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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끄러져 길 위에 떨어졌다.

빈손은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 올라가 광건의 칼날 너머로 키리토의 하얀 뺨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이 닿기 직전──.

갑자기 키리토의 뺨에 여느 때와 같은 자신만만한 미소가 돌아왔다. 눈동자 안에는 아직 애절한 빛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검사는 살짝 고개를 가로젓더니 시논의 손을 뿌리치듯 말했다.

"──자. 그러면 결투는 내가 이긴 걸로 해도 되겠지?"

"어......? 어, 어......"

마음의 스위치를 바꾸지 못한 채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려니 키리노는 한층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속삭였다.

"그럼 항복해주지 않겠어? 여자를 베는 건 취향이 아니거든."

너무나도 뻔뻔하고 무례하고 아니꼬운 그 말투에 시논은 겨우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재확인했다. 다시 말해, 등의 왼손과 목덜미의 광검에 구속된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거의 밀착되는 남자의 몸이 덮여 있는 한심한 꼬락서니와──아울러 이 광경이 여과 없이 대기 돔과 총독부 홀, 그리고 전 글록켄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뺨으로 화악 피가 쏠리는 것을 의식하며 시논은 악다문 이 사이로 신음하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랑 다시 한 번 싸울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야. 내일 본선에서 나와 조주할 때까지 무조건 살아남아."

그리고 홱 고개를 돌리고는 항복! 이라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시합 시간 18분 52초.

제3회 불릿 오브 블리츠 예선 토너먼트 F블록 결승전,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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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ni gallery

소드 아트 온라인 6권 팬텀 불릿

typer:Reki 『오타나 이상한것은 증오, 파멸, 경멸, 원망으로 이해해주세요. ㅋㅋ (P.S 타이퍼 멘탈 파멸)』

「이것은 게임이지만 놀이가 아니다.」 SWORD ART ONLINE PHANTOM BULLER 7 「오~빠.」 맑게 갠 일요일, 점심 식탁에서 사랑하는 여동생이 최상급 미소와 함께 그렇게 불렀을 때, 제일 먼저 《불길한 예감》이 번쩍 하고 뇌리에 스친 것은 그야말로 나의----키리가야 카즈토의 평소 행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리라. 입으로 가져가려던 방울토마토를 우뚝 멈춘 채, 「가……갑자기 왜 그래,스구?」 그렇게 물어본 나는 맞은 편 의자의 여동생 정확히는 사촌동생인 키리가야 스구하가 옆의 의자 위에서 집어든 것을 보고 예감이 적중했음을 꺠달았다. 「나 있지, 오늘 아침에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발견했거든?」 그 말과 함께 내 코앞에 들이민 것은 A4 용지였다. 국내 최대급 VRMMO 게임 정보 사이트 《MMO 투마로우》, 약침 엠투의 뉴스 코너를 출력한 프린트물인 모양이었다. 굵은 헤드라인은 【건 게일 온라인 최강자 결정 배틀로열 제 3회 《불릿 오브 불리치》본선 충장 플레이어 30명 결정】이었다. 그 밑에는 짤막한 소개문과 함꼐 모든 출장자의 명단. 손톱을 짧게 다듬은 스구하의 집게손가락 바로 옆의 【F 블록 1위:Kirito (첫 출전)】이라는 뚜렷한 문자열을 흘끔거리며,나는 덕

없는 허세를 부려보았다. 「흐, 흐음, 이름 비슷한 사람이 또 있구나.」「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은걸.」 스구하는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 밑에서 자못 스포츠 소녀다운, 야무지고 청량감 도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현실세계의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떄부터 인터하이와 옥룡기의 단체전 정규선수로 발탁된 검도선수라서, 허약한 쭉쩡이 같은 나는 체력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가상세꼐에서도 스구하는 완전 스킬제 VRMMO《알브헤임 온라인(ALO)》에서 《리파》라는 이름의 요정검사를 조작하며, 그녀의 단아하고도 강렬한 검은 내 막무가내류 검법을 압도한다. 따라서 만일 스구하와 싸운다면, 나는 현실에서도 가상세계에서도 냅다 사과할 수박에 없다. 물론 평소에는 조금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내가 현실세계로 돌아온 후 1년 동안, 우리는 어릴 적의 소원함을 풀고도 남을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여름방학 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아버지가 심하게 삐졌을 정도로. 오늘------2025년 12월 14일 일요일의 점심 식사고, 어머니가 여느 떄처럼 편집부에 묶인 통에 스구하와 둘이 쇼핑부터 시작해, 포치드에그가 들어간 시저샐러드와 해물볶음밥을 함께 만들어 테이블에 ?

뗍?앉아 먹는, 실로 단란한 전개로 시작되었다. 문제의 프린트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 하기야, 똑같나? 음.」 나는 뚜렷하게 인쇄된 Kirito라는 이름에서 억지로 시선을 돌리며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씹으면서 어영부영 말을 잇는다. 「하, 하지만 흔해빠진 이름이잖아? 나도 그냥 본명을 줄여 쓴 거니까. 분명 그 GGO의 키리토도 키리……키리가미네 토고로라든가, 그런 이름일 거야. 응.」 호망한 어휘가 가슴에 따끔따끔 박히는 것은 물론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 떄문이다. 그렇다. 스구하의 손사락이 가리키는 Kirito는 100퍼센트 틀림없는 나 자신의 아바타였다. 내가 왜 그 사실을 감춰야 하냐면, 문제의 건 슈팅 MMO 《건 게일 온라인(GGO)》의 대회 이벤트, 그 이름도 찬란한 《불릿 오브 불리치(BoB)》에 출장하기 위해 홈 월드인 ALO에서 사용하는 아바타 키리토를 GGO 세계로 《컨버트》했기 떄문이다. 컨버트란 《더 시드》플랫폼에서 가동하는 모든 VRMMO에 공통된 기능으로, 어떤 게임에서 키웠던 캐릭터를 다른 게임으로 《능력을 유지한 채》옮길 수 있는, 몇 년 전까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물론 일정한 제한은 있

다. 그중 가장 큰 제한은, 이동 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뿐이며, 아이템과 돈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규칙이다. 그러므로 보통 컨버트는 한순간의 관광이 아닌 영원한 이주로 간주한다. 내가 ALO에서 다른 게임으로 이사한다는 말을 꺼내면, 그 요정나라를 매우 사랑하는 스구하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내가 《키리토》를 GGO에 컨버트해야 하는지를 그녀에게 설명하는 것도 크게 저어되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VRMMO 세계의 다크사이드라고도 할 만한 존재가 깊이 관여되었기 떄문이다 내게 GGO 세계에서 어쩐 조사를 하도록 의뢰한 사람의 이름은 키쿠오카 세이지로, 과거 정부의 《SAO 사건대책팀》소속이었으며 현재는 총무성 VR월드 관할 부문, 속칭《가상과》에 적을 둔 국가공무원이다. 일주일 전 일요일, 키쿠오카는 나를 불러내 어떤 기괴한 사건을 들려주었다. GGO 세계의 시가지에서 한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를《심판》한다는 말과 함께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이썽ㅆ다. 그게 전부라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장난이나 시비로 그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총격을 당한 두 아바타를 조종하는 실제 플레이어는 바로 그 시각, 현실세계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

좡杉?---는 것이다. 단순한 우연이다. 99퍼센트의《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촉을 나는 씻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GGO 세계에 로그인해 문제의 총격자와 접촉해 달라는, 귀찮으면서도 위험한 키쿠오카의 의뢰를 승낙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신규 캐릭터를 키울 여유는 없으므로 나는 ALO의 키리토를 컨버트했고, 총격자의 눈에 뜨이기 위해 토요일인 어제 치러진 BoB 예선 토너먼트에 출장했다. 총을 상대하는 전투는 처음인지라 매우 애를 먹기는 했지만, 제일 처음 만난 어떤 플레이어가 하나에서 열까지 도와준 덕에 어찌어찌 예선을 통과, 나는 마침내 문제의 총격자로 여겨지는 인물과 접촉 하는 데 성공했다. 《사총》이라는 이름을 자칭하는 사내가 정말로 게임 내에서 실제 플레이어를 죽일 힘을 가졌는지 어던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밝혀진 사실이 있다. 《사총》과 나 사이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연결고리가 존재 했던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총》또한 그 데스 게임 -----소드 아트 온라인(SAO)의《생환자》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와 놈은 아마도 과거에 실제로 검을 맞대고 서로의 목숨을----……. 「오빠, 또 얼굴이 무서워졌어.」 그 말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퀭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야에 초점이 돌아오자, 그 앞에 걱정스럽게 눈썹을 늘어뜨린 스구하의 얼굴이 보였다. 내게 들이대던 프린트물을 테이블 위에 놓고, 두 손을 가볍게 맞잡은 스구하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있지, 나, 사실은 오빠가……,」《키리토 군》이 ALO에서 GGO로 컨버트한 거 이미 알고 있었어.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며 한 살 어린 여동생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어른스러운 미소를 어렴풋이 보였다. 「프렌드 리스트에서 키리토 군이 사라졌는데,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어?」「……하, 하지만 이번 주말만 지나면 다시 컨버트할 예정이었고……, 리스트는 그리 매일 쳐다보는 것도 아니니까…….」「안 봐도 느껴지는걸.」 그렇게 단언하는 스구하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어딘가 신비한 색조의 빛이 일렁여, 이런 상황임에도 '이 녀석도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 멋쩍은 생각과 아무 말도 없이 컨버트했다는 죄책감에 눈을 돌리는 내게, 스구하는 다시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 있지, 어젯밤에 키리토 군이 사라진 걸 알고 당장 로그아웃해서 오빠 방에 쳐들어갈까 했어. 하지만 오

빠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ALO에서 사라질 리가 없잖아. 사정이 있을 거리 생각해서, 우선 아스나 언니에게 연락을 해봤어.」「그랬……구나.」 짧게 맞장구를 치며, 나는 한층 고개를 움츠렸다. ALO에서 GGO로 컨버트한다는 사실을 아스나----유우키 아스나와, 우리의 《딸》인 인공지능 유이에게만은 가르쳐주었다. 이유인 즉슨, 이틀이 아니라 단 2초라 해도 ALO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한정적이나마 시스템 액세스 권한을 가진 유이는 분명히 알아차릴 테니까. 그리고 유이는 내가 아스나에게 무언가를 감추는 것을 좋아 하지 않는다. 물론 사정이 있다고 하면 받아들이기야 하겠다만, 그런 지시가 유이의 코어 프로그램에 부담을 줄 거라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아스나와 유이에게만 『키쿠오카 세이지로의 의뢰로 GGO 세계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그 목적은 『더 시드 넥서스의 조사』라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조사의 핵심 부분에 대해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사총》의 게임 내 총격과,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두 건의 변사 사건----.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그러나 엉뚱하기 떄문에 무 시할 수 없는 위화감 또한 분명 존재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스구하나 다른 친구들에게 컨버트한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문 내 귀에 의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조그만 발소리. 이어서 양 어꺠에 두 손이 닿는 감촉. 「……오빠.」 내 등에 몸을 기울이고 스구하는 속삭였다. 「아스나 언니는 여느 떄처럼 GGO에서 한바탕 설치면 금방 돌아올 거라고 그랬어. 하지만 실제로는 불안한 것 같았어. 나도 그렇고. 왜냐하면…… 어제 늦게 돌아왔을 떄 오빠 얼굴이 굉장히 무서웠는걸.」「그랬……어?」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목덜미에 스구하의 짧은 머리카락이 살짝 닿았다. 왼쪽 귀 바로 옆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위험한 거 아니지……? 난 싫어. 또 어디 멀리 가버리면…….」「……안 가.」 이번에는 또렷이 말하고, 나는 왼쪽 어꺠에 얹힌 조그만 손에 내 오른손을 겹쳤다. 「약속할게. 오늘 밤 GGO 대회 이벤트가 끝나면 반드시 돌아올게. ALO와……, 우리 집으로.」「…………응.」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해졌지만, 스구하는 내게 몸을 기댄채 한동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내가 SAO에 사로잡혔던 2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크게 마음 아파했던 여동

생을 다시 이렇게 불안에 빠드리다니,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다. 키쿠오카 세이지로에게 '의뢰를 취소하겠다'고 메일을 보내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방법도---없지는 않다. 그러나 어제의 예선 토너먼트를 거친 지금, 두 가지 이유에서 그것은 어려워지고 말았다. 나를 여성 플레이어라 믿고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준, 무시무시한 거대 스나이퍼 라이플을 다루는 여자아이 《시논》과 재결전을 약속했던 것이 첫쨰. 그기고 또 하나는 나와 《사총》을 잇는 인과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회색 망초의 사내와 맞서 확인해야만 한다. 놈의《옛날 이름》과----내가 내 손으로 베어 죽였던, 놈의 동료 두 사람의 이름을. 현실세계로 귀환한 후 제일 먼저 마쳤어야 하는 나의 책무이니까……. 어꺠에 얹힌 스구하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나는 다시 말했다. 「괜찮아, 꼭 돌아올게. 자 먹자. 식겠다.」「…………응.」 조금 전보다 약간 힘이 돌아온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고, 스구하는 한순간 내 어꺠를 꽉 끌어안은 후 몸을 뗴었다. 종종걸음으로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는 여동생은 여느 떄와 같은 씩씩한 미소를 회복했다. 볶음밥을 단뜩 덜어 담고 한입 크게 떠먹더니, 스구하는 스푼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응?」「아스나 언니에게 들었는데, 이번《일》마치면 알바비가 엄청나게 들어온다며~?」「윽.」 내 뇌리에 키쿠오카가 약속했던 300K엔의 보수와, 그 용도로 구상했던 최신 스펙 PC 사양 일람이 떙 드르르륵 하는 효과음과 함께 펼쳐졌다. ……이렇게 된 이상, 저장용량이 다소 줄어드는 정도는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가슴을 탁 두드렸다. 「그, 그래. 멋진 선물 사줄 테니 기대하라고.」「만세! 있잖아, 나, 전부터 갖고 싶었던 나노카본 죽도가 있는데~.」 …………아무래도 메인 메모리 용향도 다소 수정을 가해야 겠다.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 나는 약간 이른 시각인 오후 3시에 고물 바이크를 타고 자택을 나왔다. 카와고에 가도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 이케부쿠로를 지나 카스가도오리 거리에서 도심으로 향한다. 혼고에서 남쪽으로 꺽어 붙쿄 구를 통해 치요다 구로 들어서면, 몇 분 만에 목적지인 종합병원이 전방에 보인다. 어제도 갔던 병원이지만 그 기억이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 이유는 명백하다. 어젯밤 침대에 누운 후에도 어쩐지 잠이 오질 않아,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겼기 때문이다. 오뢧동안 마음 밑바닥?

?처박아둔 채 잊어버렸던, SAO 시절의 레드 길드《레핑 코친》괴멸극의 전모를. 결국 새벽 4시가 되기 전, 자력으로 잠드는 것을 포기한 나는 어뮤스피어를 뒤집어쓰고 로컬 VR 공간에 풀 다이브했다. LAN으로 이어진 내 데스크탑 PC에서 《딸》유이를 불러내 잡담을 나누다 어찌어찌《슬립 아웃》에는 성공했어도, 숙면은 취하지 못해 밤새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다행히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지만, 눈을 뜬 후 아직까지도 귓속에서 한 목소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네가 키리토냐? 그것은 어제 BoB 예선 토너먼트 도중, 《사총》으로 짐작되는 플레이어가 내게 속삭였던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내 손으로 벤 두 사람----아니, 아스나의 보디가드였던 그 사내를 포함하면 세 명의《래핑 코핀》멤버가 던진 물음이기도 했다. 너냐? 네가 우리를 죽였던 《키리토》냐? 그 질문에 나는 BoB 예선대회장에서도, 그리고 꿈속에서도《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오늘 오후 8시부터 시작될 본선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 망령 같은 자와 대면하리라.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이번에야말로 긍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럴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ALO에서《키리토》를 컨버트하지 말고, 아예 다른 이름으로 신규 캐릭터를 만들어 GGO에 다이브할 것을. 끝덕지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바이크를 세우고 입원병동으로 들어갔다. 집을 나오기 전에 메일을 보냈으므로, 어제와 같은 병실에 이미 아키 간호사의 모습이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여전히 거칠게 땋은 머리였지만, 오늘은 코에 무테안경을 걸쳤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긴 다리를 꼰 채, 요즘은 감소 추세인 종이로 된 문고본을 보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힘차게 페이지를 덮더니 미소를 짓는다. 「여 꽤 발리 왔는걸, 소년.」「죄송합니다. 오늘도 고생을 시켜 드릴 것 같네요, 아키 씨.」 BoB 본선이 시작되려면 네 시간도 더 남았지만, 아제처럼 입장 마감 직전에 다이브해 식은땀을 흘리고 싶진 않았다. 학습 능력이 없어도 유분수지. 그러느니 일찌감치 로그인해 사격 연습이라도 해 두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웃옷을 옷걸이에 걸며 아키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 본선은 8시부터 시작이니 제 심전도는 그떄부터 모니터 하셔도 돼요.」 그러자 백의의 간호사는 어꺠를 으쓱했다. 「괜찮아, 나 어제 야간 근무여서 오늘은

비번이거든. 몇 시간이든 같이 놀아줄게.」「네……? 그, 그럼 더 죄송한데…….」「그래? 그럼 졸리면 네 옆에서 잠깐 실례할까?」 그런 말과 함꼐 가볍게 윙크를 날리니, 현실경험치가 낮은 말기 VRMMO 중독증 환자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키 간호사가 그런 나를 보며 깔깔 웃는다. 이 사람은 재활치료 떄 몇 번씩 주저앉는 내 모습을 다 봤으니 전혀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멋쩍음을 감추기 위해 침대에 털썩 앉은 나는, 바로 옆에 세팅된 거창한 모니터 기기와 베개 위에 놓은 은색의 이중 원관 모양의 헤드기어----《어뮤스피어》를 순서대로 바라보았다. 키쿠오카가 마련해준 그것은 아진 신품이라, 유광 알루미늄 외장에도 인공ㅍ혁이 붙은 안쪽에도 떄 하나 묻지 않았다. 투박한 헬맷 타입이었던 너브 기어에 비하면 디자인과 질감이 훨씬 세련되었으며, 전자기기라기보다는 장식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절대 안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대로, 이 장치에선 치사량의 전자파가 나올 수 없다. 아니. 실제로 하드웨어 레벨부터 극히 미약한 전자파밖에 낼 수 없도록 설계를 해놓았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일부러 병원에서 심전도 모니터링 전극을 가

슴에 붙이고 간호사까지 대동해 체크를 받을 필요는 없다. 누가 어떤 수간을 쓴다 해도 이 어뮤스피어로 내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제로. 전무하다. ----그러나 유명 GGO 플레이어였던 《젝시드》와 《싱거운 명란젓》은 현실세계에서 분명히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바타를 향해 가상의 총탄을 쏜 《사총》은 과거 SAO 세계에서 자신의 의지로 PK를 하던 자……, 레드 플레이어였다. 만약 풀 다이브 기술이라는 것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협 요소가 있다면? 이를테면, SAO라는 이상한 세계에서 사람을 죽였던 플레이어는 VR 환경에 최적화된 일종의 디지털 《살기》나《원념》을 뿜어낼 수 있고, 그것이 어뮤스피어를 통해 데이터로 바뀌어 네트워크 회선을 돌고 돌아 모종의 신호가 되어, 자신이 노린 사람의 신경계로 흘러들어가……, 정말로 심장을 멎게 한다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사총》의 게임 내 공격으로 현실세계의 플레이어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동시에 《키리토》가 휘두르는 가상의 검이 《사총》내지는 다른 누군가를 진짜로 죽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 또한, 아인크라드에서 플레이어를 죽였으니까. 그 숫자는 어쩌면 대부분의 레드 플레이어보다도 많을지 모른다. 나는

이제까지 내 검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일부러 잊으려 했다. 하지만 어제, 그 기억의 뚜껑이 마침내 열리고 말았다. 아니, 애초에 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최근 1년 동안, 그저 눈을 돌린 채 보이지 않는 척했을 뿐이다. 받아들이고 갚아야 할 죄의 무게로부터……. 「왜 그래, 소년? 얼굴이 무서워졌어.」 갑자기 하얀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이 내 무릎을 툭 두드렸다. 흠칫 어꺠를 굳히며 고개를 드니, 아키 간호사가 무테안경 너머로 조용한 시선을 보낸다. 「어……, 아뇨, 아무것도…….」 슬쩍 고개를 가로젓기는 했지만 결국 입술을 꺠물고 말았다. 겨우 몇 시간 전, 완전히 똑같은 이유로 스구하를 걱정시켜 놓고는, 귀찮은 의뢰 떄문에 폐를 끼치는 아키 씨에게도 마음을 쓰게 했다. 못난 것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간호사는 옛날에 재활치료를 받던 나를 격려해주었을 떄처럼 미소흫 지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내 옆으로 옮겨 앉아 말했다. 「공짜로 미인 간호사에게 카운슬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잖아. 자자, 전부 털어놔봐.」「…………그건 거절했다간 천벌 받겠네요.」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어……,아?

?씨는 재활치료과 전에는 외과에 계셨다고 했죠?」「응,맞아.」「이건 실례랄까,굉장히 무신경한 질문인 것 같지만…….」 흘끔 왼쪽을 올려다보고, 한층 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돌아가신 환자 분들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게 되나요…….」 화를 내거나 인상을 구겨도 당연한 질문이었다.의료 현장을 알지도 못하는 애송이가 무슨 건방진 소리를 한 건지, 반대 입장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키 간호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말했다. 「어디 보자…….」 병실의 하얀 천장을 보며 천천히 입을 움직인다. 「이렇게 떠올리려고 하면 얼굴도 이름도 다 떠오르지. 같은 수술실에 겨우 한 시간 있었던 게 다였던 환자 분도……. 음, 기억나, 마취로 잠든 얼굴밖에 못 봤는데도, 참 이상하지.」 그것은 다시 말해, 아키 씨가 참가한 수술에서 환자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듯이리라. 함부로 건드릴 만한 이야기는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빨리 들어가듯이 묻고 말았다. 「잊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에서 어떤 표정을 읽었는지, 아키 씨는 두 차례 잇달아 눈을 깜빡였다.구러나 립스틱을 엷게 바른 입술에서

미소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으음~, 글쎄. 이건 대답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전제를 깔고, 아키 씨는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이란, 잊어버릴 만한 일이라면 확실하게 잊어버리지 않을까? 잊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왜냐하면 잊고 싶다고 생각하는 획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그 기억은 강하고 확실하게 되살아나잖아? 그렇다면 마음속 깊은 곳……, 무의식 속에서는 사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잊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말이 가슴에 스며듦에 따라 입안에서 강한 쓴맛이 솟아났고, 나는 그것을 자조의 웃음으로 바꾸어 토해냈다. 「…………그럼 저는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나쁜 놈이네요…….」「왜?」 그렇게 묻는 아키 씨의 시선에서 눈을 피해 두 다리 사이의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무릎에 얹은 두 팔을 꽉 맞대며, 그 압력으로 어떻게든 가슴에서 말을 밀어냈다. 「…………저는 SAO에서 플레이어를……, 사람을 세 명 죽였어요.」 갈라진 목소리는 병실의 하얀 벽에 부딪쳐 기이하게 일그러진 방향이 되어 돌아왔다. 아니, 방향이 울린

것은 내 머릿속이었을지도. 아키 씨는 내가 작년11월에서 12월에 걸쳐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떄의 담당간호사였다. 그러므로 내가 2년에 걸쳐 가상세계에 사로잡혔던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세계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들려준 적은 한 번도 없다.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이유야 어쨋든 목숨을 빼앗은 이야기르 듣고 끔찍하게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내 입에서 새어나온 말은 이제 멈출 수가 없었다. 한층 깊이 고개를 숙인 채,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전부 레드…….《살인자》였지만, 죽이지 않고 무력화하는 방법도 제게도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전 그들을 죽이고 말았어요. 분노와 증오……, 복수심만으로 베어 죽였어요. 그리고 저는 지난 1년 동안 그들을 깔끔하게 잊어버렸는걸요. 아니,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그중 두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생각이 나질 않아요. 그러니 저는……. 제 손으로 죽인 상대조차 잊어버린 놈인 거예요." 입을 다물자 굳게 얼어붙은 정적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옷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침대 매트리스가 흔들리는 감촉이 전해졌다. 왼쪽에 앉은 아키 씨가 일어나 병실을 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舊嗤?그러지 않았다. 갑자기 등 너머에서 오른쪽 어깨에 손이 놓이더니, 나를 힘주어 끌어당겼다. 몸 왼쪽이 가운에 밀착하고, 흠칫 온몸을 굳힌 내 귓가 바로 옆에서 침착한 속삭임이 숨결과 함께 들려왔다. "미안해, 키리가야. 카운슬링을 해주겠다고 잘난 척했지만, 나는 네가 품은 짐을 덜어줄 수도 함께 짊어질 수도 없어." 오른쪽 어꺠에서 떨어진 손이 내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나는 《소드 아트 온라인》은 물론이고 다른 VR 게임도 해본적이 없으니까……, 네가 말한《죽였다.》는 말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어.하지만……, 이것만은 알 것 같아.네가 그렇게 했던 건, 그래야만 했던 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였지?" "어……." 그 말 또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구하기 위해.분명히 그렇기도 했다.하지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료에서도 말이지, 목숨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단다.산모를 구하기 위해 태아를 포기하고, 장기이식 대기 환자를 구하기 위해 뇌사 환자를 포기하고, 대규모 사고와 재해 현장에서는 트라이지(triage)라고 해서 환자에게 우선순위를 붙이기도 해. ……물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죽여도 된다는 건 아니야. 사라진 목숨의 무게?

?그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사라져서는 안 돼. 하지만 그 결과가 살아난 목숨을 생각할 권리는 거기에 얽힌 모든 사람들의 것이야. 네 것이기도 하지. 넌 네가 구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도 구할 권리가 있어." "자신을……. 구할 권리."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나는 아직까지 아키 씨의 손이 얹힌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전 죽인 놈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는걸요. 짐을……. 의무를 내팽개치고 말았는걸요.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권리는……." "정말 잊고 싶었다면 그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아." 의연한 목소리로 말하며, 아키 씨는 왼손을 내 뺨에 대더니 자신을 보게 했다. 테 없는 안경 너머의 가늘고 긴 눈에 강한 빛이 맺혀 있었다. 손톱을 짧게 다듬은 엄지로 내 눈가를 북북 문지르는 바람에, 나는 그제야 내가 눈물을 머금었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떠올려야 할 순간이 오면 전부 떠오를 거야. 그러니 말이지, 그떄는 이것도 같이 기억하렴. 네가 지키고 구해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키 씨는 그렇게 속삭이며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서늘한 접촉감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무겁고 괴로운 상념을 가라앉혀 주?

?것 같아서, 나는 어꺠에서 힘을 빼고 살짝 눈을 감았다. 몇 분 후, 알몸을 드러낸 상반신에 심전도용 접착 젤 전극을 붙인 나는 침대에 누워 두 손으로 어뮤스피어를 들었다. 어젯밤부터 계속 맴돌던 공포와 자책의 싸늘한 짐은 이제 어딘가로 멀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건 게일 온라인》세계에서 그자―《사총》과 다시 한 번 조우하면, 짐은 금세 돌아와 나를 짓누를 것이다. 마치 주철로 만든 것처럼 묵직한 느김의 VR 인터페이스를 머리에 쓰고 전원을 켜자, 금방 스탠바이 완료를 알리는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시선을 움직여 모니터 장치 옆에 앉은 아키 시에게 말했다. "감시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아까 그건……, 어……, 고맙습니다." "까짓것, 괜찮아." 거친 마루로 그렇게 대꾸하고, 간호사는 내 몸에 엷은 이불을 덮었다. 청결한 비누 냄새를 맡으며 눈을 꼭 감았다. "8시 전까지는 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마 10시쯤이면 돌아올 거예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링크 스타트!" 하고 외치자 무지갯빛 방사광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는 숨을 들이켰다. 차단된 오감 저편에서 아키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잘 다녀와,《영웅 키리토》군." …………뭐?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의식은 현실세계를 떠나 모래먼지와 초연이 맴도는 황야로 날아갔다. "짜증나……." 퍽. "……그 자식!" 아사다 시노는 운동화 발끝으로 그네의 쇠기둥을 걷어차며 내뱉었다. 자택 아파트에서 가까운, 조그만 아동공원의 한구석. 하늘은 이미 진남색 빛으로 짙어졌으며, 공원은 안 그래도 놀이기구 두 개에 모래밭 하나밖에 없는 쓸쓸한 곳인지라 일요일인데도 노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서 있는 시노의 곁에서, 그네 한쪽에 앉은 신카와 쿄지가 눈을 휘둘그레 떴다. "웨, 웬일이야? 아사다가 그렇게……, 직설적인 말을 하다니." "그치만……." 청스커트 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비스듬한 기둥에 등을 기댄채, 시노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뻔뻔하고, 성희롱꾼에, 폼은 있는 대로 잡고……, 애초에GGO까지 와서 검을 휘두르는 건 뭐람." 중얼중얼《그 자식》에 대한 분노를 말로 표현할 떄마다 발밑의 돌멩이를 하나씩 걷어찬다. "게다가 처음에는 여자인 척하고 내게 샵 안내까지 시켜선 장비를 고르게 했다니깐! 하마터면 돈까지 빌려줄 뻔했어. 아우~! 그 자식에게 퍼스널카드 넘겨줬는데……. 아우, 진짜,「항복해주지 않겠어?」는 개뿔이!" 마침내 주위에 적당한 사이즈의 돌?

堧隔?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문득 옆을 내려다보니 쿄지가 놀란 듯, 근심스러운 듯, 애매한 얼굴로 시노를 본다. "……왜, 신카와?" "아니……, 희한하달까, 처음 보는 모습이라……. 아사다가 남에 대해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게……." "어…… 그런가?" "응, 평소의 아사다는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느낌이엇거든……." "……."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상대가 먼저 건드리는―이를테면, 엔도 패거리 같은 치들도 귀찮다는 생각은 했을지언정 그 이상의 감정을 품는 것은 에너지 낭비라고 선을 그어놓았다. 애초에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벅찬데, 타인을 생각할 여유눈 없다. 없어야 하는데.《그 자식》은 이상하게 시노의 비위에 거슬렸고, 심지어 어제 토요일 오후에 처음 접촉하고 24시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의식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다. 시노가 VRMMO―RPG《건 게일 온라인》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만큼 정면으로 다가온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예선 토너먼트 1회전 후 대기시간에 느닷없이 손을

잡혔을 떄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나머지 그 후 치러진 2회전에서 중거리 저격을 두 발이나 놓치고 말았다. "……나, 은근히 화 잘 내. 이래 봬도." 발끝이 겨우 닿는 범위에서 일부러 돌멩이를 끌어다가, 화단을 향해 있는 힘껏 걷어차며 시노는 중얼거렷다. "흐음……, 그렇구나." 쿄지는 아직도 시노를 가만히 쳐다봤지만,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그네에서 몸을 내밀며 진지하게 물엇다. "그럼……, 어디 필드에서 잠복했다가 잡아버릴까? 저격이 가능하면 내가 미끼를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보복이라면 역시 정면대결이 좋겠지? 실력 좋은 머신거너 두세 명 정도는 금방 모을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빔 스터너를 써서 MPK를 하는 것도 좋겠다." 시노는 약간 어이가 없어 눈을 깜빡거렸다. 이것저것 PK 계획을 늘어놓는 쿄지의 말을 오른손을 들어 간신히 막았다. "어, 저기……,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뭐랄까……, 화는 나지만 전법은 외곬인 녀석이니까. 나도 공정한 조건에서 당당히 날려버리고 싶어. 그야 어제는 졌지만…… 어제 그 자식 전법은 알았고, 다행히 복수전 찬스도 있거든." 도수 없는 안경의 다리를 밀어 올린 시노는 스커트 주머니에서 휴대단말을 꺼내 시

각을 확인했다. "앞으로 세 시간 반이면 BoB 본선이야. 이번에야말로 그 헛갈리는 아바타에 바람구멍을 꿇어버리고 말겠어." 오른손 검지를 쭉 뻗어 동쪽 하늘로 향했다. 조준선 너머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붉은 달이 손가락에 걸렸다. 어젯밤, 12월13일 오후. GGO의 최강자 결정 이벤트인《제3회 불릿 오브 불리츠》의 예선 토너먼트가 개최되었다. K 블록에서 순조롭게 승리를 거두던 시노/시논의 앞에 나타난 것은 초심자가 분명한―그러나 마음속 어디선가 왠지 그렇게 되리라 예감했던 대로,《그 자식》이었다. 이름은 [키리토]. 시노가 모르는 VRMMO 게임에서 [더 시드] 플랫폼 특유의 컨버트 기능을 이용해GGO에 온 플레이어. 시논은 예선 등록을 위해GGO 세계의 수도 [SBC 글록켄]의 총독부 타워로 가는 길에, 아마도 게임에 막 다이브한 것으로 보이는 키리토와 처음으로 만났다. 키리토는 건샵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고, 평소의 시논이라면 무뚝뚝하게 방향만 손가락으로 가르킨 후 떠나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직접 안내를 자청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키리토의 아바타가 도저히 여자로밖에 안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따르면 GGO의 M(남성)형 아바타에는 [9000번대]라 불리?

? 언뜻 보기에는 완전히 F(여성)형 같은 모델이 존재한다나, 극히 드물게만 출현하므로 어카운트와 함께 상당한 고가에 거래된다는데, 그것이 당연하다고 수긍이 될 정도로 키리토의 아바타는 [미인]이었다. 윤기 있는 검은 생머리, 밤하늘 같은 빛을 머금은 커다란 눈동자, 새하얀 피부와 가녀린 체구. 솔직히 말해서 진짜F형인 시논의 아바타보다도 훨씬 여성스러웠다. 시논은 GGO플레이 경력 반년을 통틀어[초심자 여성 플레이어]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여성 유저도 있기는 했지만 그녀들은 모두 시논보다도 선배―아니, 고참 병사였으므로 말을 나눈 경험보다도 총탄을 나눈 경험이 더 많다. 그래서 시논은 아무것도 몰라 불안해 보이는 흑발 소녀―실제로는 남자엿지만―를 본 순간 옛날 자신을 떠올리고는, 빨려들듯이 가이드를 자청하고 만 것이었다. 대형 샵에서 무기와 방어구를 맞춰주고, [불릿 라인]과 같은 GGO 특유의 전트 시스템을 강의하고, 총독부 타워에서는 예선 접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후엔 함께 타워 지하의 대기돔으로 이동해, 시내용 장비를 전투용으로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가 시논이 속옷 이외의 모든 무장을 해제했을떄―그제야 비로소, 새삼스럽

게, 너무나도 뒤늦게, 키리토는 자신의 이름과 성별을 밝혔던 것이다.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따귀를 한 방 날린 후 시논은 말했다. 무조건, 나와 붙을 때까지 이기고 또 이겨서 결승까지 올라오라고. 마지막 강의로 패배를 알리는 탄환의 맛을 가르쳐 주겠노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럴 기회가 잇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키리토는 GGO에 갓 컨버트한 초심자였다. 그런 주제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주무장으로 선택한 것은 라이플도 머신건도 아닌[광검]이라는 초 근접전용 무기였다. 검을 들고 총과 붙어서 이길 리가 없다. 시논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 후로는 키리토에 대해 잊어버리려 했지만―. 이럴 수가. 키리토는 시논과 한 약속을 지켰다. 64명이 겨루는 예선 토너먼트 F블록의 1회전에서 5회전까지, 광검 한 자루와 보조무장인 소구경 핸드건 한 자루만으로 이기고 또 이겨서 시논이 기다리는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전 무대가 된 저녁 무렵의 하이웨이에서, 시논은 키리토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직접 보았다. 그는 시논의 파트너인 안티 매터리얼 스나이퍼 라이플 [울티마 라티오 헤카테Ⅱ]가 뿜어낸 필살의 50구경탄을 광검의 가느다란 에너지 블레이드로 막아냈다―아니, 베었다. 두

개의 빛으로 나위어 날아가는 총탄 사이에서 맹렬한 대시로 육박해 날아든 키리토는 시논의 목덜미에 칼날을 대고 지근거리에서 속삭였다. 『항복해주지 않겠어? 여자를 베는 건 좋아하지 않거든.』 "크윽~~~~~~!!" 생각만 해도 그떄의 굴욕이 생생하게 떠올라. 달을 겨누었던 오른손을 거칠게 내렸다. 돌멩이를 더 걷어차야겠다고 발밑을 찾아봣지만, 유감스럽게도 돌멩이랑 돌멩이는 전부 화단으로 날아간 뒤였다. 대신 운동화 발꿈치로 뒤에 있던 쇠기둥을 힘껏 걷어찼다. "……두고 보라지. 이 빚은 반~드시 두 배로 갚아 줄 테니까……" 씩씩 콧김을 내쉬고 있으려니, 쿄지가 그네에서 일어나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이 미간을 찡그리며 시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왜, 왜 그래?" "저기……, 괜찮아? 그렇게 해도……." 쿄지의 시선이 시노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쳐다보니 슬쩍 쥔 주먹에서 검지와 엄지가 뻗어나와, 무의식중에 권총을 본뜬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어……." 황급히 손을 펴고 가볍게 털었다. 사실 여느 떄 같았으면 그런 몸짓에서 [총]을 의식한 순간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럴 기색이 없었다. "어, 응. 뭐랄까……, 화를 내서 그런?

? 괜찮네." "그래……" 쿄지는 얼굴을 들고 가만히 시노의 눈을 보았다. 갑자기 두 손을 뻗어 시노의 오른손을 감싼다. 따듯하고 약간 땀이 밴 손바닥의 감촉에 시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왜……왜 그래. 신카와?" "어쩐지……, 걱정이 돼서……. 아사다가 여느 때의 아사다 답지 않으니까……. 어……, 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들어줄게. 본선은 모니터 너머로 응원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서……." 시노는 한순간만 흘끔 시선을 쿄지에게 돌렸다. 선이 가늘고 순진해 보이는 이목구비 속에서, 두 눈만이 내면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이 뜨겁게 빛났다. "펴……평소의 내가 뭐 어쩄는데……." 평소의 자신이 어떘는지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쿄지는 두 손에 힘을 주며, 안달하듯이 말을 늘어놓았다. "아사다는 언제나 쿨하고……, 매사에 초연해서 무슨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와 같은 처지를 겪고서도 나처럼 학교에서 도망치거나 하지 않고……, 강해, 아주. 아사다의 그런 점을 계속 동경했어. 나의……, 이상형이야, 아사다는." 쿄지의 열기에 압도되어 시노는 몸을 빼려 했으나, 등?

?닿은 그네의 기둥이 그렇게 내버려두질 않았다. "하, 하지만……, 강하지 않은걸, 난. 너도 알잖아……, 총은, 보기만 해도 발작이……." "시논은 그렇지 않잖아" 쿄지가 반걸음 더 다가섰다. "시논은 그렇게 엄청난 총을 자유로이 다루잖아……. GGO에서도 이미 최강 플레이어 중 하나잖아. 난 그게 아사다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해. 분명 언젠가 현실의 아사다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이 돼. 그런 녀석 떄문에 화를 내고 동요하는 아사다를 보면. 내가……, 내가 힘이 되어 줄게……." ―하지만 신카와 약간 시선을 돌리며 시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옛날에는, 아주 옜날에는 평범하게 웃고 울 수 있었어. 되고 싶어서 [지금]의 내가 된 게 아닌걸. 분명 현실에서도 시논처럼 강해지고 싶다는 것은 시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총의 공포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나온 바람이지, 모든 감정을 내팽개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마음속 밑바닥에서는 더 평범하게 친구들과 웃음을 나우며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떄문에 글록켄 시내에서 길을 잃은 초심자 소녀를 발견했을 때는 평소의 시논답지 않게 이것저것 도움

을 주었고, 사실은 남자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화를 냈던 것이다. ―내가……, 내가 바라는 것은……. "아사다……." 갑자기 귓가에서 속삭임이 들려 시노는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샌가 등 뒤의 기둥과 함께 쿄지의 두 팔에 감싸였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는 거의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잎이 덜어진 가로수 너머의 길에는 사람들이 다닌다. 지금 시노와 쿄지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연인 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노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내밀어 쿄지의 몸을 밀쳐내고 있었다. "……." 쿄지가 상처 입은 표정으로 시노를 보았다. 흠칫 놀라 황급히 변명한다. "미, 미안해. 그 말, 굉장히 기쁘고……, 너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내 문제는 내가 싸워야만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구나……." 쓸쓸하게 고개를 숙이는 쿄지를 보자 죄책감이 가슴에 가득 찼다. 쿄지는 시노의 과거―그 사건을 알 것이다. 그가 아직 등교를 거부하지 않았을 떄, 엔도 패거리가 전교에 선전을 해댔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이런 사신에게 마음을 써주다니, 그 마음에 호응해 모든 것을 맡거야 하지 않

을까. 그런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쿄지는 실망해서 자신을 떠난다면 매우 큰 외로움에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머릿속 한 구석에서 그 자식, 키리토의 얼굴이 가로지르고 지나갔다. 그 과도한 자신감. 자신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그와 싸워 승리하기 위해 오직 자신 한 사람만의 능력을, 모든 힘을 한껏 쥐어짜보고 싶었다. 그렇다―지금은 오로지 마음을 뒤덮은 공포의 기억을, 그 단단하고 검은 껍질을 부수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러기 위해 황혼의 황야에서 싸우고, 승리 하리라. "그러니까……, 그떄까지 기다려 주겠어?" 미미한 목소리로 묵묵히 시노를 응시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입술만으로 말하며 시노도 웃었다. 공원을 나와 쿄지와 헤어진 시노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도중에 편의점에서 생수와 함께 저녁을 대신할 알로에 요구르트를 샀다. 평소에는 가능한 균형 잡힌 식사 메뉴를 직접 조리해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세 시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다이브라기 전에 뱃속을 너무 든든하게 채워놓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내는 작은 봉투를 한 손에 들고, ?

兀騈?뛰어올라 방에 들어간다. 전자자물쇠를 재확인하는 시간마저 길게 느껴졌다. 재빨리 부엌을 가로질러 안쪽의 방으로. 벽 시계를 흘끔 본다. BoB 본선이 시작될 오후8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있지맘ㄴ, 가급적 일찍 로그인해 장비와 탄약을 점검하고 정신집중에 한껏 시간을 쓸 생각이었다. 재빨리 청스커트와 면 셔츠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상의 속옷도 벗어 구석의 빨래바구니에 넣은 후, 바닥에 고인 냉기에 몸을 옹송그리며 탱크탑에 헐렁한 트레이너, 쇼트 팬츠로 갈아입고 편안한 차림이 되었다. 약간 낮은 온도로 설정한 에어컨과 가습기의 스위치를 켜자, 시노는 짧게 숨을 내쉬고 침대에 앉았다. 편의점 봉투에서 페트병을 꺼내 뚜껑을 따고, 차가운 물을 조금씩 입에 담는다. 어뮤스피어에는 감각신호 인터럽트 기능이 있어 다이브 중에는 현실 환경의 간섭을 거의99퍼센트 배제할 수 있지만 그래도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하우가 필요하다. 시노는 그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다이브 전에 유념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복장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언젠가 한여름에 차디찬 물을 한껏 마시고 다이브했을 때는 생각도 못한 쓴맛을 보았다. 중립 필

드에서 전투를 하다 맹렬한 복통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이상신호를 감지한 어뮤스피어가 긴급 컷 오프 기능을 발공했던 것이다. 물론 속을 가라앉히고 다시 다이브했을 떄는, 아바타는 이미 사망하여 시내로 전송된 상태였다. 하드코어 VRMMO 게이머이며 금전에 상당한 여유가 잇는 사람은 완전한 감각차단 다이브를 추구해 기인용 [아이솔레이션 탱크(Isilation Tank)]를 도입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긴장이완 시설을 겸한 고급 인터넷 카페에는 이미 탱크를 설치해 둔 곳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지난달엔 시노도 자신이 비용을 내겠다며 쿄지를 꼬드겨 그런 가게에 가보았다. 로그인용 부스는 완전한 개인실이었으며, 비치된 샤워시설을 이용한 후, 부수의 절반을 차지한 캡슐을 옷을 벗고 들어가는 순서를 거쳐야 한다. 캡슐 내부는 의외로 넓었으며. 비중을 조절한 미지근한 액체가 40센티미터 정도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 눕자 몸이 둥실 떠올랐다. 목을 지탱하는 젤 소재 머리받침도 거의 접촉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벽에 걸린 어뮤스피어를 장착하고 무거운 해치를 닫자, 탱크 내부는 완전한 어둠과 정적에 휩싸였다. 사실 그 공간에 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체엄이었지만, GGO에서

쿄지와 만나야 했으므로 시간을 끌 수도 없기에 시노는 VR 공간에 로그인했다. 들어가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분명 평소보다도 가상세계에서 전해지는 오감의 정보가 조금 더 깨끗해진 기분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신체감각이 극한까지 떨어지므로 [인터럽트 누수]에 따른 노이즈가 없기 떄문이라고 쿄지가 셜명했는데, 이론은 그렇다 쳐도 적의 부츠가 모래를 밟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그 감각은 분명 비싼 요금을 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노는 그와 동시에 모종의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현실의 육체에서 완전히 멀어지니, 오히려 현실의 몸이 걱정 된다―고나 할까. VR 월드에 다이브한 동안, 현실의 자신은 모든 감각을 읽고 인형처럼 누워만 있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극히 미미한 위기감을 그 탱크가 증폭해주는 것이다. 물론 [악마의 기계]로 알려진 너브 기어에 비하면 어뮤스피어는 심하다 싶을 만큼 안전 대책에 충실하다. 감각 인터럽트도 일부러 100퍼센트까지는 설정하지 않았으며―그렇기 떄문에 아이솔레이션 탱크가 유용한 것이지만―소리, 빛, 진동, 그 외의 자극에 따라 쉽게 안전장치가 작동해 사용자를 현실로 내던진다. 그렇다 해도 다이브하는 ?

옛?육체가 무방비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던 의미에서는 수면 상태와 별로 다를 바가 없지만, 아이솔레이션 탱크에서 로그인했을 떄의 시노는 아무래도 목덜미가 따끔거리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ㅇ벗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설령 누수에서 오는 노이즈가 조금 있더라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놓이는 장소―자신의 조그만 방에서 다이브하는 것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그만 스푼을 움직이고 있으려니 요구르트 컵은 금세 비고 말았다. 싱크대에서 대충 씻어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는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겸사겸사 볼일도 마친 후 손과 얼굴을 씻고 방으로 돌아왔다. "―좋았어!" 양쪽 뺨을 찰싹 때린 시노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휴대단말의 착신은 무음 상태로 해놓았으며, 문과 알루미늄 새시도 잠갔고, 월요일에 제출할 숙제도 낮에 해치웠다. 현실세계의 모든 것들을 뇌에서 배제할 준비가 끝났다. 어뮤스피어를 장착하고 벽의 스위치를 더듬어 조명을 껐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윤기 있는 흑발과 붉은 입술을 가진 광검사―키리토의 모습이었다. 왼손에 핸드건, 오른손에 포톤 소드를 늘어뜨리고 한쪽 뺨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똑바로 바라본다. 시노의 몸속 싶은 곳에서 투지의 불꽃이 화악 피어났다. 아마 그 자식이야말로 살육의 황야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최강의 적이리라. 시노에게 지긋지긋한 과거를 타파할 힘을 줄, 어던 의미에서는―최후의 희망. 온 힘을 다해 싸우리라. 그리고 반드시 쓰러뜨리리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은 후, 시노는 눈을 감았다. 영혼을 전송하기 위한 키워드를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는 여느 떄보다도 강하게, 또렷이 울려 퍼졌다. "링크 스타트!!" 몸에 수평 방향으로 작용하던 중력이 스윽 사라지고, 어렴풋한 부유감이 찾아왔다. 이어서 천지가 전방으로 90도 회전한다. 부끄러운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것처럼 발끝바투 단단한 바닥에 내려선다. 가상의 몸에 오감이 확실하게 맞물리기를 기다렸다가 시논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별이 ㅇ벗는 밤하늘에 꼬리를 끌며 흘러가는 거대한 홀로그램 네온이었다. 【Bullet of Bullets 3】―진홍색 문자열이 빌딩의 계곡을 형형히 비추었다. 시논은 글록켄 시가를 관총하는 중앙대로의 북쪽 끝, 총독부 타워 앞 광장에 출현했다. 여느 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에이리어지만, 오늘만은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모여 마실 것

먹을 것을 손에 들고 소란을 떨어댄다, 그도 당연한 것이, 이제 곧 시작될 BoB 본선을 앞두고 벌어진 승자 예측 갬블 떄문에, 지금이 광장에선 GGO내에 존재하는 화폐의 절반 이상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배율을 표시한 홀로그램 윈도우를 몸에 건 요란한 차림의 딜러―놀랍게도 플레이어가 아니라 개발사가 마련한 [공식 북메이커 NPC]였다―며, 수상쩍은 극비 정보를 파는 예상업자의 주변은 이 시간대에도 인산인해였다. 문득 궁금해져 딜러 NPC에게 다가가 윈도우를 올려다보니, 시논의 배당액은 제법 고배율이었다. 역시 어제 예선전 결승에서 패배한 탓이리라. 그렇다면 키리토는 어떨까 싶어서 찾아보니, 이쪽도 거의 비슷했다. 흥. 콧방귀를 뀐 후 아예 전 재산을 자신에게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목적의식의 순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 그래도 발을 돌려 인파에서 멀어졌다. 물론 아바타의 외견과 BoB 본선의 단골 출장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기에 주위에서 수많은 시선이 모여들었지만, 굳이 지금 다가오려는 자는 없었다. 시논이 [한 번 적으로 간주하면 가차 없이 이를 드러내는 살쾡이 소녀]라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대기 돔에 들어가 정신집중이라도 해야겠다

고 생각하고 총볻부 건물을 향해 한동안 걸어가자, 등 뒤에서 이름을 부루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논!" GGO 세계에서 이렇게 말을 걸 플레이어는 한 사람밖에 없다. 돌아서자 예상대로 몇십 분 전에 현실세꼐에서 이야기를 나누가 헤어진 신카와 쿄지의 아바다. [슈피겔]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시가전 위장 무늬 전투복을 입은 늘씬한 M형 아바타는 흥분한 탓인지 얼굴에 살짝 홍조가 보였다. "시논, 늦었잖아. 걱정했다고. ―무슨 일 있어?" 시논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은 것을 알아차리고 슈피겔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전에 현실에서 만난 사람하고 곧바로 여기서 얼굴을 마주하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그야 현실의 나는 이 버추얼 아바타만큼 멋있진 않지만. 그런 것보다도 어떄. 승산은? 작전은 있어?" "승산이라……. 그냥 노력하겠다는 말밖에는 못하겠어. 기본은 수색, 저격, 이동을 반복할 뿐일 테니." " 그야 그렇겠네. 하지만……, 믿을게. 꼭 시논이 우승할 거라고." "응, 고마워. 넌 이제부터 어떡할 거야?" "음……, 어디 술집에서 중계나 볼까 하는데……," "그럼 끝난 다음, 그 술집에서 축배나 홧술을 마실 테니 같이 ?

杵팁?" 시논이 다시 한 번 살ㅉ까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슈피겔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곧장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시논의 오른쪽 어깨를 붙잡고 광장 한구석의 어둑한 곳까지 끌고 간다. 다른 플레리어들의 시선이 모조리 차단되자마자 휙 돌아선 슈피겔의 어딘가 절박한 표정에. 시논은 눈을 깜빡거렸다. "시논……, 아니, 아사다." 슈피겔도 VRMMO 내에서 플레이어의 본명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매너 위반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시논은 이번에야말로 크게 놀랐다. "어……, 왜……?" "아까 했던 말, 믿어도 되는 거지?" "아까 했던 말……?" "기다려 달라고 그랫잖아…… 아사다가 자신의 강함을 확신할 수 있으면, 그떄는 나, 나하고……." "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논은 머플러 안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슈피겔은 한 걸음 다가서더니, 다시 시논의 오른손을 꽉 잡았다. "나……, 난 정말로 아사다를……." "미안. 지금은 그만." 약간 어조에 힘을 주며 시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대회에 집중하고 싶어. ……힘을 마지막까지 쥐어짜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남지 못할 전투일 테니까……." "……그렇구나. 그렇

겠지……." 슈피겔의 손이 떨어졌다. "하지만 난 믿을게. 믿고 기다릴게." "으, 응. ……그럼 난 슬슬 준비를 해야 하니……. 갈게." 더 이상 슈피겔과 이야기를 나누면 대회까지 동요가 이어질것 같아서 시논은 몸을 뻈다. "힘내. 응원할게." 여전히 뜨겁게 말하는 슈피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뻣뻣하게 미소를 지은 후 휙 돌아섰다. 건물 뒤에서 나와 총독부 입구를 향해 잰 걸음으로 가는 도중에도, 시논은 계속 등 뒤에서 불타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유리 게이트를 지나 인기척이 적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겨우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자신의 태도가 그렇게 의미심장했던 것일까. 저렇게나 기대를 품을 정도로. 커다란 돌기둥에 몸을 기댄 채 생각했다. 쿄지에게는 분명 호의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은 자기 앞가림만도 벅찼다. 죽은 아버지와 나눈 추억이 없는 시논에게 가장 강하게 기억이 남은 남성의 얼굴이란, 떄떄로 되살아나 발작을 유발하는 5년 전 우체국 권총강도사건의 범인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처럼, 빛 없는 눈이 주위의 암픅 이곳저곳에 숨어 시노를 보고 있다. 다른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남자 친구를 만들어 매일 밤 전화 통화를 나누?

? 주말에는 놀러 나가는 것을 동경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쿄지와 교제한다면, 언젠가 그에게서 [그 눈]을 보고 말지도 모른다. 그것이 두려웠다. 만약 발작을 일으키는 방아쇠인 [총]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남자]를 보기만 해도 공포를 느낀다면―그떄는 그저 살아가는 것조차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다. 뚜벅. 강하게 부츠 굽을 울리며 시논은 총독부 홀 안쪽의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다시 누군가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슈피겔의 중후한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시원한 허스키 보이스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주저주저하며 돌아보자, 눈앞에 서 있던 것은 물론―밉살맞은 [그 자식]이었다. 내가 내려선 곳은 GGO세계의 수도 [SBC 글록켄]북쪽, 총독부 타워에 거의 인접한 길가의 한 모퉁이였다. 우울한 황혼색 하늘을 배경으로, 요란한 홀로그램 네온의 무리가 흘러간다. 그 대부분은 현실세계에 실존하는 기업의 광고다. ALO에서 이런 짓을 하면 세계관을 망친다고 플레이어들의 엄청난 비난을 사겠지만, 이 퇴폐한 미래도시에는 이상하게도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이러한

네온 속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곧 개최될 [불릿 오브 불리츠] 제3회 대회 공지였다. 굵고 새빨간 폰트를 보자마자 온몸이 살짝 떨렸다.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흥분 때문에―라고 생각하련다. 살짝 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돌린 나는, 어깨에 걸린 검은 머리카락을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등으로 흘려보냈다. 팔을 내린 후에야 자신의 몸짓을 꺠닫고 진저리를 쳤다. 아바타에 익숙해진 증거라고 억지로 이해했다. 우선 대회 신청을 마쳐놓을까, 하고 약간 떨어진 총독부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 금세 대로 양쪽에서 수많은 시선이 쏠렷다. 멋쩍어진 나머지 무의식중에 나도 너려봐줄까 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들은 딱히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영혼이 깃든 아바타의 외모는 완전히 여자아이―그것도 상당한 미소녀인것이다. 반대 입장이었다면 나도 있는 힘껏 응시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을 거는 플레이어도 두세명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오히려 내가 다가가면 샤샥 거리를 벌렷다. 그 이유도 추측할 수 있었다. 어제 BoB 예선 토너먼트에서 대전상대에게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돌격을 시도해 광검으로 베어댔던 내 광전사 같은 모습이 이미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공개된 출장자 데이터에는 이름과 참가 횟수만이 실렸을 뿐 성별은 나오지 않았다. [Kirito]라는 이름 또한 남녀 양쪽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러니 아마 GGO세계에서 나는 [취향으로 총이 아니라 날붙이를 휘둘러대는 사이코킬러 여자]로 보이지 않을까. 매우 마음에 안 드는 분류지만, 그 덕분에 이제 곧 시작될 BoB 본선 필드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대전자에게 기피의 대상이 된다면 의미가 있다. 사실 내 목적은 우승이 아니라 그 누더기 망토―[사총]과 다시 접촉하는 데 있었으니까. 본선 출장자 30명의 리스트에 [사총]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출장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놈의 목적이 GGO세계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라면. 게임 안팎으로 주목을 모으는 BoB는 최고의 무대일 것이다. 사총의 본명―이라는 표현도 좀 우습지만, 아무튼 시스템에는 다른 캐릭터 네임이 등록되어 있으리라. 우선 그 이름을 밝혀내고, 대회에서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눈뒤 SAO 시절의 이름까지도 확인한다면, 이를 통해 현실세계의 본명을 알아낼 수 있다. 키쿠오카 세이지로라면 극비 정보인 구 SAO플레이어의 계정 정보도 열람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본명을 알아내면 놈?

?정말로 [젝시드]와[싱거운명란젓]을 죽였는지, 아니, 죽일 수 있는지 어떤지를 밝혀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또한 필연적으로 자신의 죄와 마주서야만 하리라. 그러나 두려움 또한 필요한 감정이다. 다시 망각이라는 도치퍼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설트 부츠 바닥으로 강하게 노면을 차며 앞길에 보이기 시작한 커다란 총독 타워를 향해 걸었다. PvP 대회는 ALO는 물론이고 SAO에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즐겼다. 그런데 설마 이제 와서 공포심을 품고 임하게 될 줄이야. 자조를 흘리며 타워로 이어지는 얿은 계단을 모두 오른 그떄였다. 나는 앞쪽 홀 입구 부근에서 눈에 익은 모래색 머플러가 마치 고양이 꼬리처럼 하늘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깔끔한 하늘색 쇼트 헤어와 재킷 가장자리에서 늘씬하게 드러난 두 다리를 볼 것도 없이, 그 아바타가 어제 예선 토너먼트의 결승전 대전 상대―저격수 [시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GGO 세계에서는 거의 유일한 지인이지만, 나는 쫓아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왜냐하면 어제 이세계에 다이브하자마자 길을 잃은 나는 우연히 만난 시논에게 뻔뻔하게도 가이드를 부탁하고, 게다가 그떄

아바타의 외견을 통해 나