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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지금 이 남자에게는 어떤 변명이나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얼버무릴까 고민하다가 프리스틴은 여자의 감으로 그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을 헐떡이면서 갈라진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당신을 조사해보려고......"

"나? 난 당신네 여왕님이 주워온 평범한 떠돌이야.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남자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프리스틴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발이 멋대로 움직였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 하지만, 당신은, 지금은, 재벌의 부총수이니까...... 저도 재스민의 수석비서입니다. 자제분도 태어나셨으니, 언제까지고 비밀로 하는 건, 고, 곤란합니다."

횡설수설하는 변명이었다.

켈리의 어조나 태도는 전혀 난폭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다가올 뿐.

그러나 프리스틴은 더욱 새파랗게 질리며 뒤로 물러나다 마침내 연구실에 놓인 장치에 부딪히며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되었다.

"프리스, 말해봐. 뭘 조사하려고 했지?"

몸집이 작은 프리스틴의 눈앞에 장신의 켈리가 버티고 서 있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프리스틴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발과 마찬가지로 혀가 멋대로 움직였다.

"당신이, 정말로......"

"정말로?"

"......의... 생존자라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건가.

어째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살해당하지 않은 건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런 의문이었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을 받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터였다. 상대는 문자 그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니까.

그 유전자 속에는 보통은 존재할 수 없는 인자가 존재할 테니까. 그것도 DNA 감정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을 수준의.

이런 얘기를 어디까지 꺼내야 하는 걸까.

격하게 동요하는 프리스틴을 내려다보며 켈리는 웃고 있었다. 위험하고 사나운, 어딘가 재미있어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프리스, 제대로 말해봐. 내가 대체 뭐의 생존자라고?"

"...위노아 특수군의......"

"그만 해! 프리스!"

날카로운 목소리가 경직된 공기를 깨뜨렸다.

재스민이었다.

성큼성큼 연구실로 들어오더니 가동 중이던 검사기를 보고 연구용 인공두뇌에게 명령했다.

"작업을 중지해."

최우선 순위에 있는 사람의 명령이다. 연구용 인공두뇌는 곧바로 분석을 중지했다.

재스민은 머리를 다듬던 도중에 뛰쳐나온 듯 아직도 머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무서운 얼굴로 프리스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알고 있어? 네가 한 짓은 명백한 인권침해야."

"그,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한테 사과해. 지금 당장.'

"하지만 재스민! 통상의 검사로는 알 수 없는 유전자 이상이 존재한다면 다니엘님은......!"

철썩,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재스민이 프리스틴의 뺨을 친 것이다.

여왕으로서는 가볍게 쳤겠지만 191센티미터의 재스민과 156센티미터의 프리스틴의 체격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전선에서 싸우던 군인의 극한까지 단련된 팔이었다.

몸집이 작은 프리스는 바닥에 쓰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비틀거렸다. 얻어맞은 뺨을 손으로 누르면서 망연자실하게,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고용주를 올려다보았지만 회색빛 눈동자는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적당히 해둬. 너도 갓헬의 슬럼가에서 날치기 짓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겠지."

프리스틴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맞았기 때문이 아니다. 분노와 수치심 때문이었다.

재스민은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했다.

"사과해."

프리스틴은 꺼져들 것처럼 어깨를 떨면서 모기 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죄송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연구실을 뛰쳐나갔다.

이 전말을 바라보고 있던 켈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재스민을 바라봤다.

"당신도 봐준다는 걸 모르는군?"

"미안해."

재스민 역시 켈리에게 사과하고 프리스틴을 쫓아 연구실에서 나갔다.

"프리스!"

따라잡는 데에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팔을 잡아 세우려 했지만 프리스틴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힘껏 떨쳐내려고 했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놔주세요!"

"안 돼, 얘기를 들어. 넌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몰라."

"알고 있어요! 알고 있고말고요! 예, 쓸데없는 짓을 했습니다! 고용주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이상한 걱정이나 했던 제가 바보였어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분노했다.

그런 프리스틴을 바라보며 재스민은 오히려 길게 한숨을 쉬었따.

"역시 모르고 있구나. 넌 지금 자칫하면 저 남자한테 죽을 뻔했어."

"예?"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럼에도 아직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프리스틴은 다시금 언성을 높였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주세요. 죽어야 할 만한 짓은 한 적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지?"

"어, 어째서라니......"

"위노아 특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