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9:15)
감사는 때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많기에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항상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감사할 것을 생각하라고 강조합니다. 영국의 침례교 목사인 Graham Sparkes는 우리가 아침에 먹는 단 하나의 빵(Brot)에서도 그 안에 있는 신비를 보며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묵상집에 나온 그의 기도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당신이 빵에 손을 대는 순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기억하라.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당연하게 있었는지를. 얼마나 많은 신비가 이 빵안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발견하라. 해와 땅의 신비를.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정들을. 바람과 비의 수고를...이 모든 것들은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복(Segen)이다."
이 기도문 처럼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은사(Χάρις )는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신 모든 선물(Geschenk)과 은혜(Gabe)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안에 돋보이는 은사들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사, 선물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들을 저희는 항상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생명의 빵'(Das Brot des Lebens)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 신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예수님안에서 그 분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안에서 한 자녀이자 한 가족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시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과 그리고 그분 안에서 하나된, 형제자매된 우리 공동체들을 바라보고, 그 신비를 바라보며, 감사의 삶을 실천하시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31)
어려움과 위기가 찾아올 때에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버티기보다는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예상보다 쉽고 간단하게 이를 잘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에서 외국사람으로서 해외이민 또는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혼자서 행정처리, 비자, 집, 학교, 직장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때 먼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조언이나 지원 또는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혼자서 오랜시간 고민했던 문제들이 수월하게 풀려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움들로부터 본인도 점차 적응을 하며 독립적인 힘이 생겨나 점점 더 풍성한 외국생활의 정착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자신이 받은만큼 누군가에게 다시 도움을 드리는 것도 살아가는데 중요한 이치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얼핏 혼자서 세워가는것 같지만 그 속내는 사실 많은 도움과 지원으로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임을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든 그렇지 않든 성장하지 않는 믿음은 항상 '초보자'의 단계에 머무릅니다. 그때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은 누구일까요?
그 분은 바로 우리의 위로자(Tösten)시며 조력자(beistand)가 되시는 '성령'이십니다. 초대교회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갓난아기와도 같던 시절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에 있던 처음교회들은 내부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많은 어려움과 혼란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온 교회 성도들이 평안함속에 든든히 세워져가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성령님의 '조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성령님은 각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가르치시고, 성장시키시는 '보혜사'(保惠師) 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가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6)
우리의 능력이상으로 해결불가능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듯이 믿음에 있어서도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매일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들로 나의 믿음이 시험이 들고 의심이 들 때 더 나아가 믿음의 능력과 열매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낄때 먼저 성령님을 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의 개인적인 간청, 간구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성령님을 먼저 구하면 평안함가운데 그분의 도우심으로 나도 모르게 해결되는 일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믿음에 위로자되시며 조력자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매일을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8)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나 자신은 오직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꿈과 직업, 나의 가족과 친구, 나의 역할과 책임, 나의 몸과 마음 등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소유로 연결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은 나 자신이, 나의 모든 소유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로 부터 있다는 것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떠한 분이신지 스스로 말씀을 하신 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신명기 32:39)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생사화복(生死禍福)이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는 그분의 손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살아갈 때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이 나에게 있다고 쉽게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삶을 개척하고, 나의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오직 나 스스로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진정으로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더 이상 나의 삶이 내 것이 아니며, 나의 삶과 죽음도 하나님께 달려있으며,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소유를 그분께 드리는 헌신의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곧 이 모습은 나 자신보다 비교할 수 없는 더 높고 뛰어나신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 앞에 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주님 앞에 내려놓는 그 사람을 결국에 사용하십니다.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나라와 이름을 전파하시며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곧 나의 고집과 소유욕이 여전히 강한 사람안에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임하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 내 자신을 모두 드린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결과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나의 삶을 어떻게 고백하며 살아가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의 생각과 고집은 여전히 뾰족하게 곤두서있나요? 아니면 익으며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와 같이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내어드리는 삶을 살고 있나요? 사나 죽으나 우리의 모든 소유는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복음의 일꾼된 자녀로 살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편 62:1)
오늘날 우리의 눈과 귀는 매우 바쁘게 돌아갑니다. 예를 들어 내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하루 24시간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소식과 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대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삶에 큰 편리성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반대로 많은 단점들을 또한 야기시켰음을 인식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쉼'(Pause)과 '고요'(Stille)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현대인들의 과잉자극과 과잉활동을 지적하면서 '피로사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곧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속에서 비교와 경쟁, 성과주의와 자기포장이라는 압력가운데 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쉼과 고요가 없는 상황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나의 영혼을 가다듬고 침묵과 고요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 있습니다. '조용히',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내게 둘러싼 현재의 모든 상황을 잠시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갔던 나의 신경에서 다시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다스리시는 주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Stille zu Gott)
무엇보다 이러한 행동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신앙의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모든 상황을 잠시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께 향함으르써 주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내 영혼을 잠잠히 주님께 맡김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즉 쉼 없이 달리며 고통 받는 우리들의 '톱니바퀴' 같은 일상속에서, 이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함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만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내 고통스러운 삶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간절히 믿고 의지하는 고백입니다.
따라서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도 '잠잠하게, 조용히' 주님께 기도하며 내 삶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여러분들은 바쁜 삶속에서도 얼마만큼의 시간을 잠잠히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나요? 우리들의 영혼을 조용히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주님의 은혜와 구원하심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세기 9:13)
찬양 중에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라는 CCM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 찬양 가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나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해.."
이 찬양의 가사에는 깊은 신앙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끊임없이 살아가는 존재인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세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안과 걱정, 두려움을 몰아내고, 오직 자신의 삶에 주님 만을 자랑하고 높임으로써 참 평안과 자유, 흔들림 없는 화평(Friede)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근심하며 불안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참 만족'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안에서 이미 확실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복과 평안, 만족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원하는 그것들을 반드시 부어주셔야만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미 맺으신 '언약', 곧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시며, 나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다는 그 '언약'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만족은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기도할 때에 복과 만족 그 자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들과 맺으신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더욱더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믿음'(Der Glaube an den Bund Gottes)을 구해야 합니다. 곧 우리가 그 언약속에 담겨진, 흐릿한 '구름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얻기 위해선, 그 구름을 뚫고 볼 수 있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구름을 통과한 그 끝에서 저희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 참 행복과 만족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과 그 분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이미 저희에게 주어진 언약의 보물상자를 활짝 여시고, 그 안에 담겨진 보화를 통해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주님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베드로전서 5, 8-9a)
죄는 헬라어 원어로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하는데 이 뜻은 "목표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원래 목표는 바로 '오직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계획과 질서'를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목표로부터 이탈한 것이 바로 '죄'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첫 번째 존재이며, 죄 자체입니다(창세기 3장). 더 나아가 그는 모든 인간이 원래의 목표인 하나님의 창조질서로부터 벗어나 '죄'를 짓도록 끊임없이 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간교에 맞서서 어떠한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먼저는 말씀대로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조심하고 깨어있는 것'은 구체적인 우리의 실천적인 모습들입니다. 그것은 죄를 짓게하는 유혹의 장소나 매개체를 피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며 흔들리게 하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모임, 시간 등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오직 죄를 일으키게 하는 어떠한 가능성에도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지킴으로써 죄에 맞설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와 소통을 통해서 저희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본래 악하고 연약한 저희들의 힘과 의지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승리하셔서 구원을 베푸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저희는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매일 기도와 말씀, 영적인 훈련을 통해 성령을 간구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자 애쓰는 사람만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고 복된 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삯은 불행이고 고통이며, 결국엔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롬 6:23). 우리가 삶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방향을 벗어난 모습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다시 본래의 방향설정으로 맞추어 가길 원합니다. 또한 나에게 평소에 습관적으로 죄를 게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이를 끊어내고, 내 영혼을 잘 지켜나가는 훈련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끝으로 기도와 말씀, 찬양으로 무장하여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죄의 길이 아닌, 복과 생명의 길로 매일을 살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레위기 26:3,5)
기복(祈福)신앙이란 복의 기원을 주목적으로 하는 무속적인 종교행위 입니다. 이 안에는 현세적인 물질추구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내부에서 많은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정말 이러한 복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열망이 전혀 옳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저희는 말씀속에서 항상 백성들에게 복(Segen)을 베푸시길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시키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수기 6:24-26)
말씀처럼 믿음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잘 받는 것도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복을 저희가 구하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이라는 전제를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뜻을 구한 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늘 사랑하며, 그 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분의 거룩하신 모습을 닮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처럼 우리가 주신 계명을 잘 믿고 지켜나아갈 때, 저희들에게 필요한 복과 공급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경적 복의 원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저희들의 가장 큰 복과 공급은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떡'(Das Brot des Lebens)이신 예수님을 알고 영접하는데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은 저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영원한 공급자 이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삶 속에 반드시 필요하고, 바라는 기도제목들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정말 나의 필요보다, 나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더 믿고 사랑하며 있는가?, 어려운 순간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자하는가? 끝으로 나의 구원자되시며 생명이신 예수님께 늘 거하며 지내는가?" 영원한 우리의 공급자이신 예수님께 늘 가까이 있어서 그 복과 형통함을 충만히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 25:9)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의 만남을 위한 특별한 장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아플때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야하고, 친구들과 직장동료를 만나기 위해서는 학교나 회사에 갑니다. 때로는 가벼운 만남을 위해서 자신들만이 정한 공원이나 카페에 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만남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무엇보다 40년 이라는 긴 광야의 세월을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특히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것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십계명'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성막 설계도'입니다.
먼저 십계명은 400년 이라는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으로 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될 법과 규범이었습니다. 반면에 성막은 그들의 삶과 여정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 ,즉 불확실한 광야의 길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용서의 말씀, 거룩하신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는 장소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을 광야와 같은 어려운 삶과 길을 헤쳐 나아갈 때에도 반드시 그 안에서 구별된 거룩과 평안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다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힘들고 바쁜 현실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과 위엄 그리고 말씀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끝으로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희는 세상 밖에서도 부름받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전파하는 주의백성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과 여정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교회는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장 중요한 만남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장소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 곧 '교회'가 제일 1순위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누가복음 10:2)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복음을 전하는 '추수할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진정으로 그 복음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진리의 기쁜소식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아갈 때에 자주 범하게 되는 실수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추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데, 저희는 종종 그 권한이 우리에게도 주어졌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전도 할 때에 지나치게 사람들을 의식한 나머지 추수하지 못할까 염려, 근심하며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 저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파송하기 앞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누가복음 9:5)
이 말씀은 그저 제자들에게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설명하신 것뿐만이 아닙니다. 곧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라는 말씀속에서 결국, 표시를 남기어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의 훗날 결과와 추수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권한 아래에 있음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여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HERR)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저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거두시는 것도, 추수하시는 것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전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저희들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보다 저희들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온전히 '복음'을 전했는가를 눈여겨 보실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의 공로', '나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보내시어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의 주인되시며 구원자되십니다. 이 고백가운데에 어떠한 환경과 상황속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19)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지셨던 목회적 방향성 곧 대강령(Grundlinie)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은혜의 해'라 불리우는 '희년'(Jubilee)을 선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은 7일 되는 날 쉬는 것, 안식년은 7년 되는 해 쉬는 것입니다. 이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다음 해인 오십 번째의 해를 희년이라고 하는데, 이때 모든 빚이 탕감되고 감옥문이 열려서 죄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희년은 마침내 예수님으로부터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정해진 기간이 아니라 누구든지 어느 때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분의 은혜가 임하면, 더이상 가난한 자도 병든 자도 포로된 자도 죄인된 자도 되지 않고, 오직 의롭다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자유하게 살아갈 권리와 신분,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를 주(Lord)로 고백하며, 그 분의 몸된 지체로서 존재합니다(엡 1:22-23). 교회의 사명은 머리되신 예수께서 선포하신 '은혜의 해' 곧 희년을 동일하게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단체와 직장, 학교, 특정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에 알맞은 자격과 조건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들어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그 어떠한 조건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격이 없으며, 차별받고 억압받는 죄인된 사람들이 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새 힘과 위로를 받아 변화되어 새로운 소망과 자유함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희년을 선포하는 교회의 올바른 기능이자 역할입니다.
"누구든지 주저말고 교회로 나아오십시오!" "와서,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생수를 맛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상처와 억압으로부터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희년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 억압과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 전쟁과 기후위기, 질병 등으로 오랜시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게하소서!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3)
하나님이 믿는 저희들에게 주신 영적 싸움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 속에서 움직이는 에너지와 같이 '역사'(Wirkung)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들을 어필하고자 자기들만의 고유의 장점과 프로필들을 가꾸어 살아갑니다. 이를 위해 자격증을 따기도 하며, 경력을 쌓기도 하고 운동과 취미생활 등 자기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갈고닦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듣고 묵상하는 일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복음을 깨닫게 해주는 '믿음'을 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움과 약한 마음을 물리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1서 2:14)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를 깨끗하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6)
믿음과 능력, 거룩으로 믿는 저희들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참된 성도로서의 진정한 프로필을 만드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듣고 사모하며 나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