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
단호한 가위질에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반복적인 리듬, 얼굴 주변과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에 긴장이 풀리고 눈이 사정없이 감긴다. 심하게 조는 바람에 고개가 급격한 각도로 기울기를 여러 번, 한마디할 법한데도 묵묵히 가위질을 이어간다.
- 언제 마지막으로 방문하셨죠? 오랜만이신데요.
- 글쎄요……. 기억이 안 나네요..
으레 형식상의 질문인 줄 알았건만 그는 머리칼을 놓고 카운터 충전선에 꼽아놓은 핸드폰 화면을 켜서, 마지막 대화 일자를 확인한다.
- 커트는‥ 8월, 그 이후로 펌을 한 번 하신 게 마지막이에요.
그에게 머리를 맡긴 지는 어림잡아 3년은 넘었다. 어쩌면 4년 일수도 있고. 부부가 운영하는 헤어샵은 늘 예약 후 2주가량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일단 한번 커트하면 만족스러워서 최장 6개월 가까이 다듬지 않고 톤을 유지하며 버틴 적도 있다. 여하튼 그나 나나 거울 앞 대화의 물꼬는 항상 같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었죠? 덕분에 이 사람과 이곳에서의 시간 흐름은 보편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 어디 가실 건가요? 어떻게 마무리해 드릴까요?
- 아무 데도 안 가는데요….
한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조각하듯 머리칼을 덜어낸다. 가운 위와 바닥에 상한 머리카락이 가득 쌓였다. 애초에 긴 머리도 아닌데 매번 상당한 양이다. 거울 속에는 푸석하지만, 산뜻한 기분을 느끼는 얼굴이 훤히 드러나 있다. 짧아졌다는 생각보단, 매우 가벼워졌다는 실감이다. 물리적으로 신체 일부를 잘라내면 마음도 같이 가벼워진다. 나는 이 느낌 때문에라도 머리를 기른다는 게 불가능하다. 몇 시간만이라도 다시 태어났으므로, 들어올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간다. 다음을 기약하고, 외투를 단단히 동여맨 후 길을 나선다.
✂︎
비싸고 눅진한 오일로 마무리된 머리가 강풍에 나부끼자 바람이 향기를 업고 코를 간지럽힌다. 아무도 볼 사람도, 갈 곳도 없지만 잠시간 세상에 내놓으며 뽐내본다. 하지만 얼굴이 얼어붙기 시작하니 인제 그만 빵빵한 외투의 모자로 눌러 덮을 시간이다.
모자를 쓰고 귀에 이어폰까지 꼽으면, 감각이 두 배로 차단된다. 그 상태로 역으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 내가 이런 일 하라고 형균씨 한테 돈 주는 거잖아?
이런 일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 그렇죠.
였을 것 같다. 아니면 그 말은 차마 소리가 되지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던가. 전화 너머의 상대방은 보지 못하는데도 원래 고개를 자주 주억거리곤 하는 버릇이 있다.
퇴근 시간대를 비껴가 그나마 공간의 여유가 있는 지하철 칸에 서서 다시금 바뀐 스타일을 창문에 비춰 본다. 나쁜 것들을 모두 잘라낸 듯한 착각이 든다. 이건 잠시간의 허상일 뿐이고, 머리는 금방 자라버릴 테지만 일단은 안심이 된다. 이상하다. 드러낸 내가 오히려 깎여져 다른 모양의 덩어리가 된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의 나는 너무 벌거벗은 채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의 경로에 접속한다. 너무 보여준다는 것 너무나도 직면한다는 것 쓸데없이 정직했던 것 회피에 정면 돌파를 했던 것 사실은 그게 전부 기능했을까. 매번 같은 얼굴로 다른 층위의 환경과 사건을 지내온 내 단조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이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다. 대체로 좋은 건 좋은 게 아니라 찝찝함이었다. 그래서 좋을 수 없었다. 그러니 너도 너를 드러내라고, 그러나 합치에 이르지 않아도 홀연히 그 앞에 섰던 것. 가면을 쓰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아니야, 더 악화할지도 모른다. 모면에 대항하는 둘러댐은 해결 방법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매일 해결하려 하나? 하찮지만 상충하는 문제들을 번민한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도 피곤한 거죽의 얼굴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 두부를 만들 때 끓이는 물이요. 푸주는 거기 표면에 굳는 얇은 막을 모은 거래요.
쓰읍 쓰읍 하면서도 마라샹궈를 바삐 휘저으며 말한다. 적정한 두께의 막이 형성되면 얼른 잡아 모양을 만들고 말린다. 끓이고 지켜보고 건지기. 맛있는 주름이라 해도 결국 남는 쭉정이를 건져 올리는 것 같다. 혹시 한 겹 올릴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벗겨진 피부를 아예 떼어내면 그 밑의 뭔가가 올라오는 게 이치가 아닐까.
내게 뭔가 덮일 수 있다면 단단한 퇴적층 형태라기보다 걷어낼 수 있는 아주 얇은 밀크스킨, 굳기 전에 자주 저어주면 다시 수분과 하나가 되는 고작 그 정도의 무게로 가리거나 무마하는 것. 가볍고 가벼우니까 얼굴을 간질이면 손쉽게 벗어버리는 것이 될 거다.
그럼, 사람들은 나의 맨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나. 그보다 앞서 맨얼굴이어야만 진실한가? 나는 이미 답을 내린 문제를 반복해서 질문한다. 그렇다고 이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완전한 자포자기도 불가능하다. 사소하고 객쩍은 생각은 허무하게 흩어져서, 겨룰 대상 없이 허우적거리는 기분이다. 시작부터 비길 수밖에 없는 승부를 겨루는 심정은 늘 반성과 후회로 끝난다. 경험으로부터의 굳은살은 근육이 되겠지만 내 것은 밀리고 밀린 주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뭉근하게 덧없는 기억을 끓여 시도 때도 없이 건져 올리다 보니, 건져 올려진 것들은 아주 얇지만 딱딱해져 있었다. 기필코 언젠가 다시 끓여져 새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도해 보는 나의 흘러내리는 굴곡.
✂︎
빈틈없이 차려입은 복장으로도 3분을 버티기가 힘든 날씨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집’이라기 보단 아주 얇은 나의 요새로. 웃풍이 심해 방에서 가끔 기류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바람을 막아내고 일시적으로는 따뜻함을 선사하는 나의 요새이자 요람으로 피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의 집요새, 누군가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린다.
- 열어줘요.
여자 노인의 목소리가 애타게 부탁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문에서 멀어진다. 내 옆에 서 있던,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려고 한다. 넌 누구야? 문을 열려는 사람의 입과 손을 막아 제압한다. 그런데도 기어이 문을 열겠다고 버둥거린다.
- 열지마
- ‥열어줘
- 절대 열면 안 돼, 알겠어?
- ...
- 아… 아쉽다.
비뚤어진 웃음소리가 차츰 멀어진다. 그나저나 창문은 전부 잘 닫혀있나? 침실로 다급히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우리집은 5층이다.
최근 꿈들이 죄다 함정 투성이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심심찮게 꾸던 꿈들에서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이 있던 탓에 마냥 미지의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냥 문을 열어줄걸 그랬나. 누군지나 확인해 볼 걸. 하지만 이내 열지 않길 잘했다고 결론 내린다. 왜냐하면 이전의 꿈에 등장하던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현실과 작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여자 노인의 방문’은 꿈이라는 걸 자각하게 하는 토템 그 자체가 되어버려서 앞으로 더욱 내게 별다른 자극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작 그리움의 옷을 입고 기습하는 상징들은 현실보단 꿈을 공략하는 정도에 그친다. 별달리 힘을 쓰진 못하고 기억의 한 자락을 간질일 만큼 희미하게 흔들어 보일 뿐이다. 그것도 언젠가는, 어딘가로 날려가거나 뜯겨나가서 역시나 시간의 간섭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만 상기시킬 테다.
- 당신의 작업에는 크나큰 결함이 있습니다.
짐짓 건조한 말투였지만 웃을 수도 있나? 싶은 여유가 어른거렸다. 당최 그 결함이 무엇이었는지 책임은 지지 않았으나 일단 자신의 선고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확신한 표정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제가 아픈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병명은 모르시는군요. 차마 속내를 드러내진 못했다. 모름지기 말이 많으면 역효과가 나는 법이다. 일단 반박을 포기하고 받아들여 볼지, 방어 자세를 취할지 결정하지 못해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가벼운 관심조차 거두어졌다.
- 사랑을 알게 해준 얼굴들인데요, 이들을 볼 때 하나님의….
작업보다 중요한 인생의 이슈에 대해 운을 떼는 바람에 나도 모르는 새 정겨운 민낯으로 덜떨어진 고백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니 반대로 내가 할 말을 잃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부분이 상대방의 빈축을 샀는지는 짐작하지 못하지만 이죽거림은 침투했다가 스쳐 달아난다. 그래서 당신이 목격한 것은 알고 보면 아무런 공격도 할 수 없는 발가벗겨진 얼굴이었을 뿐이라고,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덮여있지 않아서 볼품없는 바닥이 드러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마주한 것이 죄라면, 무대에 등장할 땐 적당한 가면을 쓰는 게 규칙이었던 거겠지.
- 일하고 싶은 거 그렇게 해드리겠다는데.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이쁨받는 거요.
두 눈 가득 피로가 낀 나의 눈을 보며 훌륭한 연기력이라고 찬사했던 텅 빈 교육실에서의 그때처럼, 행여 할 말을 내뱉는다고 한들 생각해본적도 없는 형태의 문장들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하므로 딱히 부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한번 들춰본 표면에서부터 밑바닥까지 여전히 오래도록 감도는 문장들이 있었다. 다만, 그것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만 올라오는 거스러미 같아서 기왕 뜯어내기도, 두기도 애매하여 차라리 마음먹고 외면하면 없는 것처럼 여길 수 있는, 생명을 다한 내 몸의 먼지였다. 다만 아무래도, 역시나 계속해서 잘라내 보거나 굳을 때 마다 건져내거나 이제는 내게 힘을 못 쓰는 상징이라는 걸 되뇌거나, 이도 저도 말을 듣지 않으면 상대의 기세가 줄어들 때까지 침묵하는 일들을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생명이 있는 마냥 꿈틀대는 그 사이에서 더욱이 얄팍한 이 문장을 붙들고 암송하면서.
존재는 타인의 선언이나 허락에
의존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어느새 많이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