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의 시간
시간은 행복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나를 두고 지나쳐버린다.
위의 말은 지극히 비약적인 자기연민일 뿐이다. 시간은 나를 두고 지나간 적이 없다. 시간은 정지라거나 흐른다거나 개념과는 상관없을 수 있고 그게 아니면 이미 진행 중인 레일 위의 한 지점에서 우연히 내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나간 건 사실 시간이 아니라, 내게 머물렀던 사람들일 것이다.
떠나간 사람들을 꼽자면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사람들도 포함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내게 주어진 수많은 흑백사진을 내려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4년 전쯤 이어받은 유일한 물질적 유산인 레모나 틴케이스는, 공기에 산화될까 봐 걱정되어 거의 열어보지 못했었다. 어디로부터 왔을 사진 속의 사람들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사진만 남기고 다시 어딘가로 가버렸다. 가장 오래된 사진 중 하나는 가족 단체 사진인데, 몇몇은 의관정제[1]하여 관복을 갖춘 채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그 모습들이 지금의 나와는 너무 멀어서 시대극 인물로 변장하고 내게 장난치는 것만 같다.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이 종이야 불타 없어지면 그만이고, 후손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의 장본인도 더 이상 이 삶과는 아무런 연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녹슨 틴케이스를 열어서 최소한 이 종이 뭉치만큼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여기게 되는 건 또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SBS '모닝와이드 3부' (2023.06. 27.방송) 유투브 00:02:52 장면 캡처
위의 가옥은 충청남도 천안 소재 적산 가옥으로, 일명 '뾰족집'으로 불리고 있다.
집의 경우
여기저기서 가져다 이어 붙여 결국 처음 보는 형태의 공간이 되어 버린 집에 아직 어디엔가 살아가고 있을 가족들이 소환되었다. 어느 시간대에서 노화하지 않고 멈춰버린,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이상한 구조의 집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축물, 잠깐 구경할 수 있던 가옥,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수많은 집의 형태가 통합된 버전의 공간이 한데 덩어리져 있어 혼란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수많은 복도와 그 끝에 달린 문을 끊임없이 열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게 다급히 뛰듯 걷는다.
나는 어릴 적 친가와 외가 모두 사람이 북적이는 대가족의 환경에서 성장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또 규모가 클수록 결합하기까지의 말 못 할 사연과 형태가 있다. 그리고 ‘가족’의 범위는 알고 보면 나와는 그렇게 관계가 없는-현재 관점에서 다시 보면- 사람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지지하던 견고한 기둥 하나가 사라졌을 때, 허탈하게도 가족구성원들은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분열했다.
으레 피로가 극심할 때마다 달에 두 번꼴로 외출복을 입은 그대로 잠에 들곤 한다. 이럴 때의 잠이란, 거부할 새도 없이 의식에 강림하는 힘이다. 그렇게 무의식 속으로 하강한 나는, 항상 어느 낯선 장소에 놓여 있다. 최근 제일 길었던 러닝타임의 꿈에서는 어느 일본식 집의 층계를 계속해서 올라야만 했다. 실제-실제는 아니지만- 4개의 층계만 오르면 되는 꽤나 현실적인 규격이었지만, 실로 아주 오래된 일본식 가정집을 고려했을 때 4층 건물이란 어딘가 과하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빤들빤들한 어두운 색 원목의 내부는 고풍스러웠으며 지나치게 방이 많았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듯 방문을 차례로 열어 재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힌트를-어떤?- 줄 사람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문을 다 연 듯하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못 본 건지 생긴 건지- 열어야 하는 문이 계속 생성됐다. 그마저도 내부를 확인하려하면, 그다지 정성 들이지 않은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들통나니까 무저갱[2] 같은 검은 화면으로 처리되거나 문이 금방 닫히곤 했다. 그렇게 3층에 도달했을 때,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바로 보였다. 그 앞은 [출입 금지]라는 표지와 함께 차단줄로 막혀있었는데, 그 순간 모든 문 혹은 진상을 들쑤시던 내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조금이라도 궁금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금기의 영역을 마주친 위기감이었다. 멈추라는 무의식의 명령을 받아들이자마자 갑자기 아래층부터 수많은 사람이 뛰어 올라와 한데 뒤엉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앞에서 서로를 해하더니 3층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다시 혼자 남겨졌고, 그렇게 무의식은 내게 엄중히 경고했다.
이때 이후로, 아직 떼어지지 않은 끈적한 미련의 흔적이라고만 여겼던 레퍼토리를 차분히 관전해 보기로 했다. 나를 담고 있는 현실에 없는 집, 오래전 만났던 가족이거나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좁고 긴 복도와 문, 계속 쫓는 나 아마도 이 모든 것의 알파와 오메가[3]인 4층의 정체와 모든 문들의 끝을.
간이역의 경우
8년 전쯤부터일까. 지금까지 누군가의 등을 보는 일이 꽤나 잦다는 자각이 선명해졌다. 나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은 변화를 위해 움직인다거나 하는 불안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존의 상태에서 나는 항상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했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누군가와의 인연은 마치 열차와 간이역의 상태로, 애초에 발차(發車)하기 위해, 그리고 정차(停車)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난 것 같았다.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고, 마땅히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반복된 떠나보냄 앞에서 이런 느낌은 짙어질 것이라고 예감할 수 있었다.
다소 서정적으로 떠오르는 간이역을 현실적으로 재고 해보면, 최소한의 역무원 배정도 없이 나무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승강장, 단지 이름만 역(驛)에 불과할 뿐 일생에서 몇 번 태어난 목적대로 쓰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구조물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비유는 과히 감상적으로, 나는 발이 묶인 존재도 아니며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처럼 비칠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등을 힘껏 밀어 보내고, 언젠가 돌아올 일을 기다리는 것도 비애적인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힘이 닿는 한 여기에 있겠다고 말하는 역할도 나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고난은, 한 번이라도 닿았던 존재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슬픔으로 바뀌면서 막이 오른다. 만남은 곧 정차라는 낡은 진리가 나에게 작동되고, 결국 끝은 어느 중간에서 ‘중단’의 형태로 불시에 결정된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종착점으로 향할 때, 기관사가 끝이 다다랐음을 친절히 알려주며 하차를 준비할 시간을 준다. 잊은 짐은 없는지, 내릴 문은 어느 쪽인지 몇 차례나 부드럽게 일러준다. 그러나 진정한 고별은 이처럼 따뜻하거나 상냥하지 않다. 어떤 방식을 통하던 멈춤의 선언이며 퇴장의 명령이다. 결국 끝은 우리의 의지로 행하는 ‘종료’라기 보다 중간에 존재하며, 중도에 실행되고, 그렇게 정지된 상태로 영원히 남겨지는 것이다.
지훈, 현우의 경우[4]
나랑 동갑인 지훈이는 그 나이 또래보다 정신적·신체적 발달이 빨랐다. 특히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잘 그린다는 말로 표현이 부족할 정도라 질투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매일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그림을 그려댔다. 내가 지훈이 그림을 힐끔대면서 삐뚤빼뚤 그려놓으면 이내 고쳐줬는데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지훈이 뒤만 따라가면 됐다. 그 아이는 또래들이 모두 갖고 싶어 하는 롤러스케이트와 인라인스케이트를 다 가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훈이네 형 거였는데 그 형은 동네에서 아이치고는 몸집도 크고 폭력적인 성향을 띠어 지훈이랑은 딴판이라고 동네 어른들이 수군대는 걸 자주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형은 지훈이에겐 관대해서 나는 늘 그 아이의 혜택을 몰래 같이 누렸다. 어쩌다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형은 물건을 바깥으로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발작하듯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주먹에 지훈이가 한번 제대로 맞았는데, 그 아이는 온몸이 벌게지도록 울었다. 이후 나는 다시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밤이 깊어 모두가 잘 무렵 엄마가 잠깐 일어나보라고 나를 깨웠다. 205호였던 우리 집의 베란다 문을 열더니, 아래를 보라고 했다. 나는 키가 작아서 아래 유리창 문을 열고 창살 사이로 내려다봐야 했다. 지훈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잘 있어. 난 가야 돼. 그때의 나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아니었다. 지훈이가 갑자기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문을 열고 마주친 지훈이가 내 팔에 플라스틱 구슬로 꿴 팔찌를 채워주었다. 내일 다시 우린 그림을 그리겠지. 빨간 유치원 가방에 팔찌를 넣어놓고 잠들었다.
거짓말처럼 다음날부터 지훈이를 볼 수 없었다.
현우는 나랑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나이대 애들 사이에서 둘 다 키가 크기도 했고, 활동적이어서 둘이서 맨 공을 차며 놀았다. 우리 엄마는 태권도장에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 애는 태권도장에 다녀서 도복을 입고 내게 자랑했다. 가정형편은 비슷한 것 같았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너덜해 지거나 항상 대출 중인 『그리스로마신화』인기 편을 집에 가지고 있었고, 까르푸[5]에 다녀오면 장난감도 늘어나 있어서 늘 수업이 끝나면 현우 집으로 하교했다.
현우네 형도 태권도장에 다녔다. 현우는 나를 집으로 데려갈 때 항상 형이 없을 때만 골랐다. 주로 공을 차러 가는 동네도 내가 사는 아파트 쪽이었다. 형은 현우를 샌드백으로 쓴다고 했다. 오랜만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형은 현우 관자놀이를 향해 발차기 연습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번은 내 존재도 신경 쓰지 않고-혹시 신경 써서 과시하려 한건 지- 현우를 마구 때렸다. 참다못한 현우가 짜증을 내도 멈추지 않자, 그 자리에서 갑자기 자지러졌다.
현우는 나랑 많은 부분이 비슷했지만 나보다 뛰어난 구석이 있었다. 비슷한 영역이 아주 희미해져 같은 정도로 구분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연습 하든 공유하지 않든 어떤 선택을 통해 격차를 벌리려고 했다. 현우같이 행동하는 애들이야 많겠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현우가 좋았다.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같지 않게 아줌마 흉내를 내며 나를 야단치는 점도 재밌었다. 어떤 점에서 나는 ‘야, 나 공 찰 건데 따라와’라고 하는 편이 마음 편하기도 했다. 근데 언젠가부터 얌전해진 현우는 혼자서 하교하기 시작했다. 종종 같이 놀던 시간이 있어서 버릇처럼 붙어 있거나 둘만 낄낄댈 때도 있었는데, 새로 산 배낭의 찍찍이 주머니에 물건을 차곡차곡 넣고는 휙 둘러매고 떠나는 날이 빈번해졌다.
야 우리 뽀뽀 한 번만 해보자.
반 애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볼 때가 있었다. 워낙 그런 호기심이 생기는가 보다 했고, 뭔가 확인해 보자는 듯한 장난 섞인 말이어서 대수롭지도 않았다. 근데 현우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했다. 그래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기에 얼떨결에 까짓거, 라고 답한 참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둘 다 입술이 닿기 전에 그만뒀다. 혹시 그거 때문인가. 야 너 왜 그러냐, 나한테. 질문에 답도 듣지 못한 채 현우의 뒷모습만 좇다 그 해가 끝나버렸다.
세기말의 물질과 기억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해피 뉴 이어!
따위는 없었다. 멸망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절정이던 2000년, 나는 어린 나이의 애송이였다. 세기말의 설렘을 머금고 태어난 사이버 가수 아담[6]은 당시에도 너무 이질적이었는데 사라진 이유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라니.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세기의 앞자리가 바뀌어도 20대였던 삼촌들은 여전히 무스를 잔뜩 묻혀 뾰족 머리를 만들고 고모들은 은색과 갈색 립스틱을 두껍게 바르고 다녔다. 사촌들은 펜티엄 4[7]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며 돌연 몇 시간이나 파란 화면을 띄워놓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닌 어깨너머 간접적으로 경험한 장면들이다. 그렇게 세기말은 내게 물질의 풍요와 잡히지 않는 것들이 교차하는 때로 남아 있다.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예언에 대한 불안의 자리에는 새 시대로 향하는 희망이 들어찼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무너진 경제의 여파가 나와 친구들의 가정을 차례로 덮치면서 종말은 어디 가지 않고 실현되었음을 증명했다.
96년 데뷔한 HOT 의 캐릭터. 한국 1세대 아이돌이 데뷔하며 캐릭터화, 가상화를 수없이 시도했다. 필자에겐 아담보다 더 당대를 대표하는 존재로 각인 되어있다.
아직도 도시의 커다란 쇼핑몰 건물을 보면, 말끔히 텅 비어 있는 층을 볼 수 있다.(예를 들어 테크노마트 같은) 진행의 중단. 기대의 미충족. 번영의 맛보기. 줬다 빼앗기. 상실을 체감할 때마다 사람들은 빠르고 어디에나 있으며, 익숙한 롯데리아나 파파이스 같은 장소로 도망쳤다. 돈이 없던 나는, 할 줄 아는 게임이 없어도 1시간에 500원인 담배 연기가 자욱한 피시방으로 가거나 점포가 급히 빠져나가고 있는 까르푸 건물의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분명히 도래했던 부유함과 넉넉함을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그것의 몰락을 목격한 세대로서 아쉽다는 느낌보다 상실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안도가 있다. 발전의 뒤꽁무니에서 고개만 끄덕거렸던 아이였기에, 자세히 몰라도 되었던 것이 정신적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준비와 설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관계와 현실이 붕괴한다던가, 미완결의 파도를 맞이하게 되더라도 거절로서의 마지막이 아닌 중단으로서의 중간 단계로 인식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복도와 계단에서 돌아다니며 원인을 찾으면서도 정작 끝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생존했으며 이제는 이따금 떠나는 존재로 위치를 전환하게 되면서 떠나는 존재들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진실을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은 모호하다거나 항상 무언가를 분실해야 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구역으로 정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를 모르겠는 조건에서도 틴을 열어 과거를 이따금 훑어봐주고 그때의 아이들은 건강히 잘 지내는지도 궁금해하며 내 인생에서 지극히 가운데쯤일 현재 관점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무엇을 해석할지는 모르겠다. 해석되지 않는 조각이 생길 때마다 꿈으로라도 시현[8]하길 바라는 수밖에.
무력하게 견디는 게 아닌, 알고도 계속하는 베타의 세계로 지속할 수 있도록.
[1] 衣冠整齊, 격식에 맞게 옷차림을 갖추고 바르게 행동함. 국가유산청 [衣冠整齊 의관정제: 조상들의 의복과 삶에 담긴 의미], 2020.02.27
[2] 지옥. 무저갱은 보통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영원히 이어지는 공간이다.
[3] 그리스어 첫 글자Α와 마지막 글자Ω.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영원을 상징한다. 베타β는 이 사이의 중간, 평범함을 의미하며 본문의 제목에서는 중간적 존재로서 쓰였다.
[4] 특정 방지용 가명 사용
[5] 1996년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의 할인매장 브랜드. 2006년 철수했다.
[6] 1996년 설립된 아담소프트가 제작한 사이버가수. 1998년 공개되었으며 1997년 가상의 에덴에서 태어난 것으로 설정했다. 1집 앨범은 <제네시스(Genesis)>, 2집은 <엑소더스(Exodus)>. 불현 듯 바이러스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며 사라졌지만, 제작 예산을 감당 못해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7] 인텔 데스크탑 컴퓨터의 시리즈. 펜티엄 4는 2000년 11월 출시됐다.
[8] Revelation 계시, 폭로라고도 하며 종교적으로는 요한계시록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