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익숙하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기분이었다.
얇아지는 지금을 체감하면서 눈을 비비어서라도 사소한 것들에 손을 대면 만족할 만한 부피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우리의 2월은, 3월과 4월 그 언저리에 함께 있던 곳을 떠나는 일에 대한 언급으로 차 있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폰 앨범에 부스러기 같은 일상의 포착이 늘어나고, 후지에서 나온 일회용 카메라 두 개를 사서 한 개씩 나눠 들고 본격적으로 남은 일수를 기록할 수 있음에 들떠 있었다.
꽤 가볍다. 주로 쥐고 다니는 것이 핸드폰 정도의 무게감이라 그런지 더욱 텅 빈 것 같다. 무엇을 담을지 허둥대거나 조급하게 찍는 법을 익히다 몇 장을 어이없이 피식거리며 흘려보내기도 했다. 남은 시간의 수를 점쳐 셀 수 있는 것처럼, 초점처럼 움직거리며 줄어드는 숫자는 시작이 있으면 그 끝에 도달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꾹꾹 누를수록 당연하게도 가장 적은 수에 다가간다. ‘0’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음을 내포해서인지 가까워질수록 눈앞에 있는 것 자체가 사뭇 아쉬워지기도 하고, 서로 ‘이 정도는 아니지’ 하며 찍기를 내려놓는 엄격함도 생겨났다. 얼마 없는 장수에 대한 인색함과는 다른, 쉽게 눌러버리면 이 시간이 실제보다 얄팍해질 것만 같은 괜한 망설임이었다. 어느 날에는 카메라를 쥔 채 종종 함께 걷던 겨울 흙길을 걸으며, 여전히 시득시득하게 피어 있는 풀 따위처럼 건조해질 날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말이 대체로 크고 단정적인데, 실제로는 그렇게 또렷하지 않아서 이토록 맞이하기 곤란한 것일까.
19살
이 애매한 순간을 손으로 수없이 만들어본 적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동양화과를 선택한 내가 3학년이 됐을 무렵, 한 선생님이 시큰둥한 말투로 “다 된 것 같으면 점을 찍어.”라며 황당한 요구를 하셨다. 이 말은 그림이 끝에 왔다는 판단이 들 때, 먹이 묻은 붓으로 군데군데 ‘태점(苔點)’을 사용해 보라는 것이었다. 한 날은 시범을 보며 대체 그 점은 어떻게, 어디에 찍는 것인지 보려 했는데, 딱 알고 싶은 것들만 알 수가 없었다. 딱히 비어 있는 곳에 찍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살짝 몸을 뒤로 젖혀 눈꺼풀을 느슨하게 덮고, 얇은 초승달처럼 벌어진 틈 사이로 지긋이 지켜보다 갑자기 바짝 몸을 그림 쪽으로 당겨 여러 군데에 붓을 내려찍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달랐고, 정해진 크기나 위치도 결코 없었다. 운용한 사람이 전체를 보면서 과감하게 그러나 과도하지 않게 찍는 것이다. 이건 흔히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밀도를 올리는 행위이기보다는 기운을 얹는 기교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또 보이는 무언가를 바짝 쫓던 몸을 갑자기 떼어내어 숨을 고르고, 열심을 낸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의식 같기도 했다. 그래서 짜릿했다. 찍어둔 태점이 튀지 않고 적당히 은닉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 모순점이 결국 그림 한 장을 완성한다는 점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면.
0
덕지덕지 따라오는 미련을 ‘0’을 향하는 동안 떼어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직 헤어지지 않았는데도 전과 같은 얼굴을 하지 않는 사람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공포는, 그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가리킨다는 데서 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없다면 셀 이유 또한 없을 텐데, 어째서 이 숫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까. 고대 바빌로니아나 마야 문명에도‘0’과 유사한 표시는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0’은 오늘날처럼 독립된 수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떤 양이 없음을 뜻하기보다 비어 있는 자리를 혼동하지 않기 위한 표시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104라는 수에서 십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점이나 빈칸, 혹은 별도의 기호를 두는 식으로. 이러한 표시는 수 체계 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보호해서 다른 숫자들이 잘못 읽히지 않도록 붙들어 두는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초기의‘0’은 곧 ‘없음’그 자체라기보다, 없음이 놓인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고, 없다는 사실보다 그 없음이 어디에 있는가가 더 중요했던 셈이다.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징표이자 다른 수들이 제자리를 잃지 않도록 만드는 침묵의 기호였다.
사진기의 ‘0’은 맨 마지막에 있었지만, 실은 훨씬 먼저부터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또 새봄이 오면서, 겨울의 표면이 미세하게 밀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은 꼭 사라지는 쪽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넘김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날들도 이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미세한 생장이 준비되고 있다.
최근 이사한 동네는 오래된 상점들이 버티고 있는 곳이라 금세 필름 인화가 가능한 사진관 하나를 찾았다. 27장 하고도 또 27장이니 총 54장인데, 사장님은 이 합을 30장으로 퉁쳐 버리셨다. 인화해 보면 분명 잘 안 나올 것도 쳐야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나 많이요?”라는 나의 말에 “그 정도 생각해 두면 편해요.”라고 하셨다. 사장님의 셈법이 주는 이 개운함이 싫지 않았다. 덜어진 30이라는 수와 각자가 어딘가에 찍어 둘 태점이, 이 모든 것을 두터운 한 장으로 붙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