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레위기 26:3,5)
기복(祈福)신앙이란 복의 기원을 주목적으로 하는 무속적인 종교행위 입니다. 이 안에는 현세적인 물질추구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내부에서 많은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정말 이러한 복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열망이 전혀 옳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저희는 말씀속에서 항상 백성들에게 복(Segen)을 베푸시길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시키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수기 6:24-26)
말씀처럼 믿음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잘 받는 것도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복을 저희가 구하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이라는 전제를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뜻을 구한 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늘 사랑하며, 그 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분의 거룩하신 모습을 닮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처럼 우리가 주신 계명을 잘 믿고 지켜나아갈 때, 저희들에게 필요한 복과 공급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경적 복의 원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저희들의 가장 큰 복과 공급은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떡'(Das Brot des Lebens)이신 예수님을 알고 영접하는데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은 저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영원한 공급자 이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삶 속에 반드시 필요하고, 바라는 기도제목들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정말 나의 필요보다, 나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더 믿고 사랑하며 있는가?, 어려운 순간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자하는가? 끝으로 나의 구원자되시며 생명이신 예수님께 늘 거하며 지내는가?" 영원한 우리의 공급자이신 예수님께 늘 가까이 있어서 그 복과 형통함을 충만히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 25:9)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의 만남을 위한 특별한 장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아플때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야하고, 친구들과 직장동료를 만나기 위해서는 학교나 회사에 갑니다. 때로는 가벼운 만남을 위해서 자신들만이 정한 공원이나 카페에 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만남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무엇보다 40년 이라는 긴 광야의 세월을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특히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것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십계명'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성막 설계도'입니다.
먼저 십계명은 400년 이라는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으로 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될 법과 규범이었습니다. 반면에 성막은 그들의 삶과 여정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 ,즉 불확실한 광야의 길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용서의 말씀, 거룩하신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는 장소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을 광야와 같은 어려운 삶과 길을 헤쳐 나아갈 때에도 반드시 그 안에서 구별된 거룩과 평안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다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힘들고 바쁜 현실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과 위엄 그리고 말씀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끝으로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희는 세상 밖에서도 부름받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전파하는 주의백성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과 여정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교회는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장 중요한 만남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장소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 곧 '교회'가 제일 1순위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누가복음 10:2)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복음을 전하는 '추수할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진정으로 그 복음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진리의 기쁜소식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아갈 때에 자주 범하게 되는 실수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추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데, 저희는 종종 그 권한이 우리에게도 주어졌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전도 할 때에 지나치게 사람들을 의식한 나머지 추수하지 못할까 염려, 근심하며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 저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파송하기 앞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누가복음 9:5)
이 말씀은 그저 제자들에게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설명하신 것뿐만이 아닙니다. 곧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라는 말씀속에서 결국, 표시를 남기어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의 훗날 결과와 추수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권한 아래에 있음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여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HERR)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저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거두시는 것도, 추수하시는 것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전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저희들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보다 저희들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온전히 '복음'을 전했는가를 눈여겨 보실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의 공로', '나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보내시어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의 주인되시며 구원자되십니다. 이 고백가운데에 어떠한 환경과 상황속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19)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지셨던 목회적 방향성 곧 대강령(Grundlinie)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은혜의 해'라 불리우는 '희년'(Jubilee)을 선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은 7일 되는 날 쉬는 것, 안식년은 7년 되는 해 쉬는 것입니다. 이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다음 해인 오십 번째의 해를 희년이라고 하는데, 이때 모든 빚이 탕감되고 감옥문이 열려서 죄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희년은 마침내 예수님으로부터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정해진 기간이 아니라 누구든지 어느 때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분의 은혜가 임하면, 더이상 가난한 자도 병든 자도 포로된 자도 죄인된 자도 되지 않고, 오직 의롭다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자유하게 살아갈 권리와 신분,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를 주(Lord)로 고백하며, 그 분의 몸된 지체로서 존재합니다(엡 1:22-23). 교회의 사명은 머리되신 예수께서 선포하신 '은혜의 해' 곧 희년을 동일하게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단체와 직장, 학교, 특정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에 알맞은 자격과 조건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들어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그 어떠한 조건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격이 없으며, 차별받고 억압받는 죄인된 사람들이 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새 힘과 위로를 받아 변화되어 새로운 소망과 자유함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희년을 선포하는 교회의 올바른 기능이자 역할입니다.
"누구든지 주저말고 교회로 나아오십시오!" "와서,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생수를 맛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상처와 억압으로부터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희년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 억압과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 전쟁과 기후위기, 질병 등으로 오랜시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게하소서!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3)
하나님이 믿는 저희들에게 주신 영적 싸움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 속에서 움직이는 에너지와 같이 '역사'(Wirkung)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들을 어필하고자 자기들만의 고유의 장점과 프로필들을 가꾸어 살아갑니다. 이를 위해 자격증을 따기도 하며, 경력을 쌓기도 하고 운동과 취미생활 등 자기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갈고닦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듣고 묵상하는 일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복음을 깨닫게 해주는 '믿음'을 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움과 약한 마음을 물리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1서 2:14)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를 깨끗하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6)
믿음과 능력, 거룩으로 믿는 저희들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참된 성도로서의 진정한 프로필을 만드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듣고 사모하며 나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