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세상으로의 짧은 여행
삶은 세상으로의 짧은 여행
│사설│자기통제의 역설: 미래를 준비하는 현대인의 딜레마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4.12.2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056
낮은 자기통제는 범죄의 원인으로서 오랫동안 연구돼 왔는데, 최근에 자기통제와 범죄율을 기후변화와 엮는 흥미로운 이론이 등장했다. 클래시(CLASH)이론으로 불리는 "인간의 기후, 공격성, 자기통제에 관한 이론(CLimate, Aggression, and Self-control in Humans)"이 그것이다. 범죄율은 덥고 습한 저위도 지역에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클래시 이론은 기후에 따라 범죄율의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클래시이론은 평균기온이 낮고 연간 기온의 편차가 큰 지역에서 범죄율이 낮게 나타나는 현상을 전제로 이론을 전개한다. 연간 기온의 편차가 크다는 것은 뚜렷한 계절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름과 가을 당장 눈앞에 먹을 것이 풍부하더라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추운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또한, 날씨가 좋을 때 생산력을 극대화하고, 추운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효과적으로 저장하기 위해서는 씨족 집단의 범위를 넘는 협업도 필수적이다. 이에 고위도 지역에는 미래지향적 시간관념을 가지고 협업을 하며 자기통제능력이 발달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쉽다. 즉, 오늘날에는 기후가 우리의 생존과 재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기후적인 악조건을 극복한 사람들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것이다.
물론 클래시이론은 진화론적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데이터로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클래시이론의 설명이 유효하다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높은 교육열 또한 이론에서 말하는 미래지향적인 관점 그리고 높은 자기통제력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가 단기간 초고속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돼 왔다. 즉, 미래지향성과 자기통제력은 개인과 더불어 사회의 존속과 번영의 원천이 돼 왔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대체로 고위도 지역에 분포하며, 저위도 지역의 경제적 번영은 대체로 중동 산유국에 국한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제 인류에게 미래지향성과 자기통제력의 특이점이 온 것 같다. 지금까지 사회 발전의 근간이 돼 온 구성원들의 미래지향성과 자기통제력은 이제 사회의 존속을 위협한다. 실제로, 위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으로는 범죄율과 선진국의 분포도 있지만, 출산율 또한 고위도 지역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물론 낮은 출산율의 원인은 개인주의적 문화의 확산이나 행복추구 등 다방면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자녀양육의 부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꼽고 있는데, 이는 미래지향적 사고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지향적 예측에 따라, 우리는 높은 자기통제력이라는 무기를 활용해 유전자의 재생산이라는 본능적인 충동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자기통제는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고 유전자의 확산 가능성을 높이는 기제였으며, 이러한 유전자가 넘쳐나는 집단의 번영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이제, 높은 자기통제 능력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으로 변모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과 자기통제의 방향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는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물론 미래지향성과 자기통제력은 개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특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미래지향적 관점이 불안과 두려움의 원천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자기통제력이 단순히 노후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나를 희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이 둘은 우리의 삶을 "평생" 옥죌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가장 찬란한 그리고 뜨거운 여름과 같은 20대 초중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때로는 오늘을 즐겨 보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보자.
│사설│뭣이중헌디: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4.6.3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3837
"금은보화 부귀영화 가진다 해도 어차피 두고 갈 것을 춤추고 노래하자 웃으며 살아가자 (중략)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정답은 바로 사랑이더라". -임영웅의 <뭣이중헌디> 中-
임영웅의 노래 가사와 같이 물질적 가치와 정서적 가치 간의 갈등은 예술과 문학의 오랜 주제가 돼 왔다. 범죄학 이론들도 물질주의 및 정서적 가치와 범죄 간의 관계를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범죄원인론으로서 긴장이론의 하나인 "제도적 아노미 이론"이 대표적이다.
아노미라는 개념부터 살펴 보자면, 에밀 뒤르켐은 자신의 저서 <사회분업론>에서 사회의 급격한 변동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규범이 정립되지 않을 때 혼란스러운 무규범 상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뒤르켐은 이러한 상태를 아노미(anomie)라고 칭했다. 아노미 상태는 일탈과 범죄를 촉진하는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뒤르켐의 주장은 범죄원인론의 한 분류로서 긴장이론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다.
긴장이론의 하나인 메스너와 로젠펠드의 "제도적 아노미 이론"은 미국 사회의 범죄 문제에 초점을 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인 사회요소와 비-경제적인 사회요소 간의 불균형이 아노미를 낳고 이는 사회적 통제의 약화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범죄와 일탈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즉,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제도와 가치들 중 경제적인 성공과 관련된 것들은 강조되는 반면 물질적인 성취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은 무시된다. 사람들은 물질적 성취를 위한 경쟁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간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종 비-경제적인 가치와 규범은 경시되고, 이는 일탈과 범죄의 증가로 연결된다. 더 쉽게 말해, 시장경제가 사회를 지배할 때 범죄문제가 심각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물질적 번영을 강조하는 미국적인 가치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우리의 상황과도 매우 닮았다. 어쩌면 현 시점에서는 미국보다도 우리 사회가 물질을 더 강조하는 사회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몇 해 전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1순위로 나타났다. 스페인(1순위: 건강)과 대만(1순위: 사회)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응답자들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가족을 선정하였으며, 시장경제의 정점에 있는 미국의 경우도 1순위는 가족, 2순위는 친구이며, 물질적 풍요는 3순위에 불과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물질을 고도로 숭배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데, 거시 사회의 관점에서, 물질적 성공의 강조는 그 사회의 산업 경쟁력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국가는 국가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구성원을 산업사회, 경쟁사회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일정 수준까지는 국가의 정상적인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경제적인 성공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에서 개인은 병들기 쉽다. 뒤르켐은 아노미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범하는 경우가 증가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물질주의가 사회를 지배할 때 사람들은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기보다는 도구로 바라보며, 사회적·정서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나 행동은 물질적 성취를 위한 장치로 전락해 버린다. 종국에는 각자가 그 자신마저도 도구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며, 자신의 인생과 행복을 위해 시작했던 노력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옥죄어 와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목전의 기말고사보다도 우리 인생에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일단은 밀물처럼 들이닥친 기말고사를 처리하고 한 번 고민해 보자: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설│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4.3.4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3703
새 학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말 선출된 각급 학생회의 학생회장 등을 중심으로 학생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있으며, 지역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총선도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각기 자신이 좋은 “일꾼”임을 자처한다. 선거에서 선출된 자들이 그 집단 혹은 지역을 대표해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사실 이들은 조직이나 지역의 최상위 의사결정자로서 핵심적인 자원을 통제하고 분배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된다.
리더의 성공은 조직의 성공으로, 그의 실패는 조직의 실패로 귀결되곤 한다. 이런 의미에서 리더는 그 조직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구시대적인 영웅사관으로 취급될 수도 있지만, 아시아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놓은 축구팀이 아시안컵에서 모래알처럼 무너지는 것을 보면 리더의 역할을 간과하는 것도 옳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끊임없이 평가받고 비판받는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십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좋은 리더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많은데,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경영학자로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의 저작들에서도 리더와 관련한 금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성공하는 리더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라는 것이다. 즉,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는 조직을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는 도구로 희생시키지 않으며, 조직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자이다.
오랜 노력과 투쟁을 통해 리더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때로 조직의 자원을 전리품처럼 여긴다. 이들은 조직의 자원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여기고, 이를 활용해 노골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시한다. 때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자신의 결정이 마치 조직, 그 구성원, 또는 더 큰 대의를 위한 것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더 나은 자리를 위한 중간다리 쯤으로 여기며, 조직의 장기적인 성공보다는 자신의 자리보전이나 소위 ‘영전’을 위한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기관이나 조직의 장을 스펙이나 특권으로 여기는 리더들이 이런 자들이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리더들이 모두 이처럼 개인의 욕심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또 다른 부류는 조직의 목적 및 비전,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방법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이들은 선할 수는 있지만 무능한 리더이다. 이들은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으나 효과적이진 않다. 이들은 조직의 목적, 환경,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이나 다른 곳에서 성공을 거뒀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려 할 수 있다.
때에 따라 이러한 리더들도 성공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리더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리더가 아니라, 조직의 목적과 비전을 이해하며 조직의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행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실제로 자영업자 컨설팅을 하는 콘텐츠들을 보면, 사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나 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는 철저하게 그 업체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고,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회와 정치인들의 활동이 우리의 삶과는 다소 무관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적 환경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들로서 우리 삶의 맥락과 우리가 속한 집단의 성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봄에는 이들에게 조금 관심을 가져보고, 비판과 응원의 메시지를 던져보는 것도 좋겠다.
│사설│상실의 시대: 청년들은 조용히 소멸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3.09.11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3477
살인은 하루에 한 건 꼴로 발생한다.
대부분의 살인범죄는 면식관계, 그러니까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 간에 발생한다. 범죄통계를 살펴보면 가족 등 친족에 의한 살인이 가장 빈번하며, 이웃·지인이나 연인관계에서의 살인도 드물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뉴스 등의 미디어는 낯선 이에 의한 살인 사건이 비일비재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살인의 평균적인 모습은 오히려 가족이나 지인 등 익숙한 관계에서의 고질적인 갈등이 폭발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러한 살인범죄(기수)는 1년에 300건 내외로 발생하는데, 이는 하루에 한 건 꼴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도 살인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폭행이나 성폭력 등 폭력범죄는 무더운 여름철에 많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번 여름에는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폭력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5월 부산에서 발생했던 정유정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8월 말까지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리는 범죄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7월 21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역에서 조선에 의한 칼부림 사건이, 8월 3일에는 성남시의 서현역에서 최원종에 의한 흉기 난동 사건이, 8월 17일에는 서울 관악구 관악산 둘레길에서 최윤종에 의한 강간살인이 발생했다. 이들의 범죄는 범행대상이 불특정하다는 점에서 무차별 범죄 혹은 범행의 동기가 일반적인 범죄사건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이상동기 범죄로 불린다.
사회적으로 단절된 청년들의 범죄였다.
전술한 것처럼 살인범죄는 하루에 한 건 정도는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이 네 건의 흉악범죄는 짧은 기간 사이에 발생한 이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살인범죄의 빈도로만 본다면, 통계상 큰 이상은 아니다. 그런데 사건의 특징을 되짚어보면 평균적인 살인범죄의 모습과는 다소 상이한, 이들 사건들이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각각 1999년생, 2001년생, 1990년생, 1993년생으로 20·30대의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한 청년들이 자신들과 일면식도 없는 낯선 대상을 향해 가해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했다라는 표현을 통해 정유정 등이 저지른 범죄사건의 책임을 사회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문제는 우리 사회가 청년 문제를 취업률, 실업률, 출산율의 문제로 이해하고 노동공급과 청년유출과 같은 생산성의 방정식으로만 접근하는 사이에 우리사회 곳곳에 괴물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조용히 소멸하고 있다.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소멸하고 있다. 정유정 등이 사회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면,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바라보는 산업적인 관점에 적응하지 못한 또 다른 청년들은 영구적으로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20대 뿐만 아니라 10대의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MZ세대라는 편견을 통해 이들을 외계인처럼 묘사하는 데에는 광적인 반면, 청년들의 자살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한다. 지역의 소멸 위기가 지자체와 정치인들 사이에서 시끄럽게 메아리치며 막대한 예산이 오간다. 지자체는 죽어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청년유출을 우려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눈앞에 서있는 청년들은 조용히 소멸하고 있다.
│사설│ChatGPT 시대와 질문의 기술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승인 2023.05.08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3341
필자가 강의를 시작하며 처음 맡았던 과목 중 하나는 연구방법론이었다. 연구방법론을 가르칠 때마다, 연구(study)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고 연구와 학습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그 원리가 같다고 설명해 왔다. 다만, 학부생 때까지의 학습이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결한 질문의 답을 배우는 "지식을 소비하는 연구"라면 대학원 과정부터는 아직 해결된 적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라는 이야기로 첫 강의를 열곤 했다. 이와 같이 연구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며,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Know-how'보다 'Know-where'이 중요하다"라는 적어도 십 수 년 이상 된 진부한 표현도 질문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이는 정답을 직접 아는 것 만큼이나 그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문적인 지식부터 일상생활의 잡기까지 무수한 'know-how'에 접근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know-how'를 직접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답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는 효과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Open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ChatGPT는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종종 ChatGPT가 "거짓말"을 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예컨대, ChatGPT에게 동아대 경찰학과 교수 한 명을 알려달라고 질문했더니 "최두석"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소개하며, "라광현"이라는 교수는 없다고 대답한다. 반면, 전공과 관련한 질문(무인점포에서 발생 가능한 범죄)에는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통찰력 있는 답변을 하기도 한다.
ChatGPT 등 AI가 생산적인 답을 할지 소위 "거짓말"을 할지는 AI의 능력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사용자가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는 다시 말하여 질문을 잘하는 것도 좋은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AI와 대화를 할 때 좋은 질문이란 어떤 질문일까? ChatGPT가 대답하기를, 간단하며 명확한 질문, 관련 정보 및 맥락의 제공, 질문 범위 한정, 문법 및 맞춤법 확인 등의 조건을 갖추어 ChatGPT에게 질문하라고 하며, 이는 다른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에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ChatGPT가 제시한 기본적인 요건 외에, 좋은 질문을 위해 중요한 또 다른 능력은 메타인지이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 즉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다. 예를 들어, 자기평가 메타인지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AI로부터 좋은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경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할 경우 사용자와 AI 사이에 지루하고 무의미한 텍스트만 오갈 뿐 의미 있는 지식을 생산하지는 못하게 된다.
학문간 융합이 강조되는 이 시대는 정말로 답변만큼이나 학문간 경계를 좁히고 허무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대에 ChatGPT는 메타인지역량을 신장하고 좋은 질문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트레이너로도 활용될 수 있다. 아직 ChatGPT를 사용해보지 않았다면 실용적인 목적이든 메타인지 능력 개발을 위해서든 혹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이든 당장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켜고 한 번 사용해보길 권한다. 당신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사설의 일부는 ChatGPT를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사설│마음속의 주홍글자 지우기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2.11.07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3107
몇 해 전, 용산역 인근의 국숫집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한 노숙자가 국수집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달아났는데, 주인 할머니는 돈이 없어도 위험하게 뛰지 말고 배가 고프면 다시 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 노숙자는 주인 할머니의 외침에 주저앉아 울었고, 결국 해외로 건너가 재기에 성공했다. 주인 할머니는 노숙자의 행색을 보고 처음부터 돈이 없음을 알았다고 하는데, 만약 주인 할머니가 노숙자의 행동을 경계하다가 달아나는 순간 주변의 도움을 얻어 잡았다면 그 노숙자의 삶은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의 삶과 같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사회학 혹은 범죄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낙인이론과 관련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누군가가 일탈 행위를 저지른 것이 우연히 다른 사람 혹은 형사사법기관에 의해 적발이 될 때, 그 사람에게 일탈행위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은 그 사람을 대할 때 그에게 찍혀 있는 낙인에 반응한다. 낙인은 사회적인 편견의 일종으로 비단 불법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우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성적 정체성에 따른 낙인이나 코로나19 감염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임대아파트나 빌라 거주자를 비하하는 '휴거(휴먼시아 거지)'나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그리고 전·월세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전거지', '월거지'라는 낙인도 존재한다. 또한, 출신 지역에 따른 낙인, 대학 서열에 따른 낙인도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실상 누구나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낙인이론에 따르면 사회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낙인찍힌 사람 또한 스스로를 일탈행위자로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를 일탈행위자로 규정한 사람은 타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에 맞추어 행동하게 된다. 이는 일탈행위자를 중대한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으며, 사회생활이 가능한 정신질환자가 사회로 내딛는 발걸음을 막아설 수 있으며, 거주지에 따라 놀림받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가능성을 제한하게 만든다.
그런데, 본래 낙인이론은 일탈행위의 해악보다도 주변인들 혹은 형사사법기관이 일탈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오명을 씌우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여타 사회적인 낙인의 경우 사실 낙인의 대상이 문제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낙인찍는 행위의 주체가 문제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즉, 비난받아야 할 것은 낙인 찍힌 사람 혹은 그가 가진 어떠한 속성이 아니라 낙인 찍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여러 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은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로 '저항'을 내세운다. 저항은 타인이 찍은 낙인의 내재화를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낙인찍는 자들은 낙인의 대상자들이 일탈경력, 장애, 사회경제적 계층, 출신지 등 이들이 가진 특정한 속성을 조롱하며 극복하지 못할 것처럼 여기지만 이는 편견일 뿐이며, 이를 극복한 사례들을 우리 주위에서 무수히 찾을 수 있다. 다만, 낙인효과 내지는 자기충족적 예언 효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효능감이 필요하다.
즉 패배주의와 무력감을 경계하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기대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낙인찍는 자들은 낙인 대상자들이 가지는 기대와 신념은 '희망고문'이라고, 이들의 계획은 '희망회로'에 불과하다고 폄하 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 주홍글자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자신에게 찍힌 낙인인 주홍글자 A의 의미를 간통(adultery)에서 유능함(able)로 변화시킨 것처럼, 삶을 통해 낙인에 저항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어야 한다.
│사설│포스트코로나 시대와 음주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2.05.02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874
2020년 2월 29일 시작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난 18일을 마지막으로 2년 1개월 만에 해제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단됨에 따라 식당 예약이 늘어나고 결혼식 예약도 증가했다. 사람들의 외부 활동과 사교 활동의 증가가 예상되자 코로나19 이후 침체기를 맞이했던 주류업계가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실제로, 주류업체들의 올해 2분기 매출액이 코로나19 이후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했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주류 관련 업계 종사자와 그 가족들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겪었을 어려움을 생각하면 주류 매출 증가는 반가운 일이지만, 음주가 동반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생각하면 마냥 기대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술은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함께하며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위로해 주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절제되지 못한 음주는 건강을 위협하기도 하며 오히려 인간관계에 해를 입히기도 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음주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 중 하나는 주취자에 의한 범죄 문제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2년도부터 2016년도 사이에 발생한 살인, 강간, 폭력 범죄의 30% 이상이 음주 후 범행으로 나타났으며, 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발생한 가정폭력범죄 및 성폭력범죄의 70% 가량이 음주와 관련돼 있었다. 즉,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 특히 강력범죄의 상당수가 음주와 관련이 있다.
음주는 범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임에도, 주류 범죄학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전술한 것과 같이 범죄학에서 음주와 범죄 간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일부 이론들은 둘 간의 관계에 시사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범죄학 이론 중 일상활동이론에 따르면 범죄는 △ 범행 동기를 가진 범죄자 △ 적절하며 매력적인 범행대상 △ 보호자 혹은 보호능력의 부재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발생한다. 즉,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이 마주칠 때 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상활동이론의 설명을 음주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음주는 평범한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자극해 범죄의 동기를 제공할 수 있으며, 늦은 시간대의 활동을 증가시키거나 신체통제능력을 감소시키는 등 범행 대상으로서의 매력성을 증가시키고 보호능력을 감소시킨다. 즉 △ 음주에 따른 판단력과 통제력의 저하 △ 난폭함과 대담함 △ 지연된 반응과 인지능력 저하 등은 평범했던 누군가를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고 혹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음주가 주로 이루어지는 시간과 장소의 경우, 일상활동이론에서 말하는 범죄 혹은 범죄피해 발생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 쉽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기간 지속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단됨에 따라 사회 각계의 기능과 활동들이 정상화되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중간고사까지 마쳐 학업 부담을 덜어낸 대학생들의 MT와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MT와 축제가 아니더라도 삼삼오오 모여 인생과 미래에 대한 여러 모양의 감정을 담아 시원한 맥주 한 캔, 쓰디쓴 소주 한 잔 기울일 자리가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적응하고 학업적인 성취를 달성하는 데에도, 대학생활의 낭만을 누리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을 우리 대학 학생들을 응원하며, 당신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그 공간과 시간이 늘 안전하길 바란다.
│사설│ 코로나19 시대, 공동체의 생과 삶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승인 2021.10.05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663
코로나19 최초 감염이 보고된 지 2년이 가까워졌다. 그간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죄학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감염병 확산이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분석해왔다. 해외의 연구들은 코로나19 확산이 범죄유형별로 차등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며, 흥미롭게도 코로나19로 인한 이동과 대인접촉의 감소가 범죄율을 감소시킨다는 연구들도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코로나19가 범죄 및 일탈에 미친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였다. 다만 이 연구에서는 코로나19가 각 유형의 범죄 및 일탈에 미친 영향을 뚜렷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피하게 공동체적인 삶을 저해하고 있다.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공동체의 해체는 자살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전술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연구에서도 다른 범죄 및 일탈 유형과 달리 자살은 코로나19 확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접촉을 제한시켜 정서적·경제적으로 공동체를 쇠락시키는 요인이며 자살률의 증가는 그 결과물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타율에 의한 개인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의 확산은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를 방해하며 개인들을 코로나 블루라고 지칭되는 우울감에 빠뜨렸고, 코로나19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혹은 대처하기 어려운 업종의 종사자들은 경제적인 위기에 처했다. 이는 수년 후에 자살률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귀결된다. 실제로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사회 격동의 파고가 지나고 수년 후에 자살률이 증가해왔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자살률 증가를 예견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자살률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어느 정도 예정된 미래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과거에 해당한다. 소위 '꼰대'와 '라떼'라는 유행어가 금언처럼 회자되는 오늘, 타인의 삶에는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며 공동체주의를 만능해결책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우울증과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자해를 하는 청년들이 급증하였다는 통계치와 자영업자들이 연속적으로 자신의 생과 삶을 포기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대학사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 전반의 무력감 극복을 위한 대학사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사회는 대학과 학생 모두 학령인구 감소, 청년 실업 증가 등으로 스스로가 위기 속에 살고 있어 타인들의 삶에 관심을 두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학사회는 역사적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위기 대응의 모멘텀을 제공해왔고, 이러한 모습이 대학의 신뢰와 권위가 하락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대학에 기대하는 것일 것이다. 빽빽한 안개 속을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과 민초들을 집어 삼켜버리려는 듯한 코로나19의 암담한 파고 앞에서, 대학사회가 *절전지훈의 해법을 찾아 대학공동체의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절전지훈(折箭之訓): 가는 화살도 여러개가 모이면 꺾기 힘듦
│사설│성범죄 공판 딜레마와 공론의 부재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2021.04.05
링크: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428
형사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고인 자신이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가 피고인에게 죄가 있음을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밝혀야 한다는 원칙이다. 만약 검사가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인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풀려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정확하게 적용된다면 허위 신고나 공권력의 악의적이며 자의적인 남용으로 인한 무고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한편, 성범죄는 전통적으로 신고율도 낮고 증거를 수집하고 증명하기 어려운 범죄 유형이다. 세간에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표현이 조롱받고 있음에도, 성범죄의 경우 기존 공판에서 확실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자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이 육성으로 B라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하였고 B는 오랜 기간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었을 경우, 현장에서 녹취를 하지 않았다면 범죄 사실을 객관적으로 소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인 성폭행이 있었을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기존의 성범죄 공판은 다른 유형의 범죄 공판에 비하여 범죄자에게 유리한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이에 최근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의 증언이 유일한 경우에도 구체적이며 일관성 있는 증언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내린 사례들은 아마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나름의 사법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잊힌 존재였던 피해자의 권리와 역할이 재조정되는 소위 "형사사법 시스템 리밸런싱(rebalancing the criminal justice system)"이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은 무죄추정이라는 헌법상 국민들의 권리이자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서구권 국가들의 시스템 리밸런싱 또한 사회적, 학술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즉 "시스템 리밸런싱"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명확하고 중요하나 이를 해결하는 수단은 형사사법 시스템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파괴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문제는 문헌과 뉴스 기사 등을 통해 이미 허다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기울어진 성범죄 공판"과 "무죄추정의 원칙" 사이의 딜레마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는 공론화 노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모습보다는 소위 "성범죄 유죄추정의 법칙" 법제화를 통해 불 보듯 뻔한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권이 제대로 된 공론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면 위정자라는 자들이 남녀 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위선적인 수혜자가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든다. 이러한 사이 개인들은 펜스룰(Pence rule)과 성관계 동의 어플 등 개인들 간의 불신을 기반으로 하며 상대방을 잠재적인 무고죄 가해자로 여기는 비생산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특히 여성 직원 자체를 고용하지 않는 등 다양한 형태의 "펜스룰"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유리천장을 심화시키며 여성 집단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대응이기도 하다. 성범죄 가피해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으나 성범죄의 일반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성범죄 공판의 딜레마가 공론화되지 않고 이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여성에 대한 성범죄 피해가 멈추지 않을뿐더러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동시에 무고한 남성의 피해와 불안감으로 인한 과잉 대응 또한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