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동]
인천에서 나고 자란 민영에게도 배를 타는 일은 특별했다. 여름이면 산으로 들로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놀러 다니던 때, 가끔 인천의 어느 섬으로 피서 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부모님 연애할 적엔 수봉공원이나 송도유원지에서 뱃놀이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애초에 월미 바다에서도 형편없는 배를 띄워놓고도 놀 수 있던 모양이었다. 인천도 바다긴 바다였으니까.
어딜가나 민영이 인천 출신이라고 하면 상대편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연안부두’, ‘소래포구’, ‘바닷사람’ 이라는 단어가 줄줄이 나오는데다가 회를 많이 먹고 자랐다던가, 짠기가 풍긴다던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와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 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앞서 나열한 수산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직접 가본 적도 없고, ‘싱싱한’ 해산물보단 이미 죽어 소금에 절여진 젓갈을 소비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나 할까. “회보단 새우젓과 조개젓. 을왕리 말고 차라리 오이도 가서 조개구이를 드세요. 대부도, 영종도 가면 가리비가 들어간 칼국수를 꼭 먹어야하고요, 가을엔 볼 것도 없이 강화도 가서 대하구이, 연평도 꽃게…”하고 덧붙이진 않았다. 그리고 실제 바다는 도화지에 파란 크레파스로 칠해 표현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닌 탁한 회색의 바다라는 것, 그리고 갯벌이 유명하다는 것도 굳이 설명해준 적은 없다.
그마저도 간척사업으로 인해 갯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그럭저럭 인천은 바다 이미지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민영은, 인천사람들에게 땅을 선물한 바다가 이제 줄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천의 바다는,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바다보단 항해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해역의 중심, 오락가락하는 날씨 따위가 동반되는 얼굴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입항 전 대기]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배가 천천히 접근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조금 위압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와 있다. 크루즈가 항구 근처에 잠시 멈추자, 작은 배 한 척이 접근한다. 그 배에서 한 사람이 갑판으로 나와 선박에 찰싹 달라붙은 사다리를 잘도 오른다. 몇 년 전부터 새로 생겨 기존 여객항과 분리된 크루즈 터미널인지라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만큼 좁거나 복잡하진 않지만 워낙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바다라 도선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선사의 집에서도 이곳이 보이긴 할까.¹
십 여년 전 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초대형 크루즈들이 차이나타운 들르겠다고 입항하는 걸 자주 볼 수 있었다. 민영은 자유공원을 산책하다 조계지 위쪽 공자상 앞에 서서 크루즈를 바라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상 사진을 찍으려 언덕을 오르는 중국인 관광객 행렬을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인천 중구에서부터 바다까지의 거리는 진작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 조금씩 간척되고 두꺼운 울타리가 쳐지듯 제분공장이 빽빽해지자 더 멀어져서, 바다 전망이랄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인천항 풍경이었다. 그나마 주변 풍경을 우습게 만드는 초대형 크루즈가 올 때야 비로소 항만, 항구라는 실감 그리고 잠시간의 활기를 띨 뿐이었다.
이제 항동의 터미널에선 이만한 크루즈를 볼일이 없다. 민영은 과거 메이저리티에서 현재 마이너리티로 전락한 동인천에서 나고 자란 세대로서, 바다 같지도 않다고 여긴 꼭 이곳을 벗어날 땐 배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뜨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정작 사람을 들이고 떠나보내는 낡아빠진 항구가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이 증발되어 삭막한 크레인 몇몇만 남게 되었을 시기에 덩달아 민영의 마음도 순식간에 비워져 폐허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때 가뜩이나 비워지던 집들이 더 빠른 속도로 온기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그나마 젊은 축에 속했던 민영도 떠나야 마땅했지만, 왠지 모르게 민영은 이런 저런 변명을 대가면서 일을 만들고 수습해가며 이 동네에서 미적거린지 오래였다. 미련인건지 탈출할 타이밍을 놓친 것에 대한 오기인지 모르겠지만, 민영은 이후 사람들이 가득 드나드는 국제여객선 터미널까지 와서 큰 배가 오고가는 풍경을 하릴없이 구경하곤 했다.
[코리아양념]
민영이 수습해야하는 일들 중 하나로 인천의 모 사업 이름 아래 인천의 섬들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면서, 트래킹 복장을 갖추는 등 채비를 마치고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있던 참이었다. 이제 연안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오직 인천 섬만을 목적으로 운항하는 생활 항로 스케줄이었는데, 특히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는 일명 코리아 시리즈라고 불리는 카페리Car Ferry가 주민의 생활상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이동수단이었으므로 하루에 한번 뿐인 스케줄일지라도 절대 없어선 안 될 노선이었다. 백령도에 사는 주민은 아닌 건지 형제로 보이는 어린아이 둘이 항구로 들어오는 코리아프라이드호를 보고 “나는 그럼 양념.” 하면서 킥킥대고 있었다. 민영이 타야 하는 코리아스타는 최대 시속 75km의 순환쾌속선이었다. 이 쾌속선은 덕적도를 경유하여 소야도까지 가는 배편으로, 서해5도에 비해 정신만 차리면 유연하게 드나들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인천시나 인천 소재 문화예술 기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적인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컨텐츠들은 인천의 수많은 섬을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민영이 예상했던 것보다 참가자들이 많았고, 거기다 백패킹을 하려는 젊은이들로 페리의 좌석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으로라도 만선이로다. 민영도 얼떨결에 섬까지 가게 되었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할 땐 조부모님 때부터 그저 살아왔을 뿐인 동인천 토박이라는 점을 높게 쳐주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다. 인천에 살면서 ‘인천 출신’이라는 건 인천의 바깥에서만 유효한 줄 알았는데, 원도심이니 구도심이니 적산가옥이니 문화재니 구술이니.. 하는 것들을 입에 얹을 때엔 그 주체가 대대손손 살아온 토박이인 경우가 유리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민영이었다. 알고 보니 조사단원이라든가 팀의 대표라든가 하는 사람들은 인천에 이제 막 거주를 시작하거나 사람이 빠져나간 동인천의 가능성을 보고 뭔가 시작해보려는, 외지인인 경우가 많았다. 원도심의 살아있는 역사시네요, 라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민영조차도 실제로 이곳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던 건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이들은 그래서 어떤 것을 찾아 섬까지 헤매는 것일까, 라고 가늠해보면서 웃음이 담겼지만 읽을 수 없는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만선과 공선]
황선장은 그날의 어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최근 어업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데, 이미 황선장의 몸도 그리고 그의 희망호도 고기를 싣고 거친 해양을 가르기란 무리일 정도로 닳아가고 있었다. 몇 년 전 이미 늦었다면서 주위 동료 선장들은 폐선하거나 퇴역하여 양식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황선장도 이제 그만 고집부리고, 조금이라도 노후자금이나 벌어두거나 굽어버린 손가락과 허리 치료를 하려면 몸을 덜 써야 한다는 잔소리를 한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불안정한 어장을 따라 우리도 이동하는 운명이라고, 물러나는 게 멈추는 건 아니지 않냐는 말들을 애써 외면한 황선장이었다. 나도 그럴 수야 있다면 그러고 싶지. 근데 이놈의 버릇이, 새벽에 출발하여 아침에 들어가는 이 세월의 버릇이 아직도 그를 바다로 이끌고 있었다. 이건 선택이 아닌 운명이다. 다 헐어버린 희망을 끌고 유난히 거칠다는 조류 한가운데 여전히 견인되고 있는, 거절할 수도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훌륭한 선장의 기질을 타고난 듯 하지만 실제 황선장은 어부들 사이에서 설렁설렁 조업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젊었을 적 서울인가 부산인가 일본인가로 떠나보겠다고 부모님 쌈짓돈 들고 몇 번 출가를 감행하더니, 어디선가 된통 사기를 당하고선 울며 겨자 먹기로 뒤늦게 정착한 마을 출신 사람이었다. 다행히 상당한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작은 냉동실이 딸린 희망호를 겨우 얻어 조업에 발을 들였을 때 역시 조도면² 태생은 부정할 수 없는가 싶게 진도의 바다는 그를 받아주었다. 동년배 선장들은 이미 경험이 지긋하여 한창일 때는 만선이다 못해 여러 번 배가 떠야 하는 거 아니냐, 외국인 선원을 더 고용하고 배를 늘려 황금어장을 쓸어야 하는 것 아니냐 했지만 황선장 만큼은 볼품없는 희망호 한 척 덜덜거리며 모두가 쓸고 지나간 해역을 모자라지 않을 만큼만 잡아 올리며 살았다. 허황된 꿈이 부풀었다 꺼진 만큼 그는 자신의 꿈을 냉동고 크기로 축소시켰다.
그때도 그랬다. 명목상 표시해 놓은 흘수선³ 이 남도록 채우는 둥 마는 둥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려 준비 중이었다.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몸인지 매일같이 해오던 일인데도 그날따라 거의 공선에 가까운 배를 끌고 들어가면서 대충 선실 어딘가에 박아둔 감기약을 먹고 하루 정도는 누워있을 참이었다. 밤새 밀려오는 고독을 몰아내려 적당한 음량으로 틀어놓았던 라디오를 끌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조도면을 향하고 있는데, 무전이 울렸다. “... 맹골수도 해역에 있는 어선에게 알립니다. ....변침.. 즉시..” 황선장은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무전에 귀를 기울였다. 동시에, 황선장의 기스 가득한 은색 2G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해상 북위 34도 30분, 동경 125도 56분 맹골수도 북쪽 입구 400명 이상 탑승한 선박 선체가 지탱하지 못하고… 해상 북위 34도 30분, 동경 125도 56분. 반복합니다. 북위 34도 30분, 동경 125도 56분. 어선은 즉시 이곳으로 집결하십시오.”
[고양이를 부탁해]
민영은 알바를 쉬는 날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파란색 OTT 아이콘을 눌러 <고양이를 부탁해>를 시청한다. 아무리 타지역 사람들에게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천만의 날것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표현한 영화여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질 않는다. 마치 친구가 찍은 영상에 내 모습이 나오는 것이 마음에 들어 계속 보게 되는 것과 비슷하려나.. 아, 나는 친구가 없지. 내가 사는 동네가 20여년 전엔 저랬다니, 기억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2001년 개봉 당시에 비디오가게에서 엄마가 빌려온 걸 처음 보고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 자취방에서 제대로 봤던 기억이 난다.
야 이런 거 판도라에는 없냐? 막 자취를 시작한 유경은 본가에서 얻어온 DVD 플레이어를 자랑하고 싶었던지 불법적-합법 시청을 마다하고 지극히 합법 수단을 택하여 깨끗한 화질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민영과 유경은 어릴때 부터 홍예문, 답동성당, 자유공원부터 저 멀리 인기척 없는 동일방직, 화수부두까지 같이 휩쓸던 동네친구 사이일 뿐만 아니라 같은 회사 입사 동기였다. 차이가 있다면 유경은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현장서비스직, 민영은 공기순환이 안되는 근대식 건축물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이다. 민영은 평소 유경이 회차하고 돌아오는 스케줄까지 확인하고 나서 당연하다는 듯 인천항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관광객들이 가지 않는 중구청 근처 중국집으로 함께 향하곤 했다. 민영은 그 무렵 본가에 살고 있어서 밥 먹듯이 유경의 자취방을 드나드는 바람에 우스갯소리 반, 진심 반으로 월세를 절반치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눈칫밥을 먹을 정도였다. 우리도 서울로 가야 하나, 이 일 계약 끝나면 뭘로 먹고 살지. 계획은 하나도 안하는 주제에 입만 불퉁한 민영이 매일같이 하는 걱정에 유경은 웃으며 답했다. “나는 이 일이 마음에 들어. 비행기는 아니지만 나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 다음을 노려봐야지” 실제 대우는 한참 못 미치는 계약직이었지만 유경의 얼굴이 빛이 나서 민영은 댓 발 나온 입을 집어넣었다. 나는 알바나 하면서 살 운명인가 봐. 유경은 영화 속 혜주, 민영은 지영을 닮아 각자 그들이 신경 쓰였는지 다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로 사무실 안에만 있다 보니 거대한 선박이 드나드는 각종 신고/허가 서류와 화물 규제, 입출항 스케줄 처리만 했지 실제 민영이 체감할 수 있는 현장감이란 별로 없었다. 조금씩 덤벙대는 바람에 철저 해야만 하는 해운업 특성상 아마 계약 연장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르겠다. 나도 그냥 서류처리 말고 유경이 따라 배나 탈까. 유경이 돌아오면 이번엔 자유공원으로 벚꽃놀이 갔다가 동구로 넘어가서 토시살 구워먹고 마른안주에 생맥이나 하자고 조를 참이었다.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은 뛰고 있다. 집이 그렇게 가까운데도, 아니 집이 더 가까우니까 지각한다는 느낌으로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사무실을 향해 내달리던 때였다. 8시 58분 회사 건물 입구 도착. 아직은 영업개시 전인 시간이다. 그러나 사무실로 가까이 갈수록 평소와 달리 언성 높이는 통화소리로 가득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자마자 자리의 내선전화가 울리고, 민영은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네, OOO해운 사무실입..”
2021년 10월, 민영은 20주년을 맞이하여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종로 인디스페이스의 두 자리를 예매했다. “기다렸어, 지금의 너를. ― 그리웠어, 그때의 우리”라고 쓰여진 포스터 글귀를 유심히 보다 여전히 앳된 얼굴로 뛰노는 태희, 지영, 혜주를 보니 민영도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백 번이나 정주행한 영화인데,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 거창한 스크린으로 바뀌었다고 더 실감이 나는 건지 뭔지. 처음 DVD를 틀고 자신이 아는 동네의 모습을 찾아 훑었던 눈길로, 바뀌어 가는 청춘들의 얼굴을 샅샅이 바라보았다. 그러곤 나지막이 읊조렸다. “잘 살아야 돼, 혜주야.” 조금만 더 경쟁적이었다면, 유경은 서울로 갔을 텐데. 결국 혜주랑 비슷한 게 아니라, 혜주처럼 살아야 하는 거였어. 지금 까지 계속 흔들렸던 인생, 배 한번 타지 못하고 땅 위에서도 휩쓸렸던 시간들이었다. 민영 자신 또한 지영과 같은 것이 아닌, 태희의 모습으로 계속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임을 흐린 시야 너머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⁴
[귀항]
그곳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소형 어선 중 하나였던 희망호는 그날 이후 비어있는 어선에 한동안 고기를 싣지 않았다. 몇 개월 간 바다 일부 해역이 통제되었지만, 진도의 어선들은 이전보다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다를 오갔다. 부두의 소란함은 평생 멀미와 거리가 먼 선장들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여, 땅 위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점검하고, 연료를 가득 채워 다시 바다로 나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맹골수도의 조류는 험해졌고, 유속이 심한 구간마다 낡은 선체의 동력으로 수면 위에 멈추는 일이 늘어났다.
희망호를 포함한 모든 어선들의 존재 목적과 달리 무엇도 싣지 못하고 연료만 소진했다. 귀항하는 바닷길, 바다를 밀고 나아가는 선체가 너무 가벼웠다. 황선장은 처음으로 너무나 간절히, 희망호의 흘수선이 아슬아슬하도록 넘게 해달라고 빌었다.
[흘러가는 시간]
민영이 섬으로 진입하는 이유는 단지 배를 타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천에서 섬으로 향하는 행정 구역 내의 이동이 전부였지만, 동네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에겐 최선의 선택지였다. 도착해서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안심이 됐다. 섬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해변을 둘러보고 얼마나 다른 섬과 가까운 지, 이따금 주민들을 만나 생활상을 귀동냥 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배를 타는 행위 자체는 어쩔 땐 고역이었는데, 민영 눈에는 충분히 커다란 배였으나 실제로 속도를 올리자 배가 퉁 퉁 튀면서 그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덕적도에 이르러 정박을 위해 선착장에 배를 댈 때, 민영은 창문에 바짝 붙어 선측이 간당간당하게 접근하는 것을 내려다봤다. 추진하기 위한 엔진이 아닌, 방향 전환과 미세한 움직임 조정에 쓰이는 동력이 잦아지고, 최소한의 시동의 진동만이 남았을 때 성격 급한 승객들을 따라 민영도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어, 여기 아니에요. 라며 붙잡으려는 조사 팀원을 말없이 지나쳤다. 수신호를 하면서 로프를 주고받고 다리를 놓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선원과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천은 바다의 조건이 충분치 못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선착장에 부딪히는 물결은 충분히 푸르렀다. 너는 이런 바다를 보고서두 나한테 안 알려 주냐. 맨날 나는 똥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네. 아직 파도에 의한 동요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커다란 여객선은 탈 수 없지만, 민영은 앞으로의 날들을 보다 능동적으로 기다리기 위해 배에 올랐고, 비로소 첫 걸음을 뗐다. 민영의 동네에서 내려다보이는 연안여객 터미널은 배가 떠난 후 한 번도 민영에게 진정으로 돌아온 적 없지만, 얼마나 매일같이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경외와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았던가.
배가 로프를 거두고, 땅을 박차듯 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정박했던 배는 반드시 출항을 해야만 한다. 엔진이 추동을 멈추는 그날까지, 배를 탄 뱃사람들이 선박을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는. 누군가는 스스로 묶이길 원해 침묵한 채 흐르기만 하는 바다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시간 속에서 우두커니 버티고 있었다. 어떤 장소에 정박하기 위해 출발하고, 귀항하는 배의 정박을 기다리기 위해 자리를 지킨다. 선착장에 서서 각자 목적지로 가던 사람들이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민영은 눈길을 떼지 못하고 창 너머 함께 손을 흔든다. 스크래치 투성이의 창문으로는 형태가 뭉개져 이미 멀어진 사람들에겐 잘 닿진 않았을 것이다. 잘 가, 아니면 또 와. 갔다 올게. 아니면 다시 볼 때까지. 사람들이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민영은 혼자 몇번이고 약속을 했다.
¹ 최초의 한국인 도선사 유항렬은 1930년대부터 인천항에서 도선사 생활을 시작했다. 인천 중구에 유항렬 저택이 남아있는데, 특징이 바다를 향해 발코니가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유항렬은 이 발코니에서 인천항을 내려다보며 배가 오고 가는 것을 확인 했다고 전해진다.
² 전라남도 진도군에 위치한 면
³ 만재흘수선, 선박이 선적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선박 중앙부(대형 선박 기준)에 표시된 선과 기호. 소형 어선은 약식으로 표시되어있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⁴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출연진 배두나(태희 역), 이요원(혜주 역), 옥지영(지영 역), 이은실, 이은주(비류, 온조 역) 자유로운 성격을 지니고 친구들을 항상 기다리는 태희, 현실적인 조건을 중시하며 성공을 원하는 혜주, 꿈에 비례하는 재능을 가졌으나, 어려운 생계로 인해 힘들어하는 지영. 인물 설명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