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 고대 문명들의 세상

약 5000년 전 쯤엔 수많은 고대 문명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로마제국이 영토를 크게 넓힐 무렵 우리나라는 고조선이 막 멸망한 상황이었다. 로마제국의 영토는 거대해지고 있었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로마의 장수들이 서로 황제가 되기위해 권력 다툼을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로마제국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고 말았다. 서로마는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했고, 동로마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동로마는 1000년동안 이어진 비잔티움 제국으로 이어져갔다. 

2. 비잔티움 제국의 번영

동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를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으로 옮기고 비잔티움 제국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비잔티움의 황제인 유스티니아우스 1세가 세금을 가혹하게 걷자 반란이 일어났다. 유니티니아우스 1세는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황후의 설득에 반란을 진압시키고 땅을 크게 넓혔다. 한편,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비잔티움 제국의 땅을 빼앗았다. 헤라클리우스 1세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맞서 여러 번 승리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이슬람 제국이 쳐들어왔다. 이슬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항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의 불이라는 비밀 무기가 있었다. 그리스의 불은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 불을 내뿜는 화약이었다.

3.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과 오스만 제국의 탄생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 제국을 물리친 후 바실리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땅을 넓히고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번영을 누리고 있을 때쯤, 오스만 제국이 쳐들어와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바꾸면서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오스만 1세가 세운 오스만 제국은 이후 계속 땅을 넓혀 갔다. 그러다 메메트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림으로써 메메트 2세는 위대한 정복자 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다. 사실 이 전쟁에서는 대단한 이야기가 있다. 메메트 2세가 세 겹으로 된 성벽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자 한 겹으로 된 바다 쪽으로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 쪽은 쇠사슬로 막혀서 배가 지날수 없었다. 그래서 메메트 2세가 배를 끌고 언덕을 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메트 2세는 결국 비잔티움 제국을 손에 넣었다.

4. 오스만 제국의 번영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 때 전성기를 맞았다. 쉴레이만 1세는 나라의 법을 고치고, 영토를 크게 넓혔다. 쉴레이만 1세가 오스트리아 빈에 다다랐을 때는 날씨도 안 좋았고 식량도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쉴레이만 1세는 말머리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10만여명을 포로로 잡아갔고 언제든 쳐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다. 유럽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지만, 첫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손쉽게 승리했다. 그 이후 오스만 제국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을 차지하자, 오스만 제국은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쉴레이만 1세가 죽자 오스만 제국은 힘을 잃어 갔다. 유럽의 나라들은 오스만 제국을 거치지 않아도 될 새로운 항로를 찾았다. 오스만 제국이 급히 영토를 넓히려고 하자 유럽 연합군이 또 다시 싸우려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결과가 달랐다! 유럽의 강력한 대포에 밀려 오스만 제국이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로는 오스만 제국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5. 고조선부터 삼국시대까지

유럽이 이런 혼란을 겪고 있을때, 아시아에서는 중국, 한나라가 있었다. 한나라는 고조선과 서로 돕기로 했는데 고조선이 힘을 키우자 한나라를 위협하는 흉노족과 동맹을 맺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는 고조선을 침략했다. 첫 전투에선 고조선이 승리했지만 한나라는 끈질기게 쳐들어와 수도인 왕검성까지 고조선을 몰아붙였다. 결국, 고조선은 멸망하고 말았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에도 옥저, 부여 같은 나라들은 계속 생겨났다. 고구려는 부여왕을 항복시키고 많은 작은 나라들을 차지했다. 작은 나라로 이루어진 진한, 마한에서 신라와 백제가 탄생하면서 삼국시대가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구려는 위나라와 함께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위나라가 본심을 드러내자 위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고구려가 처음에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과감하게 공격하다 크게 패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왕은 멀리 도망갔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였다. 그때 유유라는 신하가 꾀를 내었다. 그는 위나라 장수에게 항복하겠다고 다가가 그를 죽였다. 위나라 군사들이 큰 혼란에 빠지자 고구려 군사들은 공격을 퍼부어 큰 승리를 거두고 위나라를 물리쳤다.                                               

6. 몽골 제국의 등장

한나라가 멸망한 후, 몽골 제국이라는 대제국이 탄생했다. 몽골을 세운 칭기즈 칸의 아버지는 부족장이었는데, 다른 부족에게 죽임을 당하고 어린 테무친(칭기즈 칸)은 다른 부족장인 옹 칸과 동맹을 맺은 얼마 후, 테무친이 몽골족을 통일했다. 그 말을 들은 옹 칸은 위협감을 느꼈다. 그래서 몽골족을 공격했는데, 테무친은 쉽게 이겼다. 그리고 몽골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 테무친은 금나라를 침략했는데, 만리장성을 넘고 금나라를 손에 넣었다. 그때부터 테무친은 칭기즈 칸(몽골어로 위대한 왕 이라는 뜻)이라고 불렸다. 그 후, 칭기즈 칸은 호라즘이라는 이웃 나라로 상인들을 보냈는데, 그 중에 몽골의 첩자가 숨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안 호라즘 왕은 상인들을 모두 죽였다. 그 소식에 화가 난 칭기즈 칸은 호라즘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 후, 몽골 제국은 그 전부터 있었던 비단길을 모두 차지하여 무역을 이끌었다.  또다시 칭기즈 칸은 계속 땅을 넓혔다.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는 나라도 있었다. 그러다가 칭기즈 칸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들은 몽골 제국을 원나라 등 여러 나라로 나누어 가졌다.                     

7. 원나라의 역사

원나라의 첫 왕은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발라이 칸이었다. 쿠발라이 칸은 1271년,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그는 몽골인이었지만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것이 원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쿠발라이 칸은 칭기즈 칸처럼 무역을 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그는 먼 길을 오가는 상인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고 무거운 금과 은을 대신해 지폐를 발행했다. 원나라는 아라비아, 중앙아시아, 유럽 등의 많은 나라에서 원나라를 찾은 까닭에 원나라는 언제나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쿠발라이 칸의 생각대로 원나라는 무역을 이끌면서 더더욱 발전했다. 다른 나라의 학자와 기술자들도 원나라에 관심을 가졌다. 상인들이 불화살, 화약에 대해 알려주자 다른 나라의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원나라에서 기술을 배우겠다며 몰려들었다. 원나라도 이들을 통해 새로운 학문과 종교를 받아들였다. 아라비아의 뛰어난 수학과 천문학은 원나라의 학문 수준을 높여주었다. 원나라는 어느 나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섰다.       

8. 오스만 제국의 몰락

다시 유럽의 역사로 돌아가면, 오스만 제국은 멸망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인 흑해 바닷가를 차지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다. 그 이유는 러시아는 1년의 절반이 겨울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얼어붙어 교역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했다. 오스만 제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러시아를 막아냈다. 이 일이 있은 뒤, 오스만 제국의 장교들은 오스만 제국도 유럽처럼 헌법괴 의회를 만드는 개혁을 해야 강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국의 최고 지도자인 술탄은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을 족족 잡아들였다. 그 횡포를  참지못한 장교들이 무력을 통한 개혁을 해서 술탄을 끌어내리고 헌법과 의회를 드디어 설립했다.                                            

9. 제1차 세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