리에 도쿄 지도를 그려보았다. 원손 손 가락옴 허공에 대고 빙글빙글 움직이며, 납득한 둣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고 보니 도심의 간선도로는 대부분 환상(環狀) 몇 호성 이니 방사(傲射) 몇 호선이니 히는 이름이 붙어 있구나. 그 중 심은 전부이곳이고……"

"맞아맞아. 다시 말해 도쿄는 교토처럼 바둑판꼴이 아니라 동심원의 방사형 도시인 거야. 게다가 그 중심은 물리적으로, 정보적으로도 완벽하게 차단돼 있어. 말하자면 옛 ALO의 《세계수》같은......, 아차，미안해. 싫은 기억 떠올리게 해서......"

"아니, 괜찮아."

과거 그 세계수 위에 오랫동안 유폐되었던 경험이 있는 아스 나는 카즈토의 배려에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 물었다.

"물리적으로 진입금지란 건 알겠는데……, 정보는 왜?"

"그건......."

카즈토는 문득 주위의 나무들 사이로 재빨리 시선을 돌린 후, 작은 움직임으로 몇몇 장소를 가리켰다.

"봐. 저기랑, 저기. 감시 카메라가 있지? 저 보안 시스템은 요즘 세상에는 드물게 완전히 스탠드 얼론으로 돌아가고 있어. 여기엔 독자적인 폐쇄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어서，외부에 서는 절대 접속할 수 없는 거야."

"아하........... 그러고 보니 어찐지 카메라 모양도 특이하네."

카즈토의 손가락 너머에는 윗부분이 검은 구체가 고정된 기동이 오도카니 서 있었다. 카즈토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카 메라가 아니라 조명등인 줄 알았을 것이다.

"차세대 보안기술울 실험하는 중이라나 하는 소문을 들었는 데. ──아무튼 이 장소는 도쿄의 중심인 동시에 격리된 《이계 (異界)》이기도 하다......면 너무 거창하려나?"

"아하하, 그건 좀 그래"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인도는 거대한 돌담을 돌아 들어 가 급한 오르막길로 바뀌었다. 한동안 말없이 발을 놀리고 있 으려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맞은편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넓은 잔디였다. 한 겨울인 탓 에 엷은 갈색으로 말라 붙었으며，주위의 나무들도 거의 잎이 떨어졌지만 봄에 온다면 매우 산뜻한 광경일 것이다.

"여기가 에도 성의 본성 터야. 역사 드라마 같은 데서 무대로 곧잘 나오는 *오오쿠는 잔디밭보다 약간 북쪽이었다고 해.”

"가보자 ! "

카즈토의 손을 다시 잡고 아스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사람 들의 모습은 여전히 적었으며，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관광객 인 것 같았다. 도중에 귀여운 금발 자매를 데리고 온 부부와 스쳐 지나갔는데, 카메라 셔터를 눌러달라는 부탁을 받있다.카즈토가 싹싹하게 응하자 부인 쪽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도 쩍어주겠다고 해, 멋쩍게 나란히 서서 스냅사진을 힌장 찍혔다.

화상 데이터를 휴대단말에 전송받고, 어린 자매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오랜지색 햇살 속에서 멀어져 가는 가족 여행객을 지켜보는 사이에, 아스나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숨을 내쉬고있었다.

"......피곤해?"

카즈토가 묻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노려보고 말았다.

"아─니─야! 우리도 나중에는 저렇............, 우물우물...... 물라!"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종종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어, 자, 잠깐!"

쫓아오는 카즈토와 짧은 경주를 하다 보니, 이윽고 잔디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오솔길에 도달했다. 갈림길 부근의 벤치 를 발견하고 털썩 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으려니, 옆에 앉은 카즈토가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음, 뭐, 그야......, 동생이 생기면 유이도 분명 기뼈하겠지. 응,"

너무나도 직설적인 말에 다시 얼굴에 피가 솟구치면서도 아 스나는 살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그렇겠지."

"뭐야, 이럴 때 웃는 너도 너무한다......."

"아하하，미안미안. 하지만 정말, 유이도 이쪽에서 함께 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유이란 옛 SAO 서버에서 두 사람이 만났던 소녀의 이름이 다. 사실은 플레이어들의 정신 상태를 돌봐주는 자율 프로그 램, 다시 말해 AI이며，아스나를 엄마，카즈토를 아빠라 인식 하고 있다. 아인크라드가 붕괴되었을 때도 카즈토의 너브 기 어에 코어 프로그램을 대피시켜 놓았기 때문에 소멸을 면했으 며, 지금은 카즈토의 방에 마련된 그녀의 전용 거치형 머신 내 에서《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유이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풀 다 이브 환경 속──다시 말해 ALO 내부뿐이다. 현실세계에서도 휴대단말을 이용하면 그녀와 통신은 가능하지만，주로 배터리 용량 문제 때문에 《언제나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 아무리 아스나가 딸로서 유이를 사랑하고，유이가 아스나를 어머니로서 따른다 해도，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가 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가로지르는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때 문득 카즈토가 아스나의 왼손을 살짝 쥐었다.

"괜찮아. 언젠가 함께 살 수 있게 될 거야. 풀 다이브 기술이 더 진화해서 AR 환경을 항상 구축할 수 있게 된다면，분명."

"응……, 그래……, 그렇겠지."

"그러엄.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앞으로 점점 에매해질 거야. 지금은 아직 정보량의 차이가 벽을 만들고 있지만......"

카즈토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면서 손을 꽉 움켜쥔후, 아스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그런 말을 했자?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차이는 정보량의 차이일 뿐이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음......."

잠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 후. 카즈토는 벤치 위 겹쳐진 두사람의 손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예를 들면 ALO 안에서 손을 잡는 것파 현실에서 이러는것 역시 차이가 있지?"

그 말에 아스나는 횐손에의식을 집중했다. 맞닿은 손바닥의 탄력, 겨울의 냉기를 멀리 떨쳐 내는 온기. 여기까지는' ALO의 요정 아바타끼리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피부가 달라불는 듯한 밀착감이나 손금의 마찰감 그리고 두 사람의 혈류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어렴풋한 맥동까지는 제아 무리 최첨단풀 다이브 기술이라 해도 재현할 수 없다."

"응.…., 맞아. 진짜 손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어......그렇구나. 이게《정보량의 차이》 란 거구나."

"맞아. 하지만 앞으로 어뮤스피어가 더더욱 진화해서 피부감각이나 심장 박동까지 제현하게 된다면 어떨까? 감촉만 가지고 진짜 손과 아바타의 손을구별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아스나의 즉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카즈토는 는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보충한다.

"키리토군의 손이라면 말이야. 다른 사람 건 아마도 무리일테지만."

그 순간 카즈토의 손이 살짝 뜨거워지고 고동도 빨라졌다. 한 방 먹여줬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감촉만이 아니라 모양이나 소리, 맛, 냄새로 지금은 아직 현실세계 쪽이 정보량이 많잖아. 그러니까...... 만약, 지금의 어뮤스피어에 AR 기능이 탑재되더라도......"

"응. 보거나 만진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